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군비 확장 움직임 자제해야
  • 서동만 (외교안보연구원 교수) ()
  • 승인 1999.03.25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군비 증강 움직임, 남북한 긴장 고조시켜... 대국주의 야망 버려야
북한이 ‘인공 위성’을 발사한 이후 일본의 군사적 대응이 끝을 모르고 진행되고 있다. 일본은 사건 직후 독자적인 정찰 위성 도입 및 미국과의 전역 미사일방어체제 개발 연구 공동 참가를 결정했다. 심지어 최근 일본 정부는 ‘적(북한)이 일본에 대한 무력 공격에 착수했다고 판단한 시점’에는 선제 공격이 가능하다는 견해까지 내놓아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이것은 자위대의 무력 행사는 방어할 때에만 가능하다는 기존 전수(專守) 방위 원칙을 뒤집는 것으로서, 일본 자위대가 한반도 영토에까지 개입할 여지를 만드는 셈이 된다.

일본의 이러한 움직임은 북한의 적개심을 자극해 간접적으로 남북한 간의 긴장을 높일 우려가 있다. 나아가 중국과 군비 경쟁을 하는 결과를 낳게 되면 한국으로서도 이를 좌시할 수 없어, 동북아시아에 군비 경쟁 흐름을 가속화시킬 수가 있다.

김대중 대통령은 한반도 냉전 구조 해체를 주장하며 북한이 핵·미사일 위협을 해소하는 대신 미·북한, 북·일 수교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이러한 햇볕정책과 거리가 먼 것이 최근 일본의 움직임이다. 앞서 말한 군사적 움직임 외에도 일본내 반북한 정서는 악화할 대로 악화해 있다. 일본에서, 북한에 대한 일종의 오리엔탈리즘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북한은 상종할 필요가 없는 악마 같은 나라로 간주되고 있다. 일본은 적어도 한국에 대해 했던 만큼은 북한에 대해서도 과거사 청산과 배상 책임이 남아 있다. 그런데 현시점에서 일본의 분위기는 이 문제를 해결할 처지가 아니다.

일본 ‘4강 회의 구상’ 숨은 의도 잘 파악해야

이와는 대조적으로 일본은 전임 하시모토 총리 시절 ‘유라시아 외교’를 선언하며 북방 영토 문제를 해결하고 2000년까지 러시아와 평화조약을 체결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이를 한반도에 적용해 볼 때, 일본의 기본 전략은 러시아와 우호 관계를 맺음으로써 미국·중국과 함께 동아시아 4강 관계의 틀을 만들겠다는 것으로 여겨진다.

일본이 추진하고 있는 ‘4강 회의’ 구상은 북·일 수교 이전에 남북한보다 우위에 있는 대국들과 4강 관계를 완성함으로써 한반도에 대해 ‘대국’으로서 발언권을 확보하겠다는 것인지도 모른다. 일본이 러시아와 교감해 제안한 한반도 6자 회담에는 한반도에 대한 대국주의적 발상이 숨어 있다.

물론 일본의 유라시아 외교는 냉전으로 중단되어 있던 극동 시베리아 개발을 추진함으로써 동아시아 지역 경제에 엄청난 활력소로 작용할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것이 남북한 경제 협력과 결합되면 북·일 관계 및 남북한 관계 개선에도 원동력이 될 수 있다. 노태우 정부 시절 제안한 ‘동북아 지역 6자 협의체’ 구상이나 김대중 정부가 제안한 ‘한반도 6자 평화 선언’은 북·일 수교와의 접점이 될 수 있지만, 일본의 숨은 의도를 조정해야 한다는 힘겨운 과제를 안고 있기도 하다.

일본의 동아시아 전략이 이 지역 평화를 증진하는 방향으로 작용할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이 지역에 긴장과 대립을 가져오게 될 것인가는 무엇보다도 일본의 대북 관계 개선 여부에 달려 있다. 한반도 냉전 구조를 해체하려는 정책은 일본의 장래를 위해서라도 지속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또한 남북한 관계 개선은 일본의 군비 증강 구실을 상당 부분 감소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중·일 관계에도 중요한 변수가 된다. 따라서 한국의 대북 화해·협력 정책은 동아시아 평화를 위해 결코 포기할 수 없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