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한보 태풍’ 4대 시나리오
  • 徐明淑·吳民秀 기자 ()
  • 승인 1997.02.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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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차남에서 민주계 대권 주자까지 ‘구설’… DJ 오른팔도 거론돼
‘한보 태풍’이 정치권을 향해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다. 이 태풍의 최대 풍속과 최종 진로를 짐작하기는 쉽지 않다.

정치권의 풍향에 민감한 관측통들의 예측도 제각각이다. 올 대통령 선거 지형을 바꿔놓을 만큼 초대형 태풍이라는 관측도 있고, 작은 나무 몇 그루만 뒤흔들고는 맥없이 소멸하고 말리라는 관측도 있다. 여권에만 큰 피해를 남기고 가리라는 관측이 있는가 하면, 여야 전반에 걸쳐 희생자가 생길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한보 태풍 4대 시나리오

일단 그 예고편이 심상치 않은 것만은 분명하다. 본격 태풍이 몰아닥치기 전에는 늘 폭우를 동반한 바람이 불듯이, 정치권에는 ‘한보를 도와준 정치 세력’을 둘러싸고 갖가지 설이 증폭되고 있다.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는 지난번 영수회담 직후에 김영삼 대통령에게 보였던 호의적인 태도를 단숨에 거두어들이고, 한보 문제에 대한 김대통령의 책임 문제까지 거론하고 나섰다.

경제 영역에서 시작된 한보 태풍이 이렇듯 정치권에까지 상륙한 이유는 간단하다. 5조원 가까운 은행빚을 끌어쓰고 대한민국 최대의 빚잔치를 하기에 이르른 한보의 성장과 흥망사야말로, 막강한 정치 권력의 막후 지원이라는 변수를 빼놓고 경제 논리만으로는 설명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야권만 아니라 여권의 일부 인사들도 상식 밖의 한보 사태에 경제외적 변수가 작용했을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는다. 여권의 한 중진 의원은 “대단히 불길하고 냄새가 진하게 나는 사건이다. 엄청난 실세가 동원되지 않고서는 은행측이 이렇게 천문학적인 돈을 내주었을 리 만무하다”라고 말했다.

한보를 도와준 정치 세력과 관련한 소문은 크게 네 갈래. 가장 압도적인 설이‘젊은 부통령’ 김현철씨 관련설이다(21쪽 상자 기사 참조). 김대중 총재가 김대통령을 향해 직격탄을 날린 배경이 여기에 있다는 해석도 있다.

두 번째가 ‘2+2’설로서, 이는 청와대의 두 실세인 이원종 정무수석과 이석채 경제수석, 신한국당의 두 민주계 실세인 최형우 고문과 서석재 의원이 전방위로 도와주었다는 것이다. 청와대 정무수석실은 이런 소문에는 일일이 대응할 가치도 없다는 반응이다. 이원종 수석은 강경 일변도의 참모 스타일로 말미암아 비판받는 YS 측근이기는 하지만, 그동안 주변 청탁이나 로비에 매몰차다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이권 문제에는 비교적 깨끗하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그래서 여권에서는 아무런 근거도 없는 소문이라고 치부한다. 그러나 채권은행단에 속한 한 은행장은 한 일간지 기자와 인터뷰하면서‘대출을 망설일 때 도와주라며 은근히 압력을 행사한 인물’로 두 수석 가운데 한 사람의 이름을 실명으로 거론했다.

세 번째는 이른바‘민주계 대권 주자 관련설’이다. 이 설은 한 야당 의원이 신한국당 9룡 중 두세 사람이 한보와 관련되어 있다고 주장한 직후부터, 최형우·김덕룡 두 사람으로 구체화해서 급속하게 번졌다. 최형우 고문과 관련해서는 한보그룹 정태수 총회장과 친분이 두터웠다는 이야기가, 김덕룡 의원과 관련해서는 재경위 소속으로 비교적 활발한 의정 활동을 했는데도 유독 한보 문제에는 관심이 없었다는 이야기가 그럴듯한 근거로 곁들여졌다.

그러나 당사자들은 격렬하고도 분명한 어조로 관련설을 부인하고 있다. 김덕룡 전 정무장관은 관련설에 대해‘택도 없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김장관측은 김의원이야말로 재경위에서 한보 문제와 관련해 가장 독하게 질의 공세를 펼친 의원 중 한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김의원의 한 측근은 “장담컨대 김의원은 전적으로 무관하다. 머지 않아 모든 진실이 다 밝혀질 것이다”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최고문측의 반응도 격렬하기는 마찬가지였다. 1월27일 오전 서교동 개인 사무실에서 기자와 만난 최고문은 “한마디로 개똥 같은 소리, 말똥 같은 소리다. 그 사람들(야당을 지칭하는 듯)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정치인의 기본이 안되어 있다”라고 맹렬하게 반박했다. 정태수 총회장과의 친분에 대해서도 “정태수가 누구인지 정치권에서 모르는 사람이 있는가. 내가 아는 것도 단순히 그 정도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정계·증권가 떠도는 ‘정태수 리스트’

그러나 김대통령이 귀국한 이후 여권에서는 차남과 대권 주자급이 아닌 그 아래 선에서 희생자가 나오리라는 관측이 높아지고 있다. 김대통령 귀국 직후 정치권에는 김대통령이 한보의 배후로 거론된 현철씨와 청와대 인사, 민주계 중진을 개별 심문해서‘한보와 정말 관련 없다’는 확실한 대답을 끌어냈고, 일단 친인척과 핵심 측근이 아니라는 데에 자신을 얻자 성역 없는 철저한 수사를 검찰에 지시했다는 이야기가 나돌고 있다.

그렇다면 여권 내부에서 희생자가 나올 가능성도 크다. 강삼재 사무총장은 27일 기자와 가진 인터뷰에서 “일단 검찰 수사가 진행되면 그 파장은 상당히 클 것이다. 알고도 손을 안 대기에는 우리가 받을 상처가 너무나 크다”라고 말해 그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했다. 이와 관련해 정치권에서는 한보가 급성장하던 시절에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낸 ㅎ씨, 또 다른 청와대 측근이었던 ㅎ씨 등이 걸려들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네 번째는, 여야 정치인 공동 개입설로, 최의원의 말처럼 ‘정태수를 모르는 정치인이 없는’정치권의 상황과 직결된 것이다. 이 소문은 심지어 한보 사태의 주된 공격수인 DJ의 핵심 측근 ㄱ의원에서부터 여야의 웬만한 정치인을 두루 포함하고 있다. 증권가와 정치권에는 벌써부터 출처가 모호한 ‘정태수 리스트’가 나돌고 있다.

무시무시한 태풍이 상륙한다는 소문과 별볼일 없이 소멸하리라는 관측이 겹치는 가운데, 정치권은 태풍 경보에 몰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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