영남 / 3040·5060 ‘정면 충돌’
  • 김은남 (ken@sisapress.com)
  • 승인 2003.09.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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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교체론, 최대 쟁점 부각…PK에서는 친노·반노 ‘외나무 승부’
지금 영남 지역에는 두 개의 전선이 가로놓여 있다. 하나는 친노(親盧) 대 반노(反盧), 다른 하나는 5060 대 3040이 격돌하는 전선이다.

일단 상징성이 큰 것은 친노 대 반노 전선이다. 특히 노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PK(부산·경남) 지역에서 양자간 대치가 첨예하다. 최근 이해성 홍보수석을 비롯해 최도술(총무)·박재호(정무2)·박기환(지방자치) 등 대통령을 가까운 거리에서 보좌하던 청와대 비서관들이 무더기로 부산·경남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하자 지역에서는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을 보였다. 조성래 변호사(부산 금정구)·정윤재 사상구위원장(민주당)·최인호 해운대·기장갑위원장(민주당)·송철호 변호사(울산 중구) 등 이른바 PK의 친노(親盧) 사단이 대선 직후부터 바지런히 움직이고는 있었으나 이들만으로는 역부족이라는 공감대가 안팎으로 퍼져 있던 참이었다.

그러나 청와대 보좌진이 급거 합류했다고 해서 한나라당 의원들이 특별히 긴장하는 것 같지는 않다. 이해성 홍보수석 정도면 모를까, 나머지는 ‘글쎄올시다’라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된 직후만 해도 이렇지는 않았다. 특히 부산 지역 의원들은 의석의 3분의 1은 내줘야 할지도 모른다며 전전긍긍했다. 그렇지만 대통령의 인기가 떨어질수록, 여당의 신당 논의가 지지부진할수록 이들은 여유를 되찾았다.

정형근 의원의 북·강서 갑, 김진재 의원의 금정구, 유흥수 의원의 수영구 등 부산 친노 세력으로부터 ‘전략구’로 점찍힌 지역 또한 여유만만하기는 마찬가지. 이들 지역은 오히려 부산에서도 가장 탄탄한 지역구로 정평이 나 있다. 공천 경쟁이 치열한 한나라당 내에서도 이들 지역에 도전하려는 정치 신인은 손에 꼽을 정도이다. 문재인 민정수석·허성관 해양수산부장관·김두관 행정자치부 장관 등 거물급 인사 PK 투입설이 친노 진영 일각에서 끊임없이 제기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들이 각각 정형근·엄호성·박희태 의원 지역구에 가서 붙어주어야만 승산이 있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을 탈당한 김영춘 의원의 부산 출마가 거론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김의원이 출마 결심을 굳힐 경우 나올 가능성이 가장 높은 지역은 부산진 을(도종이 의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 신상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 한이헌 전 청와대 경제수석, 김정길 전 행정자치부장관 등 노대통령과 가까운 과거 정권의 실세들 또한 유력 대항마로서 지역에서 끊임없이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친노 사단의 움직임보다 PK 의원들에게 더 직접적이고도 실질적인 위협이 되는 것은 3040 세대의 ‘도발’이다. 이른바 고려장 논란은 중앙당에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다. 지난 대선에서 정권 창출에 재차 실패한 이후 확인된 PK 지역의 정서는 한마디로 ‘한나라당도 바뀌어야 산다’는 것이었다. 이를 반영하듯 지난 8월23일에는 PK 지역에서 출마를 준비하는 3040 정치인들이 부산에서 첫 모임을 가졌다. 김정훈 한나라당 대표비서실 부실장·황준동 한나라당 부대변인·유기준 변호사(부산 미래포럼 공동대표) 등을 중심으로 한 이들은, 젊고 참신한 인사들로 한나라당 내부가 물갈이될 때 PK 지역에서의 노풍 또한 차단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부산진 갑(김병호 의원) 사하 을(박종웅 의원) 수영(유흥수 의원) 등을 주요 출마 예상지로 점찍고 있다. 경남에서는 김용갑 의원 지역(밀양·창녕)에 특히 젊은 도전자가 많다. 최병렬 대표의 측근인 김훈식 특보(김정숙 의원 보좌관), 조해진·박상웅 부대변인 등이 이곳을 노리고 있다.
공천에서 떨어질 경우 독자 출마도 불사한다는 것이 이들의 구상이다. 현재 한나라당이 도입하려는 상향식 공천 제도는 현역 의원에게 절대 유리하게 되어 있는 만큼 공천에서 떨어지면 3040끼리 따로 연대체를 만들어 총선에 나가겠다는 것이다. “표를 분산하게 된다 해도 어쩔 수 없다. 현역 의원들에 대한 지역 내 불만은 폭발 직전이다. 지역민들이 우리의 충정을 충분히 알아줄 것이라고 믿는다”(김정훈 부실장)는 이들은 세력화 여부에 따라 내년 총선의 다크호스로 떠오를 전망이다.

세대교체론이 최대 쟁점이 되기는 TK 지역도 마찬가지이다. 전체 의원 11명 중 60세 이상이 9명인 대구 지역에는 특히 초비상이 걸렸다. 원희룡 의원이 60세 이상 용퇴론을 제기한 직후 대구 지역의 한 의원은 “한나라당 386이 당에 뭐 기여한 게 있다고 입을 함부로 놀리느냐. 민주당 386은 정권 재창출에라도 기여했다”라며 노여운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대구에서 승부수를 던질 것으로 알려진 한나라당 소장파는 김성완·강석진·박병희 부대변인, 김천희 전 부국팀 사무국장 등 10여 명에 달한다.
TK 지역에서 친노 세력의 활동은 PK 지역만큼 뚜렷하지는 않다. 아직까지는 이강철 대구시지부 내정자가 고군분투하는 수준이다. 그러나 이내정자의 경우 대구 지하철 사고를 수습하고 유니버시아드 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하는 데 일조하면서 지역에서의 지명도가 날로 높아지는 추세이다. 이를 반영하듯 최근 <매일신문>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이씨는 TK 지역을 대표하는 정치인 6위에 오르기도 했다(1∼5위는 강재섭·박근혜·이해봉·박철언·김중권 순이었다).
이를 두고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대구 사람들에게는 권력자에게 기대고 싶어하는 슈퍼맨 콤플렉스 같은 것이 있다”라고 비아냥댔지만, 최근 잇달아 지역 현안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현역 의원들이 민심을 크게 잃은 것은 사실이라고 수긍했다. 이내정자는 자신이 과거에 출마한 경력이 있는 동구(강신성일 의원)나 수성 을(윤영탁 의원) 쪽을 지망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동구나 수성 을은 공교롭게도 대구에서 최대 격전지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 동구에는 이내정자 외에도 전국구인 박창달 의원, 서 훈 전 의원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지역에서 신망이 높은 임대윤 동구청장 또한 최근 이 지역 출마를 선언했다. 수성 을에는 전국구인 박세환 의원 외에 부장판사 출신인 주호영 변호사, 김성태 전 대구방송 전무가 도전장을 던지면서 대접전 양상이 벌어지고 있다. 아버지(유수호 전 의원)의 후광이 두터운 데다 이회창 전 총재의 최측근으로 주목되어온 유승민 전 여의도연구소장의 출마 여부도 이 지역의 관심거리. 이에 대해 윤영탁 의원측은 지역구 관리를 성실히 한 결과 지난 대선 때 이회창 후보가 전국 최다 득표를 한 곳이 수성 을이었다며, 수성(守城)에 자신감을 표시하고 있다.

대구에서 관심을 끄는 또 하나의 격전지는 박근혜 의원의 지역구 달성군. 이 지역에서는 지난해 박의원이 한나라당을 잠시 탈당했을 때 지구당을 물려받은 손희정 의원(전국구)이 출마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최근 손의원 대신 남편인 하영태 달성상공회의소 소장이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손의원측은 이를 ‘불순 세력의 음해’라고 일축했다.

설사 이강철 내정자가 선전한다 해도 내년 총선에서 TK 민심이 민주당은 물론 노무현 신당 쪽으로 기울 일은 없으리라는 것이 지역 인사들의 대체적인 전망이다. 13대 때부터 지역 총선에 관여했다는 한 중진 의원의 보좌관은 “호남에서 우리(한나라당)가 한 석이라도 얻는다는 확신이 없는 한 TK는 바뀌지 않는다”라고 잘라말했다.

이에 대해 지역 일간지의 한 정치부 기자는 “큰 인물이 나올 경우 내년 총선에서 한두 군데 정도는 승부를 걸어볼 수도 있다”라고 조심스럽게 다른 전망을 내놓았다. 윤덕홍 교육부총리나 권기홍 노동부장관 같은 이 지역 출신 거물이 TK에 출사표를 던질 경우 이변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이강철 내정자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호화 캐스팅’을 할 가능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장·차관 출신이나 지명도가 높은 개혁적 인사들을 포진시킬 경우 해볼 만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구 지역의 한 의원은 윤부총리나 권장관 두 사람이 장관 노릇이나 잘하고 있으면 모를까 현재로서는 어림도 없다며, 이들이 돌풍을 일으킬 가능성을 일축했다.

대구 지역 의원들은 이들 장관급보다 임대윤 동구청장·이명규 북구청장·황대현 달서구청장·이재용 전 남구청장 등 지역 단체장 출신들을 훨씬 파괴력이 큰 카드로 인식하고 있다. 이 중 임대윤 청장과 이재용 청장은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단 이강철 내정자와 막역한 사이로 알려진 이재용 청장의 경우 신당을 택할지 무소속을 택할지 아직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의든 타의든 현재 TK 지역에서 유력한 신당 후보로 거론되는 사람은 정상명 법무부 차관(군위·의성) 최기문 경찰청장(영천) 김광림 재경부 차관(안동) 신 평 변호사(경주) 등이다. 쭦노대통령의 오랜 참모로서 부산의 친노 386 그룹을 대표하는 민주당 정윤재 위원장은 한나라당 권철현 의원에게 도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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