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
  • 이철현 기자 (leon@sisapress.com)
  • 승인 2003.12.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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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폭탄 싣고 '불안한 이륙'
회복세 뚜렷하지만 미국발 금융 위기 가능성 잠재, 시한폭탄 싣고 성장 궤도 오르다

새해 세계 경제를 한마디로 일컫자면, 시한 폭탄을 싣고 성장 궤도에 올라선 여객기와 같다. 시한 폭탄이 설치된 곳은 세계 경제의 엔진인 미국이다. 미국은 사상 최대 규모의 쌍둥이(경상수지와 재정수지) 적자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 2003년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는 국내총생산(GDP)의 5.3%인 5천7백67억 달러에 이른다. 새해에는 더 커져 5천8백31억 달러까지 불어날 전망이다. 또 재정수지 적자도 4.5%까지 늘어나 4천억 달러(2003년 3천7백80억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문제의 심각성은 미국의 쌍둥이 적자가 해마다 눈덩이처럼 불어나 거의 임계점까지 왔다는 데 있다. 부시 대통령은 경기를 띄우기 위해 5년(2003∼2008년) 동안 총 2천5백28억 달러 규모의 세금 감면 조처를 단행했다. 재선을 겨냥한 대선 전략이라고는 하지만 ‘이쯤 되면 막가자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 대학 교수는 “무역 적자와 대외 부채 같은 거시 경제 환경을 감안하면 미국은 어느 나라보다 금융 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높다”라고 말했다.

미국, 쌍둥이 적자에 치여 환율 정책 ‘쩔쩔’

기축 통화를 발행하는 나라가 금융 위기에 빠진다면 세계 경제는 ‘쑥밭’이 된다. 전세계 규모의 금융 공황이 도래했다고 부르짖는 성급한 선지자까지 곳곳에서 출몰하고 있다. 선진국들은 쌍둥이 시한 폭탄의 뇌관을 제거하기 위해 미국에 협조하고 있다. 가장 효과적인 뇌관 제거 방법은 환율 조정이다. 대미(對美) 교역에서 엄청난 규모의 무역 흑자를 내고 있는 일본과 유럽연합(EU)이 자국 통화 가치를 높이는 것을 용인하고 있다. 통화 가치가 오르면 자국 수출품의 가격이 상대적으로 높아져 대미 수출액이 줄고 미국 제품의 가격경쟁력이 커지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각국 중앙 은행은 자국 통화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크게 오르는 것을 막기 위해 외환 시장에서 달러를 사들이고 있다. 경쟁국보다 자국 통화 가치가 많이 오르면 수출 산업이 큰 타격을 입기 때문이다. 또 달러화를 사는 것은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를 보전하는 효과도 있다.

미국 부시 행정부는 환율 정책과 관련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경상수지 적자 폭을 줄이기 위해서는 달러화 약세를 용인해야 하지만, 달러화 약세를 받아들이면 재정 적자를 메우고 있는 재무부 채권이 팔리지 않는다. 또 민간 부문에서 외국 직접 투자도 줄어든다. 부시 행정부는 어쩔 수 없이 겉으로는 달러화 강세를 주창하고 있지만 국가간 환율 협상에서는 달러화 약세를 용인하는 ‘이율배반’적인 행동을 취하고 있다.
미국이 안고 있는 시한 폭탄이 터지지 않는다고 전제했을 때, 새해 세계 경제는 3.4%(2003년 2.7%)까지 성장할 전망이다. 주요 선진국의 경기 회복세가 뚜렷하기 때문이다. 미국·일본·유럽·중국 등 경제 강국에서 산업 생산이 회복되고 소비와 투자가 늘어나는 동시에 고용 사정까지 나아지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정보 기술 산업도 과잉 투자 후유증에서 벗어나 재도약에 필요한 체력을 회복했다. 세계 경기가 회복되면 아시아와 유럽의 수출이 늘고 소비 심리도 크게 나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2001년 증가율 0%로 위축되었던 세계 교역은 2004년 6.1%(2003년 4.3%)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부시 행정부는 쌍둥이 적자가 어떻게 되든 간에 금리를 낮추고 세금을 줄이는 ‘용감한’ 경기 부양책을 펼쳐 미국은 뚜렷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세금이 줄다 보니 가계의 구매력이 커지고, 금리가 낮아 장기 할부로 자동차와 주택을 구입하고 있다. 미국 소비자들이 빚잔치를 벌이고 있는 셈이다. 기업은 IT 거품이 빠지면서 투자가 늘고, 생산성이 높다 보니 원가 절감과 기업 실적 회복세가 뚜렷하다. 이 덕에 새해 GDP 성장률이 3.5%로 2003년(2.9%)보다 0.6%포인트 높아질 전망이다. 하지만 굴뚝 산업의 공급 과잉이 해소되지 않은 채 생산성이 좋다 보니 고용이 늘지 않고 있다. 고용이 뒷받침되지 않는 소비와 투자 증가는 ‘사상 누각’이다.

일본 경제는 ‘잃어버린 10년’에서 벗어나 회복 국면으로 진입했다. 일본 경제연구소들은 새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잇달아 높이고 있다. 2002년 하반기부터 살아난 일본 경제는 새해에 완전한 회복세를 보이며 유럽과 함께 세계 경제의 기관차로 재등장할 채비를 갖추고 있다. 다만 금융기관 부실 채권과 부실 기업 처리가 늦어지면서 2003년 2.6%를 기록한 성장률은 앞으로 2∼3년 동안 1∼1.5% 수준에서 완만하게 올라갈 것으로 보인다. 유럽연합 경제는 새해 2%까지 성장할 전망이다. 잠재성장률 2.25%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수출과 소비가 늘고 금리 인하 조처로 투자도 회복세로 돌아설 것이다. 관건은 환율이다. 유럽연합 경제의 버팀목 구실을 해온 수출이 유로화 가치 상승으로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

일본·중국·유럽연합, ‘세계 경제 기관차’ 노릇 할 듯

중국은 2003년에 이어 새해에도 8%에 가까운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예측된다. 내·외국인 투자가 지속적으로 늘고 수출 규모도 폭발적으로 커지고 있다. 서부 대개발 프로젝트와 베이징올림픽 준비 과정에서 대규모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고, 환율 안정으로 수출에서 무역 경쟁국들보다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 경제 앞에는 국내외적으로 풀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대내적으로는 금융기관과 국유기업이 부실하고 동서간 경제 발전 격차가 커지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무역수지 흑자가 산더미처럼 쌓이면서 위안화 평가 절상과 통상 압력이 거세지고 있다.

이밖에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대중국 수출이 늘면서 중화경제권으로 빠르게 흡수되고 있다. 새해 동남아시아의 경제 성장률이 4%로 예상되는 것도 IT 제품 수요 증가와 함께 대중국 수출이 크게 확대될 것이기 때문이다. 동유럽은 내수 호조세가 지속되고 유럽연합 경제 회복에 따른 수출이 늘어나 건실하게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중남미 국가들은 앞다투어 경제 개혁에 나서고 있으나 아르헨티나의 금융 위기가 지속되면서 어려움을 겪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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