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금실*추미애 대담 기사 전문 공개
  • 송창우 기자 ()
  • 승인 2003.12.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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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여자 대통령될지 혹시 알아요?" 6년 전 추미애 의원이 강금실 법무장관과 대담을 한 적이 있다고 밝히면서 관련 기사에 대해 문의하는 독자가 부쩍 늘었다.다음은 본사가 발행하던 여성지 (1997년 10월
"살살 공격하세요, 강 선배님."
"공은 공이고 사는 사지."
지난 5월 국민회의 김대중 후보의 TV 토론회에서 패널로 참석한 강금실 변호사(40세)와 수행원으로 참석한 추미애 의원(39세)이 토론회가 시작되기 전에 나눈 얘기다. 토론회의 패널과 토론자 수행원이라는 부담감을 안고도 여유있게 농담을 주고받을 수 있는 그런 배짱부터가 이심전심 통하는 사이다.

이 날은 물론 길게 얘기할 시간이 없었다. 서로의 신분이 달랐고 이후의 일정이 바빴기 때문. 판사직을 떠난 뒤 좀처럼 시간적 여유가 없었던 두 사람은 "이런 기회를 만들어줘 오히려 고맙다"는 말로 재회를 기뻐했다.

두 사람의 인연은 실로 각별하다.
"제가 사법연수원 13기이고 추의원이 14기였어요. 그땐 여성 판사가 그리 많지 않아 서로 아주 가깝게 지냈죠. 특히 추의원은 지금도 그렇지만 쳐다보기가 눈이 부실 정도로 예뻤어요. 미모에 반하고 행동에 반하고 그러면서 팬이 되어 버렸죠. 임관 후엔 같이 근무하지 않아서 자주 만나지는 못했지만 가끔 만나고 주위의 얘기를 들으면서 소신이 강하고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다는 걸 많이 확인했죠. 서로 이 얘기 저 얘기 하면서 공감하는 부분도 많았구요."

추의원의 기억은 조금 더 구체적이다.
"처음 연수원에 들어갔을 때 14기 선배 중에 활발하고 똑똑한 재원이라고 소문난 분이었어요. 13기 선배들하고 점심을 같이 먹으면서 처음 만난 걸로 기억해요. 제가 춘천지원에 있을 때 새로 오신 원장님이 남부지원에 계셨던 분이었는데 그곳은 강선배님이 근무하고 있었던 데죠. 그때 원장님이 저보고 하시는 말씀이 "여기도 여성 판사가 있네. 자네도 강판사처럼 잘할 수 있나""라는 것이었어요. 그 정도로 강선배님은 촉망받는 분이셨죠. 미모요" 보시면 아시잖아요. 저보다 훨씬 미인이셨어요."

서로를 촉망받는 판사였다고 얘기했지만 실제로 둘은 판사 시절 소위 "운동권 판사"로 더욱 유명했다. 80년대의 암울한 분위기에서 소신있는 행동은 물제를 일으키는 색깔있는 판사로 찍히기 일쑤였다. 그래서 이 두 여자는 말한다.

"주목을 받긴 했지만 촉망받진 않았어요."
당시는 경찰, 검찰, 안기부가 운동권 학생을 경쟁하듯 검거하던 상황이어서 권력 기관에서 사법부 쪽에 노골적인 청탁과 압력을 많이 행사했다고 한다. 그럴 때 그것을 정면으로 거부하는 판결을 내리는 일이 더러 있었는데, 이 두 사람이 더욱 눈에 띈 것은 여자라는 사실 때문이기도 했다.

애써 잡아들인 학생을 "별로 큰 잘못이 없다"고 적당히 훈계하는 형식으로 구류 하루, 이틀로 석방시키니 공안 관계자들에게는 심히 못마땅한 여자들이었다. 그런 경우 근무 환경이 열악한 지방 법원으로 유배되기 십상인데, 실제로 강변호사는 산골 지방으로 유배될 뻔했다고 한다. 추의원 역시 춘천지역 대학생들을 쉽게 풀어주어 색깔있는 판사로 이름을 날렸다.

"일이 고되다는 게 문제죠. 쉽게 하려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지만 피고 입장에서는 마지막으로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판사잖아요. 그런 그들의 의견을 충분히 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앞에 두고 집 생각을 할 수는 없죠. 아마 모든 여성 판사가 겪는 일일 거예요."(추미애)

여성 판사로서 겪는 고충도 함께 만나면 늘 빼먹지 않고 나오던 화젯거리였다. 판사라는 직종이 특별히 성 차별이 심한 것은 아니다. 다만 가사와 판사 일을 병행하는 데 고충이 많았다고 한다.

"처음엔 육아를 위한 휴직이 거절되었어요. 그땐 여성 판사가 10명 이내라서 모두 개인적으로 알아서 방법을 찾는 게 보통이었죠. 요즘들어 여성 판사 수가 늘어나면서 육아 휴직이 가능해진 걸로 알고 있어요."(강금실)

판사직을 먼저 그만둔 것은 추미애 의원이다. 강변호사는 그 소식을 듣고 희비가 교차했다고 한다.

"정치에 입문했다는 얘길 듣고 dfleks은 반가웠어요. 법원 쪽에서도 긍정적으로 바라봤구요. 모두 추의원이라면 잘해낼 거라고 믿었죠. 그런데 (법조인의 입장에서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라구요. 변호사로 개업한 뒤에는 더 그래요. 추의원처럼 투철하고 자기 소신을 지키는 판사가 더욱 그립더라구요. 판사들의 업무가 너무 과다하다 보니 소신껏 판결해 내려는 열정이 식기 십상이예요."

강변호사가 특히 마음이 흡족했던 것은, 추의원이 여성 정치 초년생으로 당당하게 지역구를 요구했던 점이다. 정치에 입문해서도 추의원의 그런 기질은 유감없이 발휘되어 기성 정치인들에게 신선한 자극을 주고 있는 게 사실이다.

"얼마 전 부대변인 자리를 거절한 것만 해도 그렇잖아요" 홍일점이라는 것 때문에 부대변인 자리를 준다는 것은 마땅치 않다며 고사한 거, 그게 참 같은 여자의 입장에서 많이 힘이 되더라구. 여성으로서 이용할 수도 있는 특혜를 거부하고 당당히 한 의원으로서 평가받는 모습, 참 보기 좋았어요."

"아이고, 과찬의 말씀이예요. 국회 들어오면서 이런 생각은 했어요. 여자라는 점을 이용해 정치를 해서는 안된다. 아무 특혜도 없이 그냥 한 사람의 의원으로서 일을 해낸다는 것을 보여주면 많은 여성들이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고, 또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는다고 생각했죠. 능력을 평가해서 주는 것이라면 모르지만……. 또 부대변인이잖아요. 대변인이라면 몰라……하하하."

의정 활동에 여념이 없던 추의원이 강금실 판사의 사직 소식을 들은 것은 신문을 통해서였다고 한다. 오래 전에 변호사 개업을 한 추의원의 남편 서성환씨(42세)도 매우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우리 남편이 저한테 하는 말이 왜 말리지 않았느냐는 거예요. 강선배 같은 사람이 오래도록 법정을 지켜야 한다고요. 강변호사 명성은 대단했거든요."
대화가 남편 얘기로 넘어가자 잠깐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궁금해 한다.
두 사람은 모두 만만치 않은 연애 결혼을 했다. 결혼 과정에서의 고생담도 비슷하고 남편에게서 받은 영향도 꽤 크다.

강변호사는 남편 김태경씨(출판사 "이론과실천" 대표)와 고시 공부 중에 만났다. 서울대 미학과를 나온 남편은 출판사 대표로 있으면서 주로 운동권 서적을 내고 있었다. 그러니 부모의 입장에서는 이 결혼을 반대한 것이 당연했다. 장차 검사나 판사가 될 2남 4녀 중 막내딸을 "운동권 인사"에게 보낸다니……. 그러나 강변호사의 열정은 그리 나약한 것이 아니었다. 끊임없는 설득 작업 끝에 "고시에 합격하면 결혼하라"는 반허락까지 얻어냈다.
하지만 고시에 합격하자 그 조건은 "임관만 하면"으로 바뀌었고, 참지 못한 강변호사는 결혼시켜 달라며 엉엉 울면서 난리를 쳤다고 한다. 결국 강변호사는 임관 두 달 후에 결혼에 골인했다.

"결혼 후에는 막내 사위에 대한 사랑이 대단하셨어요. 남편이 신촌에서 "오늘의 책"이라는 서점을 운영할 때 불법 운동권 노래 테이프를 판매했다는 죄로 서대문 구치소에 들어갔던 적이 있는데, 우리 어머니가 이불하고 영치금을 보내면서 편지를 함께 부쳤어요. ‘나이가 많아 직접 오지 못하는 걸 용서하게’라는 내용이었죠. 자기 딸이 판사인데 사위가 구치소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도 싫은 내색 한번 안하기도 쉽지 않았을텐데….“

강변호사가 막내딸의 이점을 충분히 활용하여 결혼에 골인했다면 추위원은 강력한 추진력으로 밀고 나간 케이스. 한양대 법대 동기동창인 남편과 캠퍼스 커플로 연애를 했다. 서변호사는 사법연수원 17기로 추의원보다 3년 후배. 그러나 부모 입장에서는 영 못마땅했을 것이다. 이미 판사로 임관된 둘째딸을 이제 고시 공부하는 남자에게 보낼 수는 없다며 결혼을 반대했다.

“경상도 분들이 완고하시잖아요. 하지만 저는 반대해도 소용없을 거라고 했어요. 반대해도 난 할거라고 당돌하게 말했죠. 그러면서 결혼 준비는 계속해 나갔죠. 날도 다 잡고…. 나중에 결혼식 날 할 수 없이 오시게 만들었어요. 하하. 남편이 부모님들 마음을 잘 헤아려서 극진하게 모시면서 결혼 후에는 문제가 없었죠. 그러다 제가 국회의원 출마를 하면서 사이가 또 안 좋아지기 시작했어요. 당신들 생각에는 ‘판사 일 잘하고 있는 얌전한 딸을 사위가 부추겨서 그렇게 됐다’고 생각하신 거죠. 지금은 오해를 푸셨지만….”
남편이 출마를 부추기진 않았지만 적극적으로 지원한 것은 사실이다. ‘세탁소 집 둘째 딸’로 깨끗한 이미지를 부각시키자는 아이디어도 남편이 낸 것이다.

경제적인 면에서도 남편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돈을 모으지 않은 상태에서 정계에 진출한 터라 남편에게 빚을 많이 졌다고 한다. 깨끗한 정치를 하겠다고 했지만 여기저기 들어가는 돈이 꽤 많아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라고. 국회의원 세비로는 겨우 의원회관 운영비를 충당할 정도밖에 안 돼 지구당 유지비는 남편에게 의존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렇게 적극적인 외조를 받고 있지만 내조는 부실할 수밖에 없다고 추의원은 실토한다. 일단, 남편이 정읍에서 근무하기 때문에 주말 부부로 지내는 현실부터 그렇다. 내조할 시간이 없는 게 문제. 지구당과 국회를 오고가며 초등학교 4학년, 2학년 딸들과 네 살배기 아들을 챙기는 것도 힘에 겨운데 남편까지야…. 이런 모든 상황을 고려하여 추의원이 생각해 낸 것이 ‘질 이론’이다. 양보다는 질로 승부한다는 것이다.

“같이 있는 5분 동안이라도 최상의 서비스를 하자는 것이죠. 남편은 꼼짝 안하고 제가 재떨이 갖다 바칠 때도 있어요. 아무리 그렇게 해도 좋은 아내는 못돼요. 일을 가진 여성이라면 누구나 그렇겠지요. 강변호사도 마찬가지일 걸요"“그럼요. 점수를 매긴다면 바닥이죠 뭐. 딴 사람들의 도움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제 남편은 생활에서의 불편함을 많이 감수하는 편이에요. 적극적으로 제 활동을 지원해 주는 쪽인데. 그래도 가끔 투덜거리긴 해요. 한약을 지었는데 달여줄 생각을 안 한다느니, 양말에 구멍이 나도 신경을 안 쓴다고 불평할 때도 있죠. 그래서 전 얘기를 많이 해요. 오늘 누구 만나고 모든 일을 했고. 그런 걸 다 얘기하죠. 남편도 마찬가지구요. 서로 샅샅이 알 정도로 대화를 많이 해요. 작업도 다르고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잘 살 수 있는 건 그렇게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기 때문인 것 같아요.”

둘 다 좋은 아내는 되지 못하는 것에 동감을 한다. 그리고 대다수의 일하는 주부가 비슷한 처지가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일 얘기가 나오면서 화제는 최근 논쟁이 되고 있는 작가 장정일 씨의 변론 사건으로 옮겨갔다.

추의원은, 강변호사가 작가 장정일 씨의 항소심 변호를 맡았다는 사실을 신문을 통해서 알았다고 한다. 소설 <내게 거짓말을 해봐 designtimesp=26686>를 읽어보지 않았지만 보수적인 사법부가 어떻게 판결을 내릴지, 강변호사가 어떤 변호를 내릴지 무척 기대를 하는 표정이다. 만약 판사로서 자신이 이 사건을 맡았다면 고민이 무척 많았을 거라고. 그러면서 한편으론 이 사건이 사법부가 손대야 할, 손댈 수 있는 사건이었는지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보였다.

“강변호사가 이 일을 맡은 건 변호사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기대도 많이 돼요. 이번 사건이 좋은 판례로 남아 앞으로 문학 예술에 대한 사법부의 기준이 되었으면 해요. 힘드실 거예요. 간단한 사건이 아니거든요.”

강변호사는 나름의 입장을 정리하고 있지만 현재 진행중인 사건이라는 부담 때문인지 말을 아꼈다. 이렇게 좋은 시간에 ‘일 예기’로 낭비(")하고 싶지 않다는 표정으로 추의원에게 당부했다.
“앞으로 최고의 정치인이 되었으면 해요. 혹시 알아요" 한 이삼십년 후에 최초의 여자 대통령이 될지….”
사진 촬영을 하며 두 사람은 연신 웃음을 그치지 않았다. 오랜만에 회포나 풀자며 저녁 식사를 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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