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움직이는 10인
  • 김 당 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1996.10.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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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7주년 기념 여론조사/YS·DJ·JP 1~3위 확고…이 회창·이홍구 ‘오름세’…김윤환·최형우·박찬종 ‘내리막’
한국 사회는 이른바 두 김씨와 <조선일보>·KBS 그리고 삼성·현대가 움직인다. 적어도 한국의 10개 분야 전문가 집단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시사저널>이 창간 7주년 기념일에 맞춰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라는 명제를 내걸고, 여론조사 전문 기관인 코리아리서치센터에 의뢰해 실시한 ‘한국 사회의 영향력’ 조사 결과에 따르면 특히 정치·경제·언론 세 영역에서 두드러진 ‘빅 2’의 영향력은 절대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시사저널>은 한국을 움직이는 힘과 시대 상황에 따른 힘의 변화를 추적하기 위해 89년 창간한 해부터 해마다 같은 작업을 해왔다. 다만 올해의 경우, 설문조사 기간(9월16∼23일) 중에 북한 잠수함 침투 사건(9월18일)이라는 변수가 발생했다. 그러나 이번 조사에서 군부·안기부 같은 대표적인 체제 유지적 국가 기구의 영향력은 지난해보다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잠수함 변수가 전체 응답에 미친 영향은 가늠하기도 어렵지만, 특히 인물의 영향력에 대한 응답에는 거의 변수로 작용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편집자>

전례 없는 북한의 잠수함 침투 사건(9월18일)은 온 국민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공교롭게도 미묘한 시기에 북한 정부(또는 주민)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한국 외교관 피살 사건(10월1일)이 발생한 데 이어, 판문점에서 열린 미·북한간 군사정전위 비서장 회의(10월2일)에서 북한 인민무력부의 ‘백배 천배 보복’ 메모가 전달되고, 국방부가 전군에 비상경계령을 발령(10월2일)함에 따라 국민의 안보 불안 심리가 급속도로 확산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김영삼 대통령이 여야 영수회담(10월7일)에서 발언한 ‘북한 도발 때는 전면전을 불사한다’는 대북 응징 메시지는 대북 경고를 겸한 대국민 불안 심리 해소용이라고 볼 수 있다. 대북 경고용이라면 유엔이나 제3국의 외교 통로로 전달할 수도 있고, 담화나 언론을 통해 천명할 수도 있는데 굳이 YS가 DJ와 JP를 불러다 놓고 대북 메시지를 밝힌 것은 국민을 안심시키기 위해서였다는 관측이다. 실제로 회담의 의제 자체를 안보로 한정한 까닭도 있지만, 이 날 ‘안보 영수회담’에 참석한 여야 총재들은 모처럼 한 목소리를 냈다.
이홍구·김우중·이수성 ‘등장’

이처럼 ‘안보에는 여야가 따로 없는’ 모습을 연출하는 것이 김영삼 정부에게 필요했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3김의 영향력이 막강함을 드러낸 것이다. 실제로 한 여당 중진 의원은, 60만 대군이 해소하지 못한 불안 심리를 여야 영수회담이 가라앉혔다는 사실은 한국 사회에서 3김의 영향력이 건재함을 드러낸 것이라고 풀이했다.

이번 조사에서도 한국 사회 전체에 미치는 3김의 영향력, 특히 양김의 영향력은 절대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김영삼 대통령의 경우 89년(5위)·90년(3위)·91년 (3위)을 제외하고는 줄곧 1위로 나타났으며, 김대중 총재 또한 조사 첫해인 89년(3위)을 빼고는 줄곧 2위를 고수해 왔다. 특히 북한 변수와 관련해 통일 한국 대통령감을 묻는 설문에 김대중 총재가 1위로 지목된 점이 눈에 띈다(32쪽 상자 기사 참조). 또 김종필 총재는 ‘만년 2인자’에 머무르던 94년까지만 해도 6위에 그쳤으나 지난해 당을 박차고 나오면서부터 부활한 ‘후 3김 시대’의 3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응답자별 특성을 보면, YS에 대한 응답률은 정치인(85.3%)과 언론인(84.2%) 집단에서 상대적으로 높았으며, DJ에 대한 응답률은 정치인(59.8%)과 법조인(51.0%) 집단에서 상대적으로 높았다. 또 JP에 대한 응답률도 정치인(36.3%)과 법조인(32.4%) 쪽에서 상대적으로 높았다.

‘한국을 움직이는 10인’ 안에 3년 연속 포함된 인물에 대한 응답자별 특성을 보면 김수환 추기경(4위)에 대한 지목률은 정치인(21.6%)과 대기업 임원(21.0%)에서, 이건희 회장(5위)·정주영 명예회장(6위)에 대한 지목률은 둘 다 언론인(30.7%·11.9%) 집단에서 높게 나타났다. 특히 이건희·정주영의 막강한 영향력은 이번 조사에서 삼성·현대가 ‘국민 경제에 가장 영향력 있는 대기업’으로 나타난 것에서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48~49쪽 기사 참조).

전체적으로는 95년도 조사 결과와 비슷한 구도를 보였는데, 10위권 안에 새로 편입된 인물은 이홍구 신한국당 대표(8위), 김우중 회장(9위), 이수성 총리(10위)이다. 이 중에서도 특히 주목되는 인물은 이홍구 대표와 특별한 직책이 없어도 지난해 10위에서 7위로 상승한 이회창 신한국당 고문이다(38~39쪽 기사 참조). 특히 이회창 고문의 떠오름은 이번 조사에서 ‘신한국당 차기 대권 후보 1위’로 지목된 데서 알 수 있듯, 차기 대권 주자 가능성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영향력의 상관 관계를 밝혀 주는 각종 설문에서 이회창 고문은 △전체 영향력 7위 △신한국당 차기 대권 후보 1위 △통일 한국 대통령감 3위 △대통령에 대한 영향력 8위로 비중 있게 지목되었다. 또 이홍구 대표도 △전체 영향력 8위 △신한국당 차기 대권 후보 2위 △통일 한국 대통령감 4위 △대통령에 대한 영향력 1위로 지목되었다. 난형난제(難兄難弟)라고 하리만큼 우열을 가리기 힘든 두 이씨의 영향력은, 대권 후보 선출에서 현직 대통령의 의중이 절대적으로 작용하는 여권의 역학 구도로 보아 매우 흥미롭게 관찰할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대통령을 제외하고 한국 사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집단·세력을 조사한 결과는 지난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목률이 10% 이상인 상위 집단·세력은 △여·야 정치 집단(32.7%) △언론(19.4%) △재계(18.0%) △청와대 비서실(10.3%) 순이었다. 이 중 응답자별 지목률을 보면 △정치 집단은 대기업 임원(41.0%)에서 △언론은 정치인(27.5%)에서 △재계는 언론인(29.7%)에서 △청와대 비서실은 교수·학자(16.8%) 집단에서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YS의 측근·사조직 영향력, 헌정 기구 압도

영향력 순위를 지난해와 단순 비교해 볼 때 학생(95년 8위)과 안기부(95년 9위)가 한국을 움직이는 10개 집단·세력에서 동반 탈락한 반면, 종교 단체(9위)와 검찰(10위)이 새로 진입했다. 이번 조사에서 검찰이 모처럼 10위권에 진입한 것과 정·재계가 언론의 영향력에 대해 상대적으로 높은 지목률을 보인 것은 둘 다 전·노씨 비자금 사건으로 호되게 홍역을 치렀던 쓰디쓴 경험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그러나 지난해와의 순위 변화를 보면, 대통령을 제외했는데도 청와대 비서실(4위·10.3%)이 행정부(6위·2.7%)를 압도한 것이나, 지난해에는 상당한 포인트 차로 재계에 뒤졌던 언론이 올해 재계를 제치고 2위로 떠오른 것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이는 김대통령이, 국민에게 책임을 지는 내각보다는 대통령에게만 책임지는 참모 조직에 더 의존하고, 특히 여론(언론의 영향력)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상관 관계는 ‘김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영향력 있는 집단·세력’을 묻는 조사에서 △청와대 비서실(1위·44.1%)과 △PK 인맥(2위·26.2%) 같은 측근·사조직이 △정부 각료(4위·3.2%) △국회(6위·2.3%) 같은 대표적인 헌정 기구를 압도한 것에서도 확인된다. 이같은 전반적인 영향력 조사 결과는 한국 사회를 움직이는 힘의 실체 및 변화와 함께 그 힘이 잘못 쓰이고 있다는 것도 새삼 확인시켜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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