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호상박'' 두 도시 이야기
  • 장영희 (mtview@sisapress.com)
  • 승인 2003.10.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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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과 상하이, 중국 경제 ‘양대 엔진’ 구실…IT와 금융·유통 중심지로 역할 분담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중국의 대표적 도시인 베이징과 상하이는 추월선을 함께 달리는 두 대의 자동차 같았다. 베이징은 중국을 이끄는 링다오(領導)들이 살고 있는 수도의 자존심을, 상하이는 중국 최대의 금융·상업·무역 중심지라는 위상을 내세우며 한치도 양보 없이 각축하고 있다. 중국의 31개 성·시 가운데 정치 경제적으로 비중이 큰 지역은 베이징과 상하이. 여기에 개혁 개방의 진원지인 광둥성과 인구와 경제력에서 각각 2,3위인 산둥성을 넣어 이른바 ‘빅4’라고 부르지만, 베이징과 상하이의 눈부신 약진에 광둥성과 산둥성이 분루를 삼키고 있다.

가을 정취가 완연한 9월23일 베이징은 ‘공사중’이었다. 베이징의 최대 번화가 왕푸징(王府井) 거리에는 도심 재개발 사업의 일환으로 백화점과 대형 유통 상가가 건설되고 있었다. 왕푸징이 서울의 명동이라면 자오양취(朝陽區)의 엔사(燕莎) 궈모(國貿) 같은 비즈니스 빌딩이 몰려 있는 지역(CBD)은 강남쯤 된다. 이곳에서도 한 달이 멀다 하고 새로운 고층 건물이 올라가고 있었다. 베이징 외곽에서는 불량 주택 철거 작업이 한창이었다. 9월 초부터 베이징 한복판인 톈안먼(天安門) 광장에 시위대가 나타난 것은 날로 심해지는 빈부 격차가 결정적 이유지만, 일제 철거로 인해 하루아침에 집을 잃은 사람들의 분노와도 관련이 있다.

베이징 시가 사실상 도시 전체를 뜯어고치고 있는 것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 유치와 무관하지 않다. ‘신베이징 신아오윈(新奧運)’. ‘뉴 베이징과 그레이트 올림픽’이라는 구호가 말해주듯 베이징은 올림픽을 계기로 세계적인 도시로 도약하겠다는 각오다. 베이징 북쪽에 올림픽 콤플렉스가 본격 개발될 계획이고, 도시를 순환하는 6환선과 7환선도 설계되는 등 대대적인 인프라가 구축되고 있다.

중국 정부의 베이징 마스터플랜은 이미 문화대혁명 직후인 1970년대 말에 마련되었다. 이른바 ‘다(大) 베이징 계획’. 진(金)·위엔(元)·밍(明)·칭(淸) 나라의 수도였던 고도 베이징의 기능을 분산해 특화하고 밖으로는 베이징과 톈진·탕산·바우둥 같은 인근 도시를 하나로 묶는다는 전략이다.

2008년 올림픽이 베이징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킬 계기라면 상하이에는 2010년 상하이엑스포가 있다. 아직 7년이나 남았지만, 9월27일 상하이에서는 마치 2∼3년 앞으로 다가온 듯한 부산함이 느껴졌다. 상하이 시 정부가 국제 도시·디지털 도시 기치를 내걸고 엑스포를 상하이 대도약을 위한 결정적 발판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사실 엑스포 역시 황푸 강 양안 종합개발 계획의 일환이다. 이 계획의 기본 구도는 상하이를 동서로 가르는 황푸 강에 남북으로 20㎞, 총면적 1천3백30㏊ 부지를 조성해 상하이를 국제 금융·무역·물류 중심지로 키워 간다는 것이다. 10년에 걸쳐 엑스포 직접 투자액의 4배가 넘는 총 1천억 위안(1백20억 달러)을 쏟아붓는 상하이 최대 역사, 황푸 강 종합 개발 계획이 마무리되면 엑스포 성공은 물론 상하이 자체가 또 한번 천지개벽을 경험할 것이 분명하다.

지난 2월 한쩡(韓正) 상하이 시장이 발표한 ‘3항2망 비전’은 상하이의 또 다른 발전 전략이다. 앞으로 5년간 푸둥 공항과 양산 심수항, 정보항, 고속도로망, 철도 도로망을 완비하겠다는 계획은 아시아 물류 허브를 지향하는 한국을 위협할 것이 틀림없다. 2005년 양산 항 1차 공사가 끝나면 2백20만 TEU(1TEU는 30피트짜리 컨테이너 1개)를 처리할 수 있으며, 2020년에는 무려 10배인 2천2백만 TEU를 감당할 수 있다. 중국 최대 항구인 상하이 항은 물동량에서 부산을 제치고 이미 홍콩·싱가포르에 이어 세계 3위 항구로 올라서 있다. 2007년까지 4천만명(3백만t), 2020년까지는 두 배인 8천만명(5백만t)을 실어나르겠다는 목표로 대대적인 증설에 나선 푸둥 공항도 물류 중심지 상하이의 한 축을 담당한다. 이미 상하이의 푸둥과 홍차오 공항의 항공 화물 수송량은 중국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

상하이 시 정부는 물론 중앙 정부 차원에서도 상하이 발전 계획에 팔을 걷어붙이는 것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상하이는 중국에서 가장 잘사는 도시(1인당 GDP 약 5천 달러)이자 중국 부유화의 전초 기지라는 지정학적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상하이의 경제 발전 성과를 인근 장쑤성과 저장성을 아우른 창장(長江·양쯔강) 삼각주에서 GDP의 40%를 차지하는 창장 경제대로, 나아가 쓰촨·칭하이 성 등 내륙 낙후 지역까지 확대하려 하고 있다. 이것은 서부 대개발과 동북 3성 개발과도 무관하지 않다. 용트림하는 중국에서 상하이를 용의 머리, 푸둥 지구를 여의주에 비유하는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상하이와 베이징을 비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푸둥신쥐(浦東新區)와 중관춘(中關村). 상하이가 자랑하는 5개 개발구 가운데 하나인 푸둥에는 세계 글로벌 기업들의 진출이 러시를 이루고 있다. 아시아지역본부 유치를 둘러싸고 두 도시는 신경전이 대단하다.
7월 말 현재 중국 상무부가 인정한 다국적 기업 아시아지역본부는 상하이가 41개, 베이징이 24개였다. 출발이 늦은 상하이가 역전승을 한 셈이지만, 전문가들은 두 도시 모두 패자 없는 경쟁을 하고 있으며 나름으로 역할 분담을 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상하이에는 GE·엑손모빌·시티뱅크·카르푸 같은 제조·금융·유통 업체들이, 베이징에는 모토롤라·노키아 같은 IT 분야 기업들이 지역본부를 설치하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삼성과 LG전자, SK 중국본부도 베이징에 있다.

베이징의 중관춘에 대해 1999년 장쩌민 전 국가주석은 중관춘이 10년 안에 타이완의 신주(新竹)를, 20년 내에는 미국의 실리콘밸리를 따라잡을 것이라고 장담한 적이 있다. 중국이 세계의 자본과 인재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라면, 중관춘은 그 블랙홀의 핵 구실을 하고 있다.

베이징 서북부 하이덴취에 있는 칭화(淸華)대학이나 첨단 기술 집적 단지인 상디(上地)에서 기술을 개발하면 1만 개에 육박하는 중관춘 입주 기업이 상품화하고, 이 제품은 중관춘 따루(大路) 변에 있는 하이룽 상가(海龍大廈) 같은 크고 작은 상가에서 곧바로 소비자의 평가를 받는다. 아이디어 연구→개발→상품화→판매→소비자 반응이라는 전과정이 하이덴취 남쪽의 바이스차오에서부터 북쪽의 상디 단지에 이르는 10㎞ 내외 공간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중관춘에서 주목되는 것은 대학이 출자하고 경영하는 ‘자오반(敎辦) 기업’이다. 베이징 대학은 중관춘의 유명 컴퓨터 제조업체인 베이다팡정(北大方正), 베이다칭다오(北大靑島), 베이다웨이밍(北大末名) 등 4개 그룹에 100여 개의 기업을 거느리고 있다. 칭화 대학도 칭화쯔광(淸華紫光) 같은 부속 기업을 갖고 있으며 즈광빌딩·화예빌딩 등을 지어 임대업도 하고 있다. 상하이의 명문 대학인 푸단 대학이나 쟈오퉁 대학에도 이런 자오반 기업이 적지 않다.

상하이는 중국 공산당의 탄생지(1921년)이자 문화대혁명의 진원지였다. 늘 새로운 것이 꿈틀거리는 곳이 상하이였던 것이다. 상하이는 정치인도 많이 배출했다. 장쩌민 전 국가주석과 주룽지 전 총리, 우방궈 전인대 상무위원장, 황쥐 부총리가 모두 상하이 서기를 거쳐 중앙으로 진출해 ‘상하이방’(상하이를 근거지로 입신한 정치인 그룹)이라는 신조어를 탄생시켰다. 영국 유학파로 영어에 능통한 천량위(陳良宇) 상하이 시 서기와 역대 최연소 시장인 한쩡 시장(49세) 역시 상하이방이다.

이에 비해 베이징은 1995년 당시 베이징 서기였던 천시퉁(陣希同) 등 이른바 베이징방이 제거되면서 정치적 위상이 크게 약해졌지만 자칭린 서기가 정치국 상무위에 전격 진입하고 류치(劉淇) 시장이 시위 서기로 올라가면서 서서히 예전의 위상을 되찾고 있다.

중국은 지방색이 강한 나라다, 31개 성·시가 사실 웬만한 나라를 능가해 30여 나라가 모인 합중국이라고 표현하는 이도 있다. 베이징과 상하이 사람들은 한국의 영호남 사람들은 명함도 내밀지 못할 만큼 지역 갈등이 심하고 서로 경원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질도 북방계인 베이징 사람들은 대담하고 셈이 밝지 못한 반면, 남방계에 속하는 상하이 사람들은 속이 좁고 수리에 밝다고 한다. 남방계인 상하이와 광저우 사람 가운데 상인이 많은 것도 이재에 능하기 때문이다.

지난 6월 베이징의 왕푸징 거리에는 ‘베이징 전뉴’(眞牛, 베이징 대단하다) ‘베이징 성리’(勝利, 이겼다)라는 현수막이 내걸렸다. 사스 완전 퇴치를 자축하는 의미였다. 이 왕푸징 현수막은 앞으로 사스 격퇴가 아니라 베이징은 상하이를, 상하이는 베이징을 격퇴하는 것을 기념하는 구절로 바뀌어 각각 왕푸징과 난징루(상하이의 최대 번화가)에 내걸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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