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일, ‘팍스 저메리카나’로 달린다
  • 도쿄/채명석 (cmsisapress.comkr)
  • 승인 1997.01.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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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일, 총체적 밀월 시대 구가… ‘위험한 중국’ 앞에 의기투합
일본의 국제 문제 전문가들은 최근의 미·일 관계를 ‘총체적 밀월 시대’라고 표현한다. 미·일 관계를 떠받치고 있는 세 지주인 정치·안보·경제 분야에서 큰 쟁점 없이 양국 관계가 원만하다는 말이다.

우선 클린턴 대통령과 하시모토 총리가 같은 시기에 재선됨으로써 양국 정상의 대화 채널이 더욱 원활해졌다는 평가이다. 96년 11월 하순 마닐라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기구(APEC) 정상회담에서 해후한 두 사람은 마치 ‘론과 야스(레이건 전 대통령과 나카소네 전 총리의 애칭)’ 같은 친밀함을 강조하려는 듯 현안이던 오키나와 후텐마(普天間) 기지의 이전지 및 이전 방법에 전격 합의했다.

미국 경제의 호전과 일본의 대미 흑자 감소로 양국의 통상 마찰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클린턴 행정부가 93년 초 출범했을 때 시장 개방 압력과 엔고라는 채찍으로 일본을 사정없이 두들겨팼던 이른바 ‘리비저니스트(revisionist:일본 재인식론자)’들의 ‘저팬 배싱’(일본 두드리기) 함성도 이제는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냉전 체제 종식 이후 존재 가치가 퇴색되어 가던 미·일 안보조약은 96년 4월 도쿄 정상회담을 계기로 다시 소생했다. 이른바 ‘미·일 신안보선언’으로도 알려진 이 선언은 극동 지역에 한정되었던 안보 조약 적용 범위를 아시아·태평양 지역으로 확대함으로써 양국 국내에서 제기되던 안보 불필요론을 잠재웠다. 이러한 ‘총체적 밀월 시대’의 시작을 가능하게 한 기폭제는 실은 95년 9월에 돌발한 오키나와 소녀 성폭행 사건이었다.

클린턴 행정부는 1기 정권 출범 후 리비저니스트들의 건의를 받아들여 대일 관계의 최우선 과제를 통상 문제 해결에 두어 왔다. 이 대일 강경파는, 일본의 시장이 폐쇄적인 것은 일본 사회가 서양 사회와는 너무 이질적이기 때문이라는 논리를 펴며, 일본 시장을 개방시키기 위해서 관리 무역도 불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 중·일 놓고 갈등하다 일본 선택

주일 미국대사관의 경제 담당 서기관 카트 턴은 미국의 대일 정책 유형을 정치와 안보 문제를 우선하는 ‘낙관론적 접근’과 통상 문제를 우선하는 ‘리비저니스트적 접근’으로 분류한다. 그는 냉전 체제가 지속되었던 80년대까지 미국은 일본에 대해 ‘안보 무임승차국’이라고 압력을 가했지만 정치·안보와 경제 문제를 분리해 생각해야 한다는 낙관론적 대일 정책이 오히려 우세했다고 회고한다.

그러나 냉전 종식과 함께 그런 낙관론은 후퇴하고 일본의 경제 팽창을 억제하기 위해서 일본을 원천 봉쇄해야 한다는 리비저니스트들이 전면에 등장하게 되었다. 이들은 일본을 제쳐놓고 12억 시장인 중국과 손을 잡아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패권을 유지해야 한다는 ‘일본 바이패스(우회) 정책’을 클린턴 정권에 요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일본 바이패스 정책은 오키나와 성폭행 사건이 터져 큰 전기를 맞이했다. 조셉 나이 전 국방차관보가 <아사히 신문>과 인터뷰하면서 밝힌 바에 따르면, 미국은 21세기 장기 전략을 구상하면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전략 파트너로서 일본과 중국 가운데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로 고민하고 있었다고 한다.오키나와 성폭행 사건이 일어나자 일본 국내에서는 미·일 안보조약을 개정·파기하자는 운동이 확산되었다. 좌익 세력은 종래의 비무장 중립론에 의거해 안보조약을 이번 기회에 완전 파기하라고 나섰다. 이른바 ‘신우익’으로 불리는 일부 우익 세력도 미·일 안보조약 파기에는 긍정적인 입장이었다.

좌·우익 세력으로부터 동시에 제기된 안보조약 파기 압력은 일본 방위청 관계자들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그들은 당시 미군 10만명을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전방 배치한다는 미국 국방부의 ‘동아시아 전략보고’(EASR)에 입각해 ‘방위계획 대강’을 17년 만에 개정하는 작업을 서두르고 있었다.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보고서와 일본의 신방위계획의 대강이 공통으로 일치하는 점은 ‘중국 위협론’이다. 동아시아 전략보고서에는 ‘중국의 계획·능력·의도를 미국이 제대로 파악하기 힘든 상황이라면 중국의 국방력 증강에 대응 수단을 강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라고 규정되어 있으며, 신방위계획 대강은 ‘일본 주변 지역에’ 여전히 핵 전력을 갖추고 있는 대규모 군사력이 존재하고 있다고 중국의 군사적 위협을 강조했다.

이렇게 보면 ‘일본 이질론’과 ‘혐미론(嫌米論)’이 부딪치며 최악의 국면으로 치닫던 미·일 관계가 다시 ‘낙관론적 접근’ 즉 정치·안보 문제가 중시되면서 ‘총체적 밀월 시대’를 맞이한 것은 ‘중국 위협론’이라는 공통 분모를 찾으면서부터이다. 이런 움직임을 가속시킨 조역은 물론 안보조약 파기 압력, 대만해협 봉쇄 사태, 한반도의 긴장 고조 등이다.

조셉 나이는 그러면서도 ‘중국 봉쇄론’에는 반대한다. 그는 미국과 중국을 포용해야 미·일 간의 마찰 완화는 물론 중국을 ‘책임 있는 대국’으로 국제 무대에 등장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중국 정부의 반발을 예로 들 것도 없이 미·일 안보의 재정의는 ‘팍스 아메리카나 Ⅱ(미국의 군사력과 일본의 경제력에 의한 세계 평화)’나 ‘팍스 저메리카나(미국과 일본에 의한 세계 평화)’를 연상케 하는 아시아·태평양 지역 분할 지배 전략이라는 것이 국제 관계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이다.

미국 마음 변하면 관계 악화 시간 문제

미국 처지에서 보면 미·일 안보조약 재정의는 두 가지 전략적 의미를 갖는다. 첫째는 일본을 미국의 군사력, 즉 안보조약의 틀에 묶어 둠으로써 일본의 재무장을 봉쇄할 수 있다. 둘째는, 일본으로 하여금 중국을 견제토록 하여 중국의 군사력을 봉쇄하는 2중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미국의 이런 ‘2중 봉쇄 정책’은 물론 현재로서는 일본의 국익과도 일치한다. 일본 방위청 관계자들은 냉전 종식 이후 방위비 삭감 요구를 억제하기 위해 ‘가상 적’찾기에 혈안이 되어 왔다. 최근 센카쿠(尖閣) 제도를 둘러싼 영유권 다툼은 방위청의 가상 적 찾기에 둘도 없는 호재를 던져주고 있다.

그렇다면 최근의 미·일 ‘총체적 밀월 시대’가 21세기까지 지속된다는 보장은 있는 것인가.

예컨대 걸프전쟁이 끝난 직후 일본의 국제 문제 전문가들은 ‘미국이 주도하는 1극 패권 시대는 이미 지났다’고 주장하며,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양국의 역할 분담을 요구했다. 미국의 경제력이 급격히 쇠퇴함에 따라 미국의 군사력과 일본의 경제력을 합쳐 아·태 지역을 분할하는 ‘팍스 아메리카나 Ⅱ’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이다.

이같은 논리는 일본의 ‘아시아 중시파’나 ‘탈미 입아론자(脫米入亞論者)’들의 주장과 일맥 상통하는 얘기이다. 의 저자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등이 일본의 중요한 파트너는 미국이 아니라 아시아 지역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 좋은 예이다.

그들은 일본-아시아 지역 무역액이 미-일 무역액을 능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적시하며, 일본을 맹주로 한 새로운 대동아 공영권을 구축하는 것만이 아시아의 활로를 되찾는 길이라고 외친다.

그러나 일본 우익들이 외쳐대고 있는 신 대동아공영권 구상은 <다가오는 제2차 태평양전쟁>이라는 책의 결말을 빌리지 않아도 미·일 간의 군사 충돌을 예고하고 있는 시나리오이다. 즉 아·태 지역 시장을 지배하기 위한 미·일 간의 각축은 일본 재군비를 촉진하고, 결국 정치·군사적 주도권 쟁탈전으로 확대되어 제2차 태평양전쟁을 유발하게 된다는 얘기이다.

경제 전문가들은 최근 엔화 가치가 떨어지면서 일본 무역 흑자가 다시 증가함에 따라 경제적 밀월 관계가 서서히 무너져 가고 있다고 진단한다. 거기에 미국 국내 경기가 악화하면 클린턴 정권은 또다시 정치·안보를 중시하는 ‘낙관론적 대일 정책’을 버리고, 통상 문제를 우선하는 ‘리비저니스트적 대일 정책’으로 전환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미국 문화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가 <국화와 칼>에서 적시한 것처럼 일본은 꽃과 같은 온순함과 일본도와 같은 전투성을 갖추고 있는 나라이다. 미국의 대일 전략도 어디까지나 일본의 색깔에 따라서 변하는 가변성 전략에 불과하다. 그런 점에서 중국 위협론에 입각한 미국과 일본의 밀월이 21세기에도 지속된다는 보장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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