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죽이기’ 언제까지 계속될까
  • 金恩男·盧順同 기자 ()
  • 승인 1999.04.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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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양 비디오’ 실명 게재, ‘인권 침해’ 논란…“정체성 잃고 선정 경쟁 과열” 폐간론까지 대두
스포츠 신문은 제왕이다. 적어도 스포츠계와 연예계에서는 그렇다.

스포츠 신문이 제왕다운 권력을 행사한 대표적인 사례 한 가지. 야구 선수 선동렬씨(36)의 일본 진출설이 막 흘러 나오기 시작한 95년 말의 일이다. 한 스포츠 신문 부장이 야구 기자들을 한자리에 불러모았다. 부장이 물었다. “선동렬을 일본으로 보낼 것인가, 말 것인가.” 기자들 사이에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대다수는 보내야 한다는 쪽이었다. 토론을 듣고 난 부장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좋다, 보내자.”

다음날부터 스포츠 신문에는 ‘선동렬, 일본 보내줘’ ‘(해태 구단에) 할 만큼 했다’ 이런 제목을 단 기사가 실리기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선동렬 선수가 몸 담고 있던 해태 구단은 그를 놓아 줄 생각이 손톱만큼도 없었다. 그러나 일본 진출설이 불거진 지 겨우 열흘 만에 구단은 손을 들었다.

물론 선동렬 선수 자신의 뜻이 확고했다. 구단의 반대에 대해 그는 ‘일본 진출에 끝내 좌절할 경우 은퇴도 불사하겠다’고 배수진을 치며 맞섰다. 그러나 그가 이처럼 단호한 자세를 보일 수 있었던 배후에는 스포츠 신문이 있었다. 선동렬 선수와 구단 사이에 공방이 계속되는 동안 스포츠 신문은 ‘선동렬을 일본 프로 야구 한국 대사로 파견하자’‘해태의 선동렬이 아닌 한국의 선동렬’이라며 여론을 ‘선동’했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일본에 진출한 선동렬 선수는 우물안 개구리를 벗어나 ‘나고야의 태양’으로 거듭났다. <스포츠 서울>의 한 기자는 “당시 기자들 거개가 선동렬 선수에게 우호적이었을 뿐 아니라 선수 계약 제도 자체에 반감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여론몰이가 가능했다”라고 회고했다.

그러나 철학자 버크의 말마따나 권력이 크면 클수록 그 남용은 더욱 위험한 법이다. 스포츠 신문은 때로 막강한 권력을 이용해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 이른바 ‘ㅇ양 테이프’ 사건에 대한 최근 보도가 단적인 예이다.

애초에 ㅇ양 사건을 처음 공론화한 것은 스포츠 신문이었다. 지난 2월19일 <스포츠 서울>은 사회면 머리 기사로 ‘미인대회 출신 톱 탤런트 ㅇ양 섹스 비디오…연예계 발칵’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이 기사는 문제의 테이프가 조작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으면서도 ‘이같은 포르노 테이프의 불법 유통은 전체 연예인의 명예 실추는 물론 청소년들에게 심각한 악영향을 미칠 소지가 크다는 점에서’ 대처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이 보도는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일간지·방송 매체가 보도 경쟁에 뛰어들면서 이 사건은 사회 문제로 비화했다. 결국 3월 중순 검찰이 테이프 제작·유출 경위와 유통 경로를 수사하자 스포츠 신문들은 ㅇ양과 상대 남자 ㅎ씨에 대한 인터뷰 기사를 경쟁적으로 실었다.

ㅇ양 비디오 파문 일으켜 ‘가판 매진’ 잇속 챙겨

사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3월18일, 신문 가판대에서는 한 스포츠 신문의 1면 머리 기사가 길 가던 사람들의 눈길을 잡아끌었다. ‘ㅇ양은 ○○○’. 커다란 활자로 인쇄된 제목에는 ㅇ양의 이름 석 자가 보란 듯이 드러나 있었다. 제목 아래에는 ㅇ양 사진까지 실려 있었다. 이 기사는 ‘ㅇ양이라는 익명 때문에 오히려 사회적으로 의혹이 증폭되고 동료 연예인들까지 루머에 시달리고 있는 만큼’ ㅇ양 스스로 ‘더 이상 익명에 머물러 있지 않겠다’는 심경을 밝혔다고 전했다.

ㅇ양 이름이 언론 지면에 처음 등장하자 여론이 들끓었다. ㅇ양이 인터뷰 및 모든 법적인 업무를 위임했다는 기획사(BUK 엔터테인먼트)에는 문의 전화가 쇄도했다. 이 기획사는 보도가 나간 다음날 몇몇 언론사에 ‘더 이상 ㅇ양 실명을 거론하지 말아 달라’는 협조 공문을 팩시밀리로 보냈다.

그러나 이들의 공문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주일 뒤인 3월26일 또 다른 스포츠 신문의 1면 머리 기사에 ㅇ양 이름이 떠올랐다. 제목은 ‘ㅇ양을 잡아라’. 영화사 대여섯 군데가 ㅇ씨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를 만들기 위해 포섭 작전을 펼치고 있다는 것이 기사의 요지였다.

주목할 만한 것은 이들 스포츠 신문이 ㅇ양 이름을 거론한 시점이다. 3월 하순이면 검찰 수사가 종결되고 테이프 사건의 파장이 어느 정도 가라앉기 시작한 때였다. 스포츠 신문이 사회적으로 이미 사망 선고를 받은 ㅇ양을 ‘부관참시’했다는 비판이 대두한 것은 이 때문이다. 어쨌든 ㅇ양 이름을 거론한 신문들은 가판에서 동이 나다시피 했다.

이에 대해 ㅇ양 이름을 처음 거론한 스포츠 신문 편집국장은 “(ㅇ양 이름을) 알 만한 사람은 이미 다 알고 있는 상황이었다”라며, ㅇ양과 언론사 사이에 평소 신뢰 관계가 충분히 쌓여 있었던 만큼 ‘적절한 타이밍’이라고 판단해 이름을 공개했다고 설명했다. 두 번째로 이름을 공개한 스포츠 신문 편집국장은 “기획사로부터 협조 공문을 받은 뒤 한동안 이름을 거론하지 않았다. 그러나 25일께 발행되는 여성지 상당수가 ㅇ양 이름을 거론한 것을 보고 별 문제가 안되겠다고 판단했다”라고 밝혔다.
연예인에게는 여전히 ‘공포의 대상’

그러나 ‘알 만한 사람은 이미 다 알고 있다’는 것이 이름을 공개한 변명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 주동황 교수(광운대·언론학)의 지적이다. ㅇ양이 범법자가 아닌 이상 이는 명백한 인권 유린이라는 것이다. ㅇ양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스포츠 신문 편집국장은 “우리는 상대 언론사보다 더 정확하고 더 많은 정보를 갖고 있다고 자부한다. 그렇지만 당분간 기사화하지 않을 작정이다. 아무리 공인이라도 사생활은 보호받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스포츠 신문이 개인의 인권을 침해한 것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스포츠 신문이 한국 사회에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은 80년대부터 이같은 문제는 있어 왔다. 80년대 중반 스포츠 신문들은 다른 일간지나 방송 매체를 제치고 사이좋게 특종을 했다. 당대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던 가수 ㅈ씨가 비밀리에 결혼식을 올렸다는 특종 기사였다. 그 직전까지 ㅈ씨는 결혼하기로 한 여자 대신 탤런트 ㅇ씨와 동거하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었다.

그런 만큼 ㅈ씨의 갑작스런 결혼은 사람들을 한동안 어리둥절하게 했다. 훗날 ㅈ씨의 입을 통해 밝혀진 비밀 결혼의 진상은 충격적이었다. ㅇ씨와의 동거설을 부인하던 그가 한 여성지 기자에게 밀애 현장을 들킨 것이 불행의 시작이었다. ㅈ씨와 ㅇ씨 두 사람의 인터뷰를 대서 특필한 여성지가 인쇄되는 동안 스포츠 신문 기자들이 이를 눈치챘다. ‘이대로 물을 먹을 수는 없다.’ 의기 투합한 기자들은 ㅈ씨와 약혼녀를 불러냈다. 영문도 모르는 채 이들이 끌려간 곳은 결혼식장이었다.

경쟁에 눈이 먼 기자들이 한 개인의 운명을 결정짓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진 셈이었다. 훗날 ㅈ씨는 그를 취재한 ㅈ기자에게 “노래가 너무 하고 싶어 기자들이 하라는 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라고 털어놓았다. 당시만 해도 스포츠 신문 기자들에게 ‘찍혔다가는’ 가수 생활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연예인의 힘이 미약했다는 것이다.

90년대 들어 상황은 서서히 바뀌었다. 서울방송(SBS) 신설, 케이블 텔레비전 시대 개막 등으로 매체 환경이 다변화하면서 연예인들의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91년 개그맨 주병진씨는 자신과 여성 MC와의 염문설을 보도한 스포츠 신문들을 무더기로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했다. 이 사건은 당시는 ‘작은 혁명’이었다. 그리고 90년대 중반 ‘서태지와 아이들’처럼 자기 주장이 강한 신세대 연예인이 대거 등장하면서 연예인들의 위상은 한층 높아지는 듯했다.

그렇지만 최근 ㅇ양 파문에서 보는 것처럼 언론과 연예인 사이에 본질적인 힘의 구도는 바뀌지 않았다. ‘연예인은 구조적으로 영원한 약자일 수밖에 없다’고 청소년 인기 그룹의 매니지먼트를 맡고 있는 ㄷ씨는 주장한다. 스포츠 신문의 허위 또는 왜곡 보도에 분개하다가도 언젠가는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할 처지임을 감안해 알아서 처신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연예계에서 스포츠 신문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인기 탤런트 ㅇ씨의 매니저 ㅂ씨는 “과장해서 표현하자면 스포츠 신문과 다른 매체에 대한 홍보 비중은 99 대 1에 가깝다”라고 말했다. 스포츠 신문이 마음 먹기에 따라 하루아침에 스타가 탄생할 수도, 정상급 스타가 추락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갓 데뷔한 연예인들이 기자에게 90°로 인사하는 것은 흔히 보는 풍경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스포츠 신문 기자가 한밤중에 ‘배가 좀 출출하다’고 전화를 걸면 30분 안에 연예인이 달려오곤 했다는 것이 어느 중견 기자의 회고이다. 정상에 오른 연예인도 여기서 예외가 아니다. 이른바 ‘톱스타’ 반열에 드는 탤런트 ㅊ씨가 어느 날 약속 시간에 15분 늦었다. 이 날 만나기로 했던 스포츠 신문 기자가 ㅊ씨 매니저에게 던진 말. “○○이(ㅊ씨 이름) 많이 컸다, 한번 박살내 줄까.” ㅊ씨와 매니저가 혼비백산했음은 물론이다.

문제는 스포츠 신문의 ‘위력’은 인정하되 ‘기사’는 인정하지 않는 풍토가 스포츠계나 연예계 전반에 팽배하다는 사실이다. 인기 그룹 매니저 ㅈ씨는 “순진한 독자라면 모를까, 이 바닥에서 스포츠 신문 기사를 액면 그대로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라고 잘라 말했다. 여기에는 ‘돈이면 기사를 살 수 있다’는 사고가 일정 부분 깔려 있다.

그러나 이는 부차적인 문제일 수도 있다. 스포츠 신문 기자들은 스스로에 대해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인생’이라는 표현을 쓴다. 그만큼 스포츠 신문은 전체 수익에서 가판 판매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신문사마다 다르지만 가판 대 가정 배달 비율을 대략 6 대 4 내지 7 대 3으로 본다). 가판을 결정짓는 것은 ‘얼굴 화장’이다. 곧 1면을 어떻게 치장하느냐에 따라 하루벌이가 왔다갔다 한다.

따라서 스포츠 신문들의 가판 경쟁은 단순히 자존심이 아니라 생존을 건 싸움이다. 이런 구조적인 문제에서 무리수가 발생한다. 우스개로 ‘날씨가 추워지면 연예인들만 죽어난다’는 말이 있다. 프로 야구 시즌이 끝나면 연예인 추문 기사로 1면을 장식하는 스포츠 신문의 관행을 꼬집는 말이다. 기자가 특정 연예인의 전화 사서함을 도청해 프라이버시를 침해하고도 그 내용을 ‘삐삐 사랑’이라고 대서 특필하거나, 특정인 결혼 발표 기사를 낸 바로 그 다음날 신부 이름을 정정 보도하는 촌극이 벌어지는 것도 주로 이즈음이다.

그런데 최근 <스포츠 투데이> 창간을 계기로 스포츠 신문 간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면서 이들 ‘비 시즌용 기사’가 양해할 만한 ‘기준선’을 넘어서고 있다는 것이 연예계 종사자들의 지적이다. ㅇ양 실명 보도는 드러난 사례에 불과하다. 탤런트 ㅇ씨의 매니저 ㄷ씨는 “<스포츠 투데이> 창간을 한 달쯤 앞둔 시점부터 매니저 대부분이 얼이 빠진 상태였다”라고 말했다. 스포츠 신문 여기저기서 터지는 추문 기사를 수습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스포츠 신문에 ‘점잔을 떨라’고 요구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황색 언론은 나름으로 존재 가치가 있다. 일부 언론학자가 주장한 대로 ‘신문에 나타난 선정성은 우리 자신의 본성을 반영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사저널>에 ‘스포츠 칼럼’을 연재한 강석진 교수(서울대·수학)의 지적에 따르면, 한국 스포츠 신문이 지닌 제일 큰 문제점은 스포츠 전문지도 아니고 황색지도 아닌 어중간한 영역을 넘나든다는 사실이다. 축구광인 그는 그래서 스포츠 신문 정기 구독을 끊었다.

스포츠 전문지도 아니면서 황색지도 아닌…

지난해 한 프로 야구 구단은 국내 프로 야구를 침체시킨 주범 가운데 하나로 스포츠 신문을 꼽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국내 프로 야구가 대기록을 수립한 날에도 스포츠 신문이 시시콜콜한 ‘박찬호’ 기사를 1면 머리 기사로 내걸곤 했다는 것이다. 덕분에 독자들은 국내 야구 기록 대신 박찬호 선수의 새 유니폼 디자인, 애완견 이름, 저택 방 갯수 따위를 1면 기사를 통해 알게 되었다.

스포츠 신문들은 그것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강변한다. 박찬호·박세리 선수가 1면에 등장하면 가판 판매 부수가 평소보다 두 배 이상 뛰어오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스포츠 신문이 상업성을 위해 ‘전문지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스포츠 이벤트의 경중을 왜곡했다’는 강석진 교수의 비판은 타당한 셈이다.

김창남 교수(성공회대·신방과)는 더 근본적인 문제로, 황색 언론이 이른바 ‘권위지’라는 정론지의 자매지 형태로 있는 한국 언론의 기형적 구조를 꼽는다. 김교수에 따르면, 미국은 타블로이드 황색 신문의 발행 부수가 수백만 부에 이르지만 사회적인 영향력이 없다. 모두가 ‘심심풀이 땅콩’ 정도로 여기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은 스포츠 신문이 권위지의 자매지 형태로 존재하는 바람에 하잘것 없는 황색 언론으로 치부하기도 어렵다는 것이 김교수의 비판이다.

이번 ㅇ양 이름 거론도 전형적인 황색 언론이 저지른 보도였다면 큰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이도저도 아닌 위치에서 ‘권위’와 ‘현금’을 동시에 챙기려 드는 언론이 위험 수위를 넘어서고 있다는 인식이 급속도로 퍼져 가는 현실이다. 시민단체 일각에서는 최근 ‘스포츠 신문 폐간론’이 대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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