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코 먹은 약 알고보니 독약
  • 이철현 (leon@sisapress.com)
  • 승인 2003.09.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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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품설명서에는 부작용이 적혀 있지 않고, 식약청의 의약품 안전 관리는 허술하기 짝이 없다. 연간 ‘약물 이상 반응’ 피해 보고가 미국은 30만건인데 우리 나라는 수십 건이다. 전국민이 치명적인 의약품 부작용에
간질 치료제인 조니사마이드는 미국에서 어린이 환자 치료 약품으로 승인받지 못하고 있다. 효과와 안전성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어린이 간질 환자 치료제로 버젓이 유통되고 있다. 또 이 약품은 이상 고열을 일으킨다는 보고가 나와 있으나, 국내 약국에서 시판되는 조니사마이드 약품설명서에는 새로 보고된 부작용들이 명시되어 있지 않다.

옴 치료나 이를 구제하는 데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린덴은 체중 50㎏ 이하 어린이나 어른이 2회 이상 반복해 사용하면 위험하다고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지난 3월 발표했다. 하지만 국내에서 시판되는 린덴의 약품설명서에는 아직 명시되지 않은 경우가 있다. 국내 의약품 안전을 관리하는 주무 부서인 식품의약품안전청(식약청)은 지난 5월 해당 제약회사에 약품설명서를 교체하라고 지시했다.

죽음 부르는 이상 반응도 표기 안해

또 왜소증 치료제인 소마트로핀은 과다 비만·호흡기 손상이나 감염 병력이 있는 어린이와 환자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다고 보고되었으나, 역시 국내에서 유통되는 약품설명서에는 나와 있지 않아 의사나 약사가 적합한 처방과 복약 지도를 하는 데 차질을 빚고 있다.

의약품은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 시판 승인을 받는다 해도 시판 후 새로 심각한 부작용이 발견되는 일이 많다. 따라서 정부는 제약회사·병원과 협조해 약품 시판 후 새로 발견되는 부작용 정보를 수집하고 보고하는 PMS(Post-Marketing Surveillance·약품 시판 후 부작용 조사)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 PMS 운영 실태는 형편없었다.

이같은 사실은 <시사저널>이 미국 식품의약국이 운영하는 의약품 안전 정보 프로그램인 ‘Med Watch’ 자료를 근거로 삼아, 미국에서 새로 발견된 부작용이 국내에 반영되었는지를 현장에서 확인하는 과정에서 밝혀졌다. <시사저널>은 ‘Med Watch’에 새로 부작용이 보고된 일흔두 가지 생물약 제제와 의약품 가운데 국내에 수입된 의약품 서른다섯 가지를 대상으로, 해당 부작용이 국내 제약사 약품설명서에 기재되어 있는지, 약품관리과 심사계가 약품설명서 교체를 지시한 적이 있는지 세밀히 검토했다.

그 결과 조사 대상 약품 성분 35종 가운데 12종에서 새로 부작용이 발견되었는데도 시중에 비치된 설명서에는 반영되어 있지 않은 사례가 나타났다(42쪽 위 표 참조). 식약청 약품관리과는 지난 5월 메실산페르골라이드·린덴·리스페달 등 몇 가지 약품의 설명서를 변경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대다수 약품이 부작용에 대한 고지가 없거나 설명서가 바뀌지 않은 채 국내 병·의원과 약국에서 유통되고 있었다. PMS 제도 활성화의 근간이 되는 의약품 보고 체계가 제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 발견되는 부작용이 소개되지 않고 부작용 사례도 보고되지 않는 악순환이 계속되면서 전국민이 약품 부작용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 해마다 ‘약물 사고’로 10만명 넘게 사망

의약품 부작용 실태는 흔히 알려진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 의약 선진국인 미국만 해도 약물이상반응이 해마다 2백21만6천건이 넘게 발생하고, 그로 인해 10만6천명이 사망했다(1966~1996년 평균 추정치). 폐질환·당뇨병·후천성면역결핍증(AIDS)과 사고로 인한 사망자 수보다 많다. 미국인 사망 원인 중 4위에 해당한다. 약물이상반응으로 인한 연간 총비용은 1천3백60억 달러에 달한다. 심혈관 질환이나 당뇨병 때문에 발생하는 총비용보다 많다. 약물이상반응을 경험한 입원 환자는 그렇지 않은 환자보다 입원 기간·비용·사망률이 2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식품의약국의 ‘Med Watch’에 해마다 보고되는 약품 부작용 피해 사례는 25만∼30만 건에 이른다. 미국 식품의약국은 이 보고에 기초해 약물과 이상반응 간의 인과 관계를 밝히고, 평가 결과가 나오면 해당 약품에 대해 즉시 행정 조처를 한다. 이웃 나라 일본에서도 해마다 2만건에 이르는 약물이상반응 보고가 접수된다. 유럽연합도 3만건이나 된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부작용 보고 건수가 거의 없는 편이다. 지난해는 겨우 77건이었다(41쪽 표 참조).

국내 의약품 소비자들이 부작용에 대한 내성이 강한 ‘특이 체질’이어서 그럴까. 물론 아니다. 의약품 부작용에 의한 약화 사고들이 밝혀지지 않은 채 넘어가고 있는 것이다. 대한의사협회 약물안전관리소위원회 위원장인 박병주 교수(서울대 의대·예방의학과)는 “의사의 참여 의식이 부족해 의약품 부작용 사례가 보고되지 않고 있다”라고 말했다(46쪽 인터뷰 참조). 국내 병·의원은 약품 부작용 사례가 발생해도 의료 분쟁의 빌미가 될까 우려해 보고하기를 꺼린다. 식약청 장준식 의약품안전국장은 지난 4월 열린 ‘약물안전관리 체계’ 심포지엄에서 “병원이 피해자의 책임 소재 추궁과 보상 요구를 걱정하고 병원 내 인력과 전담 조직이 적어 약품 부작용 보고 실적이 저조하다”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한 정부의 지원 대책은 거의 없다. 의료분쟁조정법이 제238차 임시국회에 상정되어 있으나, 무과실 의료 사고에 대해 정부가 보상하는 조항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어 통과가 늦어지고 있다. 또 의약품 피해구제 제도(약사법 72조)도 실시되지 않고 있다.
식약청, ‘부작용 피해기금’ 한푼도 못 모아

일본 후생노동성은 직접 의약품 부작용 피해기금을 운영하고 있다. 정부가 제약회사의 도움을 얻어 기금을 마련해 병·의원의 과실에 의하지 않은 부작용 피해를 직접 보상하고 있는 것이다. 이 덕분에 일본 병·의원은 의료 분쟁으로 인한 법적·금전적 피해를 걱정하지 않고 약품 부작용 사례를 보고하고 있다.

한국 식약청도 일본을 벤치마킹해 제약협회 소속 회원사를 대상으로 기금을 모집하고자 했다. 하지만 참여 업체가 없어 한푼도 모으지 못했다. 일부에서는 제약회사들이 해마다 과실금으로 내는 2백억원 가량을 구제기금으로 활용하자는 제안이 나오고 있다. 정부는 현재 소비자나 의약 전문인을 대상으로 간행물을 통해 ‘약물이상반응 모니터링 제도’를 소개하는 일에 치중하고 있다.

약품 안전성 관리 부서인 식약청이 제구실을 못하자 민간 단체가 나서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지난해 1월 약사위원회 산하에 실무위원 11명, 자문위원 41명으로 구성된 약물안전관리소위원회를 발족했다. 약물이상반응을 보고하는 체계를 구축해 운영하는 이 위원회는, 지난해 7월부터 올해 3월까지 약물이상반응 신고 34건을 접수해 식약청과 회원들에게 해당 정보를 제공했다. 박병주 위원장은 “당초 의약품 부작용 사례를 접수하고 관련 정보를 회원들에게 알리고자 했으나 접수 실적이 기대에 못 미쳐 아직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대한약사회는 2000년 2월 제약협회·의약품도매협회와 함께 약학정보화재단을 설립해 의약품 정보를 데이터 베이스화하고 인터넷을 이용해 의약품 정보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홈페이지에 설치된 자료실에는 부작용 신고 사례가 아직 올라오지 않고 있다. 식약청이 홈페이지를 통해 공고하는 의약품 허가 사항 변경 지시밖에 없었다.

대한약사회는 병원내 약사를 활용해 약물이상반응 모니터링 시스템을 구축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제약회사들이 병원 약국에 약품을 공급하거나 해당 약품에 대한 최신 정보를 알려주고 있고, 병원 약사들은 진료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작용을 접할 수 있다. 따라서 병원 약사를 중심으로 네트워크를 형성하면 의약품 부작용에 관한 최신 정보를 의약 전문인에게 활발하게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의약품 부작용 담당 직원 겨우 3명

연세대 의대는 1992년 국제 의약품 부작용 모니터링센터와 데이터 베이스를 온라인으로 연결해 영동세브란스병원을 포함한 시범 병원 세 곳에서 의약품 이상 반응 프로젝트를 시행했다. 임상 의사들이 환자를 진료하면서 발견되는 부작용을 마우스로 간단히 클릭해 보고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국내에서는 선진 형태의 모니터링 시스템이었으나 어이없는 일로 사라질 뻔했다. 연세대 의대는 2000년 10월 부작용 모니터링 성과를 언론에 발표했다. 그런데 당시 일부 매체가 영동세브란스병원에서 발견된 부작용 사례를 보도하면서 ‘연세세브란스병원은 의약품 부작용 사례가 많다’고 보도한 것이다. 이 촌극으로 인해 연세대 의대는 모니터 결과 발표를 꺼리게 되었다.

연세대 의대가 선도적으로 정착시킨 이 프로젝트는 2001년 전국 15개 병원으로 확대되었다. 가장 활발하게 돌아가는 병원이 서울대병원이다. 임상 의사들이 진료하면서 발견한 부작용의 인과 관계를 정밀 분석해 그 결과를 식약청에 보고한다.

국내 제약회사들도 ‘제품 안전성 최신 보고서’(PSUR)를 3∼6개월 주기로 식약청에 보고한다. 다국적 제약회사는 본사가 수집한 신규 부작용 관련 정보를 식약청 약품관리과에 보고해 약품설명서 변경을 요청하기도 한다. 이처럼 식약청 약품관리과에 의약품 안전성 정보가 모이고 있다(42쪽 아래 도표 참조). 그런데 의약품 부작용 최신 정보를 분석·평가해 적합한 행정 조처를 취해야 할 약품관리과 심사계 직원 수는 고작 3명이다. 이 가운데 시판 후 새로 발견되는 부작용 정보를 조사하거나 처리하는 업무(PMS)를 맡은 직원은 단 한 명이다. 의약품 최신 정보를 한데 모았다가 다시 공급해야 하는 핵심 부서의 인력이 터무니없이 적다 보니 의약품 정보가 원활하게 흐를 리 없고, 신속한 행정 조처도 기대하기 힘들다.
심사계 직원들의 업무량은 살인적이다. 세계보건기구(WHO) 부작용 모니터링 프로그램, 의사·약사 협회, 의·병원, 외국 의약 전문 기구 등에서 쏟아지는 최신 의약품 안전성 관련 정보를 수집해 중앙약사심의위원회에 심의를 요청하고, 국내 4백여 제약회사가 3∼6개월마다 한 상자씩 가져오는 제품 안전성 최신 보고서를 검토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심사계 책상 주위에는 아직 살펴보지 못한 보고서가 상자째 쌓여 있다. 중앙약사심의위원회는 심의가 끝나면 해당 제약회사들에 약품설명서를 바꾸라고 수시로 지시한다.

복잡한 의약품 유통 체계도 PMS 업무를 효율적으로 시행하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 제약회사들은 도매상을 통해 병·의원과 약국에 약품을 공급한다. 그 과정에서 도매상은 다른 도매상에 약품을 넘기기도 한다. 이때 많은 도매상이 약품 판매 기록을 제대로 작성하지 않는다. 식약청이 약품 회수 조처나 약품설명서 변경을 지시해도 약품이 어디에 있는지 몰라 행정 조처가 실효를 거두지 못하는 일이 빈번하다. 식약청 약품관리과 곽병태 사무관은 “국내 의약품 도매상들은 해당 약품들을 어디다 팔았는지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빈번하다”라고 말했다. 김대업 대한약사회 상근이사는 “약품마다 고유 번호를 도입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상 반응 신고가 활성화하지 않고 새로 발견된 부작용 정보가 원활하게 흐르지 않자, 정부는 그 보완책으로 약품 재심사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정부는 1995년 1월, 허가 당시 발견되지 않은 이상반응이 사용 초기에 많이 나타나는 것을 감안해 신약 재심사 제도를 전면 시행했다. 1996년부터 지난해까지 모두 6백80종을 재심사해 시판을 계속 허용하거나 허가 사항(효능· 효과·사용상 주의사항 등)을 바꾸었다.

하지만 재심사 제도도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제약업체들이 재심사 제도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불필요한 규제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또 시판 후 조사에 필요한 조직과 관리 체계를 구축하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일부 제약회사들은 PMS 제도 폐지까지 주장한다. 김대업 대한약사회 상근이사는 “제약회사들은 약품의 효능은 널리 알리려고 하지만 부작용을 알리는 일에는 관심이 없다”라고 말했다.
부작용 정보를 능동적으로 고지하라고 제약회사들을 강제하는 법규는 없다. 국민 건강과 직결되는 업종 특성상 제약회사들이 자발적으로 나설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순진해 보인다. 정부가 적극 나서 의약품 안전성 정보 체계를 확립하고 관련 법규를 정비해, 제약회사와 민간 단체 사이의 협력을 강제할 수밖에 없다. 그런 측면에서 한국은 아직 후진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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