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준히 운동하면 저승사자 도망간다
  • 정희상 기자 (hschung@sisapress.com)
  • 승인 1996.09.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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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생물학적 수명은 120세…“꾸준한 운동이 최대 장수 비결”
 
무병과 장수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염원이다. 예로부터 절대 권력을 행사하던 왕들은 늙지 않는 비법을 찾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대표적인 예가 중국 진시황이다. 그는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우리나라에까지 사신을 보냈다는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로 장수에 집착했다. 그러나 이런 진시황도 고작 49세로 생을 마감했다.

선조 역대 왕들 역시 무병장수를 위해 기울인 노력이 비상했다. 그러나 그들의 평균 수명은 44세로 오늘날 한국인 평균 수명 72세에 비하면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조선의 최장수 왕은 영조(82세)였고 그 다음은 태조(72세), 정종(60세)이었다. 왕의 무병장수가 나라의 역점 사업에 속하는 시절이었는데도 오늘날을 기준으로 볼 때 ‘단명’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박상철 교수(서울대 의대·생화학)는 이렇게 설명한다.

평균 수명 낮은 저개발국에 장수자 많아

 
“몸에 좋다는 온갖 보약과 산해진미에 파묻혀 산 왕들이 영양 부족으로 일찍 사망했을 리는 없다. 왕들의 단명 원인은 크게 두 가지로, 극단적 운동 부족과 보약 중독이었다. 왕들은 심지어 요강 내시라 해서 생리 현상을 뒤치다꺼리해 주는 사람을 따로 둘 정도로 손끝 하나 까딱 않는 운동 부족 상태에서 살았다. 또 오늘날과 달리 중금속이 함유된 보약을 명약으로 알고, 태어날 때부터 보약에 의존한 것도 단명의 한 요인이다.”

무병장수에 필사적으로 매달린 왕들의 수명이 그 정도였으니 일반 백성들의 평균 수명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10세기께 선조들의 수명은 평균 20세였고, 그로부터 천년이 흐르는 동안 고작 30대까지 늘어나는 데 그쳤다. 이런 인간의 평균 수명이 비약적으로 늘어난 것은 20세기 들어서이다. 의학과 보건 환경 개선에 힘입어 오늘날 많은 문명 국가에서 평균 수명은 60∼80세까지 치솟았다. 이제 각국 정부는 자국민의 평균 수명을 100세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설정해두고 있을 정도이다.

현재 인간의 수명 판정에는 평균 수명과 100세 이상의 ‘세기인(centenarian)’의 숫자를 비교하는 방법이 사용되고 있다. 흥미있는 사실은 지구촌에서 선진국 국민의 평균 수명은 70세 이상이지만 100세 이상 장수자 숫자로 보면 오히려 평균 수명 50세 안팎인 피지·하이티 등 저개발국가가 선진국보다 많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 박상철 교수는 “선진국에서는 위생·영양 상태가 좋아 전반적으로 오래 살지만 후진국에서는 약한 사람들은 젊을 때 도태되고 강건한 자들만이 생존해 남아 백 살을 넘게 된다”라고 분석한다.

의학계에서는 세계의 장수 마을로 알려진 저개발국의 특정 지역들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런 지역의 호적이 백년 전에는 제대로 정리되어 있지 않았다는 것이 이유인데 우리나라에서도 장수 마을로 불리는 곳이 의학적으로는 인정을 받지 못한다.

과연 인간의 수명은 노력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늘어날 수 있는 것일까. 현대 의학은 인간의 생물학적 수명(천수)을 115∼120세로 잡고 있다. 자연 상태에서 제일 오래 살 경우가 그렇다는 것이고, 그 이상은 노화(늙어감)가 가로막고 있어서 어렵다는 결론이다. 대부분의 인간이 이론적으로 가능한 120세를 다 살지 못하는 것은 여러 가지 원인으로 노화가 자연스럽게 진행되지 못하는 데서 말미암는다.
사람이 늙어가는 원인을 찾고, 그것을 방지하거나 지연시켜 수명을 늘리고자 하는 노력은 현대 의학의 커다란 관심사 가운데 하나이다. 노화 현상과 관련해 황수관 교수(연세대 의대·생리학교실)는 “인체의 생리학적 기능은 대부분 20대 후반부터 감소하기 시작하는데 이를 노화의 시작으로 본다. 세포의 집합체로 구성된 인체에서 20대를 넘어서면서 세포 수가 줄어들고 세포 내에 불필요한 물질이 축적되어 기능이 감소하다가 끝내 수명을 다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한다. 인간 생명의 기본 단위인 세포에 퇴행성 변화들이 일어나고 이에 따라 환경 적응 능력과 활동 능력이 계속 낮아짐으로써 여러 가지 병에 걸릴 가능성도 그만큼 커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체에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데 대해 정확히 원인을 규명하는 일은 아직도 의학의 숙제로 남아 있다. 20세기 들어 전개된 노화 이론만도 3백 가지 이상이지만 크게 두 가지 학설로 간추릴 수 있다.

DNA 조작 통한 노화 늦추기 연구도 활발

그 중 하나가 환경설이다. 인간은 살아가는 과정에서 유해 물질, 독소, 우주선, 자외선, 방사선 등 외부 환경 요인에 노출됨으로써 세포와 조직의 주요 부분이 마모되거나 기능이 약해지는데 이 과정이 노화라는 것이다. 박상철 교수는 환경설과 관련해 “최근 특별히 주목되고 있는 것은 유해 산소설이다. 사람이 호흡하는 과정에서 산소는 미토콘드리아라는 세포 소기관에서 대사 산물의 완전 산화에 이용되는데, 유해 산소 때문에 산소래디컬이 생성돼 세포내 핵산·단백질·지질·당 등에 산화성 손상을 일으킨다. 이 산소래디컬은 동맥경화·암·관절염 등과 노화의 요인으로 주목되고 있다. 따라서 유해 산소가 다량 생성될 수 있는 요인을 피하는 것이 노화 방지의 주요 방안으로 제안되고 있다”라고 설명한다. 인체 내에는 이러한 래디컬 손상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는 다양한 장치가 있는데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비타민 C·E와 베타카로틴 등 항산화 비타민을 식품에 첨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환경설과 더불어 노화의 원인을 설명하는 이론 가운데 최근 집중적인 관심 대상이 되는 것은 유전자 기능설이다. 53년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의 과학자 프랜시스 크릭과 제임스 왓슨이 처음 발견한 ‘DNA 이중 나선구조’를 기초로 전개된 이 이론은 한마디로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유전 정보에 이미 수록된 프로그램대로 늙어간다는 논리이다. 이중 나선의 DNA(게놈) 속에 인간 생명, 성숙, 신체 특성, 색깔, 지능, 행동, 질병 유전인자 등 모든 것이 입력되어 있는데, 이에 따르면 인간 생명의 한계는 115∼120세이다.

김건열 교수(단국대 의대 학장)는 “귀중한 생명의 자료를 간직한 DNA가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방사선, 대기·수질 오염, 흡연 등 각종 인간 주거환경 오염 요인에 의해 계속 손상되어 본래의 DNA 보수기능(repair function) 한계를 넘어설 때 인체 세포는 노화의 길을 밟게 된다는 이 이론은 노화 원인에 대한 여러 설명 중 가장 유력하게 인용되고 있다”라고 밝힌다.

“균형 있는 식사가 가장 값진 보약”

이에 따라 세계 각국에서는 현재 세포 노화에 관련된 DNA 구조를 조작할 수 있는 의학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94년부터 과학·기술 분야 국책사업으로 ‘게놈 분석 이용기술 개발연구’에 착수했다( <시사저널> 제318호 특집 ‘의학혁명, 게놈 프로젝트’참조).

이처럼 현대 의·과학이 유전인자 조작을 통한 ‘첨단 불로초’개발에 도전하고 있지만 인류가 언제까지나 그 결과만을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현실 속에서 노화를 조절할 수 있는 여러 방법이 있는데도 적극 활용되지 않는다는 것이 의사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박상철 교수는 “노화를 지연시켜 수명을 연장하려면 무엇보다 먹는 일과 활동하는 일에 대한 자신의 생활 유형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특히 사람들은 장수를 위한 특별한 보약을 희구하고 있으나 균형 있는 식단 외에 권장할 만한 것은 없다. 또 나이가 들수록 반드시 몸을 움직여야 한다. 적극적인 운동이야말로 늙어가는 몸의 조직 퇴행을 지연시키는 최상의 방법이다”라고 말한다.

세계 장수 마을들을 대상으로 한 여러 연구 결과에서도 이들의 식단에 특별한 공통점이 별로 없음이 밝혀졌다고 한다. 다만 비록 가난하게 살지라도 늙어갈수록 적극적으로 일상 생활에 참여하는 생활 방식만이 그들의 공통점이었다. 결국 오래 살기 위한 인간의 꿈은 자신의 몸을 믿고 적극적으로 활동함으로써만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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