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수열 대표 인터뷰/ “분단 비극 끝내기에 진력”
  • 남문희 기자 (bulgot@sisapress.com)
  • 승인 1996.12.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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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인 선언은 시대 변화 따른 결단”
전수열 대표는 그동안 한국 언론은 물론이고 일본 언론에도 거의 모습을 나타내지 않은 베일에 싸인 인물이었다. 사쿠라그룹이 일본 내에서 점차 성가를 얻으면서 언론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고, 특히 94년 부친 전진식씨가 일본 TBS 방송 및 월간 <세계>와 가진 인터뷰에서 ‘조조합영’의 문제점을 폭로해 일본뿐 아니라 전세계 언론에서 거의 매일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을 때도 전수열 대표는 전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매스컴과는 불가근 불가원의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는 확고한 원칙 때문이었다. 그런 그가 일본 언론도 아닌 한국 언론의 인터뷰에 응하는 것은 대단한 결단이 필요한 일이었다. 그는 이번 <시사저널>과의 인터뷰가 사쿠라그룹 50년 역사와 자기 인생에서 대전환의 계기가 될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인터뷰에는 오사카 경법대학 아시아연구소 객원연구원인 신지호씨가 함께했다.


먼저 한국 언론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소감을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저의 아버님은 남녘 땅(경상남도 고성군)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아홉 살 때 일본으로 건너와 갖은 고생 끝에 오늘의 사쿠라그룹을 일구었습니다. 선친의 말년 최대 소망은 그리운 고향 땅을 밟아 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저 세상으로 가시고 말았습니다. 이는 비단 저희 가족만의 비극이 아닌 분단에서 오는 우리 민족 전체의 고통입니다만, 저는 미력하나마 이같은 상황을 타개하고 싶었습니다. 오늘 <시사저널>을 통한 등장은 바로 민족에게 불행을 가져다 주는 그러한 상황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의미에서 ‘자유인 선언’이라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자유인 선언의 의미와 배경에 대해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십시오.

현재 저의 법적 지위는 재일 조선인입니다. 왜 한국이 아니고 조선인가. 분명한 것은 여기서 말하는 조선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조선이 아니라 식민지 시대 일본인들이 ‘조센징’ 하고 부르던 조선이라는 것입니다. 즉 분단되기 전의 조국을 일컫는 말입니다. 따라서 조선이라는 말에는 통일 염원이 깃들여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재일 조선인은 조총련 소속, 그리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해외공민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이는 남과 북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이러한 현실이 싫었습니다. 조국이 분단되어 있는 상태에서 재일동포가 어느 한 쪽을 택해 기울어지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재일동포에게는 이념과 체제 이전에 ‘망국노(亡國奴)’의 설움을 안고 이국 땅에 끌려와 고난의 세월을 살아온 강한 동질성이 있습니다. 거기에 분단의 잣대를 들이대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왜 한 쪽만을 지지하고 다른 한 쪽은 비판할 것을 강요당해야 합니까. 왜 남북 모두 조국이라 부르면 안됩니까. 저에게 자유란, 어느 한 쪽으로 선택할 것을 강요당하지 않고 남북 모두를 왔다갔다할 수 있는, 즉 분단 논리로부터의 자유, 그리고 정치 논리로부터 제약받지 않고 본국에서 자유롭게 경제 활동을 할 수 있는 자유를 의미합니다.

지금 말씀은 재일동포 50년 역사의 한계를 뛰어넘는 가히 혁명적 발언이라 생각됩니다. 만일 재일동포 다수가 ‘자유인 선언’을 지지한다면 재일동포 50년 역사는 근본적으로 변하게 됩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민단과 조총련의 대립 구도가 지속되고 있지 않습니까?

그것은 사실이지만 그것만 보고 재일동포 사회를 판단하는 것은 큰 착오입니다. 현재 약 20만의 조선 국적자 가운데 조총련 활동을 하는 사람과 약 50만의 한국 국적자 가운데 민단 활동을 하는 사람이 어느 정도 될 것 같습니까? 그야말로 소수에 불과합니다. 보통 사람 대다수는 그런 것을 따지지 않고 살아갑니다. 제 결혼식 때에는 지역 민단 단장이 축사를 해 주었습니다. 또 우리 회사만 하더라도 조선 국적 동포, 한국 국적 동포, 귀화한 동포 모두 있습니다만 아무런 문제 없이 서로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조총련과 민단이라는 분단 구조에 의한 선택말고는 다른 대안이 없다는 점입니다. 외부에서 재일동포 사회를 조총련과 민단으로 양분해서 보는 것도 이해는 갑니다. 하지만 앞으로 새로운 대안이 나오는 것은 필연적이며 저는 이러한 흐름에 앞장서 나갈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의 자유인 선언이 하나의 돌파구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그렇다면 조총련을 완전히 떠나겠다는 말입니까?

저는 조총련을 두 가지 면에서 바라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북한을 지지하는 정치적인 면이고 다른 하나는 일본 땅에서 민족적 정체성을 지켜 나가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벌이는 민족적인 면입니다. 저는 후자에 대해서는 상당히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민족 교육 하나만 놓고 보더라도 조총련이 없었다면 지금쯤 재일동포의 민족적 정체성은 거의 사라졌을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따라서 이러한 부분은 더욱 발전시켜 나가야 합니다. 문제는 거기에 자꾸 정치 논리가 개입한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저 혼자만의 생각이 아닙니다. 대다수 동포들은 자식들에게 민족 의식을 심어 주기 위해 민족학교에 보냅니다만 도가 지나친 정치사상 교육은 싫어합니다.

한국의 재일동포 정책 그리고 한국에 대한 인상은 어떻습니까.

객관적으로 볼 때 이제까지 남과 북 어느 쪽이 재일동포에 대해 더 관심을 갖고 신경을 썼는가를 따져 보면 두말할 필요 없이 북입니다. 이것은 가치 판단 이전에 엄연한 사실입니다. 한국 입장에서 보면 왜 일본과 같이 자본주의가 발전하고 정보가 풍부한 나라에 살면서 조총련처럼 북을 지지하는 단체가 있는지 이해하기 힘들다고 할지 모르지만, 그런 의문 이전에 이제까지 한국이 재일동포의 민족적 정체성 유지를 위해 무엇을 해 왔는가 스스로 물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 가지고 한국을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무엇보다 한국은 저희 집안의 뿌리가 있는 곳입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유품 중에서 고향 집 사진이 나왔습니다. 돌아가신 아버님과 저는 그것을 보고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저는 반드시 고향 땅에 돌아가서 묻힐 것입니다. 단지 이런 면만이 아닙니다. 저는 얼마 전부터 한국에 대해 새로운 흥미를 느끼고 있습니다. 언젠가 <모래시계>를 비디오 테이프로 본 적이 있습니다. 무척 감동받았습니다. 한국이 경제뿐만 아니라 민주주의도 상당히 발전한 것을 알고 기뻤습니다. 저는 남이나 북이나 조국이 잘 되면 기쁩니다. 그럼 한국에서 기업 활동을 할 의향도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꼭 하고 싶습니다.

사쿠라그룹은 북한과 합영사업을 하는 최대 파트너입니다. 한국에서 기업 활동을 한다면 북한과의 합영사업은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상관없이 계속해 나갈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가능성이 발견되면 신규 투자도 과감히 해 나갈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남북 모두에서 기업 활동을 하게 되는 셈인데 남북 경제 교류에 상당히 중요한 역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생각도 갖고 계십니까?

기회가 주어진다면 해 보고 싶습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제 가치관의 출발은 민족입니다. 따라서 남과 북, 한 쪽에 해가 되고 한 쪽에 득이 되는 일은 절대 안합니다. 양쪽 모두에 득이 되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그러려면 저희 회사가 일단 남북 양쪽에서 자유롭게 경제 활동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남북 당국자들이 이러한 충정을 잘 이해해 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합영사업의 최대 경험자로서 남북 경제 교류에 대해 한국기업에 어떤 조언을 하고 싶으십니까?

경제 교류는 인도주의적 지원과 다릅니다. 철저히 경제 원리·경영 원리에 입각해 진행해야 합니다. 그러면서도 민족을 생각한다면 단지 북의 자원이나 싼 노동력만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북의 경제 자립을 도울 수 있는 방향으로 교류를 진행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자유로운 경제 교류를 가능케 하는 최소한의 정치 환경이 마련되어야 함은 물론입니다.

한국 쪽에서 볼 때 사쿠라그룹은 세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째, 합영사업의 최대 경험자로서 남북 경제 교류 활성화를 선도해 나가는 역할, 둘째, 일본 땅에 뿌리내린 동포 기업으로서 국제화·세계화의 첨병 역할, 셋째, 불행했던 한·일 관계를 발전적으로 극복해 나가는 데에 촉매제 역할입니다. 현재 사쿠라그룹은 사원 2천2백여 명 가운데 95% 이상이 일본인입니다. 또한 도쿄 후쥬 시에 탄탄한 지역적 기반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렇듯 성공적으로 일본 땅에 뿌리내릴 수 있었는지 설명해 주십시오.

경영 이념 면에서 설명드리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 민족이 오랜 세월 일본으로부터 고초를 당해 온 것은 사실입니다만, 저희 회사는 그것을 역차별이 아닌 공생을 통해 극복하고자 노력해 왔습니다. 저희 회사에서 동포 사원이 일본인 사원보다 혜택받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오히려 일본인보다 더 열심히 일해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부담이 있습니다. 그 결과 회사 내부는 민족 간에 이렇다 할 갈등이 없습니다. 문명에는 우열이 있을 수 있으나 문화에는 우열이 없다는 경영 이념을 모두 잘 이해하고 있으니까요.

경영 이념은 문화상대주의를 지향하면서, 불고기 양념 제조·판매, 한식집 경영 등 대부분 민족을 상품화해 일본 시장에 파고들었다는 점이 매우 특이하게 보입니다. 특별한 동기라도 있습니까?

요즘 일본인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하면 불고기(일본말로 야키니쿠)가 좋아하는 음식 5위 안에 항상 들어갑니다. 우리 민족이 불행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힘을 가지고 일본 사회 속에 민족을 올바로 심을 필요가 있습니다. 일본인들이 일상 생활에서 즐기는 것의 원조가 우리 민족의 것이라는 사실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정치나 군사가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던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이제는 문화적 영향력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민족을 상품화해 일본 사회에 뚫고 들어간 것입니다. 선친은 이를 ‘백년 사업’이라 불렀습니다. 이미 그 백년 사업의 효과가 나타나고 있습니다.국제주의와 민족주의라는 모순된 개념을 잘 조화시키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앞으로 그러한 실력을 남북 관계에서도 발휘해 주셨으면 하는데.

저 개인뿐만 아니라 재일동포 모두가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그래야 재일동포 앞에 새로운 길이 열릴 것입니다. 지금 동포 사회는 3세, 4세가 절대 다수가 되면서 심각한 문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일본인과 통혼율이 80%를 넘어선 지 오래입니다. 국제 결혼을 반대한다는 것이 아니라 민족의 존립 자체가 위협받고 있다는 것을 강조할 뿐입니다. 지금 재일동포 사회에서 가장 큰 문제는 조총련과 민단의 대립이 아니라 바로 이 점입니다. 조국이 새로운 희망을 안겨 주지 못한다면 이러한 흐름은 막을 길이 없습니다. 재일동포들이 최소한 남북을 자유롭게 왕래하게 되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역할이 많이 생겨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5세, 6세가 되어도 쉽게 민족을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자신의 생활 기반이 민족에 있으니까요. 그렇지 않고 너는 한국인·조선인이니 우리말을 배우고 우리 사람과 결혼해라, 이런 식의 당위론적 강조는 3세, 4세에게 통용되지 않습니다. 제가 지금 자유인 선언을 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같은 위기 의식에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자유인 선언을 통해 새로운 돌파구를 만들어야 한다는 강한 사명 의식을 느낍니다.

이제까지 재일동포 운동의 흐름은 크게 보아 조국 지향 일변도이던 시기와 일본 속에 뿌리내리자며 ‘在日’을 강조하던 시기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 말씀은 조국파·재일파 논쟁을 발전적으로 지양해야 한다는 것으로 들립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한 쪽만 가지고는 안됩니다. 재일동포 대다수는 본국에 돌아가지 않을 사람입니다. 따라서 일본 내에 어떻게 뿌리내리는가가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을 중시하고 조국과 멀어진다면 결국 민족이 소멸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재일동포는 본국으로부터 늘 새로운 영양분을 공급받아야 합니다. 선친은 망국노의 한과 설움을 안고 바다를 건너왔습니다. 그러나 저와 후손들은 조국에 줄 선물을 갖고 고향에 돌아갈 것입니다.

그런데 현실이 문제입니다. 오늘의 자유인 선언을 남쪽에서는 전향, 북쪽에서는 변절이라고 자의적으로 해석할 수도 있을 텐데요.

물론 그럴 수도 있지만 남북 당국자 모두 저의 순수한 마음을 이해해 줄 것이라 확신합니다. 설령 이러한 기대가 어긋난다 해도 후회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조국이 저를 배신한다 해도 저는 결코 조국을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민족은 저에게 모든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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