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딩 숲속에도 地氣는 흐른다
  • 정희상. 김은남 기자 (ken@sisapress.com)
  • 승인 1996.10.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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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도시 건축에 풍수 원리 활발히 응용…건물 설계·아파트 배치에서 인테리어까지
 
전통적인 풍수사상으로 보면 서울을 비롯한 우리나라 대도시들은 그 자체가 명당이었다. 우리 조상들이 산세·지세·수세에 따라 인간이 살기에 가장 알맞은 조건을 갖춘 곳에 모여들면서 고을이 형성되고 발전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인구의 4분의 3이 거주하는 우리네 현대 도시에서 전통적 기준으로 풍수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 되었다. 도시의 풍수 환경을 보면 도로는 모두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로 덮여 있고, 가정집 마당도 거의가 땅이 호흡할 수 없는 시멘트로 덮여 있다. 이렇게 지기(地氣) 상승이 차단된 것만이 아니라 위로는 지기의 전달이 극히 미미한 초고층 건물들이 도시를 구성하는 주요소가 되었다.

예로부터 우리나라에는 큰 고을마다 진산(鎭山)이라는 개념을 두었는데, 서울의 북한산, 부산 금정산, 대구 팔공산, 대전 보문산, 광주 무등산 등이 그에 해당한다. 이들 진산은 해당 고을의 안녕을 보장하는 신령스런 성산으로서 깨끗이 보존해야 한다는 것이 조상들의 철칙이었지만 오늘날에는 그것이 사라졌다. 서울의 진산인 북한산 산허리에는 이미 허다한 건물이 들어섰다. 금정산·팔공산·보문산·무등산도 하나같이 케이블카가 설치되어 있고, 정상에는 철제 송신탑이 흉물스럽게 자리하고 있다. 이같은 실정 때문에 우리네 대도시들은 이미 풍수적으로 명당을 잃은 지 오래라는 말까지 나온다.

그러나 최근 들어 대도시들이 풍수적으로 완전히 버림받은 상태에 놓였다고만은 볼 수 없는 두 갈래 움직임이 일고 있다. 그 중 하나가 각 도시에서 일고 있는 지맥 복원을 위한 시민운동이다. 서울에서 벌어지고 있는 남산 제모습 찾기라든지 북한산 터널 시공 반대 운동, 대구 팔공산 골프장 이전 시민운동이 그에 해당한다.

이상적인 건물은 ‘가로=세로’ 정사각형

또 각 지역 진산 꼭대기에 자리한 송신탑을 이전해야 한다는 지역 여론도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다. 한국통신이 계룡산 최고봉인 천왕봉 정상에 설치한 통신용 대형 철탑을 98년까지 철거하기로 결정한 것이 그 예이다. 그동안 대전·충청 주민들이 산의 미관과 충청인의 정기를 해친다며 끊임없이 이전을 요구해 왔던 것이다.

 
도시 풍수와 관련해 최근 들어 널리 나타나고 있는 현상은 풍수 지리의 현대적 응용이다. 이런 흐름은 현대 도시 건축에서 설계, 입지 선정, 건물 배치, 조경, 방위, 형태, 실내 장식 등 선택할 여지가 있는 모든 부문에 걸쳐 풍수 원리를 적용하려는 노력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한필원 교수(한남대·건축공학)는 “한국의 대도시에서 양택 풍수가 활성화하는 것은 주거 공간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음을 뜻한다. 곧 과거처럼 주택을 투자·교환 가치로만 따지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삶의 공간으로 바라보게 된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주거 공간이 건강과 밀접한 연관을 가진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입증되었다고 한다. 90년대 초 독일의 건축생물학연구소가 전자탐지기를 이용해, 해로운 지기(자기장)가 집중된 지점에 집을 지으면 거주자의 건강을 해치고 암 발생을 증가시킨다는 사실을 밝혀냈다는 것이다.

현대 건축에 풍수 원리를 도입해야 한다고 먼저 주창한 사람은 건축사 박시익씨이다. 건축학 분야에서 풍수 지리를 적용한 논문을 써서 최초로 박사 학위를 받은 박씨는 현대 건축과 풍수 지리의 관계에 대해 “제한된 도시 공간일수록 건축에서 풍수 원리는 더욱 긴요하다. 비좁은 대지를 효과적으로 사용해 거주민이 편안하고 쾌적한 마음을 갖도록 하려면 우선 그 땅의 성질을 알고 배치 방법·방위·형태 등을 달리해야 한다”라고 설명한다.

그의 건물 길흉 판별법은 한마디로 가로·세로 비율로 모아진다. “풍수 원리에 따른 이상적 건물의 평면은 가로·세로 비율이 1 대 1인 정사각형이다. 얼마 전 헐린 서울의 화신백화점이라든지 현재 서울 종로 5가에 있는 기독교회관 건물 형태가 그렇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제한된 대지 여건상 정사각형을 만들기 어려운 경우가 많은데 이때도 가급적이면 가로·세로 비율이 1 대 2를 넘지 않도록 설계하는 게 좋다.”
건물의 가로·세로 비율이 현대 건축에서 길흉 판별에 기준이 되는 원리에 대해 그는 ‘기의 분산과 집중’으로 설명한다. 건물의 기가 분산되면 개인주의를 부채질할 뿐 아니라 바람을 많이 맞아 중심 기운이 분산되어 거주자에게 심리적으로 악영향을 끼치고 건강과 사업에도 해롭다는 것이다.

이런 원리에 따르면, 빌딩 모양에서 흉가 형태는 지난해 무너진 삼풍백화점처럼 가운데가 얇고 좌우가 뭉툭한 건물이라고 한다. 건물의 중심 기운이 좌우로 분산되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또 ㄱ자형으로 꺾인 건물이라든지 형태가 삼각형인 건물(또는 방)도 대표적인 흉가로 꼽힌다고 한다.

풍수 지리의 원리를 현대 건축 설계에 적용하고 있는 또 다른 건축사 박상근씨(양택건축연구소장)는 현재 서울의 빌딩들을 예로 들어 건물의 길흉 형태를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역시 가로·세로 비율이 정사각형인 건물이 이상적이지만 3 대 4 또는 3 대 5도 그 범주에 넣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삼성·대우·쌍용 그룹 본사와 63빌딩을 길(吉)한 건축 형태로 예를 든다. 반면 가분수형인 삼일빌딩, 삐죽이형인 용산 국제상사 건물 등은 흉한 형태라는 것이다. 서초동 법원 건물 역시 옥상의 양쪽이 높고 가운데가 낮은 형태라서 결코 길한 건축물로 볼 수 없다고 한다(표 참조).

아파트 5층 넘으면 地氣 도달 못해

아파트에 대해서도 풍수 원리가 적용된다는 것이 건축사들의 주장이다. 박시익씨는 이렇게 말한다. “외국인들은 우리나라 아파트 단지가 대부분 군대 열병식처럼 한일자형이라는 데 놀란다. 무조건적인 남향 선호사상 탓인데, 그로 인해 기가 분산되는 역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도시를 중심으로 만연되는 개인주의와 물질만능주의, 단결 저해 풍토 등은 이런 주거 환경으로도 설명할 수 있다. ”

그에 따르면 이상적인 아파트 배치 방법은 4각형이고, 단독 동도 길다란 일자형보다는 타원형 배치가 바람직하다고 한다. 또 아파트 평수도 작을수록 복가(福家)이고 면적이 클수록 흉가라는 것이다. 지나치게 집이 넓을 경우 주택 기운이 사람 기운을 누르기 때문이라는데, 가장 합리적 면적 기준은 1인당 최대 6평, 4인 가족 기준으로 실평수 25평 이내가 적당하다.

또 풍수 개념으로 본 ‘로열층’은 5층 미만으로 꼽는다. 지기가 미치는 범위를 나무가 자랄 수 있는 높이, 즉 10m 안팎이라고 볼 때 그렇다는 것이다. 이런 풍수 이론은 현대 과학으로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지상의 지자기는 0.5가우스로 측정되는데, 위로 올라갈수록 점점 낮아져 아파트 4층 높이에서는 0.25가우스로 떨어진다고 한다.

물론 같은 아파트 단지에서도 특히 지기가 흉한 곳이 있다는 주장도 있다. 이와 관련해 이성준씨(세진 풍수인테리어 자문회사 대표)는 “흉한 지기 위에 들어선 아파트는 마치 저수지처럼 나쁜 수기(水氣)와 풍기(風氣)를 저장하는 역할을 하는데, 서울의 개포동 주공아파트 백여 동 가운데 한 동이라든지 일산·분당 신도시 아파트 중 몇 동이 그렇다. 그런 곳에 사는 사람들은 신체 컨디션이 안좋은 현상이 나타난다. 건축회사도 그 사실을 알고 있지만 자투리땅 한뼘도 놀리지 않으려는 욕심이 무리수를 낳은 것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하루라도 빨리 그 건물을 떠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액자·화분 배치도 큰 영향 미쳐”


풍수를 응용한 현대 건축 분야에서 최근 들어 새롭게 각광을 받는 쪽은 풍수 인테리어이다. 풍수 인테리어는 주택·사무실의 공간 조성과 가구 배치에 풍수 원리를 적용하는 것이다. 가령 주택의 경우 현관·침실·부엌·화장실 등을 어떤 방위로 배치하느냐, 가구·가전제품·액자·화분 따위는 어떤 색깔을 선택해 어느 위치에 두느냐에 따라 거주자의 건강·심리·행운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이성준씨는 “앞으로 도시에서 건물을 지을 때는 전망이나 풍광보다 땅·바람·물의 에너지(기)를 먼저 고려해야 한다. 풍수를 제대로 적용한 인테리어는 개인의 건강과 기업의 능률을 좌우한다”라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주택에서는 대문·침실·부엌을 가장 중요한 3요소로 꼽는다. 대문은 집 전체의 방향과 다른 쪽으로 내는 것이 좋고, 침실은 방문·현관과 일직선으로 마주보는 형태를 피해야 한다고 한다. 또 아이들 공부방은 남쪽보다 북쪽에 배치해야 집중력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풍수 인테리어에 따르면 사무실도 업무에 따른 공간 배치를 달리해야 한다. 가령 재무 담당자는 나가는 문보다 들어오는 문, 또는 닫힌 문 옆에 자리를 정하는 것이 좋다. 또 영업 사원의 방은 조명을 밝게 해야 밖으로 나가 뛰고 싶은 심리를 불러일으키며, 건물 전체로 보면 앞뒤가 꽉 막혀 기의 흐름을 방해하는 도심 빌딩 숲보다는 시 외곽 쪽으로 나가는 편이 유리하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이미 지은 건물이나 주거 공간이라면 배치를 뜯어고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럴 때는 조명등의 크기나 밝기를 조절하고, 액자·화분 따위 소품을 적절히 활용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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