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지리학과 생긴다
  • 김은남 기자 (ken@sisapress.com)
  • 승인 1996.10.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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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대, ‘道敎 대학원’ 세워 본격 강의 준비…“학문으로 인정하기 이르다” 경계론도
 
대학원에서 풍수 지리를 배운다. 이론과 현장 실습을 겸해서이다. 졸업 후 시험을 통과하면 ‘풍수사’ 자격증도 받는다. 풍수가 직업으로 공인되는 셈이다.

이같은 시나리오를 배경으로 ‘도교 대학원’ 설립 구상이 착착 진행되고 있다. 국내 최초의 ‘모험’을 감행하는 주체는 충남의 대전대학교이다. 97학년도 개원을 목표로 교육부에 설립 신청서를 제출해 놓은 대전대는 인가가 떨어질 날만 기다리고 있다.

설립 신청서에 따르면, 도교 대학원 정규(석사) 과정에는 역학과·단학(기공학)과·풍수지리학과가 설치된다. 이를 위해 대표적 유학자인 유승국 박사(전 성균관대 교수), 무속과 풍수 지리의 권위자인 서정범 교수(경희대)·최창조씨(전 서울대 교수) 등을 초빙할 계획도 서 있다. 추명학(推命學)·관상학·잡술학 따위도 1년 단기 과정으로 개설된다. 문제는 이들 대부분이 주류 학계로부터 아직 ‘학(學)’으로 인정 받지 못한 분야라는 사실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기대 반, 우려 반으로 도교 대학원 설립 움직임을 바라보고 있다.

지난 2∼3년간 학계에서는 풍수 지리 논쟁이 뜨겁게 벌어졌다. 논쟁은 이기백 교수(한림대·사학)가 <한국사 시민강좌> 제14집에 ‘한국 풍수지리설의 기원’이라는 논문을 실으면서 촉발되었다. 이교수는 풍수 지리를 과학으로 자리매겨야 한다는 최창조 교수의 주장을 겨냥해 ‘땅을 고르는(擇地) 기술을 과학이라 할 수는 없다’ 또는 ‘풍수지리설의 이론적 근거가 되어 있는, 땅에 생기가 통하는 기맥(氣脈)이 있다는 주장은 철학이라 할 수는 있을지 모르나 과학이라 하기는 힘들다’고 공격했다.

이에 대해 최창조 교수는 이기적인 속신으로 굳어진 잡술 풍수와 ‘음양론과 오행설을 기반으로 주역의 체계를 주요한 논리 구조로 삼는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지리 과학’으로서의 정통 풍수를 구별하면서, 풍수 지리야말로 학문적으로 소박한 경험주의에 치우쳐 있는 오늘의 서양 지리학을 보완할 수 있는 대안이라고 옹호했다.

이같은 논쟁은 미신의 영역에 머물러 있던 풍수 지리를 학문 검증의 장으로 끌어내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학계가 더 이상의 논쟁을 외면했기 때문이다. 이기동 교수(동국대·사학)의 말마따나 ‘풍수지리설 자체가 미신적인 요소를 안고 있는 데다, 최근 들어 사주·관상 등 미신적인 운명론과 뒤범벅이 되어 유행하면서 더 큰 문제를 낳고 있는 상황’이어서, 성숙되지 않은 논의는 오히려 일반의 호기심만을 부추기는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었다. 도교 대학원에 대한 우려도 같은 시각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도교 대학원 설립을 주도하고 있는 조윤래 교수(대전대·철학과)는 “대학원 설립 방침이 알려진 이후 하루 평균 80여 통씩 문의 전화가 오는데, 대부분이 대졸 출신 지식인이다. 점쟁이·풍수쟁이 들이 ‘자격증’을 얻기 위해 몰려들 것이라는 애초의 우려는 기우였다”라고 강조한다. 이를테면 ‘한국 풍토에서 풍수를 몰라서는 제대로 된 토지 가격을 매길 수 없다’며 입학 의사를 밝힌 토지 감정사도 있다는 것이다.
 

“민속학 공부에 필수…풍수학과 설치 시급”

지난해부터 학부에서 교양 선택 과목으로 풍수를 강의하고 있는 김두규 교수(전주 우석대)는 건축·조경 계통 등 실무적인 필요에서 뿐 아니라 민속학·역사를 공부할 때도 풍수 지리는 반드시 넘어서야 할 관문이라고 전제하며, 막연한 호의 또는 무시라는 양극으로 치닫는 젊은층의 의식을 바로잡기 위해서도 대학 학부에 풍수학과를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풍수에 대한 젊은층의 관심은 최근 들어 증가하는 추세이다. 김두규 교수는 풍수를 수강하는 학생 수가 천명을 넘어서는 바람에 학점을 까다롭게 주는 고육지책까지 써야 했다고 말한다. 강의를 듣는 김현욱군(조경학과 3년)은 “최창조씨의 책이 인기를 끈 이후 풍수를 소재로 한 소설이 쏟아져 나오면서 학생들 사이에 풍수에 대한 관심이 부쩍 많아진 것 같다”라고 그 이유를 분석한다. 지난 5월 한국여성단체협의회가 서울·경기 지역에 거주하는 1천1백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20대 가운데 풍수지리설을 믿는다고 대답한 사람은 75.4%로, 50대 이상의 64.1%를 오히려 앞지르고 있다(표 참조). 어떤 형태로든 학계가 대응책을 세워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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