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다 만 한나라당 “더 센 카드 없나?”
  • 소종섭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3.10.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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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조사 결과 ‘재신임’ 지지 높자 위기감 커져…대응 카드 찾기 총력전
정치권 빅뱅까지 노린 승부수이다. 반색할 분위기가 아니다. 한나라당이 심각하게 흔들리는 사태가 올 수 있다. 잘못 다루면 한나라당이 큰 위기를 맞을 수 있다.”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 소장 윤여준 의원은 10월10일 이렇게 말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장고 끝에 ‘재신임’이라는, 대단히 전략적인 극약 처방을 내놓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재신임 발언 초기 한나라당에서 윤의원처럼 사태를 심각하게 본 사람은 거의 없었다.

10월10일 노대통령이 전격적으로 “재신임을 받겠다”라고 선언하자, 최병렬 대표를 비롯한 대부분 의원들은 기다리기라도 한 듯 양손을 들어 환영했다. “기왕 하려면 빨리 하자” “국민투표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라는 등 마치 곧 정권을 넘겨받기라도 할 것처럼 흥분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표정이 바뀌는 데는 채 하루가 걸리지 않았다. 11일부터 쏟아진 각종 여론조사 결과는 ‘재신임하겠다’는 사람이, ‘재신임하지 않겠다’는 사람보다 더 많음을 여실히 보여주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격차가 더 벌어지는 양상을 보였기 때문이다. 최대표의 한 특보는 “국민의 안정 희구 심리와 온정 심리를 간과했다. 야당을 대안 세력으로 보지 않는다는 뼈아픈 사실도 재확인했다”라고 말했다.

‘재신임’에 숨어 있는 칼날을 확인한 한나라당은 키를 ‘측근의 비리 전모를 공개하라’는 쪽으로 틀었다. 애초 노대통령이 재신임을 주장하면서 내건 이유에 다시금 주목하는 것이다. 벌써부터 최병렬 대표는 “최도술씨가 SK로부터 받았다는 11억원 때문에 대통령이 재신임을 주장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국민이 알면 경악할 일이 있을 것이다”라며 의혹 키우기에 나섰다.
노대통령이 최씨를 비롯한 측근의 비리에 얼마나 연루되었는지, 검찰 수사를 알게 된 시점이 언제인지 등을 속속들이 밝히라는 것이다. 한나라당은 검찰 수사가 미진할 경우 특검을 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겉으로는 이렇게 공세를 펼치지만 한 발짝 들어가 보면 고민이 많다. 최대표의 한 최측근 인사는 10월13일, 위기라는 것은 알겠는데 대책이 없어서 답답하다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처음부터 재신임을 수용하는 모양새를 취했기 때문에 지금 와서 그 자체를 부인하기는 어렵게 되었고, 재신임에 대응할 마땅한 메가톤급 카드도 없다는 것이다.

또 SK로부터 100억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는 최돈웅 의원, 현대 비자금 사건에 연루된 박주천 의원처럼 전방위 사정 태풍에 희생되는 사람이 속출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기존 정치권 전체를 상대로 한 노대통령의 벼랑 끝 전술의 주 타깃은 결국 ‘거대 야당’ 한나라당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나라당 전략가들은 지금처럼 정국 주도권을 놓친 채 시간이 흐를 경우, 최대표의 지도력이 심각한 손상을 입을 것이라고 우려한다. 최악의 경우 ‘물갈이’ 등 내부 개혁 작업도 못하고, 자중지란에 빠진 상태에서 당이 분열할 가능성까지 내다보고 있다. 노대통령은 재신임되고 한나라당은 내년 총선에서 패배하는, 게도 잃고 구럭도 잃는 상황이 올 수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한나라당이 먼저 측근 비리를 공개하라고 주장하는 바탕에는 여차하면 재신임 자체를 무산시키겠다는 계산도 깔려 있다고 보인다.

여하튼 노대통령 측근들에 대한 한나라당의 공세는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최대표의 한 참모는 최도술씨나 이광재씨 외에 또 다른 측근들의 비리가 터지면 분위기가 달라지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무언가 준비되고 있다는 인상을 풍겼다. 윤여준 의원은 “노대통령이 내놓은 것 이상 가는 극약 처방을 써야 한다. 몇 가지 카드를 준비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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