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 연결·석탄 지원 등으로 북한 재건 지원
  • 남문희 기자 (bulgot@sisapress.com)
  • 승인 2000.06.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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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철도 연결·석탄 지원 등 통해 북한 재건 추진… 북·미 주도형, 한·일 주도형 ‘각축’
‘한반도판 마셜 플랜’은 과연 펼쳐질 것인가. 펼쳐진다면 한국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 남북한 정상회담을 전후해 국내외 전문가들의 관심은 정상회담 이후 본격화할 북한 경제 재건의 향방에 모아지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경제를 재건한 것이 마셜 플랜이었다. 그렇다면 사회간접자본(SOC) 건설을 주축으로 한 북한 경제 재건 프로그램은 ‘한반도판 마셜 플랜’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이 마셜 플랜을 과연 어떤 세력이 기획하고 주도할 것인지가 앞으로 초미의 관심사이다.

국내외 전문가들의 시선이 이처럼 정상회담 이후 북한 재건의 향방에 모아지고 있는 것은 일단 이번 정상회담을 낙관적으로 보기 때문이다. 특히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갑작스런 중국 방문 이후 정상회담 성과에 대한 기대감이 한층 높아졌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김위원장 방중 이전만 해도 정상끼리 만나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다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그 뒤 뭔가 획기적인 일이 터질 수도 있다는 기대감이 형성되었다”라고 밝혔다. 특히 김위원장이 후진타오 부주석 등과 면담한 자리에서 “정상회담을 계기로 남북 이산가족 상봉과 고향 방문을 적극 추진하겠다”라고 발언한 사실이 전해지면서 분위기는 더욱 고무되었다.

정상회담 직전까지 전개된 남북간 비공개 조율 과정에서 사실상 주요 현안이 타결되면서 이같은 기대감은 현실성을 띠고 다가오기 시작했다. 정상회담이 있기 전 주인 6월10일까지 <시사저널>이 정부 고위 당국자 및 내외 소식통들을 통해 이번 회담에서 합의될 내용들을 미리 취합한 결과는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우선 첫째는 평화선언 채택과 남북 경협공동위 상설화. 이 두 가지 사안은 남북이 서로의 체제를 더 이상 위협하지 않는다는 상징성을 띠고 남북 협력을 제도화한다는 점에서 이번 회담의 핵심에 해당한다. 이런 주요 골격에 월드컵 분산 개최나 문화·체육 교류 활성화 등이 더해질 것이라는 점은 그동안 예고되어 왔다.

이산가족 상봉 인원 대규모 될 듯

그런데 김위원장 방중 직후 그리고 정상회담에 임박한 시점에서 몇 가지 추가 합의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산가족 상봉 및 고향 방문과 경의선 등 남북 철도 연결 사업이다. 정부 고위 당국자, 관계 기관·재계의 고위 소식통, 심지어 도쿄의 한반도 전문가 등 <시사저널>이 접촉한 거의 모든 채널에서 이같은 내용이 공통적으로 확인되었다.

우선 이산가족 문제는 1985년처럼 가족간 상봉과 고향 방문 형태를 띨 가능성이 매우 높다. 주목할 것은 상봉의 규모다. 남북간 비공개 협의 과정에 밝은 한 소식통에 따르면 ‘전체 상봉 숫자가 약 천명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이 천명이라는 숫자가 어디서 나온 것인가를 따져 보려면. 지난해 6월 베이징에서 있었던 남북 차관급 회담을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차관급 회담이 열리기 직전 남북 간에 비밀 접촉이 있었는데, 당시 북측의 전금철 아태위원회 부위원장이 이산가족 문제를 ‘통 크게 할 것’이라고 말한 사실이 알려져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관계 당국에 따르면, 서해 교전만 없었다면 그때 이미 대규모로 이산가족 상봉 및 고향 방문이 이루어질 뻔했다는 것이다. 북측의 ‘시원시원’한 태도에 고무된 우리 정부측은 당시 한달에 50∼100명씩 상봉케 해 연인원 7백∼천명을 상봉시킨다는 계획을 세운 적이 있다. 따라서 이 소식통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당시의 남북간 합의가 부활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물론 정상간 대화에서는 규모나 방식까지 언급하지 않고 적십자회담 등 실무 협상으로 넘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남포항 확장 사업도 포함

이산가족 상봉이 남북간 인도적 문제를 상징하는 이슈라면 경제 협력을 상징하는 이슈가 바로 남북 철도 연결 사업이다.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서울-평양 -신의주 간의 경의선 연결 사업이 합의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사실 경의선 연결 및 복선화는 남과 북이 정상회담에까지 이르게 된 논의의 첫 출발점이자 기폭제 구실을 한 이슈였다. 지난해 말 현대그룹과 북한이 이 문제를 논의한 뒤 그것이 계기가 되어 당국간 접촉 그리고 정상회담으로까지 이어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 정부 내에서도 북한이 과연 현대라는 민간 기업말고 우리 정부와 이를 논의할 의사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장담하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정상회담을 앞두고 이런 분위기가 급반전한 것이다.

지난해 말 북한이 현대에 요구한 사회간접자본 관련 사업에는 경의선 외에도 남포항 확장 사업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 문제도 이번에 사실상 합의 단계라고 한다. 남포항 확장 사업은 남포항을 인천항과 같은 국제 수준으로 확충한다는 것으로, 경의선 연결과 더불어 한반도 서부 지역의 물류 거점 기능 강화라는 측면에서 매우 중대한 의미를 갖는 사업이다. 현재 중국 동북 3성의 물류가 다롄 항으로 몰려 대단히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남포항이 국제항 규모로 확충되면 이 지역의 새로운 물류 거점이 될 가능성이 높고, 인천항을 거쳐 광양항으로 집산되는 해상 물류 시스템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광양항이 일종의 허브 항으로서 태평양으로 나아가는 전진 기지가 되기 위해서도 남포항 확충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대북 전력 지원에 대해서는 남한의 유휴 석탄을 북한에 지원하는 방안이 합의될 가능성이 있다. 그동안 준비되어 왔던 송전선 연결이나 화력 발전소 건설 지원 등은 미국이 자신들의 대북 중유 공급 정책에 차질을 빚는다고 제동을 걸어 일단 유보하고 석탄 지원 쪽에 초점을 맞추었다고 한다. 현재 남한에는 석탄이 정부 재고분 약 7백만t과 민간 재고분 약 3백만t 등 천만t 가량이 창고에 쌓여 있다. 이 중 매년 2백만t씩만 북에 지원해도 전력 생산량을 20% 끌어올릴 수 있다고 한다. 또한 석탄 수송을 위해 동해북부선(강릉-온정리) 연결도 상정되고 있다.

이번 정상회담이 한반도판 마셜 플랜의 출발점이 될지도 모른다고 국내외 전문가들이 기대하는 까닭은 바로 이처럼 철도·항만 등 북한 사회간접자본 사업 논의가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철도나 항만 사업은 통일 한반도의 비전과 관련되어 있고, 북한 경제를 재건하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이다. 우선 경의선으로 대표되는 남북 철도 연결 사업은 한반도가 이제 동북아 물류 거점 지역으로 거듭 태어나리라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남한 기업이나 외국 기업의 대북 투자에 걸림돌인 물류비 문제를 해결할 계기가 마련되는 것이다. 그동안 인천- 남포간 해상 수송비는 컨테이너 당 약 천 달러로 인천-톈진간 2백50∼3백 달러의 3배였다. 앞으로 철도가 연결되면 약 2백 달러 수준, 즉 기존 물류비의 5분의 1 수준으로 뚝 떨어지게 된다.

그동안 북한의 경협 실무자들 역시 이 문제의 심각성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지난해 말께 북한 경제 재건을 위해서는 철도 연결과 인프라 구축이 절대 필요하다는 내부 보고서를 김정일 위원장에게 거듭 올렸다고 한다. 김정일, 신의주를 경제 특구로 지정

북한이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북한 경제 재건 계획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는 조짐은 또 다른 차원에서 확인되고 있다. 지난번 중국 방문 당시 김위원장은 장쩌민 주석 등 중국 지도부에 “중국이 경제 특구를 통해서 경제를 발전시켜온 것처럼 북한도 앞으로 점진적 선택적으로 경제 특구를 지정해 경제 개발을 추진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재계의 고위 소식통에 따르면, 당시 김위원장은 새로운 경제 특구 후보지로 우선 신의주를 지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는 것이다. 신의주는 지난해 10월 김위원장이 현대그룹 정주영 명예회장과의 면담에서 서해공단 후보지로 언급한 이래 주목되었다. 그리고 이번에 김위원장이 직접 중국측에 경제 특구로 지정하겠다고 밝힘으로써 북한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곳으로 떠올랐다. 북측이 경의선 연결 사업에 관심을 보이는 까닭도 신의주를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또한 김위원장의 발언 내용에서 보듯이 북한이 앞으로 신의주 외에도 그동안 거론해온 남포나 원산 등을 ‘점진적·선택적’으로 경제 특구로 지정할 가능성 또한 매우 높아졌다고 할 수 있다. 기존 나진·선봉 경제 특구 지정은 체제 위협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 소극적으로 추진되었지만, 새로운 경제 특구 정책은 자신감을 가지고 적극적·공세적으로 펼쳐질 것이다. 따라서 활발하게 수출 공업단지를 유치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철도 연결부터 시작되는 북한 사회간접자본 사업은 앞으로 전력 등 에너지 분야, 도로·항만·공업단지 조성 등으로 확대될 수도 있다. 이는 마셜 플랜 못지 않은 대규모 역사가 될 것이다.

이미 주변국 사이에는 이 북한판 마셜 플랜의 주도권을 쥐기 위한 물밑 움직임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남북간, 미·중 간의 신경전을 축으로 그리고 일본과 러시아를 변수 요인으로 한 ‘큰 그림’이 이미 그려지고 있다.

우선 당사자인 북한측 구상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국내의 한 대북 사업자는 얼마 전 베이징에서 접촉한 북한 고위급 인사들로부터 충격적인 얘기를 들었다. 김정일 위원장의 중국 방문 뒷이야기인데, 거기에는 북측이 생각하는 구상의 일단이 담겨 있다. 즉 김위원장은 지난번 방중 길에 중국측과 담판할 비장의 카드를 들고 갔다. 그동안의 미·북한 협상 과정에서 미국측은 철도·도로 등 주요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사업권을 미국 기업에 넘겨 달라며 3개 다국적기업의 사업계획서를 북측에 들이밀었다고 한다. 김위원장은 이에 대한 답변을 미룬 채 이번 방북 때 이것을 가지고 중국측과 담판했다. ‘중국이 혈맹으로서 나름의 역할을 하지 않을 경우 북한 사회간접자본 사업권을 미국에 넘길 수밖에 없다’는 내용이었다. 북한이 미국 영향권에 편입되는 것을 우려한 중국으로서는 대규모 지원을 약속할 수밖에 없었고(24쪽 상자기사 참조). 중국은 여기서 더 나아가 북한 사회간접자본 사업에 직접 참여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는 것이다.

이런 배경 설명과 함께 북측 인사들은 “우리는 미·중 대립 구도를 활용해 크게 판을 벌여 사회간접자본 문제를 해결해 갈 것이다. 한국 기업은 주도적 역할을 하기보다는 미국 기업의 하청 업체로 참여하는 수준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가 밝힌 바에 따르면, 현재 미국 내에는 사회간접자본 관련 업체 24개가 컨소시엄을 구성해 북한에 진출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은 주로 북한과의 교섭에서 사업권을 따내고 공사는 한국 기업에 하청을 주어 진행하며, 북한 또는 중국 노동력을 활용할 계획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금은 어디서 조달할 예정일까. 최근 워싱턴 소식통은 일부 월스트리트 금융 자본이 단기 외채 형식으로 움직일 가능성을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 기업들이 노리는 주요 자금원은 바로 일본의 대북 배상금이다. 지난해 말 <시사저널>은 ‘북한과 미국이 과거 1960~1970년대 한국에 설립된 국제금융공사(IFC) 같은 회사를 설립해 일본 배상금 및 국제기구 차관 등의 배분권을 장악하려 할 것이다’라고 보도한 바 있다(<시사저널> 1999년 12월5일자).

한동안 수면 아래로 잠복한 것 같았던 이 계획이 여전히 살아 움직이는 조짐이 있다. 최근 서울을 방문한 일본의 한반도 전문가는 “미국측이 일·북 수교 배상금을 미국 기업에 넘겨 달라고 일본에 압력을 넣고 있다”라고 밝혔다. 즉 얼마 전부터 미국은 일본의 정부개발원조(ODA) 자금 배분이 일본 기업들에 편중되어 있다고 비판하면서 미국 기업의 참여를 보장하라고 압력을 가하고 있는데, 그 첫 케이스로 북·일 수교 자금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남북 공조형 해법 찾는 것이 바람직

최근 일본측은 북한이 대일 수교 협상 과정에서 전례 없이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을 이같은 맥락에서 보기도 한다. 즉 북한은 미사일이나 납치 사건을 해결하지 않고도 미국을 통해 일본의 수교 자금을 끌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미국과 북한이 공조해 일본의 수교 자금을 가지고 북한 사회간접자본 사업을 벌인다는 구도인데, 이처럼 ‘미·북한이 공조하는 마셜 플랜’에서 일본은 자금을 대고 한국 기업은 하청을 맡는 구도가 성립될 수도 있다. 또 프로젝트의 단위가 클 경우에는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식 국제 공조’라는 겉모습을 갖출 수도 있다. 그럴 경우 어디까지나 주도권은 미국이 행사하고, 한국은 매우 부분적인 역할밖에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미·북한 공조 방식의 가장 큰 문제는 미국이 주도권을 행사하고 자국 기업의 이익을 챙기는 것에 비해 돈은 내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당연히 일본은 결과가 뻔히 내다보이는 이런 방식을 피하고 새로운 돌파구를 열고 싶어한다. 그것이 바로 ‘한·일 공조형’ 또는 ‘남북한과 일본의 3각 경협 방식’이다.

최근 김정일 위원장이 비밀리에 중국을 방문하고 남북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아지자 일본측은 적극성을 띠기 시작했다. 김대중 대통령이 김정일 위원장과의 정상회담에서 일본인 납치 문제에 대한 일정한 양보만 끌어내 줄 수 있다면 일본 정부계 은행인 국제협력은행이나 일본정책은행을 통해 한국 기업들에 자금을 지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금 지원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북한에 줄 수교 배상금을 미리 한국 정부에 엔 차관 형식으로 빌려 준 뒤, 이 돈으로 한국 기업이 북한 사회간접자본 공사를 하고, 나중에 북·일 수교 때 상계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이 납치 사건 해결에 전혀 성의를 보이지 않으면 일본 여론을 설득하기 어렵기 때문에 최소한 생사 확인이나 평양 또는 제3국에서의 가족 면담 정도는 허용해야 되는 것 아니냐 하는 입장이다. 최근 서울을 방문한 일본의 한반도 전문가는 “지금 일본이 믿을 수 있는 파트너는 한국뿐이다. 일본이 어느 정도 할 수 있는가는 김대통령의 중재 능력에 달렸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문제가 과연 남북 정상회담 자리에서 제기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인지, 또 김대통령이 이를 제기했을 때 김위원장이 어떻게 반응할지는 미지수다. 다만 북한 사회간접자본 건설을 위해서는 백억∼3백억 달러가 필요하고, 일본의 배상금이나 경제 협력 외에는 목돈을 마련하기 어려운 현실이기 때문에 한·일 협력 구도를 배제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인다.

마지막 제3의 방안은 남과 북이 일본과 미국 그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확고한 남북 공조 체제를 구축해 주변국에 대한 조정 및 중재 역할을 하는 것이다. 두 정상이 서로 확고한 신뢰 관계만 구축할 수 있다면 전혀 불가능한 것도 아니고 오히려 가장 바람직한 해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같은 남북 공조 또는 남북 주도형 해법이 두 정상을 통해 제시될 때 비로소 ‘한반도 문제의 한반도화’라는 1990년대 이래의 민족사적 과제에 한 발짝 다가서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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