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자 비리 ‘특별 조사국’ 만들자
  • 이대훈 (참여연대 사무국장) ()
  • 승인 1996.11.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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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개인의 결단에만 의지해 부정 추방 실패… 부패방지법 제정 시급
노태우 비자금 사건이 터진 지 1년이 지났는데도 부패 구조에 뚜렷한 변화가 있는 것 같지 않다. 이양호 전 국방부장관 수뢰, 버스 요금 담합 인상 비리에 이어 또다시 보건복지부장관과 여야 국회의원들이 안경사협회로부터 거액을 뇌물로 받아 챙긴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보건복지부장관 부처의 뇌물 수수는 장학로 사건이 막 터져 나오던 때에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이쯤되면 대통령이 아무리 ‘성역 없는 고위직 사정’을 역설하더라도 심드렁해진 국민들의 자탄 섞인 체념을 뒤바꿀 수는 없을 듯하다.

김영삼 대통령은 집권 이래 거듭 부정부패를 척결하겠다는 의지를 보여 왔지만, 결과를 놓고 볼 때 성공하고 있다고 보기 힘들다. 사실 김대통령이 집권 이후 보여준 정치적 결단들은 결코 과소 평가될 수 없는 것인데도, 김대통령의 정치적 결단들이 형평성을 잃었다거나 지나치게 ‘정략적’이라는 안팎의 지적 역시 줄곧 제기되어 왔다. 요컨대 부패 추방을 지나치게 대통령 개인의 결단과 ‘인치(人治)’에 의존해 풀어 왔다는 비판인 셈이다.

근본적인 관점에서 부패 척결은 결국 사익(私益) 지향적 가치에 대해 공익 지향적 가치를 정착시키는 것이며, 개인의 재량권을 줄이고 제도적 룰을 정착시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너무 ‘사사롭지 않냐’는 안팎의 지적들에 직면하게 된 대통령의 반(反)부패 방법론은 이미 ‘반부패적이지 못하다’는 말이 된다. 실제로 김대통령 집권 이래로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독립성이 끊임없이 문제가 되고, 인사 정책의 거듭 실패가 거론되는 것도 김대통령의 반부패 방법론의 한계를 입증하는 예라고 할 수 있다.

국민은 ‘선언’ 보다 종합적인 처방 기대

문제의 핵심은 반부패 정책의 제도화에 있다. 문제의 뿌리가 깊을수록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 또한 제도화·구조화하지 않으면 안된다. 지금 국민은 대통령이 반복해온 부패 척결 선언을 한 번 더 하는 것이나 검찰이 몇 가지 비리 사건을 더 들추어내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문제에 대한 종합적인 처방을 기대하고 있다. 제도적 해결책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밀실 인사라고 비판 받아온 인사 정책에 대해서는 인사청문회 등을 도입함으로써 고위직 등용의 투명성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빈번히 국민을 실망시켜 온 정치 검찰의 불철저한 수사 태도에 대해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라는 국민의 요구에 답하는 것이다.

참여연대는 부정 부패에 대한 종합적 처방의 하나로 부패방지법 제정 운동을 펼쳐 왔다. 특히 지난 총선 이래 ‘부패방지법 제정 및 검은돈 추방을 위한 정치인 대유권자 약속 서명’운동을 전개하여 여야 국회의원 재적 과반수(1백51명)로부터 서명 받아 지난 11월7일 입법 청원을 마쳤다. 부패방지법은 부패에 관한 기본법이다. 참여연대의 법안에는 부정 부패, 특히 공직자 부패 근절에 필요한 구체적인 규정들이 망라되어 있다. 공직자 부패를 방지하기 위한 세밀한 규정 도입과 재산등록 심사 규정 강화, 공익 제보자 보호, 돈세탁 금지, 뇌물 수수에 대한 강력한 처벌과 부정한 재산 철저 몰수, 고위 공직자 비리 전담 특별조사국 신설 등이 그것이다.

참여연대가 부패방지법 입법을 청원한 직후 여야 각당과 언론·사회 단체들이 지대한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며칠 전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인사청문회와 부패방지법 제정을 공동으로 추진하고, 필요하면 97년 예산 통과와도 연계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왔다. 여당도 최근 사태들에 대한 제도적 해결에 기본적으로 동의한다는 입장이고 보면 부패방지법 통과는 먼 일이 아닌 것 같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국회 내에서 부패방지법 등 제도적 해결책을 모색하는 과정이 여·야의 정치적 명분 싸움으로 전락하지 않고 문제의 구조적 해결책을 함께 찾기 위한 동반과 협력의 길이 되게 하는 것이다. 참여연대 ‘맑은 사회 만들기 본부’는 부패방지법 제정 과정이 시민의 참여와 발언 속에서 이루어지도록, 입법 청원으로 만족하지 않고 각당 대표 면담, 여야 3당 정책위의장 공동회의 등 공동 입법안을 마련하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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