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저널>이 추적한 무기 도입 비리
  • 정희상 기자 (hschung@sisapress.com)
  • 승인 2004.05.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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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취에 녹슨 신무기들
연간 20조원에 달하는 국방 예산이 투입되는 군수 분야는 군 비리의 온상이다. 국방 전문가들은 군수 비리를 바로잡아야 한국군이 신뢰받는 국군으로 거듭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기업으로부터 노골적으로 자금을 받을 수 없었던 김영삼·김대중 정권 시절, 정권의 비자금은 무기 도입 사업에서 나왔다는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국가 안보 분야라는 방패막이에다 정권 실세 및 군 내부 실세들이 개입했다는 점 때문에 아직까지 제대로 수사가 이루어진 적이 없었다.

창군 이후 무기 도입 비리에 대해 수사하는 시늉이나마 냈던 때는 1993년 김영삼 정권 초반에 실시된 율곡사업 특별감사였다. 그러나 율곡비리 수사는 당시 수사 사령탑이던 이회창 감사원장이 아들 수연씨의 병역 비리 덫에 걸려 좌절된 사례이다. 오랫동안 무기 도입 비리를 내사해온 군 수사 및 정보 관계자들은 역대 정권의 무기 도입 의사 결정의 핵심 축이 김영삼 정부 시절 권영해씨에서 김대중 정부 시절에는 천용택씨로 이어졌다고 파악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정부가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2백조원에 육박하는 국민 혈세를 투입해 추진하고 있는 율곡사업과 방위력 증강사업의 첫 단추는 안기부장과 국방부장관을 역임한 권영해씨이다.
김영삼 정부 시절 군부 사조직 ‘하나회’를 척결하고 핵심 실세로 자리 잡은 권영해씨는 무기 중개상인 이영우 AM코퍼레이션 대표와 깊숙한 인연을 맺고 있었다. 이영우씨는 프랑스산 미사일 미스트랄 도입 사업의 에이전트였다. 그 전까지 별다른 군납 사업 실적이 없던 이씨는 권영해씨와 만나 프랑스산 미스트랄 도입 사업을 성공시켰다. 이영우씨는 이 사업을 성사시킨 대가로 프랑스로부터 산업기사 작위(훈장)를 받았다. 한진그룹 조중훈 회장과 대우 김우중 회장에 이은 세 번째 훈장이었다.

미스트랄은 도입 결정 과정에서 해군의 반대는 물론 경쟁 기종(미국의 스팅어 미사일)과의 성능시험 비교 평가 등에서 말썽이 많았다. 김영삼 대통령이 우여곡절 끝에 미스트랄 도입을 최종 결정한 때는 김대중 대통령 당선 직후인 1998년 12월이었다. 당시 천문학적 규모의 로비 자금이 권영해씨의 해외 계좌로 들어갔다는 주장이 제기되었지만, 김대중 정부는 권영해씨를 북풍 사건으로만 기소했을 뿐 무기 도입 비리에 대해서는 손대지 않았다.

김대중 정부 들어서는 천용택 전 국방부장관이 무기 도입 과정에서 실세였다. 권영해씨 밑에서 무기 도입 실무를 담당했던 군 실무자와 무기 중개상은 국민의정부 들어 그대로 천용택 라인으로 넘어갔다. 지난해 12월 청와대 직속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이원형 전 국방부 품질관리소장과 무기중개상 AM코퍼레이션 이영우씨, 그리고 한국레이콤 정호영씨를 무기 도입 비리 혐의로 구속하고 그 배후 인물로 천용택 전 국방부장관을 지목해 소환 조사했다. 그 결과 지난 4월2일 서울 중앙지법은 이원형씨에게 징역 6년에 추징금 1억6천만원을, 정호영 한국레이콤 회장에게는 징역 1년을 각각 선고했다.

그러나 이들의 구체적인 비리 내막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시사저널>이 추적한 결과 이들이 개입한 주요 사업은 크게 세 가지이다. 먼저 오리콘 대공포 개량 사업 비리는 총 5백60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청와대 주위와 수도권에 배치된 대공포 성능을 개량하는 사업을 둘러싼 비리다. 이 사건은 1998년 기원전자의 정호영씨가 천용택 장관에게 로비해 사업권을 획득한 뒤 대부분의 사업비를 착복했고, 이원형 품질관리소장에게 로비해 하자가 있는 제품을 납품했다는 것이 요지다. 2002년 오리콘 성능 개량 사업이 종료된 뒤 대공포의 성능은 이전보다 오히려 떨어진 것으로 드러났다.

정호영씨는 1992년 윤석양 이병의 보안사 민간인 사찰 폭로 이후 기원전자라는 회사를 설립해 기무사에 납품하는 군납업자였다. 그 후 기원전자는 주로 통신장비의 비화기(도청방지장치)를 제작해 국방부에 납품했는데 송응섭 고문(육사 16기, 예비역 육군 대장) 이학건 사장(육사 16기, 예비역 육군 준장) 등 천용택씨의 육사 동기 2명과 예상오(육사 22기, 예비역 육군 소장) 김정호(육사 23기, 예비역 보안사 준장) 유보선(육사 25기, 국방부 차관) 등 군 고위 간부들이 관여한 것으로 드러났다. 유보선 국방부 차관은 이에 대해 “교통비만 2백만원씩 받았을 뿐 별다른 로비를 한 적은 없다”라고 주장했다.

케이블 어셈블리 납품 사업 비리는 연합정밀 김인술 대표와 문일섭 국방부 획득실장, 이원형 국방부 품질관리소장이 연루된 사건이다. 무기상 김인술씨는 육군의 통신장비 획득 사업인 스파이더에 들어가는 각종 케이블 어셈블리 납품권을 따내는 과정에서 군 간부와 결탁해 다른 회사의 권리를 가로챘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스파이더에 들어가는 케이블과 커넥터는 100여 종인데 당시 광남텔레콤이 대부분을 국산화했고, 정호영씨의 한국레이콤과 셀렉트론이 23종의 케이블을 수입해 납품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문일섭 장군과 이원형 장군이 주계약자인 삼성탈레스에 압력을 가해 기존 납품업체인 광남텔레콤의 납품 계약을 취소시키고 연합정밀로 교체했다는 혐의다.
이밖에도 이원형 국방부 품질관리소장은 국산화 규정을 손질하는 방법으로 연합정밀에 특혜를 부여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이런 특혜 과정에서 뇌물을 수수한 혐의가 드러났으며 성능 미달 제품을 납품한 사실도 밝혀졌다. <시사저널> 추적 결과 이 사업의 비리에 대해서는 2001년 국감 당시 한나라당 박 아무개 의원과 민주당 정 아무개 의원이 알고서 문제를 삼으려다가 뇌물을 받고 덮어준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대규모 무기 도입을 둘러싼 더 큰 비리 의혹 사건들은 아직 수사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권영해씨가 군 실세이던 10여 년 전부터 추진하기 시작해 천용택 장관과 문일섭 획득실장 재직 시절 집행이 강행된 주요 무기 도입 사업은 다음 여덟 가지이다. 미스트랄 휴대용 대공유도탄, 백두 통신감청 정찰기 및 금강 영상정보 수집 정찰기, 다연장 로켓(M-270) 및 지대지 미사일(ATACMS), 이스라엘제 무인항공기(Surcher), 훈련용 경비행기(CAP-10B), 경전투 헬기(BO-105), 동부지역 전자전장비, 인도네시아산 수송기(CN 235-200M).

군 검찰은 일반 검찰과 합동 수사를 통해 이들 사업을 둘러싼 구조적 비리 의혹을 파헤쳐 무기 도입 과정의 투명성을 제도화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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