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대란에도 살 길은 있다
  • 장영희기자 (mtviewsisapress.comr)
  • 승인 2004.01.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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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취업문이 좁다지만, 자기 적성에 맞고 스스로 원하는 일을 일찌감치 정해 치밀하게 준비하면 비집고 들어갈 틈은 얼마든지 있다. 나름의 전략을 세워 취업 바늘구멍을 뚫은 사
‘일자리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 취업 빙하기를 힘겹게 견뎌내고 있는 청년 구직자들은 이렇게 외칠지도 모른다. 중장년층뿐만 아니라 이들에게도 일자리는 곧 ‘목숨’이기 때문이다. 정부의 움직임에서도 긴박감이 묻어난다. 정부가 올해 경제 운용의 키워드를 일자리 창출로 잡은 것도 실업 문제 해결이 최우선 과제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올해도 취업 한파는 쉽게 물러가지 않을 전망이다. 적어도 상반기 채용 시장에는 봄날이 오지 않으리라는 것이 취업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채용 전문 업체인 코리아리크루트가 지난해 12월 1백1개 업종별 상위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04년도 상반기 신입 직원 채용 계획 조사에 따르면, 채용 계획이 있다고 답한 기업은 40.6%에 그쳤다. 삼성전자·SK텔레콤·대우일렉트로닉스·현대모비스 등 41개 기업이다. 미정이라고 답한, 41.6%에 달하는 기업이 얼마나 방향을 틀지가 올 상반기 채용 시장의 최대 변수이다. 취업전문업체 헬로잡 조사에 따르면, 2004년 채용 규모는 2003년보다 6% 가량 줄어든 1만9천명 선이 될 것으로 조사되었다.
4년제 대학 졸업자가 가장 많다는 올 2월에는 학사모를 벗기 무섭게 실업자로 내몰리는 베이비붐 세대 자녀들이 속출할 것으로 보인다. 이들(15∼24세)의 취업난이 특히 심각한 것은 단순히 수가 많기 때문은 아니다. 산업연구원 최영섭 연구위원은 구조적 요인이 있다고 분석한다. 교육과 일자리의 연계가 전반적으로 취약한 가운데 경제의 고용 흡수력이 떨어지고 기업의 채용 관행이 변화하는 따위 요인이 복합해 나온 결과라는 진단이다.
취업 전문가 사이에는 ‘그물형’ ‘낚시형’ ‘작살형’이라는 표현이 유행하고 있다. 기업들의 채용 방식이 대규모 정기 공채라는 그물형에서 소규모 상시 채용이라는 낚시형으로 변모하더니, 이제는 채용 대상을 콕 집어내는 작살형으로 옮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기업들이 신참자보다 경력자를 선호하는 것도 큰 변화다.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국내 기업들의 경력자 채용 비율은 1997년 39.3%에서 2002년에는 81.8%로 급증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신참자를 뽑으면 돈(교육훈련비)과 시간이 들지만, 경력자들은 당장 써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취업난의 더 근본적인 이유는 채용 방식보다 성장 속도와 고용 흡수력이 떨어지는 데 있다. 한국 경제의 잠재 성장률은 198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8%에 육박했지만, 1990년대 후반에는 6%대로 떨어졌고, 2000년대 들어서는 5%대로 내려앉았다. 문제는 경제가 성장한다 해도 과거보다 생산 현장에서 사람을 덜 필요로 한다는 데 있다. 산업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국내총생산(불변 GDP 기준) 10억원당 필요한 취업자 수인 취업계수는 1990년 69명에서 2002년에는 42명으로 크게 떨어졌다.

성장 속도에 따라 일자리가 늘어나는 정도를 나타내는 고용탄력성도 1988∼1992년 0.41에서 1998∼2002년 0.36으로 낮아졌다, 취업계수와 고용탄력성 하락은 경기가 회복되더라도 과거처럼 일자리가 크게 늘어나지 않으리라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을 시사한다.

이른바 저고용 성장 시대, 심지어 일자리 없는 성장 시대가 들이닥치리라는 음울한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일자리는 정녕 사라지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일자리는 없어지기도 하고 생겨나기도 한다. 현재 있는 일자리를 차지하고 앞으로 생겨날 일자리를 개척하는 일은 대부분 구직자에게 달려 있다.
실업자의 절반이 청년 실업자이며, 살인적인 취업난 탓에 구직 단념자까지 늘고 있지만, 최근 1∼2년 사이에 일자리를 얻은 청년들은 뭐가 달라도 달랐다. 2002년 4월 LG홈쇼핑 의류 MD(머천다이저·상품기획자)로 취업한 안지현씨(26)는 자신의 직업을 적극 개척한 사람이다. 안씨는 학교(연세대)를 두 번 들어갔다. 너무 정적이어서 재미를 붙일 수 없었던 심리학을 포기하고 의류환경학으로 전공을 바꾸어 재입학한 것이다. 2학년 때부터 디자이너와 의류 상품기획자를 놓고 저울질하던 안씨는 3학년 초 상품기획자를 선택했다. 활동적이고 논리적 사고를 필요로 하는 상품기획자가 자기 적성에 맞는다고 판단했다.

이 때부터 안씨는 취업 준비에 들어갔다. 경영학과의 마케팅 수업 등을 들으며 지식 축적에도 애썼지만, 무엇보다 실전 경험에 나섰다. 의류 회사에서 무보수 사원으로 일했고, 의류 유통업체 모니터링 사원을 하며 의류 유통 구조도 파악했다. 관련 회사에 취업한 선배들을 찾아다니며 네트워크도 구축했다. 당시로선 ‘뜨기 전’이라 교수님과 친구들도 의아해 했던 홈쇼핑 회사로 안씨가 최종 진로를 선택한 것은, 홈쇼핑이 상품 기획과 유통을 결합한 업종이며 성장성이 크다는 사실을 선배를 통해 일찍부터 알았기 때문이다.

치밀하게 준비했지만, 결코 쉽지 않았다. 안씨는 2001년 12월 점찍어 두었던 두 회사 가운데 하나인 CJ에 도전했다가, 2차 면접에서 미끄러졌다. 상심이 컸다. 졸업이 가까워지면서 안씨 역시 불안해졌지만, 그녀는 인턴 사원부터 시작하리라 마음을 고쳐먹었다. 한 카탈로그 회사에 들어간 안씨는 그곳에서 상품기획자가 진짜 무엇을 하는 직업인인지를 체험했다. 그러기를 3개월째, 안씨는 LG홈쇼핑 공채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자기 인생을 적극 개척하기는 이재인씨(28)도 매한가지다. 이씨는 2003년 9월 신세계가 정보통신사업부를 독립시켜 만든 신세계아이앤씨에 경력직으로 입사하기 전부터 중소기업과 벤처 기업에서 실전 경험을 쌓았다. 학교(서울대 생물자원공학부)에 몸 담고 있었지만, 학교가 세상의 변화에 둔감한 것 같아 갑갑했고, 도서관에만 처박혀 있다가는 직장을 구하지 못할 것 같아서였다. 군 복무를 마친 그는 1999년 복학을 앞두고 회사 탐험을 시작했다. 인터넷 온라인 교육 회사에 1년 계약직 사원으로 있으면서 정보 기술(IT) 비즈니스에 눈을 떴다. 무역회사에 근무할 때는 마케팅과 재무 등 회사가 필요로 하는 업무를 두루 익혔다. 회사 일이 너무 재미있어 1년 휴학도 했다. 4학년 때는 아예 교수에게 양해를 구해 수업과 시험을 리포트로 대체하며 직장인으로 살았다.

이씨나 안씨는 자기들이 취업에 성공하게 된 이유를 기본에 충실했다는 것에서 찾는다. 자신이 원하는 직업 중에서 적성에 맞는 직업을 먼저 찾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관련 지식 축적과 실전 체험을 병행했다는 것이다. 취업에 성공했다고 해도 이같은 태도를 갖지 않으면 일에 몰입할 수 없고, 몰입하지 못하면 창조적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는다. 회사에서 인정받지 못한다. 결국 스스로 견뎌내지 못하고 다른 회사나 다른 직종을 기웃거리게 된다.

카메라 등 광학기기 전문 회사인 올림푸스한국의 주해진씨(28)는 취미를 직업으로 연결한 경우이다. 카메라를 좋아해 대학(서강대 경제학) 시절 2년 반 동안 올림푸스카메라 커뮤니티를 운영한 것이 결정적 계기였다. 자연스레 회사 관계자와 접촉하게 되었는데, 올림푸스 회사 역시 그가 충성도가 높은 고객이었을 뿐만 아니라 카메라에 정통해 효용 가치가 높다고 보았던 것이다.

2003년 2월 굿모닝신한증권에 입사한 황재수씨(27)도 자신의 특기가 빛을 발한 경우다. 공부(경기대 경영학과)와는 담 쌓고 지냈지만, 황씨는 게임 등 인터넷으로 할 수 있는 일과 주식 투자에는 자신이 있었고 또 재미가 있었다. 두 분야에서 만큼은 지고 못 살았다. 2002년 주식 투자에 미쳐 있던 황씨는 수익률대회에 도전해 입상했는데, 그에 대한 특전으로 입사하는 행운을 잡았다.
구직 전선에서 승리한 앞의 네 사람이 강조하는 취업 철칙 제1조는 ‘자기 적성에 맞고 원하는 일을 정해 발로 뛰라’는 것이다. 두 번째는, 대기업 집착증을 버리라는 것. 2백70만개 기업 가운데 유명한 기업의 근사한 일자리는 턱없이 적다는 것이다. 세 번째, 임금 조건보다 일을 먼저 고려하라는 것이다. 또한 작은 조직일수록 업무를 두루 익힐 기회가 많아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 경력직 채용 경향에 대처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다섯 번째는, 부지런히 네트워크를 구축하라는 것이다. 사내 추천제를 실시하는 기업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네 사람에 따르면, 도서관에 틀어박혀 토익 공부와 자격증 따기에 몰두하는 소극적 준비는 실패할 확률이 높다. 이재인씨나 안지현씨는 명문 대학 간판이 꼭 유리한 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기업들이 원하는 인재는 학벌 좋은 모범생이 아니라 창의적이고 진취적인 젊은이라는 것을 실감했다는 것이다. 취업 전문가들도 같은 조언을 하고 있다. 이른바 튀는 인재, 괄호 밖의 인재, 사업가형 기질의 인재, 심지어 이단아 혹은 문제아가 각광받는 시대가 이미 도래했다는 것이다.

청년 실업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기업과 정부가 일자리 창출에 적극 나서야 한다. 고용을 늘리기 위해 사용자와 노동자가 한 발짝씩 양보하는 것도 중요하다(66쪽 관련 기사 참조). 그런 점에서 최근 노사정위원회가 일자리 창출을 위한 사회적 대협약을 논의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다. 청년 실업 문제가 구조적이고 복합적 요인에 의해 빚어진다는 점에서 교육 시스템과 노동 시장, 그리고 지식 정보화 사회로 요약되는 산업구조 변동까지 두루 아우르는 대안도 모색해야 한다. 지난해 11월 한국 사회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모색하기 위해 발족한 뉴패러다임포럼 같은 단체는 그런 시도의 하나여서 울림이 크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아무리 저고용 성장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해도, 자신의 미래를 개척하고자 뛰는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일자리를 거머쥔다는 것이 취업 성공자들이 주는 체험적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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