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부르는 파랑새는 있다
  • 金恩男ㆍ安殷周 기자 ()
  • 승인 2000.01.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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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천적 성격ㆍ긍정적 사고가 행복 찾기 ‘열쇠’웃는 얼굴 짓기, 종교ㆍ운동ㆍ취미 생활도 도움
왕자는 제비에게 이렇게 말했다. “즐거운 것이 행복한 거라면 난 진짜 행복했단다. 그런데 내가 죽자 사람들은 나를 (동상으로 만들어) 이 도시의 온갖 추한 것과 비참한 것이 다 보이는 이 높은 곳에다 세워 놓았다. 비록 내 심장이 납으로 되었지만 난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가 없구나.” 결국 왕자는 칼자루를 장식한 붉은 루비, 두 눈에 박힌 사파이어, 온몸을 뒤덮은 얇은 순금까지 모조리 굶주리고 헐벗은 이웃에게 나눠준 다음 진정 ‘행복’한 왕자로 거듭난다.

오스카 와일드가 쓴 동화 <행복한 왕자>는 고대 철학에서부터 이어져 내려온 행복관을 충실하게 보여준다. 곧 ‘행복은 쾌락이 아니요, 덕을 베푸는 것이 행복한 삶’(아리스토텔레스)인 것이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 들어 행복관은 급속하게 바뀌고 있다. 프랑스 철학자 필립 반 덴 보슈가 지적한 대로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은 쾌락과 행복을 향유하기 위하여 존재한다’.

한국인 행복지수, 세계 23위

행복이란 무엇인가. 생리학으로 설명하자면 행복은 호르몬 작용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 몸에는 신경 전달 물질이 100 가지 남짓 존재하는데, 이 중 기분과 정서를 관장하는 신경 전달 물질은 세로토닌ㆍ도파민ㆍ노르에피네프린(노르아드레날린)ㆍ에피네프린(아드레날린) 따위이다. 마음이 즐거울 때는 신경 호르몬이 증가하면서 이들 신경 전달 물질의 활동이 왕성해진다.

하루 종일 일에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와 뜨거운 욕조에 몸을 담그고 맥주를 한 모금 마시는 순간을 상상해 보자. 이 순간 뇌 시상하부와 뇌하수체선(시상하부 아래에 있는 작은 내분비선)이 신경 흥분을 호르몬 반응으로 전환하면서 우리는 평온과 안락함을 느낀다. 이와 더불어 숨이 느려지고, 산소 소모량이 감소하며, 혈압은 떨어지고, 근육은 이완된다.

신경 전달 물질의 움직임이 활발해지면 인지 기능과 관련된 콜린성 신경계인 아세치콜린 뇌 세포가 안정된다는 것이 강북삼성병원 신경정신과 오강섭 과장의 지적이다. 이렇게 되면 뇌에 혈류가 증가하면서 정신이 맑아지고, 기억력이 좋아진다. 다시 말해 행복감을 많이 느끼는 사람은 머리가 좋아진다. 소화 기능 또한 왕성해진다. 신경 전달 물질 가운데 하나인 세로토닌은 시상하부뿐 아니라 위장에도 꽤 많이 분포해 있다. 이 때문에 마음이 불편하면 장이 뒤틀리고, 목구멍이 막히면서 소화가 잘 안되는 것이다. 단 신경 전달 물질이 지나치게 왕성하게 활동하면 환청이나 망상에 빠질 위험이 있다. 반대로 활동이 부족하면 우울증에 걸린다.

의학 처방에 따른다면, 행복해지는 방법은 간단하다. 잠을 푹 자 뇌를 쉬게 하고, 단백질을 듬뿍 함유한 음식을 섭취하고(특히 초콜릿ㆍ강냉이처럼 트립토판이 많이 들어 있는 단 음식은 세로토닌 분비를 촉진시킨다), 운동을 적당히 해 주면 세로토닌?노르에피네프린이 활발히 분비된다. 명상?햇볕 쪼이기?음악 감상?목욕 따위도 행복해지는 것을 돕는다.

그러나 뇌의 비밀이 하나 둘 밝혀지고 이른바 ‘행복해지는 약’이 등장할 만큼 의학이 발달했는데도 인간의 행복지수는 점점 떨어지는 것이 문명 사회의 현실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떻게 해야 참된 행복을 느낄 수 있을까.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는 것은 지난 수 세기 동안 철학자와 신학자의 몫이었다.

그러나 현대 산업 사회에 접어들면서 정치학자ㆍ사회학자ㆍ심리학자가 이 대열에 합류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인간의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를 찾아내면 행복해지는 방법 또한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 결과 정치ㆍ사회 학자는 이른바 ‘삶의 질’이라는 지표를 만들어 냈다. 이들은 처음에 소득 수준ㆍ1인당 국민 총생산(GNP) 같은 경제적ㆍ물질적 지표로 행복감을 측정하려 했다. 그러나 물질이 풍요해지면 행복도 증진할 것이라는 믿음은 시간이 흐를수록 깨져 갔다. 1960년대 이전까지 미국은 1인당 국민소득이 성장하는 것과 비례해 삶에 대한 국민의 만족도 또한 높아졌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 1인당 국민소득이 계속 올라갔는데도 미국인이 느끼는 행복감은 점점 하강 곡선을 그렸다.

1994년 영국 런던정치경제(LSE) 대학이 세계 54개 나라를 상대로 행복지수를 조사한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행복지수 1∼5위를 차지한 것은 방글라데시ㆍ아제르바이잔ㆍ나이지리아ㆍ필리핀ㆍ인도처럼 상대적으로 가난한 나라였다. 반면 선진국이라는 영국(32위)ㆍ프랑스(37위)ㆍ독일(42위)ㆍ일본(44위)ㆍ미국(46위)은 하위권을 휩쓸었다. 한국은 23위로 중위권이었다.

이에 따라 사회학자들은 나이ㆍ성별ㆍ인종ㆍ종교ㆍ직업ㆍ결혼ㆍ가족 같은 사회인구학적인 요소를 덧붙여 행복감을 설명하려 했다. 실제로 이들 요소는 행복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다.

일반적으로 젊은이는 늙은이보다 행복해 한다. 나이가 어릴수록 즐거움과 고통 양쪽 감정을 더 강렬하게 느끼기 때문이다(심리학자들에 따르면, 행복감은 부정적 감정이 전혀 없이 긍정적 감정만 존재하는 상태가 아니라, 부정적 감정에 비해 긍정적 감정이 상대적으로 우세한 상태이다). 단 삶에 대한 전반적인 만족도는 나이가 들수록 높았다.

남자와 여자간 차이는 크게 두드러지지 않는다. 단 젊을 때는 여성이 남성보다 더 행복해 하고, 나이 들어서는 남성이 여성보다 더 행복해 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미혼자보다 기혼자가 행복해 하는 것은 세계 공통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러나 결혼 기간 내내 행복한 것은 아니다. 결혼 기간과 결혼 만족도 사이에는 ‘U’자형 관계가 나타난다. 즉 결혼 만족도는 자녀가 결혼해 집을 떠나기까지 20년 동안 지속적으로 감소하다가 그 뒤 다시 높아지는 양상을 보인다. 착각 잘하는 사람이 행복하다?

물론 나라별 특성은 있다. 한국의 경우 특징적인 현상은 청소년의 행복감이 매우 낮게 나타난다는 점이다. 1996년 한국리서치가 사회 계층에 따른 주관적 행복도를 조사했을 때 행복감이 가장 낮게 나타난 연령층은 15∼17세였다. 이듬해 사무직ㆍ생산직 근로자 행복도를 조사한 이명신 박사(연세대 인간행동연구소) 또한 19세 이하 근로 청소년의 행복감이 가장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보편적으로 10대는 자살률도 높지만, 생계 따위로 근심할 일이 덜하고 사고가 자유롭기 때문에 자기 도취에 빠지기도 가장 쉬운 연령대라는 것이 이명신 박사의 지적이다. 그런데도 한국 청소년이 스스로를 불행하다고 느끼는 가장 큰 원인은 입시 위주 교육에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근로 청소년조차 여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문제는 사회인구학적인 틀만으로는 개인의 행복을 효과적으로 측정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일반인이 스스로 느끼는 행복감에서 이런 외형적 요소가 차지하는 비중은 기껏해야 15%를 넘지 못한다는 것이 미국 심리학자인 디너 부부의 연구 결과이다. 그렇다면 개인의 행복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무엇일까.

심리학자들은 그 첫 번째로 성격을 꼽는다. 과거 심리학자들의 견해는 ‘일상에서 얻는 기쁨이 모여 행복을 이룬다’(상향 이론)와 ‘성격처럼 타고난 심리적 특질이 개인의 행복을 결정짓는다’(하향 이론)로 나뉘어 팽팽하게 대립해 왔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무게 추는 하향 이론 쪽으로 쏠리는 추세이다.

물론 일상에서 만나는 행운 또는 불행이 행복감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 효과가 계속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1978년 브리크만 박사와 같은 심리학자들은 복권 당첨자와 척추 마비 환자가 삶에서 느끼는 행복감을 비교ㆍ조사한 일이 있다. 그 결과 복권 당첨자는 한동안 행복감의 극치를 맛보지만, 장기적으로 행복하기는 힘들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반면 척추 마비 환자는 심한 불행감에 시달렸지만 미래를 부정적으로 보지는 않았다. 이훈구 교수(연세대ㆍ심리학)는 이를 ‘대비 효과’로 설명했다. 갑자기 추위가 몰아닥치면 사람들은 오들오들 떤다. 그렇지만 추위가 계속되면 사람들은 더 이상 첫날처럼 춥다고 느끼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돈벼락을 한번 맞아 본 사람은 일상에서 재미를 얻기 어렵다. 다시 말해 자극 수준이 향상된 사람은 웬만한 자극으로 행복감을 맛보기 힘들다. 따라서 복권 당첨자의 행복감이 자칫 재활 의지를 다지는 환자보다 떨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이에 반해 성격은 일관되게 행복과 연관이 있다. 곧 낙천적이고 외향적인 사람은 행복감이 높고, 스트레스를 받아도 이를 대수롭지 않게 간주하는 경향이 강하다. 반면 내성적이고 신경증이 있는 사람은 쉽게 우울해지고 짜증을 내며 스트레스에 취약하다. 타고난 대뇌 구조를 들어 이를 설명하는 학자도 있다. 곧 외향적인 사람은 ‘보상’을, 내향적인 사람은 ‘처벌’을 과장해서 지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행복한 사람은 ‘자아 도취에 빠진 사람’이기도 하다. 심리학자 테일러ㆍ브라운 박사는 긍정적인 착각 세 가지(비현실적으로 긍정적인 자기 평가, 과장된 자신감, 비현실적인 낙관주의)가 행복감을 높인다고 분석했다. 이들에 따르면, 자기와 현실 세계를 지나치게 객관적이고 정확하게 인식하는 능력은 오히려 우울증 같은 정신 질환의 지표가 된다.

그렇다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타고난 성격을 바꾸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노력은 할 수 있다. 당장 얼굴에 미소를 띠려고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질 수 있다고 이훈구 교수는 제안한다. 그것은 ‘안면 피드백(feedback) 효과’때문이다. 실없이 웃다 보면 진짜로 행복해진다

표정심리학자 폴 에크먼에 따르면, 인간이 표정을 지을 때 사용하는 안면 근육은 모두 44개이다. 한국형 표정 시뮬레이터를 개발?운영하는 최창석 교수(명지대ㆍ정보공학)는, 그 중 한두 개만 움직여도 웃고, 울고, 놀라고, 성내는 표정을 상대방에게 훌륭하게 전달할 수 있다고 말한다.

행복할 때 주로 쓰는 근육은 눈 아래 있는 눈둘레근과 입가에 바로 붙어 있는 볼근이다. 이들 근육이 당겨지면 아래눈두덩이 도톰해지고 양쪽 입술 끝이 올라가면서 눈가와 입매가 웃는 표정으로 바뀐다. 같은 미소라도 볼근 대신 광대뼈 부위의 큰 권골근을 사용하면 애매모호하고 가식적인 미소로 바뀐다. 이때 눈은 거의 웃지 않는다.

이같은 안면 근육 활동은 뇌에 피드백 작용을 해 정서를 불러일으킨다. 다시 말해 ‘이러이러한 표정 신호는 기쁨을 나타낸다’고 오랫동안 학습해 온 뇌는 이같은 표정 신호가 입력되는 순간 기쁜 정서를 불러일으킬 채비를 갖춘다. 거울 앞에서 실없이 웃는 것만으로도 즐거워질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회 전체가 행복 추구하는 시스템으로 바뀌어야”

감성을 풍부하게 드러내는 훈련을 하는 것도 행복해지는 좋은 방법이다.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박사(‘마음과 마음’ 원장)는 감성을 드러내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여겨온 가부장적 문화가 한국 남성을 불행하게 만들었다고 지적한다(43쪽 상자 기사 참조).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는 남성의 불행을 더욱 가중시켰다. 경제 위기 이후 성큼 다가온 정보 사회는 융통성 없고, 창의적이지 못하고, 관계를 맺는 데 미숙한 인간형을 더 이상 요구하지 않는다.

행복해지는 또 한 가지 좋은 방법은 종교를 갖거나 취미 생활을 하는 것이다. 지난해 리서치 앤 리서치가 벌인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인의 행복지수는 58점(100점 만점)으로 IMF 사태 이전인 1996년에 비해 10점 가량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추세에서도 종교인이나 취미 활동이 활발한 사람, 식도락을 즐기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행복감이 훨씬 높았다.

이훈구 교수는 개인뿐 아니라 사회 전체도 행복을 추구하는 시스템으로 바뀌어 가야 한다고 지적한다. 일류 대학 출신이 아니어도 자기를 중요한 존재라고 여길 수 있는 사회, 다양한 가치와 삶을 존중하는 사회, 돈ㆍ지위ㆍ권력보다 적성ㆍ취미ㆍ자율성 같은 내적 만족을 중시하는 사회, 빈부 격차 없는 사회, 공해 없는 사회. 이것이 바로 행복한 사회이다.

한 인도 철학자가 말한 대로 인생의 목적은 행복을 확장하는 데 있다.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을 잊고 살았던 것은 아닌지, 새로운 세기의 입구에서 한 번쯤 돌이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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