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일 수교도 급물살 탈까
  • 도쿄·蔡明錫 편집위원 ()
  • 승인 2000.07.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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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8월 중 회담 재개 위해 추가 경제지원 검토…정상회담 가능성도
일본 정부는 남북 관계가 예상외로 급진전하자 연기되었던 10차 북·일 국교정상화교섭 본회담을 8월에 개최한다는 방침을 정하고 북한측의 의사를 타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정부는 또 본회담 재개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북한에 추가 경제 지원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북한 조선중앙통신도 지난 6월19일 논평을 발표하고 “일본 당국자들이 진심으로 조·일 관계 개선에 강한 의욕이 있다면 그 문제를 가지고 구태여 우물쭈물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회담의 문은 언제나 열려 있다”라며 수교교섭 본회담 재개에 전향적인 자세를 보였다.

조선중앙통신은 또 최근 ‘역사적인 북남 최고위급회담을 전후하여 일본에서는 조·일 관계와 관련해 모리 총리가 직접 나서 일본이 일·조 관계 개선에 강한 의욕을 가지고 있다’고 거듭 표명하면서 이러한 의사를 전달해 달라고 부탁했다고 밝혔다. 또 일본 정부의 고위 인사들이 저마다 공식 석상에 나타나 ‘일·조 회담을 위한 기회가 마련되었다’느니 ‘일·조 국교정상화 교섭이 순조롭게 진전될 것을 바란다’느니 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일본이 진심으로 두 나라 사이의 불미스러운 과거를 깨끗이 청산하고 관계를 개선할 의지가 있다면 에돌 것이 아니라 회담장에 나오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본 정부가 연기된 10차 국교정상화 교섭 본회담 재개를 서두르고 있는 것은 남북 정상회담 때 김정일 위원장이 빠른 시기에 미국과 수교하고 싶다고 밝히면서, 김대중 대통령에게 “연내에 실현될 수 있도록 적극 협력해 달라”고 요청한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김대중 대통령도 모리 총리에게 전화해 북·일 수교를 적극 지지한다고 말하면서 “김정일 위원장에게 직접 일본의 진의가 전달될 수 있는 교섭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라고 충고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난 5월 하순 도쿄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10차 본회담이 아무런 해명이나 약속도 없이 연기되자 일본의 한반도 문제 전문가들은 북한이 일본과 수교하기보다는 남한과의 경제 협력을 우선하는 전략으로 전환했다고 분석했다. 다시 말해서 북한은 전전 배상과 전후 보상, 일본인 납치 문제 등 현안이 산적해 언제 타결될지 모르는 대일 수교에 매달리기보다는 남한과의 경제 협력을 통해 국내 경제를 재건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사실 국교정상화 교섭에 임하는 북·일 양측의 입장에 커다란 격차가 있다는 것은 지난 4월 평양에서 7년 반 만에 재개된 9차 본회담에서 여실히 증명되었다.

북한측 전전·전후 배상 문제 얼버무려

북한의 정태화 수석대표는 이틀간 열린 회담에서 과거의 교훈에 비추어 두 번 다시 회담을 결렬시켜서는 안된다고 강조하고도, 갑자기 과거 청산 문제를 최우선 과제로 들고 나왔다. 일본측 다카노 고지로(高野幸二郞) 수석대표가 불행한 역사에 대해서는 1995년의 무라야마 담화를 통해 충분히 사죄했다고 주장하자, 정태화 대표는 ‘(북한이) 아시아에서도 가장 혹독하게 약탈당해 무라야마 담화로는 불충분하기 때문에 법적 구속력을 갖는 공식 문서로 과거의 침략과 전쟁에 대해 사죄를 명기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정태화 대표는 또 침략으로 인한 인적·물적 손실과 파괴·약탈된 문화재에 대한 보상 그리고 재일 조선인의 법적 지위에 대한 보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정대표는 북한측이 이전의 수교 교섭 본회담에서 일관되게 주장해온 전전 배상과 전후 보상에 대해서는 직접 언급하지 않았다고 한다.

‘전전 보상’이란 식민지 시절 김일성 주석이 이끈 항일 빨치산 부대가 일본군과 교전 상태에 있었으므로 국제법상 교전국 간에 적용되는 배상 방식으로 이를 처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후 보상’이란 일본이 패전 이후 북한에 취해온 적대 정책에 대한 피해를 보상하라는 것이다. 북한은 구체적으로 일본이 한반도 분단에 일정한 책임이 있으며, 한국전쟁 때는 미군에 가담했고, 전전 배상이 늦어진 데 대해 이자를 가산해야 한다는 점들을 들고 있다.

북한의 이같은 주장에는 물론 한·일 기본조약 체결 때 남한이 밟은 전철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전략이 깔려 있다. 당시 한·일 양국은 과거의 관계를 식민지와 종주국으로 규정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따라 양국의 재산청구권을 상쇄하고 무상 3억 달러, 유상 2억 달러의 경제 협력 방식으로 식민지 통치 문제를 매듭지었다.

북한은 이같은 재산청구권 상쇄 방식으로는 일본으로부터 받아낼 수교 보상 자금이 그리 많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고, 전전 배상과 전후 보상으로 나누어 식민지 통치와 패전 후의 적대 정책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기에 이른 것이다.

물론 일본측의 주장은 정반대이다. 식민지 시절 항일 빨치산 부대는 중국 공산당 동북인민혁명군에 소속되어 주로 중국 동북부 지방에서 활동했다는 것이 일본측 주장이다. 따라서 양국은 교전 상태에 있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에 교전국 배상 방식에는 응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일본측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기초해 양국의 재산청구권만 인정되므로 양국의 재산청구권을 상쇄해 경제 협력 방식으로 처리하자는 것이 기본 입장이다. 또 패전 이후 적대 정책을 취해 온 쪽은 오히려 북한이라는 이유를 들어 전후 보상 요구는 근거가 없다고 일축해 왔다.

북한측이 지난 4월에 열린 평양회담에서 전전 배상과 전후 배상 문제를 명확히 꺼내지 않은 것은 일본측의 이같은 기본 입장을 일단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또다시 전후 보상 문제를 끄집어낼 경우 일본측이 최근에 일어난 일본인 납치 의혹, 대포동 미사일 발사, 북한공작선 침입 사건 등을 열거하면서 적대 정책을 취해 온 것은 오히려 북한이라고 역습할 가능성도 있었기 때문이다.

북한측은 그 대신 평양회담 때 전전 배상의 대상으로 인적·물적 손실과 약탈 문화재에 대한 보상, 전후 보상의 대상으로서는 재일 조선인의 법적 지위에 대한 보상 문제를 새롭게 들고 나왔다.

또한 북한의 정태화 대표는 과거 청산, 즉 사죄 보상과 문화재 반환 문제만 교섭하고 그 외 사안은 논의하지 말거나 나중으로 미루자고 주장했다. 납치 의혹·미사일 문제와 같은 골치 아픈 문제는 국교 정상화 뒤로 미루자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측은 과거 청산과 함께 납치 의혹과 미사일 문제를 함께 논의하지 않으면 수교 교섭이 한 발자국도 진전될 수 없다고 반박했다.

일본, 납치 문제 해결에 초점

어떻게 보면 미사일 문제와 핵개발 문제는 북·일 간의 문제라기보다는 미·북한간 문제의 성격이 강하다. 따라서 두 문제가 북·일 수교 교섭에서 커다란 장애물은 아닐 수도 있다. 오히려 과거 청산보다 더 큰 걸림돌은 일본인 납치 의혹 문제이다. 귀순한 전 북한 공작원 안명진씨가 니가타 시에서 행방 불명된 요코다 메구미 양이 북한에 생존해 있다는 사실을 증언하면서 북·일 간의 최대 현안으로 떠오른 문제가 바로 납치 의혹이다. 일본 정부는 7건 10명에 대한 납치 의혹을 공식으로 확인했다.

북한은 양국 적십자사 회담을 통해 일본인 행방불명자에 대한 조사를 개시하여 발견되면 일본측에 통보하고 적절한 조처를 취하기로 약속한 상태이다. 그러나 일본인 행방불명자들이 북한에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면 그들을 납치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북한은 아직껏 조사 결과를 통보하고 있지 않은데, 일본 정부는 국내 여론 때문에 수교 교섭에서 이 문제를 절대로 눈감아 줄 수 없다는 생각이다.따라서 설령 수교 교섭 본회담이 8월 중에 재개된다 하더라도 납치 문제가 진전하지 않고는 회담이 또다시 답보 상태를 면치 못하게 된다. 그러나 일본의 한반도 문제 전문가들에 따르면, 납치 문제를 풀 실마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남북 정상회담 때처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직접 나서서 결단을 내리면 수월하게 풀릴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 정부는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직접 연결될 대화 채널을 확보하기 위해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국교 정상화 교섭을 매듭짓기 위해서도 김정일 위원장과의 직접 대화가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과 연내 수교를 희망한다는 김정일 위원장의 발언이 사실이라면, 그전에 북·일 정상회담이 열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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