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홍구, 인맥 조성 안했어도 추종자 수두룩
  • 문정우편집장 (mjw21@sisapress.com)
  • 승인 1997.03.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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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구맨’ 정·관계에 포진, 출진 준비 완료…학계·종교계 인간 관계는 약한 편
유복한 가정에서 자란 전형적인 서울 토박이. 경기고를 나와 서울 법대에 다니던 스무 살 때 미국으로 건너가 15년간 유학하고, 귀국한 뒤 20년간 서울대학 정치학과에서 교수 생활, 6공과 김영삼 정부에서 8년간 외교관·통일원장관·총리를 거쳐 여당 당 대표 자리에까지 오름. 축약한 신한국당 이홍구씨의 이력서다. 그의 인맥은 이같은 이력을 쌓으면서 폭넓게 형성되어 왔다.

그의 사적 인맥의 주류는 물론 경기고(49회)와 서울 법대(11회) 선·후배, 동료 들이다. 그의 경기고 동문으로는 신한국당 이회창 고문을 비롯해 이세중 전 대한변협 회장, 정인용 전 경제부총리, 배 도 효성그룹 고문, 한만청 전 서울대병원장 등이 있다. ‘청하회’라는 모임을 갖고 있는 그들은 이씨의 평생 친구들이다. 그밖에 서울 법대 동기인 권오기 통일부총리, 정종택 환경부장관, 동 훈 전 통일원 차관, 그리고 정치학과 교수 시절 인연을 맺은 한승주·최상룡 고려대 교수, 안병준·김달중 연세대 교수와도 가깝다.

“이홍구의 인간성과 능력에 매료”

얼마전 김현철씨와의 관계 때문에 물러난 김기섭 전 안기부 운영차장, 전성철 신한국당 대표 특별보좌역 등은 그가 서울대 정치학과에 부임해 처음 배출한 제자(69학번)들로, 그의 든든한 후원 그룹이다. 특히 김기섭씨는 90년 그가 노태우 대통령 특보로 있던 시절 김영삼 대통령과 두터운 인연을 맺을 수 있도록 중간 다리를 놓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철씨와 김씨의 관계 때문에 이씨가 신한국당 대표로 발탁되었을 때 정가에서는 현철씨가 이씨를 밀고 있지 않느냐는 얘기가 많이 나왔다.

하지만 오랜 학계 생활과 공직 경력에 비해 그의 사적인 인맥은 그리 두텁지 못한 편이다. 경기고나 서울 법대 동문들과의 인간 관계도 대부분 그가 해외 유학에서 돌아온 뒤 시작되어 끈끈한 맛이 덜하다. 무엇보다도 미국과 영국에서 오래 지낸 사람답게 그의 인맥 관리 방식은 한국적인 것과는 거리가 있다. 그의 인간 관계는 사보다는 공이 앞서고, 따라서 매우 담백한 편이다.

선후배 관계가 다른 어느 조직 못지 않게 끈적끈적한 대학 사회에서 20년 간이나 교수 생활을 했지만 그는 학계에 이홍구 사단이라고 부를 만한 제자나 후배군을 거느리고 있지 않다. 특별히 아끼거나 끌어준 인물이 없었다는 얘기이다. 대권 후보 치고 ‘신자’ 아닌 사람이 없지만 그는 믿는 종교가 없다. 대통령 선거 때마다 직·간접으로 큰 영향을 미쳐온 종교계와 그는 이렇다 할 인연을 맺고 있지 않다.

그의 공직 생활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는 6공과 김영삼 정부에서 요직을 두루 거쳤지만 자기 사람을 끌고 다니거나 요직에 박아두려는 노력을 거의 하지 않았다. 그는 여권에서 유력한 대통령 후보감의 한 사람으로 떠오른 요즘에도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 외에는 개인 사무실 한 곳 열어놓지 않을 정도로 사조직 관리에 무심한 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사람 끌어모으는 능력을 과소 평가해서는 안된다. 정·관계에는 때가 되면 그에게 달려와 힘을 보탤 준비가 되어 있는 이홍구맨이 상당수 포진해 있다. 그들은 사사로운 인연 때문이 아니라 그의 사람 됨됨이와 일하는 능력에 매료된 사람들이다. 이씨가 자기 사람을 심거나 끌어올리기 위해 무리한 인사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가 거쳐간 정부 부처에서는 뒷말이 나온 적이 별로 없다. 그 때문에 관료 사회에서 그에 대한 평판이 좋고, 따르는 사람도 많은 편이다. 특히 ‘한민족 공동체 통일 방안’이라는, 정부 최초의 정리된 통일 정책을 입안했던 통일원장관과 외교관 시절 그와 인연을 맺은 관료 중에는 주저없이 그를 최고의 장관이나 대사로 꼽는 사람이 많다.

미국 예일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외교관 생활을 한 덕에 외국의 유력 인사들과 교분이 깊다는 것도 그의 큰 재산이다. 대처 전 영국 총리, 만델라 남아공 대통령, 메넴 아르헨티나 대통령 같은 이들이 모두 그의 ‘동문’이거나 지우이다. 그의 인간 관계는 정을 중시하는 한국 정치 현실에 비춰보면 허술하지만 개방적이고 국제적이라는 강점이 있다. 또 여권 주자들 사이에 합종연횡이 이루어질 경우 조직은 갖추었지만 출마할 여건이 되지 않는 주자들이 협상을 제의할 여지가 많다는 것도 이점이라면 이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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