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없는 길’ 달리다 추락한 삼성차
  • 朴在權 기자 ()
  • 승인 1999.07.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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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자동차, 무리한 투자로 파국 ‘질주’
‘21세기에 삼성을 먹여 살릴 사업.’ 한때 삼성그룹 사람들은 삼성자동차를 그렇게 불렀다. “빚이 너무 많다”고 지적하면 그들은 “10년간 이익을 남길 생각이 없다”고 맞받아쳤다. 그만큼 삼성의 자금력·기술력·판매력을 자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SM5가 출시된 지 1년도 못되어 삼성자동차 부산 공장은 가동을 멈추었고, 지금은 매달 수백 억원씩 돌아오는 어음을 막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신세가 되었다. 주채권은행인 한빛은행의 한 관계자는 “삼성자동차는 지난 6월에 사실상 부도났다”라고 말했다. 삼성그룹 60년 역사상 초유의 법정관리 기업으로 전락한 삼성자동차. 자동차에 몰렸던 인재들이 모두 떠나고, 남은 사람들은 다른 계열사 사람들로부터 ‘월급은 받았느냐’는 위로 인사를 받는 신세가 되었다. 이건희 회장은 이 ‘신수종 사업’을 법정관리에 부치면서 자기 재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삼성생명 주식 4백만주를 ‘노잣돈’으로 얹어 보냈다.

실패로 끝난 ‘삼성이 만들면 다르다’ 신화

삼성의 자동차 사업은 진입부터가 쉽지 않았다. 과잉 생산을 우려하는 정부와 경쟁 업체들의 견제 때문에 이병철 회장 때부터 이루려 했던 숙원 사업에 좀처럼 진출할 수 없었다.

그러다 마침내 기회를 잡은 것이 김영삼 정권 때이다. 삼성은 피폐한 부산 경제를 살리겠다며 부산 지역 정서를 부추겼다. YS의 경남중·고 동기 모임인 삼수회 회원들을 설득했고, 지역 정치인·상공인들을 공략해 우군으로 삼았다. 공장도 부산 신호뻘에 짓기로 했다.

94년 4월, 삼성은 일본 닛산과 기술도입계약을 체결하고, 그해 12월 정부는 삼성-닛산 기술제휴 신고서를 수리했다. 이듬해 3월 회사가 설립되었고, 이로부터 3년 만인 98년 3월 SM5 시리즈가 출시되었다.

하지만 이때 삼성자동차를 기다린 것은 구매 고객들이 아니라 극심한 IMF 한파였다. ‘삼성이 만들면 다르다’는 광고도 통하지 않았다. 지난해 삼성이 생산·판매한 SM5 차량이 5만대 정도인데, 이것도 그룹 계열사의 적극적인 지원이 없었으면 불가능했다. 그 정도로 고급차 시장은 얼어붙어 있었다.

경영 환경도 바뀌었다. 과거 같았으면 삼성전자에서 벌어들인 돈을 마음대로 쓸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불가능해졌다. 삼성생명이 5천4백억원을 불법 대출해 주었지만, 그것은 ‘언발에 오줌 누기’ 정도에 불과했다.

지난해 12월7일 청와대 정·재계 간담회에서 이건희 회장과 김우중 회장은 삼성자동차와 대우전자를 빅딜시킨다는 데 합의했다. 이 때부터 삼성자동차의 본격적인 몰락이 시작되었다.

부산 공장은 가동이 중단되었고, 노동자들은 서울과 부산을 오가며 시위를 벌였다. 협력업체 사장들도 투쟁 대열에 합류했다.

그런데도 삼성측은 전혀 손을 쓸 수가 없었다. 빅딜 안이 나온 뒤 포드와의 제휴 협상도 물건너 갔고, 다른 계열사의 돈도 끌어다 쓸 수 없었다.

지난 4월 삼성그룹 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은 이헌재 금융감독위원장을 만나 특단의 대책을 호소했다. 삼성생명의 동일인 여신 한도 예외를 허용해, 삼성자동차가 명예롭게 퇴출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이헌재 위원장은 불가 입장을 고수하고, 대신 이회장의 사재 출연을 요구했다. 이 때부터 삼성 내에서는 이회장의 사재 출연을 통한 삼성자동차 처리 방안이 강구되었다. 6월 초 삼성이 2천억∼3천억원 규모의 사재 출연 안을 내놓자 금감위는 액수가 적다며 퇴짜를 놓았다. 6월 중순에는 이학수 위원장이 다시 이헌재 위원장을 만나 이회장의 삼성생명 주식 사재 출연 방안을 내밀고, 삼성생명의 상장을 허용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것이 모태가 되어 6월30일 삼성자동차 처리안이 발표되었다. “출발부터 비용 개념 망각 등 문제점 수두룩”

도대체 삼성자동차에 무슨 잘못이 있었던 것일까. 95∼96년 삼성자동차 부사장 겸 고문을 지낸 강명한씨(64)는 지난해 펴낸 자신의 저서 <한국차, 브레이크 걸렸다>(정우사)에서 삼성자동차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었다. 가장 큰 문제점은 반도체 특수에 눈이 멀어 비용 개념을 잊었던 것. 그는 과투자만이 아니라 선(先)투자까지 이루어졌다고 개탄했다. ‘오그라진 발상으로 주저하지 말고 투자할 때는 과감하게 해야 한다’는 이건희 회장의 어록을 잘못 이해한 임원진이 멋부리기 경쟁을 벌였고, 그 때문에 아무리 차를 잘 만들어도 도저히 수지타산을 맞출 수 없는 회생 불능의 회사로 만들어 놓았다는 것이다.

그는 책의 결론부에서 다음과 같이 못박았다. ‘삼성의 과잉 투자는 삼성이 책임져야 할 부분이며, 그것을 바로잡는 것도 삼성의 책임이다. 그것을 해내지 못하면 파산시키는 것이 옳다. 모든 부채를 청산한 뒤에 다른 업체에 매각한다면, 맡는 기업에게 경쟁력을 올리는 계기가 될 수 있다.’삼성자동차가 첫 차를 출시하기도 전에 정확하게 지금 상황을 예견했던 것이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그의 이같은 통찰력은 그가 삼성자동차에서 버티지 못하고 떠나는 원인이 되었다.

강명한씨의 뼈아픈 지적은 삼성자동차와 협력업체가 들어서 있는 부산 신호공단을 방문해 보면 금방 느낄 수 있다. 평당 60만원이나 하는 비싼 뻘밭에 파일을 박고 평균 4m 높이로 성토해 평당 부지 조성비가 80만원을 넘어섰다. 여기에 세워진 공장은 연간 24만대 생산 규모의 최첨단 설비였다. 이같은 사정은 삼성자동차 협력업체들에서도 똑같이 확인할 수 있다.

“우리가 만들면 다르다는 것은 오만이었다.” 얼마 전 삼성그룹의 한 임원은 난데없이 이런 고백을 털어놓았다.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다’고 했던가. 삼성그룹 사람들 모습이 꼭 그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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