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기·인천 / 신진들의 ‘대공습’ 경보
  • 소종섭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3.09.02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격전 예상지 강북 갑·수원·부천, 예선전 후끈
'2004 표밭’ 김매는 사람들

내년 4월15일 국회의원 선거는 3김 시대를 마감하며 치르는 첫 총선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공천권과 선거 자금을 틀어쥐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던 제왕적 총재 시대가 막을 내리고, 상향식 공천·정치 자금 투명화가 새로운 화두로 떠오른 것이다.

내년 총선의 최대 관건은 ‘물갈이론’이다. 기존 정치권에 대한 유권자들의 불신과 새로운 인물에 대한 기대가 그 어느 때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이를 반영하듯, 정치권에서는 이미 물갈이 논쟁에 불이 붙었다. 하지만 물갈이 요구가 곧장 세대교체론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전망이다. 많은 여론조사가 386 세대에 대한 유권자의 부정적인 인식을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다음 총선에서는 나이를 떠나 ‘도덕성’과 ‘전문성’을 갖춘 ‘참신한’ 인물이 가장 높은 경쟁력을 가질 것으로 보인다.

<시사저널>은 추석 연휴 귀성객들의 화제에 오를 만한 총선 ‘격전지’와 출마 예상자를 지역 별로 정리했다. 자천 타천 거론되는 인사는 최대한 수용하려 했지만 불가피하게 누락된 이름도 있다.

최종 승부처는 결국 수도권이다. 지난 대선을 기준으로 할 때,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 유권자는 1천6백40여만명. 전체 유권자 3천4백여만명의 47%에 달한다. 지역구를 따져보아도 서울 45곳, 경기 41곳, 인천 11곳 등 모두 97곳으로, 전체(2백27곳)의 43%가 수도권에 몰려 있다.

2000년 16대 총선 때는 수도권 민심이 갈렸다. 서울과 경기 유권자들은 민주당에 표를 더 많이 던졌지만, 인천 유권자들은 한나라당 손을 들어주었다. 반면 지난 대선 때는 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보다 서울과 경기에서 30만 표, 인천에서 7만 표를 앞서 대세를 장악했다.

유권자들의 관심이 집중된 만큼 수도권 선거는 박빙의 표 차로 승패가 갈리는 경우가 많다. 16대 총선 때 수도권에서 5백여 표 차이로 승패가 갈린 지역구는 15곳이나 된다. 심지어 경기도 하남 같은 경우는 단 3표 차이로 승부가 갈린 드라마 같은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아직 수도권 표심의 향방을 점치기는 이르다. 노무현 정권이 출범한 뒤 치러진 보궐 선거에서는 전통적으로 민주당세가 강했던 서울 양천 을 지역에서 한나라당 후보가 당선했다. 곳곳에서 민심이 요동하고 있는 것이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민주당 신·구 주류 인사들의 지역구 쟁탈전이다. 구주류 조재환 의원은 지난 7월 초 신주류 대표 인사인 신기남 의원 지역구(강서 갑)에 사무실을 냈다. 8월 중순에는 아예 집까지 옮겼고, 요즘은 거의 1주일 내내 이 지역에서 살고 있다. 그는 35%에 달하는 호남 유권자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신의원을 ‘저격’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인근 강서 을에는 30대 신·구 주류 인사가 대결하고 있다. 구주류 박상천 의원 보좌관과 국회정책연구위원을 지낸 김철근씨가 신주류 김성호 의원에게 도전장을 냈다.

반면 구주류로 분류되는 유용태 의원(동작 을)과 김명섭 의원(영등포 갑)은 신주류 인사들로부터 거센 도전을 받고 있다. 동작 을에는 지난 대선 때 유의원이 탈당하자 이 지역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던 백계문 민주당 서울시지부 사무처장과 신주류 정동영 의원 측근인 홍성범 부대변인이 출사표를 던지고 표밭을 갈고 있다. 영등포 갑에는 김영대 개혁당 사무총장과 윤훈열 청와대 비서관의 출마설이 돈다.

분구가 유력하거나 상징성이 높고 게다가 현역 의원이 약점이 있는 지역구에 출마자가 집중적으로 몰리는 것은 일반적인 현상이다. 서울에서는 강북 갑이 바로 그런 곳이다. 지난 대선 때 한나라당으로 당적을 옮긴 김원길 의원이 현역 의원인데, 거론되는 출마자가 10여명에 이른다.
전대협 의장을 지낸 민주당 오영식 의원이 7월 말 거주지를 이곳으로 옮겼고, 노사모를 이끌었던 영화배우 문성근씨와 명계남씨의 이름도 오르내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해양수산부장관 정책보좌관인 윤후덕씨 출마설도 나온다.

동대문 갑은 이른바 ‘성(性) 대결’로 관심을 끄는 지역이다. 민주당 김희선 의원은 경희대 부총장을 지낸 박명광 신당연대 대표, 장광근 한나라당 의원과 일전을 치를 것으로 보인다. 미스코리아 출신 한승민씨도 나름으로 활발히 움직이고 있어 이래저래 조명을 받는 곳이다.

수도권에는 동대문 갑처럼 성 대결이 벌어지는 곳이 많다. 민주당 추미애 의원과 한나라당 유준상 위원장이 맞붙은 광진 을, 한나라당 강인섭 의원과 민주당 이미경 의원이 경쟁하는 은평 갑, 한나라당 권영세 의원에게 도전하는 민주당 박금자 당무위원, 한나라당 전재희 의원과 민주당 남궁 진 전 의원이 겨루는 경기도 광명, 민주당 정범구 의원에게 한나라당 오양순 전 의원이 도전장을 낸 고양 일산 갑, 한나라당 고흥길 의원이 민주당 허운나 의원의 거센 도전을 받고 있는 성남 분당 갑 등이다. 경기도 안성에서도 한나라당 이해구 의원이 민주당 김선미 위원장의 도전을 받고 있다.

‘정치 1번지’로 불리는 종로에는 현역인 한나라당 박 진 의원과 겨룰 만한 사람이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유인태 정무수석이 출마할 것이라는 추측이 나돌고 있어 주목되는 지역이다. 민주당 정동영 의원 출마설도 끊이지 않으나, 정의원의 한 측근은 의정보고회를 하면서 열심히 지역구(전북 전주 덕진)를 다지고 있는데 무슨 소리냐며 출마설을 부인했다.
현재 경기 지역에서 가장 달아오르고 있는 지역은 수원이다. 임창렬 전 경기도지사가 출마를 결심한 가운데, 김진표 경제 부총리와 진대제 정보통신부장관 등 거물들의 출마설이 지역 정가에 퍼지고 있기 때문이다. 김부총리가 최근 총선에 나가지 않겠다는 의사를 언론에 밝혔지만, 그가 결국 출마할 것이라고 보는 사람들은, 김부총리의 고향이 수원이고 아직 노모가 그곳에 살고 있다는 데 주목한다. 여권이 막판에 김부총리에게 출마를 강권할 것이라는 전망도 사그러들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애태우는 사람은 한나라당 남경필 의원이다. 김부총리의 출마 예상 지역이 남의원의 지역구와 겹치기 때문이다. 남의원은 최근 이들이 출마한다고 가정하고, 각각 자신과 맞붙는 상황을 상정해 여론조사까지 해보았다. 조사 결과 김부총리와는 오차 범위 내에서 접전하는 것으로 나와 남의원측을 긴장시키고 있다.

부천에서는 최근 노무현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한나라당 김문수 의원(부천 소사)에게 누가 도전할 것인가가 관심사이다.

이와 관련해 주목되는 사람은 노대통령과 가까운 원혜영 부천시장과 노대통령의 ‘386 측근’인 김만수 전 청와대 춘추관장이다. 원시장의 비서실장인 김영국씨는 “당선이 확실하니 출마하라는 말이 많고, 지역 언론도 90%는 나갈 것으로 보고 있다”라고 말해 원시장이 출마할 가능성이 높음을 시사했다. 원시장이 출마한다면 그가 가장 원하는 곳은 자기가 정치적으로 성장했던 부천 오정구일 것이다. 그러나 이 지역은 지금 김만수 전 청와대 춘추관장이 표밭을 누비고 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원시장이 전격적으로 소사 출마를 선언해 김문수 의원과 맞붙는 상황을 점치기도 한다.

그러나 최근 김만수씨 주변 사람들은 그에게 오정구에서 소사구로 지역구를 옮겨 김의원과 승부하라고 주문하고 있다. 김씨도 생각이 없지만은 않다. 그는 “신당 논의가 어떻게 마무리되는지를 보면서, 9월 말쯤 최종 결정할 것이다. (소사 출마)가능성이 있다”라고 말했다.

김문수-김만수 대결이 현실화한다면 이곳은 순식간에 전국적으로 주목되는 선거구가 될 가능성이 높다. 더구나 소사 지역 바로 옆은 전 청와대 민정수석실 행정관인 백원우씨가 출마한 경기도 시흥이다. 백씨 또한 김씨와 함께 이른바 ‘금강팀’으로 불린 노대통령 최측근 인사여서 원혜영-김만수-백원우로 이어지는 ‘노무현 벨트’가 형성될지 주목된다.

부천 원미 을에서 벌어지는 민주당 배기선 의원과 한나라당 이사철 전 의원의 한판 승부도 눈길을 끈다. 15대 총선 때는 이씨가 배의원을 눌렀으나, 16대 총선 때는 배의원이 이씨를 이겼다. 각각 1승1패를 기록한 두 사람은 서로 승리를 다짐하며 세 번째 결전을 벼르고 있다.

정용대 안양사회연구소장(안양 만안), 김두수 민주당 개혁특위 전문위원(고양 일산을), 김재갑 성남시민광장 이사(성남 수정), 정기남 전 정동영 의원 보좌관·안기영 도의원(안양 동안), 이종상 전 민주당 부대변인(광주), 손범규 한나라당 부대변인(고양 덕양 갑) 등 유난히 신진들이 많이 뛰어든 것도 경기 지역의 한 특징이다.
인천에서 최대 격전지로 꼽히는 곳은 부평 갑이다. 대선 전 민주당에서 옮겨 온 박상규 의원과 지구당위원장인 조진형 전 의원이 한나라당 대표 자리를 놓고 한치 양보도 없는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민주당에서는 박상희 의원이 출마를 저울질하고 있는 가운데, 김용석 청와대 비서관의 출마설도 끊이지 않고 있다. 박상규-박상희 대결이 이루어진다면, 중소기업협동조합 중앙회장을 지낸 인사끼리 격돌하는 보기 드문 경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