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년 핵 유령,98년에 되살아나고 있다
  • 南文熙 기자 ()
  • 승인 1998.11.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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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북한 ‘핵 대결’ 국면 심화, 재벌의 대북 사업 추진 등 닮은꼴… DJ, 독자·현실 노선 병행해 ‘긴장 완화’ 조성
92년 2월과 98년 11월. 6년여 시간 차를 두고 역사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고 있다.

92년 1월16일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이 평양을 방문했다. 그는 김일성 북한 주석과 남포공단 개발이라는 ‘역사적’ 합의를 이끌어냈다. 그러나 당시 미국과 북한은 영변 핵 시설 사찰 문제를 놓고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다. 급기야 2월28일 한국을 방문한 부시 미국 대통령은 핵 문제를 거론하면서 남북 경협을 자제해 달라고 한국 정부에 촉구했다.

현대그룹 정주영 명예회장이 소 5백1 마리를 몰고 2차 방북을 결행한 것은 지난 10월27일. 2차 방북을 통해 김정일과의 극적인 면담, 금강산 관광 개발, 유전 개발, 해주공단 개발 등 6년 동안 중단되었던 남북 경협의 문이 활짝 열렸다. 그러나 그 환호성이 채 가시기도 전에 92년과 같은 핵 악몽이 되살아나고 있다.

올해 초부터 심상치 않은 기류를 보이던 미·북한간 핵 공방이 지난 11월10일자 미국 국무부 성명을 계기로 극단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엿보이는 것이다. 국무부 성명은 16∼18일로 예정된 찰스 카트먼 미국 한반도 평화회담 특사의 북한 방문을 앞두고 최후 통첩 성격을 띤 것이었다.

미국 국무부 당국자는 이 성명에서 “북한이 핵 시설로 의심되는 영변 지하 시설에 대한 사찰을 허용하지 않을 경우 미국은 94년에 체결된 미·북한 제네바 합의문을 파기할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제네바 합의문 파기가 미국 정부 당국에 의해 공공연히 거론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국무부 성명은 그 다음 조처에 대한 암시까지 곁들이고 있다.

“이번 협상은 종전과 다르다. 북한이 사찰을 끝까지 거부할 경우 미국의 단호한 대응이 결정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소요되지 않을 것이다”라고 국무부는 밝혔다. 미국의 ‘단호한 대응’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해 북한 중앙방송은 12일자 논평에서 “이는 군사 행동을 포함한 어떠한 대응 조처도 불사하겠다는 것이다”라고 지적함으로써 북한 역시 이를 각오하고 있다는 인상을 풍겼다.

“미국과 북한, 결판 내려는 분위기”

마주 보고 달리는 두 열차를 연상케 하는 미·북한 대결 양상에 정부의 우려도 깊어 가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의 중국 방문을 하루 앞둔 11월10일 정부 고위 당국자는 “미국과 북한이 뭔가 결판을 내겠다는 분위기다. 정부도 이 문제를 매우 심각하게 보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최근 미국 정가 분위기에 깊은 우려를 표시했다. “지난 중간 선거에서 민주당이 승리했다고는 하지만 공화당이 주도하는 대북 강경 분위기가 수그러든 것은 아니다. 클린턴 정부의 레임 덕 현상까지 가세해 대세는 대결 쪽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을 것 같다.”미국과 북한이 정면 충돌로 가든, 아니면 막판 타협으로 가든 가장 큰 피해자는 한국이 되리라는 것이 정부의 고민이다. 정면 충돌로 가면 당장 현대의 대북 사업뿐 아니라 경제 회복에도 악영향이 미치고 군사적으로도 매우 복잡한 문제가 발생한다. 막판에 타결되면 이보다는 덜하겠지만 한반도 문제가 미·북한 양자 구도로 끌려갈 것이기 때문에 한국 정부의 입지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정부로서는 긴장 국면이 더 깊어지지 않도록 막는 것이 최선이다.

김대통령의 이번 중국 방문에서도 이 문제가 깊숙이 논의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역시 한계가 있기 때문에 모든 외교적 노력은 “북한에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한국과 미국이 제네바 합의를 먼저 깨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클린턴 대통령에게 전달해야 할 것이다”라고 앞의 고위 당국자는 말했다.

최근 백악관 안전보장회의(NSC) 아·태 책임자를 면담한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 역시 한국 정부가 이런 입장을 명확하게 전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시사저널>과 가진 전화 인터뷰에서 “최근 백악관 역시 되도록 제네바 협정의 틀을 유지하는 쪽으로 문제를 풀려고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클린턴 대통령이 한국 방문 길에 어떤 메시지를 들고 올지는 전적으로 카트먼 특사의 평양 방문 결과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평양측이 이 협상에서 성의를 보이지 않을 경우 클린턴 대통령이 92년 2월 부시 대통령이 전한 것과 같은 메시지를 들고 오지 말라는 법이 없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 핵 위기가 고조되는 판국에 한가롭게 무슨 금강산 관광이냐고 할지도 모른다. 현재 야당과 보수 세력의 공격 역시 여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정부 입장은 ‘그렇기 때문에 금강산 유람선을 반드시 띄워야 한다’는 것이다. 남북한이 금강산 관광을 실현할 만큼 관계가 진전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줌으로써 미국과 북한의 강경파를 안심시키고자 하는 고육지책인 것이다.

북한 핵 위기를 완화하고자 하는 정부의 이같은 노력은 과연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인가. 이와 관련해 청와대 고위 당국자는 ‘낙관은 금물’이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이 영변 지하 시설을 공개하지 않아도 문제고 이것이 핵 시설로 판명되어도 문제다. 북한이 빠져나가기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라고 지적했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점이 있다면 연말이 가까워지면서 미국 정가가 결산 분위기에 접어들었다는 사실이다. 이 기간에는 가능한 한 큰 사건을 피하는 것이 미국 정치의 관행이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 올 연말을 넘긴다 해도 내년 봄이 문제다. 지난 10월 미국 행정부와 의회가 어렵게 타결한 내년도 중유 지원 방안이 북한측이 받아들이기 매우 어려운 조건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문정인 교수(연세대·국제정치)는 이와 관련해 “내년 봄 울릉도 앞바다에 현대 금강호와 미국 엔터프라이즈 항공모함이 동시에 출현하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라고 지적했다.문제가 되고 있는 영변 지하 시설에 대해서는 미국 내에서도 한반도 담당자들과 고위급 정책 결정자들 사이에 입장 차이가 있다. 우선 한반도 담당자들은 아직은 시간이 있다고 본다. 지하 공간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북한이 이곳에 핵 재처리 시설을 설치하려면 앞으로 5∼6년 걸릴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한 서방 소식통은 “한반도 담당자들은 사실 미사일 문제가 더욱 급한 현안이지 핵 문제는 나중 일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문제는 정책 결정의 키를 쥔 고위급 정책 결정자들의 입장이다.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현안은 핵 확산 방지이다. 이는 미국 정책의 최우선 순위이기 때문에 다른 모든 현안보다 앞선다는 것이다. 한국 경제 사정이나 남북 관계 역시 이 최우선 현안 앞에서는 커다란 고려 사항이 아니다. 단 한 가지 고려 사항이 있다면 언제 이 문제에 뛰어드는 것이 비용을 가장 줄일 수 있는 시점인가 하는 점밖에 없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기준에서 보자면 핵 개발이 본격화하기 전인 바로 지금이 적기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의 핵 개발은 일본·중국·인도·파키스탄으로 이어지는 핵 확산 도미노 현상의 출발선이기 때문에 미국으로서는 묵과할 수 없는 문제이다.

미국 처지에서 볼 때 이같은 판단은 합리적인 것이다. 그러나 한국 처지에서는 미국내 한반도 담당자들과 같은 얘기를 할 수 있다. 아직 시간 여유가 있는데 왜 하필 남북 경협이 본격화하는 이때 긴장을 고조시키려 하는가 하고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만약 미국이 이런 한국 처지를 고려하지 않고 북한핵 위기를 일방적으로 몰고 갈 경우 국내의 많은 전문가가 미국의 진정한 의도가 무엇인지 의심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그것은 현재 상황이 92년 대우에서 98년에는 현대로 바뀌었을 뿐, 과거의 핵 악몽과 한 치 오차도 없이 그대로 재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DJ의 독자 노선에 우려·불만

김대중 정부 들어 한·미 관계는 김영삼 정부 시절에 비해 훨씬 나아진 것이 사실이다. 과거 정부처럼 대북 정책을 둘러싼 마찰음도 거의 들리지 않을 뿐더러, 안보 현안에서 한·미 공조가 강화되었고, 미·북한 관계 진전에 대해서도 새 정부는 적극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미·북한 관계 개선에 대해 미국측의 운신 폭이 훨씬 넓어진 것이다.

그러나 밖으로 표출되지 않았을 뿐 내면적으로는 팽팽한 긴장감이 존재해 온 것도 사실이다. 단적으로 김대중 정부의 햇볕 정책(포용 정책)에 대해 미국측 관계자들은 비공식적으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곤 했다. 미국측 한 인사는 얼마 전 인터뷰에서 “미국 행정부의 포용 정책과 한국 정부의 햇볕 정책은 매우 다르다”라고 말했다. 미국 정부의 포용 정책은 북한과의 외교 관계 정상화를 지향하되 북한이 국제 사회의 룰을 지키는 것을 그 전제로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 정부의 햇볕 정책은 이런 전제 조건 없이 오히려 경제 협력에만 무게를 두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현대그룹이 추진하는 대북 사업에 대해서도 미국측 전문가들은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북한과 사업 경험이 없는 현대가 북한에 이용당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한 서방 소식통은 미국이 가지고 있는 우려에 대해, “과거 50여 년 동안 옛 소련 등 사회주의권을 다루면서 노하우를 축적해 온 미국은 한국 정부에 과연 그런 노하우가 있는지 의문을 나타내고 있다”라고 전했다. 한마디로 요약해 미국은 김대중 정부가 대북 정책에서 독자 노선을 걷는 것에 대해 드러내지는 않지만 우려와 불만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그러나 김대중 정부의 대북 독자 노선은 ‘역사적 내력’을 지닌 ‘원칙’의 문제라 할 수 있다. 이는 주변 열강에 둘러싸인 분단국의 숙명과 관련한 것이다. 독일 통일 과정에 정통한 한 전문가는 이를 우호적으로 설명했다. “과거 서독 정부의 통일정책은 ‘참여와 거리’라는 말로 압축할 수 있다. 주변국의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 다양한 국제 체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도 분단 상황이 영구화하는 것을 막기 위해 끊임없이 외부 세력과 거리를 유지했다”라는 것이다. 그는 “서독 지도부가 걸었던 이 길은 고통스런 결단의 연속이었다”라고 덧붙였다.

그가 지적한 대로라면 주변국과 거리를 두고 독자적인 길을 걷고자 하는 현정부의 대북 정책 역시 결코 평탄한 길은 아닐 것이다. 어떤 면에서 현정부는 스스로 ‘고난의 가시밭길’을 선택한 것인지도 모른다.

사실 한국 현대사에서 남북 문제를 독자적으로 해결하려 노력했던 시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바로 6공화국 시절이다. 정부의 한 고위 당국자는 “당시만 해도 남북 문제는 우리 주권 사항이었다. 미국은 곁에서 지켜보는 수준을 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한 예로 베이커 당시 미국 국무장관이 한반도 문제 해법으로 남북한과 주변 4강이 참여하는 2+4 회담을 언론에 흘렸다가 당시 한국 정부가 “왜 우리 문제에 미국이 끼어드느냐”라고 강력하게 항의해 무산된 일이 있을 정도다.

6공화국 정부가 이처럼 독자적 입장을 고수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남북 간에 접촉 통로가 다양했기 때문이다. 6공 때 정부에서 고위직을 역임한 한 인사는 “당시 미국은 북한과 참사관급 채널밖에 없었던 데 비해, 우리는 남북 고위급 채널, 박철언씨의 88채널(안기부와 북한 노동당 간의 채널), 김우중 회장을 중심으로 한 기업인 채널을 가동하고 있었다”라고 밝혔다.

이런 현실이 역전된 것은 노태우 정권 말기 북한 핵문제가 터지면서 한국 보수 세력의 공격으로 남북 협상이 깨진 데 이어, 그 뒤에 등장한 김영삼 정부 5년간 대북 정책이 파탄을 빚었기 때문이다. 김영삼 정부 역시 초기에는 무엇인가 해보려 했던 것이 사실이나 나중에는 남북 직접 대화를 포기하고 미국을 통해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다가 남북 관계와 한·미 관계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쳤다고 할 수 있다.

DJ, 남북 대화 복원하려 정경 분리 정책 펴

정부 외교안보팀의 한 고위 당국자는 올해 초 인터뷰에서 “김대중 정부가 출범하면 과거 정부에서 빚어진 오류들을 모두 바로잡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가 강조한 정상 복원이란 바로 남북 대화 채널 복원을 의미한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가 독자 노선만을 강조하는 것은 아니다. 김대중 정부의 노선은 어떤 면에서 지난 5년간 진행된 국제 현실을 적극 수용한 현실주의 노선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4자 회담과 남북 대화를 병행해 추진하는 데서 드러난다. 현정부의 대북 정책 색깔은 김대중 대통령이 올해 초 외교통상부 업무 보고에서 “앞으로도 남북 대화는 4자 회담의 틀 안에서 진행하겠다”라는 유종하 전 외무부장관의 보고에 대해, “그것은 옳지 않다. 남북 대화는 남북 대화대로 따로 추진해야 한다”라는 취지로 일축하면서 분명하게 드러났다.

김대통령은 이미 발표한 3단계 통일 방안에서 이를 분명하게 제시한 바 있다. 즉 남북한이 먼저 현안을 주체적으로 해결하고(2자 대화), 이를 미국과 중국이 보장함으로써 한반도 평화 체제를 구축하고(4자 대화), 그 다음에 일본과 러시아까지 포함한 6자 대화를 통해 동북아 다자 안보 체제를 구축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올해 초 임동원 외교안보 수석은 “과거 정부 시절 남북 간에 대화가 안돼 4자 회담이 먼저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김대중 정부는 이같은 현실을 받아들여 남북 대화와 4자 회담이 공존하고 병행 발전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라고 밝힌 바 있다. 원래 순서상 가장 뒤였던 6자 대화를 최근 수용한 것도 일본과 러시아의 요구를 감안한 현실주의적 입장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남북 간에 단절되었던 2자 대화를 복원하기 위한 정부의 구상은 무엇인가. 그것은 최근 현대그룹이 추진하는 대북 사업에서도 나타났듯이 ‘정경 분리’ 한마디에 함축되었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정경 분리라는 말에는 깊은 내력이 있다. 현정부에도 그 맥이 이어져 오고 있는 6공화국 정책 당국자들의 ‘비원’이 담겨 있는 것이다.

6공화국 당시 대북 정책을 담당했던 당국자들이 염두에 두었던 모델이 바로 정경 분리에 입각한 중국·대만 식 교류였다. 이때 사정에 정통한 정부 당국자는 “당시 정책 담당자들은 88년부터 시작된 중국과 대만의 양안 교류가 커다란 성과를 올리고 있는 사실을 주시했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항을 미룬 채 경제 교류를 앞세움으로써, 대만은 노동 집약형 중소 기업의 대륙 진출을 통해 산업 구조를 기술 집약형으로 바꿀 수 있었다. 중국 역시 개혁·개방에 박차를 가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6공화국 당시 한국 경제 역시 산업 구조 개편이라는 숙제를 안고 있었다. 정부 당국자들이 대우그룹이 남포공단을 개발하는 것에 커다란 의미를 부여한 것도 사실은 대만 사례를 참고해 이를 실현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한·미 공동 전략 수립 시급

앞의 정부 당국자는 “남포공단 개발이 계속 이어졌다면 한국도 기술 집약형으로 경제 체질을 바꿀 수 있었을 것이다. 그것만 제대로 되었다면 대만처럼 한국도 국제통화기금 사태를 맞지 않을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사실 대우의 남포 사업이 성공했다면 북한 역시 최근의 식량난이나 경제난을 겪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고, 남북 관계 역시 중국·대만처럼 자연스럽게 당국간 대화가 활성화했을 수도 있다.

이렇게 보자면 정부가 현대그룹이 추진하는 대북 사업에 걸고 있는 기대는, 어떤 면에서 6공화국에서 좌절했던 꿈을 부활시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비록 대우에서 현대로 기업 간판은 바뀌었지만 6년여 공백을 넘어 역사의 줄기를 다시 잇고자 하는 것이다.

문제를 차근차근 짚어 보면 김대중 정부의 대북 정책이 미국의 한반도 정책과 모순되거나 충돌하는 것은 아니다. 강조점에 차이가 있을 뿐, 큰 틀에서 보자면 상호 보완적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북한이 핵 개발이라는 위험한 길을 선택한 이유가 당면한 경제 위기를 타파할 출구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더욱 분명해진다.

남북 경협이 일정한 수준으로 진전해 북한이 이를 하나의 대안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된다면, 현재와 같은 강경 분위기를 누그러뜨릴 조건도 마련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이 방법이야말로 핵 확산 방지라는 미국의 최우선 정책 목표를 달성할 가장 확실한 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현재 가장 필요한 것은 한·미 양국이 서로의 입장을 허심 탄회하게 털어놓고 공동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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