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한류 열풍'' 우리가 이끈다"
  • 장영희 (mtview@sisapress.com)
  • 승인 2003.10.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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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공장이자 시장이라고 일컬어지는 중국 대륙에서 한국 기업들의 약진이 계속되고 있다. 세계 글로벌 기업과 중국 업체들에 맞서 힘차게 뻗어가는 이들의 활약상을 소개한다.
중국은 미국과는 또 다른 의미의 세계 시장이다. 중국은 이미 세계의 돈과 사람을 엄청난 속도로 빨아들이는 블랙홀로 변해버렸고 베이징과 상하이는 천지개벽을 떠올릴만큼 달라졌다. 중국 진출 만 10년째인 2003년, 〈시사저널〉은 창간 14주년을 맞아 중국이라는 격전지로 진격한 한국 기업들이 어떤 위상과 활약상을 보이고 있는지를 현지 취재했다. 다음호 중국 특집 2탄으로 중국 속에 뿌리 내린 한국인의 삶을 조명하며, 시리즈 마지막으로 ‘한국 속 중국을 가다’를 게재할 예정이다. - 협찬 : 포스코 , 우리홈쇼핑

▷ 베이징 텐진 상하이 쑤저우 | 글:장영희 | 사진:안희태 기자

한국의 관문 인천국제공항. 9월21일 오후 1시께 중국 최대 항공사인 중국국제항공(AIR CHINA)에 탑승하자 익숙한 로고가 눈에 들어왔다. 등받이에 걸린 삼성전자 광고였다. ‘數學激情 精彩無限 SAMSUNG DIGITall’ 중국어를 해독할 수 없는 사람에게도 이 광고는 삼성이 우수한 디지털 기업임을 알리는 것으로 읽혔다. 휴대용 GPS에 따르면, 평균 시속 539㎞로 918㎞를 날아 베이징 쇼우두(首都) 공항 활주로에 랜딩 기어를 내리기까지 걸린 시간은 1시간 38분. 이처럼 중화인민공화국은 가깝고도 가까운 나라였다.

9월22일 오전 베이징 한복판 톈안먼(天安門) 광장에서 10여분 거리에 있는 차오양취(朝陽區) 지안궈루(建國路)의 짜오샹지따샤를 찾아갔다. 이 건물에는 삼성그룹이 중국에 제2의 삼성을 건설한다며 구축한 지주 회사 ‘삼성집단’이 있다. 4만1천명에 달하는 삼성맨들이 올 매출 목표 63억 달러를 달성하기 위해 뛰고 있는 중국 비즈니스의 총본산이다. 정충기 스태프장(상무)은 “모든 계열사가 이익을 내고 있지만, 숨을 돌린 것은 겨우 2∼3년 전이다. 나름으로 중국을 알게 되었고 기반도 닦았다. 우리는 자신감에 충만해 있다”라고 말했다.

같은 차오양취이지만 LG가 둥지를 튼 곳은 쇼우두 공항과 가까운 왕징(望京). 왕징은 벤처 기업과 글로벌 기업들의 연구개발센터가 운집해 있는 곳이다. LG전자 주화총부(駐華總部·중국본부) 현관에는‘워 아이 짜이 중궈(愛在中國, 사랑해요 중국)’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최만복 경영지원팀장(부사장)의 입에서는 ‘터프’라는 표현부터 튀어 나왔다. 중국은 세계 시장에서 명함을 내민 업체치고 들어와 있지 않은 기업이 없는 데다,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중국 업체까지 가세하고 있어, 경쟁이 날로 격심해지는 세계 최대 격전장이라는 것이다.

최부사장의 말이 과장이 아닌 것은 9월24일 찾은 ‘중국의 실리콘밸리’라는 중관춘(中關村)에서 확인하고도 남았다. 베이징 서북쪽 대학가인 하이덴취안에 위치한 하이룽(海龍) 상가. 이 상가 1∼4층은 브랜드 올림픽 경기장 같았다. 삼성전자 전자총괄 김해룡 차장에 따르면, 하이룽에는 한국의 삼성· LG뿐만 아니라 IBM·모토롤라·휴렛패커드(미국), 노키아·에릭슨(스웨덴), 소니·도시바·캐논(일본) AOC·벤큐(타이완) 롄상(聯想)·하이얼·TCL(중국) 등 전세계 IT 제품이 몰려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김차장은 중관춘에서 살아 남지 못하면 중국 시장은 물론 세계 시장에서도 승산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 상가 왼쪽에 있는 삼성전자 체험관(오른쪽에 LG전자 체험관이 있다)에서 인근 국영 과학기술 관련 연구소의 연구원으로 있다는 지앙 툰후이 씨를 만났는데, 그는 “삼성 모니터와 핸드폰을 쓰고 있다. 삼성과 LG의 IT 기술력과 마케팅 능력은 세계 어느 기업과 겨루어도 손색이 없다”라고 평가했다.

‘싼싱’(삼성)과 LG가 중국에서 활약하고 있는 한국의 대표 기업이라는 사실은 톈진(天津)과 쑤저우(蘇州) 공장에서도 실감할 수 있었다. 베이징에서 채 2시간이 걸리지 않는 톈진은 수도 베이징과 허베이성(河北省)이라는 거대 소비 시장을 겨냥한 생산기지. 세금 내고 제대로 굴러가는 기업은 4백60개라고 하지만, 간판을 내건 한국 업체가 1천6백개나 된다. 9월25일 톈진삼성전자 고태일 총경리(사장)는 “모니터를 장착한 컴퓨터 기준으로는 중국의 최대 컴퓨터 업체인 롄상에 밀리지만, 모니터 단독으로는 삼성이 시장 점유율 1위다”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그는 양뿐만 아니라 다른 업체의 같은 사양보다 3∼5% 높은 가격을 받고 있는 데다가 풀라인을 구축한 것도 강점이라고 말했다.

톈진 LG전자는 중국의 링다오(領導)들도 존경심을 표하는 기업. 비록 덩지에서는 톈진 최대 기업인 모토롤라에 밀리지만, 부실해진 국영 냉장고 기업을 1995년 인수해 완전 정상화했기 때문이다. 공장 가동 3년째부터 흑자를 내고 있다. 톈진 시 정부는 지역 경제에 대한 공로를 인정해 세금의 일부를 보상금 형태로 여러 차례 돌려주기도 했다. 중국 정부는 기술 이전이나 고용 창출이 필요한 외자 기업에게는 공장 부지를 거저 주기도 하고 세금을 대폭 감면하는 특혜도 마다하지 않는다.

LG전자전기유한공사 손진방 동사장(이사회 의장) 겸 총경리는 “특히 백색 가전은 하이얼·TCL 같은 중국 업체가 무섭게 따라오고 있어 힘든 싸움을 하고 있지만, 해외 브랜드로는 막강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라고 말했다. 중국 최대의 종합 가전 업체인 하이얼의 장루이민 총재는 LG전자에 대해 외국 업체 가운데 중국에서 가장 성공한 기업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다섯 차례 증설한 결과 이미 한국 창원의 1,2 공장을 합친 것보다 커진 톈진 공장에는 ‘强企業 强人才(Great Company Great People)’라는 글이 공장 벽에 씌어 있었다.

한국 기업에게 장쑤성(江蘇省) 쑤저우는 톈진 못지 않은 생산 거점. 중국 전체 소비의 40%를 점유하는 화둥(華東) 경제권과 중국 최대 산업 벨트인 창장(長江·양쯔강) 삼각주를 뒷마당에 두고 있으니 쑤저우 쿤산(崑山) 우시(無錫) 난징(南京) 저장(浙江) 항저우(杭州) 같은 곳이 부각되지 않을 수 없다. 상하이에서 2시간 거리인 쑤저우의 국가급 공업단지인 쑤저우 공업원구. 1984년 중국 정부가 싱가포르 정부와 합작해 개발한 이 공업원구의 면적은 7천8백만평에 이르는데 외자 기업 1호가 삼성전자였다.

쑤저우에는 일본인 거리가 있을 정도로 일본 업체 입김이 강하지만, 쑤저우 중앙공원 싱가포르 국기 바로 옆에 태극기가 걸린 것은 삼성의 높아진 영향력을 웅변한다. 예로부터 항저우(杭州)와 함께 미인과 그림 같은 정원이 많아 살기좋은 도시로 알려진 쑤저우는 삼성의 텃밭이 되고 있다. 몇 블럭을 사이에 두고 반도체를 비롯해 TFT-LCD(초박막액정표시화면)·노트북 PC·백색 가전 공장 등이 진출해 있다.

2기 공업원구에 있는 백색 가전 공장에서 1기 원구 반도체 공장으로 향하는 20분 사이 차창 밖에는 노키아 에머슨 보쉬 필립스 히타치 스미토모 로레얄 같은 기업들의 공장이 스쳐갔다. 첨단 기술 기업임을 뜻하는‘高新技術 企業’ 현판을 내건 삼성전자반도체유한공사의 장형옥 동사장 겸 총경리는 진출 초기에 비해 설비와 제품군을 한두 단계 업그레이드했다며 운을 떼었다. 올 4월 3기 공장 기공식을 하면서 중국이나 타이완 업체가 따라붙은 제품군 관련 설비를 페어차일드에 팔아버리고, 온양 공장의 핵심 설비를 들여왔다는 것이다.

쑤저우에서 자동차로 2시간 거리에 있는 장자항. 서해와 창장이 교차하는 이곳에 포스코가 세운 포항불수강유한공사가 자리잡고 있다. 장자항은 포항 공장에서 원료인 스테인리스 열연코일을 수급하기가 쉽고 중국의 최대 스테인리스 집산지인 우시 시가 한 시간 거리 안에 있다는 지리적 이점이 있다. 중국의 철강 업체인 사강 집단과 합작한 포항불수강에는 녹슬지 않는 스테인리스강이 연 36만t 생산된다.
포항과 광양제철소에 비하면 작은 규모이지만 질에서는 결코 뒤지지 않는다. 채희명 생산본부장은 “포항산과 장자항산이 서로 품질 경쟁을 벌일 정도로 우수하다. 장자항 공장의 노하우를 한수 배워가겠다는 중국의 철강 업체들이 자주 찾아온다”라고 말했다. 포스코 창업자이자 회장이었던 박태준씨가 국무원 경제 고문으로 위촉되어 장자항 공장을 방문했을 때 ‘무조건 감격했다’는 휘호를 남겼다고 한다.
중국에서 한국이 선두 자리를 차지하는 제조업은 철강뿐 아니라 자동차도 있다. 현대자동차는 대기업 가운데 가장 늦게 중국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특유의 돌파력으로 이른바 ‘시엔센다이쑤드’(현대 속도)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지난해 10월 국무원 비준이 나온 지 두 달 만에, 베이징치처그룹(50%)과 합자 계약에 조인한 시점을 따져도 7개월 만에 생산과 판매가 동시에 시작된 것이다. 베이징현대기차 최성기 부총경리는 “베이징 시 공무원들 사이에는 ‘현대의 발전 속도와 추진 능력을 배우자’는 말이 회자되었다”라고 말했다.

쇼우두 공항이 있는 쑨이 현에 위치한 베이징현대기차에는 숨가쁘게 라인이 흐르고 있었다. 만들지 못해 팔지 못하고 있다는 즐거운 비명이다. 최부총경리는 최근 1∼2년 사이 중국에 자동차가 엄청나게 늘어났지만, 아직 자동차 대중화는 멀어도 한참 멀다는 것이다. 현대차는 현 5만대 생산 수준을 올해 말까지 10만대, 2005년에는 30만대로 증설할 계획이다. 제2 공장도 계획하고 있다. 상하이(上海)의 폴크스바겐과 GM, 광저우(廣州)의 혼다처럼 베이징의 대표 자동차 브랜드가 된 현대는 무서운 속도로 가속 페달을 밟고 있었다.

몽골리안 외에 한국인과 외양이 가장 비슷하고 문화적으로도 가깝다고 하지만, 아직도 ‘불일정(不一定)’이라는 말이 나올만큼 갈피를 잡기 어려운 것이 중국인이고, 중국 시장이다. 한국의 대기업들 역시 숱한 우여곡절을 겪었다. 삼성은 1990년대 중반 중국 대륙을 파고든 중·저가 전략이 실패하자 후반부터 이른바 하이엔드 소비자를 겨냥한 고가 전략과 8대 거점 도시라는 시장 세분화 전략으로 전열을 재정비했다. 4천∼8천 위안대 고가 애니콜의 인기는 ‘싼싱이 최고’라는 전파 효과로 이어졌고 삼성은 마침내 승기를 잡았다. 최근 윤종용 부회장 등 삼성전자 사장단이 대거 중국을 다녀왔는데 획기적인 판매 촉진 전략을 담은 ‘중국 플랜’을 수립 중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LG는 죽기 아니면 살기라는 말을 실천한 한국의 대표적인 기업으로 꼽힌다. 중국 소비자의 안방에 그들의 제품을 들여놓기까지 LG 세일즈맨들은 80℃인 백주(白酒·배갈)를 코가 비뚤어질 때까지 마셔야 했고 현지 경소상(소매상) 들을 설득하고 또 설득했다. 상하이의 백화점과 전자상가에서 LG 제품을 열정적으로 설명했던 LG전자 상하이분공사 김종호 부총경리도 그런 세일즈맨에 속한다. 김부총경리는 갓 마흔인데 사람들이 자기를 50대로 본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임금 수준이 낮고 노사 분규가 없는 것은 한국과 비교할 수 없이 좋은 점이지만, 단점이 없지 않았다. 문화적 갈등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한국식을 강요하지 않았다. 우선 서울에서 파견된 주재원들이 솔선수범했고, 시장과 문화를 잘 아는 중국인을 고용했다. 대부분 현지 노동자 고용 비율이 98%가 넘는다. LG는 아예 총경리급인 분공사장(지역영업본부장)을 중국인으로 교체하고 있다. 또 중국 업체보다 나은 월급을 많이 주는 것이 중국인 노동자들을 사로잡았다. 베이징현대기차 프레스 공정에서 일하는 중국인 쑤싱웨이 씨(23)는 야간 근무가 낯설고 작업 속도가 빨라 적응하기 어려웠지만, 대우가 좋아 만족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 업체보다 2배 많은 월 2천 위안을 받는다.
이른바 사회 공헌 활동에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삼성은 삼성장학생을 선발하고 사회공헌단을 발족해 시앙산 가꾸기 운동 등을 벌이고 있으며, LG도 장학금 수여·불우이웃 돕기·LG컵 축구대회 같은 스포츠 문화 행사개최 등으로 지역 경제 발전과 함께한다는 기업 이미지를 심고 있다.

중국 시장에서 나름으로 뿌리 내린 기업은 물론 이들뿐만이 아니다. SK텔레콤차이나와 KT 중국본부는 통신 시장이 개방될 때를 대비해 부지런히 기반을 닦고 있다. SK차이나는 신약 개발과 중서(中西) 협진 병원 설립 사업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밖에도 한국타이어와 금호타이어, 대우종합기계와 대우자동차, 아시아나항공과 대한항공, 효성, 한화, 신세계 이마트 등은 나름으로 중국 속에 둥지를 틀고 있는 한국 기업들이다. KOTRA 중국지역본부가 실사한 자료에 따르면 2천6백개 한국 기업들이 중국에서 분투하고 있다.

1978년 당시 삼중전회(제11기 3차 중국 공산당 중앙위 전체회의)에서 덩샤오핑은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잡으면 된다’는 그 유명한 흑묘백묘론으로 개혁 개방을 부르짖었다. 이후 25년이 흐른 지금 세계의 공장이자 시장으로 떠오른 중국은 마치 중국의 전설에 나오는 붕새(鵬鳥·날개 길이가 3천리이며 한번 날갯짓으로 9만리를 난다고 한다)의 비상을 연상시킨다. 그 거대한 시장 중국에서 한국 기업들은 세계 글로벌 기업과 중국 업체에 맞서 공격과 수비를 겸하는 전천후 전사로 변해 있었다. 그들이 목표로 하는 것은 한국 기업이 아니라 ‘성공한 중국 기업’이다. 중국 건국 54주년을 기념해 10월1일부터 1주일간 공식 휴무였지만, 한국 기업들의 생산 라인은 멈추지 않은 곳이 더 많았다.
1992년부터 오도 가도 못하고 있다는 포스코 김동진 중국본부장은 별명이 자칭타칭 ‘중국 사람’이다. 스스로도 깜짝 놀랄 때가 있을 만큼 중국인처럼 생각하고 행동한다는 그는 기술적으로 한국이 조금 앞서 있기는 하지만 중국인 앞에서 절대 잘난 체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언론의 공략이니 석권이니 하는 표현도 자극적이라는 이유로 도마에 올린다. 그에게서 한·중 관계를 상호 협력과 공존으로 설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은 당연해 보였다. 지난 7월 노무현 대통령은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 가운데 유일하게 베이징현대기차를 방문했다. 한·중 산업 협력의 모범이라는 이유에서다. 최부총경리는 중국 시장은 GM·포드·벤츠 등 세계 자동차 강자치고 진출하지 않은 기업이 없을 만큼 격전지가 되고 있지만, 후발 주자로서 걱정보다는 기대가 크다고 말한다. 중국의 자동차 보급률이 매우 낮아 잠재 수요가 엄청나다고 보는 것이다. 현대가 ‘속도’에 매달리는 배경이 있는 셈이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 업체치고 현지화를 강조하지 않는 기업이 없지만, SK그룹은 아예 중국인을 대표로 앉혔다. 칭화 대학 출신으로 인텔 차이나에서 IT 분야를 섭렵한 셰청 대표다. SK그룹은 통신과 신약 개발이 대표 비즈니스인데, 통신은 중국 정부가 아직 빗장을 굳게 잠그고 있고, 신약 개발은 시간이 많이 걸려 아직 성과가 크지는 않다. 그러나 그는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다며 시간이 해결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KT유한공사 이영희 총경리의 주력 업무는 차이나텔레콤·차이나유니콤 등 중국의 4개 통신사업자들과 ‘관시(關係)’를 구축하는 일이다. KT가 한국에서 얼마나 우수한 통신 기업인가를 부지런히 알리러 다닌다. 전신인 베이징사무소가 1993년 문을 열었으니 통신 시장이 개방되기를 10년째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그는 중국이 한 해 가입자가 5천만명씩 늘어나는, 마지막 남은 거대 통신 시장이라고 강조했다. 사스가 한창 기승을 부릴 때인 올 4월 그는 걱정하는 가족에게 ‘죽더라도 장수는 전쟁터에 가야 한다’는 말을 남기고 홀로 쑤저우로 왔다. 삼성 이건희 회장은 왜 23년 동안 인사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장형옥 부사장을, 삼성전자의 핵심 중의 핵심인 반도체 법인장으로 앉혔을까.

반도체 전문가가 아닌 그를 반도체 법인장으로 임명한 것에는 반도체 법인의 ‘디안쯔 텅페이’(제2 도약기)를 앞두고 사람 관리가 매우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장총경리(사장)에게는 고급 기술 인력을 양성· 유지해야 할 책무가 있다. 기술적으로 예민한 제품을 옮겨오고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연구소장으로서 칭화 대학 등 중국의 명문 대학에서 인재를 발굴하라는 것도 그에게 떨어진 이회장의 특명이다.
LG전자 중국본부를 상징하는 인물이 노용악 회장이라면, 손진방 법인장은 야전사령관 격이다. 8년째 톈진 법인장으로 있으면서 중국의 맹렬한 추격을 온몸으로 느낀다는 손총경리(사장)는 정신 바짝 차리고 중국을 어떻게 활용할까 궁리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우선 연구개발·생산·유통·판매가 모두 중국에서 이루어지는 현지 완결형 경영을 해야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말한다. 여기에다 지역 경제 발전에 앞장서고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어야 사랑받는 중국 기업이 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한국 기업들의 중국 러시가 필연적이라는 그는, 이로 인해 한국에서 산업공동화가 일어날 수 있지만 산업 고도화를 위한 구조 조정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는 중국 정부로부터 영구 거류증을 받은 첫 외국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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