쿤사·포유창과 호형호제하는 김종민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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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1996.11.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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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방 지역을 돌며 마약의 대안으로 발견한 것은 그곳에 널려 있는 엄청난 광물 자원이었다. 한국 기술과 자본의 선각자적 진출이 아쉽다.”
전세계에 공급되는 헤로인의 70%가 생산된다는 동남아 마약 산지 골든 트라이앵글에 수년째 출입하고 있는 한국인이 있다. 쿤사·포유창 등 이 지역 쟁쟁한 마약왕들과 호형호제하며 지내는 사이인 그는 선교사 김종민씨(46)이다.

김씨가 세계적 오지이자 무법 천지로 알려진 골든 트라이앵글 마약지대에 첫발을 내디딘 때는 91년 4월이었다. 당시 수도침례신학교를 거쳐 미국 캘리포니아 신학대학원에서 선교학 석사학위를 받은 김씨는 마약왕 쿤사에게 선교하겠다는 목표로 혼자 골든 트라이앵글에 들어갔다고 한다.

“쿤사와 세 차례 만나면서 그에게 기독교를 전도하는 데 성공했다. 쿤사가 수도 호몽에 교회 세울 부지를 내놓았지만 전투가 심해 계속 활동할 수 없었다.”

미얀마 정부군과 쿤사의 라이벌 포유창 군대가 연합해 쿤사를 압박하던 상황이라 당분간 선교 활동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김씨는 쿤사 지역보다 더 깊숙한 곳으로 발길을 돌렸다고 한다. 와방 정부가 통치하는 와족 지역이었다. 94년 9월 와방을 처음 방문한 김씨는 당시 와방 정부 주석이던 자오은라이를 만났다. 다행히 자오은라이는 원래 기독교인이라서 와방에 처음 찾아온 이 외국인 선교사를 환대했다. 그는 김씨에게 수도 팡상 언덕에 땅 2천평을 내주며 교회를 지어 선교하도록 허락했다. 김씨는 그해 12월24일 교회를 준공했다.

김씨에게 감동, 광산 개발권 한국에 주기로

교회를 지으려고 수 차례 방문하면서 김씨는 와방 지역이 엄청난 마약 산지임을 두 눈으로 확인했다. 그리고 마약을 퇴치하지 않고는 어떤 변화도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한다. 95년 자오은라이가 중풍으로 쓰러지자 와연방군 총사령관이던 포유창이 주석 직까지 겸함으로써 와방의 전권이 그에게 넘어갔다. 김씨는 다시 포유창을 설득했다. 마약도 없애고 경제도 발전시키자는 구상이었다. 이에 대해 김씨는 “내가 와방 지역을 돌며 마약 퇴치 수단으로 눈뜨게 한 것은 그곳에 널려 있는 엄청난 광물 자원이었다. 그들은 수십 년간 게릴라전과 아편 재배만 하느라 광물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었다. 나는 우선 경제성을 확인하기 위해 광물 샘플을 가지고 10여 차례 한국을 오가며 성분을 분석했다”라고 말한다.대한광업진흥공사에 광물 자료 분석을 의뢰한 결과 주석 은 아연 철이 함유된 광석들은 품질이 세계 최고라고 판명되었다. 주석만 해도 함량이 37%로 역시 세계 최고였다. 이같은 광물은 와방에서 땅을 2~3m만 파헤치면 수㎢에 걸쳐 널려 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마약을 퇴치하고 와방 주민에게 문명의 바람을 넣어주겠다는 김씨의 활동에 감동한 포유창은 앞으로 20년간 와방 지역의 광산 개발권을 한국에 주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그러나 세계적 오지이자 마약 전쟁 지대인 이곳에 선뜻 투자하겠다고 나설 광산업자가 없었다. 더구나 김씨는 마약 장사꾼을 빼고는 세계 어느 누구도 출입을 꺼리는 골든 트라이앵글 지역에 자주 출입한다 해서 오해도 많이 받았다. 특히 지난해 10월에는 쿤사 지역에서 생산된 헤로인 3.5㎏이 국내에서 적발되자 김씨도 마약 상인으로 오해 받아 귀국 후 수사당국에 붙들려가 오랫동안 조사를 받기까지 했다.

“지금도 오해하는 사람이 많지만 하나님 뜻을 좇아 지구촌에 마약 생산 근거지를 없애겠다는 일념으로 일하니까 거리낌은 없다. 와방의 경우 잠재력이 커 한국 기술과 자본의 선각자적 진출이 아쉬운 때이다.”

김씨는 쿤사가 항복한 뒤 포유창이 사실상 골든 트라이앵글의 패권자로서 안정을 이루고 미얀마 정부와 협력하니까 대만·일본·홍콩 기술자들이 눈독을 들여 찾아오고 있다며, 한국에서 마약 퇴치와 광산 개발에 뜻있는 사람들이 동참하기를 간절히 호소한다. 한국 업자에 의한 광산 개발이 성사되면 농업기술진과 선교진을 이끌고 들어가 세계적 마약 산지를 복음의 땅으로 바꾸겠다는 것이 그의 포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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