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빨아들이는 거대한 블랙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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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3.10.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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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의 눈으로 본 중국 시장/우리 장점 극대화할 부분 집중 공략 필요
지난 9월 1주일간 동북아경제중심추진위원회 공무원들이 중국의 동북진흥전략과 상하이 4대 중심 전략의 내용을 파악하고자 상하이·베이징·톈진·선양·칭다오를 다녀왔다. 이 글은 정부의 방침과는 관계가 없는, 그저 나흘간 중국의 세 도시를 스쳐 지나간 한 ‘1급 공무원’의 단상일 뿐이다.

상하이. 기가 질리지는 않았다. 이 정도의 빌딩 숲이야 샌프란시스코와 런던에서도 질리도록 보았다. 다만 취주악까지 동원하면서 우리를 환영해 준 둥팡밍주탑의 주임이 육가구(상하이의 금융산업 집적구)의 건물을 하나하나 설명하면서 저 건물에 미국 시티은행의 본점이 들어 올 것이라고 했을 때, 그리고 ‘아시아 지역본부가 아니라 세계의 본부냐’는 내 물음에 그가 고개를 끄덕였을 때 나는 ‘과연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 되려나 보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베이징에서의 관심사는 중관춘이었다. 중관춘 관리위원회 부주임 역시 여느 중국 공무원과 마찬가지로 자신만만했다. 불과 5∼6년 만에 세계적 대기업 2천5백여 개를 비롯해서 1만3천개의 기업이 들어서 있으며, 앞으로 현재 면적의 족히 서너 배는 될 새 단지가 들어설 것이라며 지도를 가리키는 그의 모습이 부러웠다.

첨단 산업의 클러스터(산업 단지)를 형성해야 하는 동북아위원회가, 중관춘의 10분의 1도 안 되는 면적조차 땅값과 수도권 규제 때문에 확보하기 어려운 것이 우리 현실인데 어찌 부럽지 않으랴. 더구나 중관춘 안에는 저 유명한 칭화 대학과 베이징 대학을 비롯해서 39개 대학이 매년 10만명씩 고급 인력을 배출하고 있다니, 쓸 만한 이공계 인력이 없어 쩔쩔 매는 우리의 현실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산업단지에 기업과 학교가 빼곡이 들어찬다고 해서 진정한 생산성의 원천인 산·학·연 네트워크가 쉽게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 중관춘은 아직 활발한 정보 교류를 통해 신상품을 만들어낼 만한 역량을 갖추고 있지 않아 보였다.

주마간산의 결론이지만, 중국은 비용 대비 산출이라는 효율성 기준으로 보면 엄청난 문제를 안고 있으며, 언젠가는 각종 불균형이 원인이 되어 폭발할 것이다. 중국인민은행의 국장은 부실 채권이 줄어들고 있다며 자신감을 보였지만, 부실 채권이란 기업의 연쇄 파산에 따라 기하급수로 늘어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엄청난 자원과 밀려드는 돈의 흐름이 끊기지 않는 한, 양동이 물로 컵을 채우는 식일지라도 후진타오 정부의 전국민이 편안하게 사는 이른바 ‘샤우캉(小康) 사회’를 건설하는 것은 이미 문제가 아니다.

그럼 어찌할 것인가? 누구나 주장하듯 아직 남아 있는 몇 년이 앞으로 수십 년의 우리 삶을 결정할 것이다. 모든 부문에서 중국을 능가하는 체제를 만들기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제조업은 포기하고 금융이나 물류 등 서비스로 가야 한다는 식의 주장 역시 현실적이지 않다. 각 부문에서 현재 우리의 장점을 극대화하는 부분(이른바 ‘니치 마켓’)을 발굴해 중국의 발전과 더불어 나가야 한다. 예컨대 휴대전화와 자동차는 IT기술을 접목해 더욱 고급화해야 한다.

금융에도 니치 마켓은 있다. 예컨대 지난 5년간 부실 기업·부실 채권 정리에 진력했던 우리의 경험을 살리는 구조조정업이 있다. 물류 역시 중국과 관련된 단순 환적 화물에 기대를 걸어서는 안된다. 한국에서 가공했을 때 중국 시장에서 값을 훨씬 더 많이 받을 수 있는 품목 중심으로 전문화해야 한다. 즉 공항과 항만의 배후에 고부가가치 가공 단지를 개발해야 한다.

어차피 중국은 큰다. 더불어 살아야 한다. 우리의 능력이 중국의 성장에 도움이 된다면 상생 관계는 유지된다. 앞으로 몇 년 동안 우리는 새로운 동북아 국제 분업에 맞추어 사회를 개조해야 한다. 우리의 능력은 충분하다. 단, 전제가 있다. 우리 스스로의 능력을 갉아 먹고 생존을 위협하는 내부의 비생산적 싸움을 되도록 빨리 마무리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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