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 페미니스트’들의 일상 혁명
  • 김은남 기자 (ken@sisapress.com)
  • 승인 2000.03.23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여권 신장 대신 ‘생활 속의 평등’ 외치며 현실에 맞서
“날 강간하라! 날 강간하라, 친구여! 날 강간하라! 다시, 또다시 날 강간하라! 난 유일한 사람은 아니니.”

1995년 10월 연세대 교정에서는 총기 자살로 삶을 마감한 커트 코베인의 노래 <날 강간하라>를 구호로 내건 ‘성 정치 문화제’가 열렸다. 이념이 사라진 1990년대 대학가, 그 무정부적 공간에 자생적으로 출현한 이른바 ‘영 페미니스트 그룹’은 이처럼 충격적인 퍼포먼스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알렸다.

이들 영 페미니스트 그룹은 외모·말투·사고·감성 모든 측면에서 선배 페미니스트와는 달랐다. 이들은 헐렁한 청바지와 티셔츠로 대변되는 ‘남성이 되고 싶어하는 여성 운동가’를 경멸했다. 대신 이들은 싸구려 액세서리로라도 자기만의 스타일을 드러낼 수 있는 감각을 동경했다.

이들은 선배 운동가처럼 ‘남녀 동권’에 목을 매달지도 않았다. 여성 문제를 사법적 권리의 문제로 여기게 만든 ‘진부한’ 여권 신장론은 더 이상 이들의 흥미를 끌지 못했다. 대신 이들은 일상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먼저 이들은 여성의 몸에 주목했다. 우주의 생성 비밀에 가까이 닿아 있는 여성의 몸은 이들에게 더 이상 부정성·열등성·수동성의 대상이 아니었다. 달의 공전 주기와 일치하는 월경은 ‘저주’가 아닌 ‘마술’이었다. 여학생들은 같은 과 남학생과 공동으로 쓰는 사물함에 생리대를 넣어 두기도 했다. 모든 여학생은 그곳에서 당당하게 생리대를 꺼내 썼다.여성성 긍정하며 모순에 저항

몸에 대한 긍정은 여성성에 대한 긍정으로 나아갔다. 이들은 ‘사회적 소수자’라고 스스로를 규정했다. “소수자임을 인정함으로써 세상을 좀더 정교하게 바라보고, 현실에 좀더 끈질기게 저항할 수 있었다”라고 이가은씨(25·<달나라 딸세포> 편집위원)는 말한다. 이들은 사회적 소수자라는 동지적 처지에서 동성애자·장애인·여성 노동자를 이해했고, 이들과 연대했다.

영 페미니스트 그룹이 1990년대 중후반 대학가에 끼친 영향은 지대했다. 연세대에서 성 정치 문화제가 열린 이듬해인 1996년 이화여대 대동제에서 발생한 이른바 ‘고대생 난동 사건’, 연세대에서 열린 범민족대회 참가자 연행 과정에서 발생한 ‘한총련 여학생 성폭력 사건’을 잇달아 겪으며 영 페미니스트 그룹은 성폭력의 개념을 일상으로 확장했다.

성적인 추행이나 폭언을 저지르지 않았어도 이화여대 대동제를 망친 남학생들의 행위는 ‘집단 성폭력’으로 규정되었다. 이들에 따르면 물리적·사회적 우위를 바탕 삼아 여성을 무력화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여주고, 여성을 공포와 위협 상태로 몰아넣은 것만으로도 남학생들은 성폭력을 자행한 셈이었다.

이들에게는 한총련 여학생들을 추행한 공권력이나, ‘여자들을 지켜 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운동권 남학생이나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그렇다고 이들이 굳이 남학생을 설득하려 애쓴 것도 아니었다. 남성을 어떻게든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려는 속칭 ‘오빠 페미니스트’는 이들의 취향이 아니었다. 연세대 성 정치 문화제를 이끌었던 정승화씨(<달과 입술> 편집장)는 이렇게 말한다. “여성을 이해하는 척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남자나 여자나, 자기가 세상에 들이대고 있는 주류의 잣대를 근본적으로 회의해 본 사람만이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다.”

영 페미니스트 그룹이 사회로 진출하기 시작한 1990년대 후반부터 여성계는 새로운 문화 충격을 경험하고 있다. ‘웃자! 뒤집자! 놀자!’라는 유쾌한 구호와 함께 1998년 등장한 <페미니스트 저널 이프>는 가부장적 위선으로 가득찬 일상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들은 ‘치고 빠지는’ 전법으로 대중의 성감대를 살짝살짝 건드렸다. 지식인 남성의 위선, 제사 제도 따위는 그 앞에서 속수무책 상처를 입었다.

서울대 출신이 중심이 되어 만든 페미니즘 웹진 <달나라 딸세포>(http://dalara.jinbo.net), 연세대 영 페미니스트 그룹이 만든 무크지 <두 입술> 또한 이름만큼이나 기발한 문제 제기와 글쓰기 방식으로 젊은 독자를 파고들었다(‘달’은 여성을 비유하며, ‘딸세포’는 딸들의 수평적 연대와 진화를 의미한다. ‘두 입술’은 여성에게 강요되어 온 침묵의 주술을 깨고 입술을 열어 의사 소통을 시작하자는 비유를 담고 있다).

<달나라 딸세포>와 <두 입술> 편집진은 최근 ‘달과 입술’이라는 출판 기획 집단을 만들어 공동 작업을 모색하고 있다. 이들이 처음 선보일 성과물은 3월 중 출간될 <나는 페미니스트이다>(도서출판 동녘). 1990년대 페미니즘의 공과를 기록으로 남겨 후배들에게만은 ‘맨땅에 헤딩하는’ 아픔을 안겨 주고 싶지 않다는 것이 한때 영 페미니스트 그룹의 전위를 담당했던 이들의 바람이다.

일상성이라는 지나치게 막연하고 추상적인 개념에 매몰됨으로써 불평등한 현실 구조를 바로 보는 데는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는 영 페미니스트 그룹. 그럼에도 이들은 페미니즘을 ‘학습’한 것이 아니라 ‘생활’로 받아들인 첫 세대로서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 이숙경씨(서울시립대 강사·여성학)의 지적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