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풍수 대가의 계보
  • 정희상 기자 (hschung@sisapress.com)
  • 승인 1996.10.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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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곳곳에 풍수사 만여명 활동중…정치인·재벌이 주요 고객
명당 자리 찾아주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들이 있다. 풍수사 또는 지관이다. 이들은 나침반 모양으로 생긴 패철을 들고 기가 충만해 있다는 묘터나 집터를 찾아다닌다. 풍수사들 세계에서는 자기네 직업군이 전국적으로 40만명은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숫자에는 풍수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촌로나 호사가 들까지 포함되어 있어 과장된 것으로 보인다. 지리학계에서는 현재 전국적으로 풍수사들이 만~2만명 활동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역적으로 보면 시골보다 대도시에 풍수사가 더 몰려 있는데, 철학관·장의사·한약방 따위를 겸한 경우가 많다. 도시의 풍수사들은 학회를 결성해 정기 모임을 갖고 명당지를 골라 집단으로 답사한다. 지방 소도시나 농촌의 풍수사들도 대개 학회에 줄을 댄다고 한다.

풍수사들은 주로 음택(陰宅:조상의 묘터)을 잡는 일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그 외에도 선산을 구입할 때 부동산 가격을 감정하는 일, 기업 사옥 및 공장 터 잡기, 족보의 풍수지도 작성, 풍수학원 경영, 언론사 문화센터 풍수지리 강사 등 다양한 방면으로 진출하고 있다.

국내 풍수사들은 나름의 학맥으로 분류된다. 크게 이기론(理氣論)·형기론(形氣論)·잡기론(雜氣論) 세 가지이다. 이기론의 경우 만물의 이치를 주역 팔괘로 풀이하는 사주학을 풍수와 접목한 경우이고, 형기론은 산세의 형상을 중시해 풍수를 논하는 쪽이다. 이런 이유로 높은 산세가 많은 영남 지방은 전통적으로 형기론에 치우쳤고, 평야 지대인 호남 쪽은 이기론이 득세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잡기론은 전통적인 양대 풍수 이론과 달리 신통력·염력(초능력)과 같은 방법을 동원해 풍수를 꿰뚫는다는 쪽이다.

이 세 가지 학맥 중 이기론은 지창룡씨(한국역리학회), 형기론은 지난해 작고한 장용득씨(요산동지회), 잡기론은 손석우씨(한국족보학회)가 대부로 꼽힌다. 세 사람은 광복 후 한국 풍수계에서 가장 유명한 풍수사들이다. 그 중 일부는 공공 건물 부지 선정 및 정·재계 인사들의 조상 묘터를 잡아주는 데 단골로 나선 탓에 일반인들에게도 용하다는 풍수사로 알려졌다.
지창룡씨는 서울 을지로 6가에 있는 한 작은 건물 2층에 ‘지청호’라는 간판을 달고 50여 년째 풍수를 전업으로 해온 풍수사이다. 사무실 앞 비서실에는 자신의 50년 풍수 활동 역사를 담은 사진첩 다섯 권을 비치해 두고 있는데, 모두가 제1공화국부터 현 정권에 이르기까지 유명 인사의 장례식과 관련된 사진이다. 지씨는 자신의 풍수관을 이렇게 설명한다. “풍수의 으뜸은 효사상에 있다. 선대를 물구덩이에 넣고 편히 지낼 수 없으니 유해가 편히 쉴 수 있도록 양지바르고 물 안나는 곳으로 모시고자 하는 후손의 숭조(崇祖) 정신이 그 뿌리가 되었다. 그래서 21세기에 들어서도 동양적 사상 문화인 풍수는 그치지 않으리라 본다.” 명당을 찾아내는 비결과 관련해 그는, 공공 시설은 청룡·백호 등 지세가 맞아야 하는 데다 장풍 득수하는 곳이라야 하고, 묘터는 8풍받이를 피하는 것이 기준이라고 말한다. 산은 동물로 비유되는데, 현대 산업 사회에서 팔다리나 허리가 잘려 나가지 않은 곳이 드물어 이럴 때일수록 묘 쓸 자리를 가려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21세기를 내다보는 현대 사회에서 음택 풍수는 미신이 아니냐는 질문에 지씨는 버럭 역정을 냈다. “국내 역대 유명 정치인·재벌·총리 들 치고 이 사무실에 안 찾아온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하라. 그런 사람들이 돌아가서는 미신 타령을 하니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행동이다.”

지씨의 이기론과 대비되는 형기론의 대부인 장용득씨는 노태우 대통령 시절 청와대 본관을 신축할 때 터를 잡아준 뒤 자신이 무학대사의 법통 계승자임을 주장한 바 있다. 장씨가 세상을 떠난 후 형기론의 학맥은 제자 김종철씨(동아일보사 문화센터 풍수 강사)와 박시익씨(도봉건축사사무소 대표)가 이어가고 있다.
김종철씨는 “장용득 선생의 제자들은 주로 각 언론사 문화센터에서 풍수 강의를 맡고 있다. 우리 형기론은 다른 쪽과 달리 명혈(明穴)을 제대로 짚어낼 수 있다는 자부심으로 학맥을 계승하고 있다”라고 말한다. 김씨는 음택 풍수를 주로 다루고 박시익씨는 양택 풍수의 대가로 꼽힌다. 65년 한양대 건축과를 졸업한 뒤 일반 건축사로 일하던 박씨는 자기가 설계한 도면에서 집주인이 대문이나 안방 위치를 바꿔달라고 하는 일을 겪고 몹시 당황했다고 한다 “무슨 미신 같은 주문인가 싶었는데 그런 일이 자주 생기다 보니 풍수가 뭔지 알아야겠다는 생각에서 지관들을 찾아다녔다. 그 중 장용득 선생의 이론에 가장 설득력을 느껴 배우게 됐다.”

박시익씨는 그동안 서울·강릉·춘천 등에 ‘명당 건축’을 10여 가구 설계해 지었는데 지금도 계속 집주인에게 문제가 생기지 않는지 사후 관리를 하고 있다고 한다. 도봉구청 건축심의위원이기도 한 박씨는 건축사 사이에서도 풍수 전문가로 통해, 건설교통부가 매년 주관하는 전국건축사모임에 단골 강사로 나간다. 한국적 풍수 지리 정신이 담긴 건물이 한국 건축이 세계에 내세울 만한 자랑거리라고 강조하는 박씨는, 자신이 그것을 지어 세계 무대에 내보이는 것이 꿈이라고 포부를 밝힌다.

이기론과 형기론으로 대표되는 전통적 풍수법에서 벗어나 신통력이나 염력으로 명당을 찾아낸다는 파도 있다. 육관 손석우씨로 대표되는 잡기론이다. 손씨는 93년 자신의 저서 <터>를 통해 전주 모악산에 있는 시조 묘의 영향으로 김일성이 94년 음력 9월14일에 사망한다고 예언했다가 비슷하게 들어맞아 화제가 되었던 풍수사이다. 지난해 봄에는 ‘민족 영도자가 날 명당’이라며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 부모 및 가족 묘를 경기도 용인에 잡아준 사실이 알려져 주목되기도 했다. 손씨의 한 제자는, 육관 선생이 지난 봄 수백억 사재를 털어 사회복지법인 한우리평화재단을 설립한 뒤 노인 복지 및 국조 단군 선양 사업을 위해 한국·중국을 오가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근황을 전했다.

“국토 70%가 묘터로 부적합” 화장 권하기도

신통력으로 풍수를 꿰뚫는다는 풍수사로 최근 주목되는 인물은 모종수씨(40)이다. 현재 경기도 안양시 선거관리위원회 사무국장이기도 한 모씨는, 일간지 부음란을 보거나 전화 목소리만 듣고도 상대방 조상 묘자리의 길흉과 후손들의 건강 상태를 알 수 있다는 초능력 소유자이다. 이런 신통력 때문에 풍수사 세계에서 그는 일약 ‘초능력 풍수사’로 떠올랐다. 취재진은 모씨의 염력을 확인하기 위해 전화로 그와 인터뷰를 요청했다. 잠시 후 추를 전화기에 댔다는 그는 기자의 조상묘와 집터 등에 대한 해석을 길게 늘어놓았다. 모씨 본인은 스스로 지관이라고 표현했지만, 그가 말하는 내용으로 보아 풍수사라기보다는 초능력자임을 실감케 하는 경험이었다.

풍수사들은 대부분 음택 풍수를 다루면서 조상의 묘터가 후손의 길흉에 영향을 미친다는 원칙을 철저히 강조한다. 바로 이 점 때문에 혹세무민으로 공격 받기도 하고, 매장 문화를 부추겨 전국토의 묘지화에 앞장선다는 비난도 받는다. 그래서인지 취재진이 만난 대부분의 풍수사들은 ‘무조건 매장을 선호하는 것은 자손에 해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을 강조했다. 즉 명당은 평소에 덕을 쌓은 자에게만 문을 열어주는 법인 데다 국토의 70% 이상이 묘지터로서는 흉지이기 때문에 잘못 모셔 화를 입느니 화장하는 편이 낫다는 것이다.

어쨌든 음택 풍수가 미신이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는데도 이들이 그침없이 활동할 수 있는 입지는 국민 일반의 정서 속에 있는지도 모른다. 지난해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설문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의 70%가 묘지터와 관련해 풍수 지리를 믿는다고 답했다. 이 가운데 55%는 조상의 묘지 형태로 개인 묘를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바로 이같은 정서와 만여 풍수사가 공존공생하는 것이 오늘날 한국 사회의 한 자화상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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