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언론부터 ‘재신임’ 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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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3.10.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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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신임 국민투표’ 찬성론/소모적 딴죽 걸기는 이제 그만두자
노무현 대통령이 임기가 1년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재신임을 받겠다고 밝힌 데 대해 필자는 근본적으로는 찬성하지 않는다. 노무현 대통령은, 그 자신의 처지에서 보면 대단히 불공정한 게임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런 불공정한 환경을 뚫고 국민의 직접 투표로 대통령에 선출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 대통령이 임기중 다시 국민에게 재신임을 묻겠다는 것은 사실 말이 안된다.

하지만 필자는 노무현 대통령의 그와 같은 재신임 발언을 적극 찬성하며, 그럴 수밖에 없었던 한국적 특수 환경을 나름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조금 어려운 환경에 처했다고 재신임이라는 극약 처방을 택할 수밖에 없었느냐, 신중치 못한 결정이다 어쩌고 떠드는 사람들은 솔직히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고 반성해야 한다고 본다.
그들은 우리의 특수 상황에 대한 이해가 전무하든가, 의도적으로 그런 환경에 얼굴을 돌리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우리의 특수 상황이란 뭔가.
노무현 대통령으로 상징되는 우리 사회의 개혁 욕구의 반대편에 서 있는, 의회의 반개혁 세력과 그보다 훨씬 반개혁적인 언론 권력이 대통령의 권력이나 권위보다 훨씬 강하게 작용되고 있는 환경이 바로 그것이다. 직설적으로 얘기하자면, 한나라당과 <조선일보>는 거의 한몸이다시피 공동 전선을 펴면서,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를 음해하고, 부당한 공격을 퍼부어왔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이들은 대통령이 정상적으로 국정을 수행하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여론을 조작해 왔고, 현실적으로 갖고 있는 막강한 권력을 악용해 나라의 발전에 최대의 걸림돌로 작용해 왔다. 어떻게 언론이나 정당이 그럴 수 있겠느냐, 그럴 능력이 있겠느냐고 반문하겠지만, 이미 이들은 청와대와 행정부를 능가하는 권력으로 국민들에게도 인식되고 있다. 어떤 여론조사를 보아도 이 나라 최고의 권력체는 정당과 언론인 것으로 나온다! 그 정당과 그 언론이 어딘지는 말할 필요도 없이 명백하다.

노무현 정권은 이제 출발한 지 8개월 정도밖에 안된다. 평가 자체가 불가능한 수준의 임기를 지났을 뿐이다. 과거 정권과 현격하게 차이가 날 정도로 형편없는 정권이라면 모르되, 그렇지 않은 상황이 너무도 분명한 이 시점에 이 나라의 책임 있는 권력 집단들이, 그들의 권력에 주어진 책무를 다하지 않고 오로지 정권에 대한 무한한 증오심만 표출한 결과 이러한 재신임 정국으로 이어졌다고 필자는 판단한다.

사실 이 나라의 책임 있는 사회 지도층 인사들도 반성해야 한다고 본다. 새로 출범한 정부에 호의를 갖고 있든 그렇지 않든, 이 나라의 생존과 발전에 대한 1차적인 책임을 다하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까지 망각했던 것은 아닌가 하고 반성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고정 관념에 비추어 보면 노무현 정권은 일종의 비주류 정권이다. 비주류에 배타적인 심리로 인한 의도적인 외면, 바로 그것이 정당과 언론이 정부를 능가하는 권력체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만들었고, 이와 같은 혼란상을 불러오는 데 일조한 것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재신임 방식이 국민 투표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민의 직접 투표로 선출된 사람의 진퇴 문제와 관련된 사항을 다른 방법으로 결정할 수는 없다. 또한 국민투표를 할 바에야, 이 나라의 수구 정당과 수구 언론이 그토록 두려워하는 정치 개혁과 언론 개혁 정책을 한 데 묶어, 함께 심판받는 형식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아무런 조건 없이, 오로지 재신임 여부만을 국민투표에 부치겠다고 밝혔다. 필자는 이러한 노무현 대통령의 결정을 보면서, 참으로 우직하고 바보스럽다는 느낌을 받았다. 정말 노무현스럽다는 말의 의미를 절감한다. 그리고 바로 그러한 점이 우리 사회의 전통적인 오피니언 리더들이 느끼는 배타적 감정에도 불구하고 국민들로부터 광범위한 지지를 받을 수 있었던 요인이 아닌가 생각한다.

대통령은 사실 자신의 임기를 걸고 재신임을 묻는 투표를 자청했다. 이 나라의 실질적 집권 세력인 한나라당으로서는 굴러 들어온 떡일 수도 있다. 그들은 그야말로 횡재할 기회를 맞이한 셈이다. 따라서 대통령의 재신임 국민투표 결단에 더 이상 딴죽을 걸지 말고 소모적인 논란을 거두어들이기를 당부한다.

서영석 (<서프라이즈>(www.seoprise.com) 대표 필자·전 <국민일보>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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