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홍구냐 이수성이냐
  • 崔 進 기자 ()
  • 승인 1997.03.20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태조 이성계 일족 주변의 권력 암투를 다룬 방송 드라마 <용의 눈물>이 요즘 화제다. 지금 여권에서도 대권을 놓고‘이씨들 간의 전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이홍구 이회창 이수성 이한동 이인제. 이 가운데 특히 눈길을 끄는 사람은 최근 자리를 옮겨 앉은 이홍구·이수성 고문이다. 이홍구 고문은 대표 자리를 내놓자마자 대권 도전을 선언했고, 이수성 고문은 총리 직에서 물러나자마자 YS의 특명을 받고 신한국당에 들어갔다.

두 이고문에게 더욱 시선이 쏠리는 이유는, 이들이 한보 사태 이후 입지가 좁아질 대로 좁아진 민주계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민주계 의원들 사이에서‘이홍구냐 이수성이냐’를 놓고 갑론을박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당내 다른 예비 주자들은 이홍구 고문의 대권 선언과 이수성 고문의 당 진입을 매우 심상치 않은 조짐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 뒤에는 필시 ‘김심’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민주계와 운명을 함께할 수밖에 없는 두 사람의 자리 이동은 곧 김대통령이 후계 구도 만들기에 착수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 아니냐는 의구심이다.

누구에게나 ‘만나면 좋은 친구’ 이홍구

이홍구와 이수성. 두 사람의 관계는 66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이수성 고문이 27세 젊은 나이로 서울대 총장 비서실장을 맡고 있을 때 일이다. 그는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만학도로 귀국한 5년 선배 이홍구에게 “총장실에 자주 드나들면 좋은 일이 생길 것이다”라고 귀띔했다. 이홍구는 후배의 조언을 실천에 옮긴 덕분인지 곧 교수로 발탁되었다고 한다. 이수성씨의 처세술과 두 사람의 오랜 인연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화다.

그로부터 31년이 지난 지금 두 사람은 미묘한 관계, 나아가 한판 승부를 벌일지도 모르는 관계가 되었다. 김대통령의 지원을 받기 위해, 민주계의 대안이 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할 판이다. 그래서인지 요즘 여권에서는 두 사람의 장단점과 효용성을 열심히 저울질해 보는 사람이 많다 .

우선 이들의 주특기가 친화력이라는 사실은 정가에서 익히 알려진 터다. 아무런 인적·물적 기반이 없는 이홍구 고문이 관리형 대표를 맡은 지 겨우 3,4개월 만에 대권형 대표로 떠올랐던 배경도 친화력에 있다. 딱딱한 정치판에서 소탈하고 상대를 편안하게 하는 이홍구씨는 김대통령과 민주계 의원들에게 금방 호감을 샀다. 그는 누구에게나‘만나면 좋은 친구’였다.

이런 이고문의 친화력이 상대방에게 거부감을 주지 않는‘방어형’이라면 이수성 고문의 친화력은 상대방을 강하게 빨아들이는‘공격형’이다. 2월24일 총리 이임사를 마치고 본회의장을 빠져나올 때다. 이고문은 정동영 국민회의 대변인에게 다가가 대뜸 허리춤을 잡아당기더니 “이제 나 괴롭히지 마!”라고 말하며 껄껄 웃었다. 정대변인이나 동료 의원들은 순간 당황했지만 그러는 이고문이 밉지 않았다고 한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인사할 때는 손을 들고 꼭 한마디씩 인사말을 건네거나 어깨를 툭 치며 친밀감을 표시하는 적극적인 인사법은 그에게 습관처럼 배어 있다.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수위와 엘리베이터 안내원에서 근처 식당 아주머니에 이르기까지 이수성 고문과 친하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다.이수성, 친화력에 장악력도 겸비

그의 또 다른 특기는 이름 암기와 주례 서기다. 하급 직원들의 이름과 나이를 낱낱이 외우고 있다거나, 단골 음식점 주인 딸의 신상까지 훤히 꿰고 있다는 것은 총리실 주변에서 화젯거리가 아니었다. 그는 주례를 잘 서기로도 유명하다. 서울대 교수 시절 ‘주례 없으면 이수성 교수에게 가라’는 말이 나돌 정도였고, 총리 시절 군부대를 시찰할 때마다 빼놓지 않았던 말도 제대 뒤에 주례를 구하지 못하거든 자기에게 오라는 것이었다. 그는 총리 직에서 물러나기 하루 전날에도 총리 공관의 한 하급 기술직 직원의 주례를 섰다. 말하자면 이홍구 고문이 사람들을 담백하게 만나는 데 비해, 이수성 고문은 만나는 사람마다 확실한 자기 표로 만드는 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

이수성 고문의 정치력이 유감 없이 진가를 발휘했던 것은 95년 3월에 실시된 서울대 직선 총장 선거 때였다. 쟁쟁한 경쟁자 5명이 뛰어든 이 선거에서 이수성씨는 특유의 친화력과 정치력을 총동원해 합종연횡을 이끌어내면서 초반 열세를 뒤엎고 큰 표차로 당선되었다. 그때 선거를 지켜본 한 서울대 관계자는“말로만 듣던 이수성의 정치력이 유감없이 발휘된 한판이었다. 웬만한 중진 정치인 뺨치더라”고 회상했다.

사실 잘 나가던 이홍구 고문이 중도에서 날개가 꺾인 것은 이런 정치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특히 노동법 정국 때 그는 당 안팎에서 야당에 밀리고 민주노총에 휘둘리고 청와대에 끌려다닌다는 비판을 강하게 받았다. 이때부터 민주계 내부에서는 사람은 좋은데 난국을 헤쳐 나가기에는 역부족이 아니냐는‘이홍구 폐기론’이 쏟아져 나왔다. 일각에서는 이를‘경쟁 세력의 이홍구 끌어내리기’라고 의혹을 제기했지만, 강한 지도력을 보여주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반면 이수성 고문은 정치력뿐만 아니라 장악력 면에서도 우세했다. 노동법 정국 때 삼청동 총리 공관에서 연일 비상대책회의가 열릴 무렵이다. 청와대·신한국당·안기부 고위 관리들이 장시간 입씨름을 벌이자 이총리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맡겨달라. 모든 책임은 내가 지겠다”라며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리고 며칠 후에 정부안을 들고 왔다. 매사에 이런 식이다. 그는 국회 대정부 질의 때도 야당의 질문 공세에 “모든 책임은 내각이 지겠다”라고 10여 차례나 대답했다.

이수성 고문은 책임을 떠맡는 만큼 의무도 철저히 따지는 편이다. 총리 시절 이고문은 일사불란한 지휘 체계를 유달리 강조했다. 총리실을 거치지 않고 윗선에 보고했다가는 당장 불호령이 떨어지기 일쑤였다. 민주계 의원들은 이고문의 이런 스타일을 장점으로 보면서도 한편으로는 일말의 불안감을 가지고 있다. 정권을 잡으면 장악력이 지배력으로 변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다. 민주계 의원들이 이수성 고문에게 후한 점수를 주면서도 반신반의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오히려 이홍구 고문이 안심할 수 있는 상대다.

두 사람은 그동안 유력한 대선 예비 주자이면서도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줄기차게 ‘무욕론’을 펴왔다. 이홍구 고문은 이번에 대권 도전을 선언함으로써‘유욕론’을 확실하게 나타낸 셈이다. 반면 이수성 고문은 여전히 대권에 나설 생각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가 오래 전부터 나름의 대망을 키워 왔다는 사실은 그동안의 행적이나 주위 사람들의 입을 통해 충분히 입증된다.

이수성 “출마하면 된다. 그러나 출마 안한다”

92년 국민당이 막 창당되던 때였다. 창당에 깊이 관여하고 있던 김동길씨는 정주영씨에게 괜찮은 ‘국민 후보’가 있다면서 이수성씨를 추천했다. 사전에 김동길씨와 교감을 나누었던 이씨는 속마음을 알아보기 위해 정주영씨를 만났다. 그러나 웬일인지 정씨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나중에 다시 연락하겠다고 말하고 자리를 떴다. 그리고 며칠 뒤 정씨는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그때 만약 정씨가 이씨에게 국민 후보를 제의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당시 상황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정씨를 만나러 갔다는 사실 자체가 대선에 출마할 뜻이 있었다는 반증이 아니겠느냐”라고 말했다.

이수성 고문이 했던 말을 곱씹어 보면 그의 속내에 좀더 가까이 접근할 수 있다. 지난해 10월께 사석에서 했다는 얘기다. “내가 나가면 된다. 그러나 안 나간다. 왜냐하면 능력이 없으니까.” 또 연초 총리 공관으로 세배하러 갔던 사람이 정말 대권에 생각이 없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주위의 모든 사람이 나를 추대한다면 출마할 수도 있지. 그렇지만 그게 가능하겠어? 그러니까 안 나가.” 이런 식이다. 이 때문에 그를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이들은 그가 총리 신분으로 청소부에게 지나치게 고개를 숙이거나 불우 이웃 시설을 자주 방문했던 것조차 정치적 계산을 담은 행동으로 보려 한다. 말로는 인맥 정치를 타파해야 한다고 하면서 자신의 측근을 문체부장관으로 내보낸 것도 비판의 도마에 오르내리고 있다.

이홍구와 이수성. 이제 두 사람은 한판 승부를 벌일 수밖에 없다. 이홍구 고문의 대권 전략은 간단하다. 자신의 장점을 최대한 부각하면서 대세가 자신에게 오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그의 한 측근은 “이홍구 고문을 만만하게 보는데 바로 그 점이 매력 포인트다. 대통령은 이 사람 저 사람 물색하다가 결국은 무난한 이홍구 고문을 다시 찾게 될 것이다”라고 말한다. 대통령이 자기를 다시 찾을 때를 대비해서 이홍구 고문은 당내 기반이 좋은 민주계 중진들을 끌어들이는 데 주력할 참이다. 이홍구 고문측은 당내 기반이 탄탄한 최형우 고문이나 김덕룡 의원과 연대한다면‘환상의 콤비’가 될 것으로 내심 기대하고 있다.

사실 민주계 처지에서 볼 때 이수성 고문은 많은 장점 못지 않게 몇 가지 결정적인 단점을 가지고 있다. 우선 TK 출신이라는 배경은 여권의 취약지를 공략할 수 있는 장점인 동시에, 특정 지역에 한정되어 있다는 단점이기도 하다. 영남 주자 배제론이 여권 내에서조차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판에 TK 출신인 그를 대권 주자로 내세우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정치적인 비중도 다소 문제다.이홍구 후보·이수성 선대위의장이 최선?

서울대 총장에 국무총리 정도의 경력으로 정부 고위직을 두루 거친 이홍구·이회창 고문이나 백전 노장인 박찬종 고문과 한판 승부를 겨루기에는 아무래도 버겁다는 것이 정가의 중론이다. 또 이수성 고문이 여러 분야에 아무리 인맥이 탄탄하다고 하지만, 3월에야 당에 뛰어든 상태에서 당내 경쟁자들을 물리치기에는 시간이 너무 촉박한 것도 사실이다. 물론 김대통령이 내놓고 그를 지원한다면 상황이 달라지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이 현재 여권의 현실이다.

결국 이수성 고문이 현시점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은 많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그의 한 측근은 “이수성 고문을 두고 서울고 인맥이다 TK다 하는데 웃기는 소리다. 전국 방방곡곡에 웬만한 사회 지도층 인사 치고 이수성 고문과 선이 닿지 않은 사람이 없다고 보면 된다”라고 말한다. 정가에는 김원기 전 의원이 이끄는 국민통합추진위와의 연대설도 나돈다. 이고문과 김씨가 군 입대 시절부터 알고 지낸 30년 지기인데다 이고문의 동생 이수인 의원이 통추위 멤버라는 점에서 나온 관측이다.

민주계가 이홍구·이수성 고문 가운데 한 사람을 선택해야 한다면 머리가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이홍구 고문을 선택하자니 지도력 문제가 걸리고, 이수성 고문을 선택하자니 지역성과 색깔 문제가 걸린다. 두 사람을 한꺼번에 취하고 싶은 것이 민주계의 심정이다. 그 연장선에서 나온 것이‘이홍구-이수성 역할 분담론’이다. 두 사람이 김심의 우산 밑에 하나로 뭉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민주계 일각에서는 이홍구가 대권을, 최형우가 당권을 잡고 이수성이 선대위의장을 맡아 대구·경북을 공략하면 예선은 물론 본선도 거뜬할 것이라는 얘기가 나돌기도 한다. 당내 기반이 탄탄한 민주계가 아무런 기반이 없는 이홍구·이수성 쌍두마차를 앞세워 정권을 재창출한 뒤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시나리오가 그것이다.

이홍구 대표는 신체를 접촉하지 않고 서로 갈라져 싸우는 배구 선수 출신이다. 이수성 고문은 1 대 1로 맞잡고 싸우는 유도 선수 출신이다. 공통점도 많지만 차이점 또한 많은 두 이씨. 두 사람이 끝까지 대결 구도로 갈지, 언젠가 하나가 될지는 거의 전적으로 김대통령의 의중에 달려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