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식 이원집정부제의 ‘허와 실’
  • 이숙이 기자 (sookyi@sisapress.com)
  • 승인 1999.02.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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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권한 더 강해질 수도
국민회의와 자민련 사이 합당론의 이면에는 ‘내각제 개헌 시기 조절’이라는 뜨거운 감자가 숨어 있다. 합당론자들은 올 연말로 예정된 내각제 개헌 약속을 모양 좋게 늦추려면 양당이 한 몸이 되는 것이 낫다고 본다. 하지만 개헌 시기말고도 양당 사이에는 넘어야 할 산이 하나 더 있다. 내각제 형태다. 지금은 개헌 시기 논쟁에 밀려 있지만, 이 문제는 머지않아 정치권 최대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현재 자민련이 주장하는 내각제 형태는 독일식 순수 내각제다. 의회에서 선출하는 대통령은 영국 국왕처럼 상징성만 지니고, 국정 운영의 전권을 의회 다수당 출신 총리에게 맡기자는 것이다.

이에 반해 국민회의는 프랑스식 이원집정부제를 적극 검토하고 있다. 이 제도는 국민이 직접 뽑은 대통령이 외교·국방 등 외치를 담당하고, 의회 다수당이 추천하는 총리가 내정을 관할하는 권력 분점의 한 형태이다. 이미 자민련 박태준 총재가 내각제 대안 가운데 하나로 거론해 주목되고 있는 이원집정부제는, 90년 3당 합당 때도 대통령제의 대안으로 유력했던 인기 메뉴다.

프랑스 대통령, 의회 해산해 ‘동거’ 파기 가능

그렇다면 프랑스의 이원집정부제는 구체적으로 어떤 제도인가? 이 제도의 역사는 58년 프랑스 제 5공화국 탄생 시점으로 거슬러올라간다. 당시 부패한 권력을 청산하라는 국민 여망에 따라 정치에 복귀한 드골은 그 전까지 의회가 선출하던 대통령을 국민이 직접 뽑는 쪽으로 헌법을 바꾸었다. 의회 내에 기반이 취약했던 그가 직선 대통령으로서 힘을 얻으려 한 것이다. 이때부터 직선 대통령과 다수당 총리가 어정쩡하게 권력을 나누는 이원집정부제가 시작되었다. 애초부터 권력의 황금 분할을 위해서가 아니라 권력 쟁탈전의 와중에서 타협안으로 나온 셈이다.

드골·퐁피두·지스카르 데스탱·미테랑 그리고 지금의 시라크까지 대통령 5명을 거치는 동안 프랑스의 이원집정부제는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났다. 대통령과 총리가 같은 당에서 나올 때와 그 반대의 경우다. 대통령이 속한 정당이 의회 다수당이 될 경우에는 한국의 대통령제와 비슷한 성격을 띤다. 즉, 총리가 대통령 밑에 들어가 수직적 관계가 되는 것이다.

반면 의회 소수당에서 대통령이 나올 경우 그는 다수당이 요구하는 총리를 임명해야 하고, 그 총리가 내각 구성에 전권을 행사하게 된다. 이같은 권력 분점 형태를 프랑스에서는 코아비타시옹(co-habitation), 이른바 동거 정부라고 부른다. 현재 우파 출신 자크 시라크 대통령과 좌파 출신 리오넬 조스팽 총리가 권력을 분점하는 형태가 바로 동거 정부이다.

한국인은 이원집정부제 하면 주로 이 동거 정부를 떠올린다. 이 제도가 대통령제와 순수 내각제의 장점을 결합한 이상적인 권력 분점 형태라고 천거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프랑스식 이원집정부제에 대해 간과해서는 안될 대목이 있다. 우선 대통령과 총리가 같은 당일 경우 프랑스 대통령은 대통령제를 택한 어느 나라 대통령보다 강력한 권력을 행사한다는 점이다. 프랑스 대통령 임기는 7년이나 되고 연임 제한도 없다. 게다가 대통령은 총리 임명권과 의회 해산권, 국민투표 발의권, 국영 기업 및 공공 기관장 임명권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프랑스 하면 대통령이었던 드골이나 미테랑을 떠올리지 총리였던 발라뒤르나 쥐페를 떠올리는 사람은 드물다.

동거 정부일 때는 대통령 권한이 상당 부분 제한된다. 하지만 이때도 대통령은 의회 해산권을 발동해 동거를 중단할 수 있다. 81년 좌파 출신으로 대통령에 당선된 미테랑은 우파가 다수당을 차지한 의회를 해산해 좌파를 다수당으로 만들었고, 88년 재선되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 때문에 5공화국 41년간 실제 동거 정부가 지속된 기간은 86∼88년, 93∼95년, 97년∼현재까지에 불과하다.

프랑스 헌법에는 대통령과 총리 사이의 권한 배분이 뚜렷하게 명시되어 있지 않다. 드골 대통령 시절, 드골이 자신은 주로 외교·국방 같은 ‘큰 정치’를 하고 나머지 내정을 총리에게 맡긴 것이 관행처럼 내려오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대통령과 총리가 권력을 놓고 맞부딪칠 경우 심한 갈등이 생긴다. 실제로 2002년 대선에서 맞붙을 것으로 예상되는 현 시라크 대통령과 조스팽 총리측은 서로 “국제 관계의 주요 사안을 책임지는 것과 동시에 동거 정부의 국내 정책에 대한 경계도 늦추지 않을 것이다”(시라크 대통령), “국가 원수인 시라크는 정부 여당이 통치하는 대로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조스팽 총리)라며 견제구를 던지고 있다. DJ, 9년간 대통령직 유지?

물론 한국식 이원집정부제를 창출할 경우 프랑스와는 다른 형태의 권력 분점이 이루어질 수도 있다. 대통령과 총리가 같은 당 출신이든 아니든 외치·내치의 뚜렷한 영역을 가지도록 명시하는 식이다. 국민회의가 대통령을 의회에서 뽑는 이원집정부제를 검토하는 것도 대통령에게 권한이 쏠릴지 모른다는 자민련의 우려를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국민회의측이 이원집정부제를 적극 검토하는 데는 권력 연장에 대한 나름의 포석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내각제 개헌 후 총리를 자민련에 내주더라도 국민회의 출신 대통령이 가능한 한 많은 권한을 차지할 수 있도록 미리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자는 것이다. 게다가 양당 합당이 성사될 경우 이원집정부제는 국민회의에 더 유리해진다. 프랑스의 경우를 대입하면 총리보다 대통령이 더 많은 권력을 휘두를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 호사가들은 김대통령이 이원집정부제 개헌을 통해 4년간 집권을 연장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한다. 임기 말에 이원집정부제로 개헌하면 이론적으로 9년 대통령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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