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수사 어떻게 되나
  • 李政勳 기자 ()
  • 승인 1997.02.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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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비자금 사건 수사 때 단서 확보했을 수도
한보철강 사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왜 금융권이 5조원이라는 거액을 한보에 제공했을까’라는 의문을 화두(話頭)처럼 품어야 한다. 이 의문에 대한 상식적인 답변은 정계·관계·금융계에 두루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최고 실력자(A)가 금융권을 장악한 실력자(B)에게 지시하고, 금융권 실력자가 다시 시중 은행장에게 지시함으로써 5조원 부실 대출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때문에 A와 B가 누구인지를 밝히는 것이 검찰 수사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노태우씨 비자금 사태에서 보았듯, A로 거론될 수 있는 사람은 현직 대통령이나 그 측근이다. 김영삼 대통령은 이를 의식한 듯 한·일 정상회담차 방문한 일본 벳푸에서 “취임 후 그 어떤 개인과 기업으로부터 단 1전도 받지 않겠다고 한 약속을 지켜 왔으며, 남은 임기 동안도 이를 지키겠다”라고 못박았다. A를 찾는 세간의 시선은 대통령의 차남인 현철씨를 향하고 있다. 그러나 현철씨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사건만 생기면 증권가 루머를 갖고 나를 걸고 넘어지는데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라고 말했다.

시중 은행장 “한 곳에서 강력한 대출 요청 거듭”

노씨 비자금 사건에서 B로 지목된 사람은 전 은행감독원장 이원조씨였다. 그러나 한보철강 사태에서는 세론 자체가 B를 특정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A가 B를 거치지 않을 수도 있다. 이에 대해 이름을 밝히지 말라고 요구한 한 시중 은행장은 <경향신문>과 인터뷰하면서 “한 곳에서 강력한 대출 요청이 거듭됐다”라고 밝혀, B가 누구인지 알고 있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그러나 이 주장은 책임을 떠넘기기 위한 시중 은행장의 마타도어일 수도 있어 냉정히 검증할 필요가 있다. 또 한 시중 은행장은 “산업은행이 시설자금 8천억원 지원을 결정했기 때문에 한보에 대출했다”라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는 검찰이 수서 사건을 비롯한 과거 사건 수사에서 확보한 단서를 근거로 한보철강 사건을 수사하리라고 본다. 특히 노태우씨 비자금을 수사하고 정태수 회장을 기소했던 문영호 대검 중수 1과장과 김진태 대검연구관이 가장 많은 단서를 확보하고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산업은행의 시설자금 부정 대출 비리를 추적했던 김성호 서울지검 특수2부장 역시 적지 않은 단서를 갖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보철강 사건의 두 번째 핵심은, 한보가 당진제철소를 건립하는 과정에서 로비를 했느냐 하는 점이다. 이 부분에 대한 수사는, 로비를 했다면 그 대상이 누구인지를 밝혀내는 데 초점이 모아질 것이다. 정책 결정 과정에는 재경원·통산부·청와대 경제수석실 등 행정 각부와 충남 당진군 지역 국회의원과 제철업 관련 위원회 소속 국회의원들이 개입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정책 결정에 관한 부분은 금융 대출 쪽보다 구조가 간단해 수사 속도도 빠르고 금융 쪽보다 많은 사람이 기소될 것으로 보인다. 91년 수서 사건 때 검찰은 이 부분에 대한 수사에서 민자당 이태섭 의원과 평민당 이원배 의원 등 9명의 혐의를 밝혀낸 바 있다.

“야권, 위험 차단 위해 최고 지도자 끌어들여”

검찰의 수사 방향이 이렇게 예상됨에 따라 혐의 관련자들의 ‘냄새’ 지우기도 활발히 진행될 전망이다. 대선을 앞둔 여야 정당은 이 사건의 불똥이 행여 자기네 정당으로 튀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한 정치 평론가는 “이러한 위험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야권에서는 이 사건을 의도적으로 최고 지도자가 관여된 것으로 키우고 있다”라고 말했다. 여당 또한 세간의 의혹을 의식해서인지 야당의 국정조사권 발동 제의에 의외로 쉽게 응했다. 정치권의 이런 움직임은 검찰에 큰 부담이 될 전망이다.

수서 사건 수사 때 검찰은 ‘A’로 청와대 장병조 비서관을 지목해 비난을 샀다. 이러한 축소 수사는 노태우 비자금 사건에서 그 진실이 드러남으로써 권력에 약한 검찰의 자화상으로 지금까지 남아 있다. 살 길을 찾기 위해 제각기 약진하는 정치권, 냄새를 지우려고 은밀히 움직이는 금융계 전문가들과의 머리 싸움에서 검찰이 이길 수 있을 것인가. 만약 수서 사건 때처럼 적당히 얼버무린다면 비난은 검찰로 쏠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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