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 보호 곳곳에 ‘구멍’
  • ()
  • 승인 2000.03.30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뼈대는 있는데 근육이 없다.’ 김주영 변호사(참여연대 경제민주화위원회 부위원장)는 한국 증시의 제도적 문제점을 그렇게 단적으로 표현했다. 부당한 내부자 거래가 성행하고, 시세 조종 행위가 판을 쳐도 이를 규제할 만한 실질적인 수단이 없다는 설명이다.

지난해 한국 증시에는 골드뱅크 전환사채 해외 헐값 매각, 현대증권 주가 조작 사태, 삼성SDS 부당 변칙 증여, 미래와사람 허위 공시 의혹 등 굵직굵직한 주식 관련 사건들이 줄을 이었다. 하지만 어느 한 경우에도 속 시원하게 피해를 본 투자자의 권리를 되찾아 주었다고 평가되는 예가 없었다. 특히 코스닥 시장에서 횡행하는 부당 시세 조종 세력들에 대해서는 거의 방치 상태나 다름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지난 3월15일 코스닥 증권 시장은 예상과 달리 코스닥 등록 예비 심사를 신청한 31개 기업 가운데 12개를 탈락시키고 2개를 심사 보류해 파장을 일으켰다. 코스닥위원회의 한 위원은 “이번 심사가 전보다 좀 까다로웠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증권거래소에 비하면 코스닥 시장이 진입하기가 훨씬 더 쉬운 편이다”라고 밝혔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상장사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는 것은, 불성실한 공시나 부당 내부 거래로 투자자들에게 손해를 끼쳤을 경우 엄격한 제재를 가하기 때문이다. 부당 이득을 전액 환수해 피해자에게 돌려 주는 것은 물론 막대한 벌금을 부과해 기업 살림에 치명적 타격을 입힌다.

한국 자본 시장은 미국을 모델로 삼으면서도 증권거래법은 일본을 모방했다. 집단소송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은데도 이를 반대하는 기득권 세력이 내세우는 근거 가운데 하나가 일본 역시 이 제도를 채택하지 않았다는 궁색한 변명이다(집단소송제란, 피해자들이 개별적으로 소송을 벌이기 힘든 경우에 대표자가 피해자 전원을 대표해 배상액을 일괄 청구할 수 있는 제도).

증권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완전 공시제 도입 △내부자 거래 척결 △집단소송제 도입 등을 통해 시장 거래 질서를 공정하게 조성하라고 주장한다. 그럴 경우 지금과 같은 투기적 거품 장세도 시장 기능에 의해 자연스럽게 극복될 수 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