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솟는 주가,가라앉는 개인 투자자
  • 朴在權 · 蘇成玟 기자 ()
  • 승인 1999.07.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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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 시장 투기 장세 ‘위험 수위’… 너도나도 투자, 후유증 심각
“주식 투자는 노름판과 같다.” 현대증권 김지민 선물금융공학부장이 한 말이다. 증권 전문가의 말치고는 불경스럽지 않은가? 이같은 지적에 대해 그는 당당하다. “노름과 달리 주식 투자는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돈 놓고 돈 먹기라는 점에는 차이가 없다.”

또 다른 전문가는 ‘공인된 도박’‘정부가 허용한 마약’이라고 말한다. 주식 투자에는 투기적 속성이 있어서, 한번 손 대면 빠져 나오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개인 투자자들은 대부분 떼돈을 벌려고 주식 투자를 시작한다. 그러다 원금을 까먹고 나면 그것을 복구하기 위해 사력을 다한다. 그만큼 손절매가 쉽지 않은 것이다.

최근 현대증권이 조사한 결과도 이와 다르지 않다. 김지민 부장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개인 투자자 가운데 원금을 찾고 조금이라도 돈을 번 사람은 전체의 10%를 넘지 않는다. 나머지 90% 이상은 원금을 복구하기 위해 여전히 비지땀을 흘리고 있는 것이다.

개인 투자자들, 본전 찾으려다 더 손해 보기 일쑤

상식으로 보면 이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지난해 300선을 턱걸이하던 종합주가지수가 850선까지 상승했기 때문이다. 이런 마당에 개인이 돈을 못 벌었다는 말을 납득할 수 있을까. 그런데도 개인 투자자들은 90% 이상이 그처럼 이해할 수 없는 투자 결과로 인해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대우증권 서청주지점 김춘식 차장(35)의 고객인 임 아무개씨도 그런 사례에 속한다. 공기업 간부인 임씨는 지난해 초 3천만원을 가지고 주식 투자를 시작했다. 한때 절반 이상을 까먹었지만, 최근의 주가 상승세에 힘입어 상당히 복구했다. 그런데도 여전히 7백만원 정도를 더 벌어야 본전이다. 이 때문에 그는 죽기 살기로 주식 투자에 매달린다. 하루에 한 번씩 김차장에게 전화를 걸어 20∼30분씩 상담하고, 틈 나는 대로 객장에 들러 시세를 확인하고 분위기를 살핀다. 사무실에서는 수시로 전화를 걸어 물어볼 수가 없고, 그렇다고 인터넷에 들어가 시세를 조회하기도 쉽지 않아 객장까지 나와서 주가를 조회하는 것이다.

동원증권 광화문지점에 근무하는 전민호 대리(34)에게도 이와 비슷한 고객이 있다. 전직 대학 교수인 그는, 5개 국어를 구사하는 지식인이다. 하지만 주식 투자에 대해서 만큼은 조급하기 이를 데 없다. 자기가 주식을 사면 반드시 올라야 하고, 10원이라도 떨어질라치면 잠시도 참지 못하고 팔아치운다. 이 때문에 어떤 날에는 똑같은 종목을 세 번 사기도 했다.

물론 개인 투자자가 모두 이런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원금을 까먹은 상당수 투자자는 이런 성향을 보이고 있다. 쫓기기 때문이다. 주식에 투자해서 돈을 번 사람은 그래도 여유가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여유가 없다. 주가가 오르든 내리든 참지를 못한다. 조금이라도 오른다 싶으면 팔아치우고, 내린다 싶으면 안달하면서도 팔지 못한다. 오히려 저점인가 싶어 그 종목을 더 샀다가 엄청난 피해를 본다.

증시 전문가들은 이런 투자를 가장 경계한다. 그런데도 개인 투자자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김춘식 차장은 “이런 투자자들은 옆에서 아무리 충고해도 들으려 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로 인해 덕을 보는 것은 증권사 직원뿐이다. 약정 수수료가 올라 억대 연봉자 반열에 오를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지는 것이다.

국제통화기금(IMF) 관리 체제가 닥친 후, 개인 투자자들의 경제 지식은 눈에 띄게 향상되었다. 창구 직원에게 전화를 걸어 ‘미국 금리가 오를 것 같으냐’‘오늘 동남아 증시는 어떠냐’는 질문들을 쏟아낸다. 이 때문에 증권사 직원들도 깜짝깜짝 놀란다.

그렇지만 이것은 수익률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국내 증시 여건이 그만큼 복잡해진 데다, 장세를 주도하는 것이 기관과 외국인이다 보니 개인들로서는 근본적으로 한계에 부닥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많은 개인들이 직접 투자를 고집한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우선 까먹은 원금이 너무 많아서 증권사나 투신사, 뮤추얼 펀드의 주식형 수익 증권에 맡겨서는 원금을 복구하기가 어렵다고 판단한다. 주식 투자를 쉽게 생각하는 경향도 여기에 한몫 거든다. 종목만 잘 고르면 한방에 끝낼 수도 있다고 보고 욕심을 내는 것이다.

이같은 분위기를 부추기는 데는 증권사와 언론이 한몫 했다. 투자 설명회를 개최하면서 지금이 기회라고 부추긴 것이다. 최근 대학생과 20∼30대 직장인들이 대거 투자 대열에 합류한 것도 이와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등록금 날리는 대학생도 수두룩

이들은 기존 투자자들과 확연히 구분된다. 창구 직원에게 전화를 걸어 주문하지 않고, 컴퓨터 통신·인터넷을 통해 주문하는 신세대 투자자들인 것이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결정적인 약점이 존재한다. 주식 투자를 쉽게 생각하고, 단타 위주로 거래한다. 이것은 증권사에는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모든 증권사들이 사이버 거래 수수료 인하 경쟁을 벌인 것도 그 때문이다.

이같은 신규 투자자들로 말미암은 부작용이 벌써부터 나타나고 있다. 우선 대학생들의 투자 열기가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연세대 경영대학원 김형일씨(26)는 “경영학과 학생들은 대개 2학년 때부터 주식 투자에 손을 댄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학과를 불문하고 주식 투자를 하는 것이 최근 대학가의 풍속도이고, 등록금으로 주식을 샀다가 몽땅 날리고 군에 간 학생도 더러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도 증권사들은 ‘대학생 실전 투자 게임’등을 개최하며 투자 열기 부추기기에 여념이 없다.

주식 투자 열기는 직장 분위기도 바꾸어 놓았다. 서울 광화문에 있는 한 해운회사가 대표적인 예이다. 이 회사 직원들은 대부분 주식 투자를 한다. 그들 중 일부는 투자 금액이 커서 하루 주가 등락 폭이 자기 월급 규모를 웃돌기도 한다. 회사측은 직원들이 근무 시간에 주식 시세 조회하는 것을 금지하려고 무던히 애썼지만, 결국은 두 손 들고 말았다. 이 회사 간부는 “이러다 국민 전체가 주식의 노예가 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라고 혀를 찼다.주가지수 올라도 개인 투자자에게는 ‘그림의 떡’

게다가 증시 상황은 개인들에게 불리한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주가의 출렁임이 심한데, 이 경우 소액 투자자는 손해 보기 일쑤다. 지난 6월15일 서해에서 남북한 간에 긴장이 고조되었던 날도 그랬다.

그날 오전 9시, 증시가 개장되기가 무섭게 개인 투자가들은 2백억원어치를 순매수했다. 반면 기관과 외국인들은 매도 공세를 펼쳤다.

그런데 바로 뒤 남북 교전 사실이 발표 되었다. 개인들이 투매 양상을 보이면서 종합주가지수가 30% 이상 빠졌다. 그러자 이번에는 기관과 외국인들이 순매수에 들어갔다. 주가는 반등하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개인들만 엄청난 손해를 보았다. 이같은 양상은 6월 초부터 계속되었다.

최근에는 또 다른 요인이 개인 투자자들을 소외시키고 있다. 바로 주가 양극화 현상이다. 개인 투자자들이 선호하는 주식은 주가 만∼2만원대 대중주이다. 그런데 최근 증시에서 강세 행진을 계속하는 것은 외국인과 기관들이 좋아하는 빅5, 즉 SK텔레콤·포항제철·한국전력·한국통신·삼성전자뿐이다. 종합주가지수는 올라도, 나머지 주식들은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개인들은 선뜻 이런 종목을 사지 못한다. 너무 비싸기 때문이다. SK텔레콤은 50주만 사려 해도 7천만원이 필요하다. 삼성전자와 포항제철 주가는 10만원이 넘고, 한국통신과 한국전력 주가도 개인들에게 버겁기 그지없다. 이 때문에 개인들은 값이 만만한 주식을 선호하는데, 이것들이 최근 장세에서 철저히 ‘왕따’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자 최근에는 개인들이 투자 전략을 바꾸기 시작했다. 일부는 빅5 매수세에 가담하고, 나머지 일부는 코스닥 주식과 부실주에 눈길을 돌렸다. 지난 6월18일 관리 종목 주가가 대거 상한가를 기록하고, 거품 붕괴 우려가 높은 코스닥 종목들도 상한가 행진을 계속했다. 반면 개인들이 좋아하는 중·소형 우량주들은 약세를 면치 못했다.

“개인이 직접 투자하는 시대는 끝났다”

이같은 개인들의 투자 유형은 위험하기 짝이 없다. 증시 전문가들이 이구동성으로 “코스닥 시장에서 올해 안에 곡소리가 날 것이다”라고 경고하는 마당에, ‘묻지마 투자’를 계속하고 있는 것은 위험 천만한 모험이 아닐 수 없다. 부실주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이처럼 투기 장세가 계속되는 것에 대해서는 증권업계 관계자들도 우려하고 있다. 그 때문에 제시되는 방안이 시가 배당제이다. 현재는 배당을 할 때 액면가(5천원)를 기준으로 하는데, 이를 시가 기준으로 바꾸라는 것이다. 이렇게 하지 않고는 사실상 배당의 의미가 없기 때문에, 시세 차익을 노리는 매매를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가 배당을 실시해도 크게 달라지지 않으리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어차피 배당은 기업의 흑자 규모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고, 시가 배당을 해도 매매 차익을 노리는 투자 유형은 변하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개인 투자자들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현대투자신탁운용 강창희 사장은 “이제 개인이 직접 투자하는 시대는 끝났다”라고 장담한다. 다른 전문가들의 시각도 이와 비슷하다. 그래도 직접 투자를 고집한다면, 개인 투자자는 엄밀히 자기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소액 개인 투자자는 막대한 자금과 정보로 중무장한 기관 투자가·외국인 투자자와 경쟁해서 백전백패하기 십상이다. 그런데도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핏발 선 눈으로 ‘공인된 노름판’에 달려들고 있다. 철저히 돈의 논리로 굴러가는 주식 시장을 너무 얕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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