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의 더러운 땅 모두 포기하겠다"
  • 丁喜相 기자 ()
  • 승인 1997.09.04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매국노 송병준 증손 준호·돈호 씨, 상속권 국가 헌납 선언
광복 52주년을 맞은 올해 8월은 광복 정신과 동떨어진 소식 하나로 인해 어수선하게 밝았다. 지난 7월27일 서울 고법 민사부가 이완용 증손자 이윤형씨가 일제 때 증조부가 조성한 서울 북아현동 일대 7백여 평(시가 30억원대)을 돌려달라고 낸 소송에서 원고 이씨에게 승소 판결을 내린 것이다.

판결문 요지는 ‘친일파 땅이라고 해도 법률상 근거 없이 재산권을 빼앗을 수는 없고, 지나친 정의 관념이나 민족 감정은 법질서에 반한다’는 것이었다. 민감한 사건을 맡은 재판부로서 나름의 고충을 드러낸 것이기는 하지만 판결 결과는 즉각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광복회·독립유공자유족회 등 48개 민족운동 단체로 구성된 ‘바른 역사를 위한 민족회의’(회장 이강훈)는 판결 후 반박 성명을 내고, 매국노 재산 몰수를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나아가 14대 국회 때 상정하지 못한 매국노 재산 몰수를 위한 특별법 제정 운동을 다시 본격적으로 전개하겠다고 선언했다.

언론에도 이 판결을 의아해 하는 국민의 소리가 쇄도했다. 대다수 신문은 기사와 사설을 통해 광복 정신이 훼손된 현실을 개탄했다. 그러나 그 해법 찾기는 묘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개탄과 자조가 국민들의 마음을 암울하게 만들고 있던 지난 7월30일, <시사저널> 편집국에 한 사람이 찾아왔다. 친일파 송병준의 증손자를 대신해 왔다는 그는, 뜻밖에도 송병준의 후손이 송병준 명의로 남아 있는 전국 각지의 토지 상속권을 국가에 헌납하겠다는 의사를 국민에게 선언하고자 한다고 전했다.

그 날 경기도 하남시 감북동에 자리한 기독교 복지단체 ‘베데스타의 집’을 찾은 기자를 맞이한 사람은 송준호씨(66)였다. 그는 호적상 송병준의 직계 증손 중 가장 연장자이다. 그동안 이완용의 증손 이윤형씨와 마찬가지로 땅 찾기 소송을 벌이고 있는 사실이 언론에 널리 알려진 송병준의 후손 송돈호씨의 맏형 되는 사람이었다.

그 뒤 송준호씨는 <시사저널>을 찾아와 “증조부 명의 재산상속권을 국가에 헌납하려고 하니 국가기관과 연결해 달라”고 부탁했다. 굳이 <시사저널>을 통해 재산 상속권 포기 선언을 하려는 이유에 대해 그는 “지난 5년간 여러 차례 친일파 후손 땅 찾기 과정의 전모를 추적해온 기사를 보고 자기의 뜻을 제대로 성사하는 데 가장 적합한 매체로 판단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송돈호 “토지사기꾼 백여 명 ‘처리’해야”

송병준 명의로 남은 상속 가능한 토지에 대한 그의 입장은 일반인들의 생각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법치 국가니까 후손이 소송을 내면 법원에서 승소 판결을 내준다고는 하지만 국민적으로는 안되는 말이다. 나는 그 더러운 땅을 한 평도 갖지 않겠다. 다른 후손들도 모두 먹고 사는 데 지장 없으니 더 이상 바라지 않으리라 본다.” 이렇게 입을 연 그는 상속권을 국가에 헌납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49쪽 인터뷰 참조). 이어서 그는 변호사를 통해 자기가 확보하고 있는 송병준 명의의 토지 재산 목록 일체를 기자에게 넘겨주었다(47쪽 표 참조).

그의 선언이 진심이라면, 국민들에게는 친일파 관련 뉴스 치고는 광복 후 실로 52년 만에 접하게 되는 신선한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기자는 두 차례 그를 만나면서 국가 헌납 의지가 확고하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 그의 동생 송돈호씨를 찾았다. 송돈호씨는 그동안 송병준 명의의 재산 상속 소송을 주도해온 인물이기 때문이다.

송돈호씨는 오랫동안 소식이 끊겼다가 몇년 전에 나타난 형(송준호씨)과 호적 정리 및 선대 유산을 놓고 견해가 달라 갈등을 빚고 있다고 말했다. 매국노 후손이라는 손가락질은 그동안 자기 혼자 다 감당해 왔는데, 형제들조차 자기에 대한 오해가 많다는 것이었다.

기자가 송준호씨가 상속 가능한 증조부 명의의 모든 토지 재산을 국가에 헌납하기로 선언했다는 소식을 전하고 그의 입장을 묻자, 송돈호씨는 한참 생각에 잠긴 뒤 굳은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그동안 정부가 제대로 나서기 않았기 때문에 지금 국가에 헌납할 의사를 밝혀도 그것이 실현될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형님이 그렇게 선언했다면 형제 갈등과는 별개로 나도 헌납동의서를 제출하겠다. 국가 기관에서 찾아오기만 한다면 상속권 헌납에 동의할 것을 이 자리에서 확인한다. 다만 현재 5개 사회단체에 기증해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인천시 산곡동 땅 16만평에 대해서는 국가 헌납 대상에 넣기 어렵다는 생각이다. 이미 그들 단체에 기증했는데 그것을 철회하면 사회 통념상 새로운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고 본다.” 그는 이어 국가기관이 나서서 서울 시내에서 송병준 땅을 들먹거리며 먹고 사는 토지사기꾼 백여 명도 반드시 정리해 주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전국의 송병준 명의 땅 최소한 5백만평

이처럼 송병준 후손들이 토지 재산 상속권을 국가에 헌납하겠다는 의사를 공개함으로써 친일파 재산 처리를 둘러싼 사회적 논란은 새로운 전기를 맞을 것으로 보인다. 이들의 국가 헌납 의사가 받아들여지면 적어도 송병준이 조성한 토지에 한해서는 그동안 끊이지 않았던 잡음과 물의가 정리되는 발판이 마련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송병준 명의로 남은 전국의 땅은 얼마나 될까. 송준호씨가 기자에게 건넨 토지 목록을 보면 국내에만도 5백여만 평에 달한다. 그러나 이것은 일제 때 송병준이 조성한 땅을 가리킬 뿐 현재 모두 찾을 수 있는 땅이라는 뜻은 아니다. 전답의 경우 농지 개혁 당시 대부분 경작자의 손으로 넘어갔고, 임야도 강원도 철원·김화 등 민통선 이북을 제외한 지방의 것은 거의 모두 개인이나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문제는 최근 20년 이내에 정부가 무주물(無主物) 공고를 냈다가 송병준의 후손이 나타나지 않아 국가 기관 소유로 등기를 낸 땅의 경우 현행 민법대로라면, 후손들이 상속권을 행사하면 꼼짝없이 되돌려 주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후손들의 상속권 국가 헌납이 받아들여지면 끊임없는 소송 사태와 혼란의 근원을 없애는 효과도 거둘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송준호씨의 상속권 국가 헌납 결정 자문에 응한 임상대 변호사는 송병준 명의의 토지에 대해 “일제 때 송병준이 받은 땅 중 아직 미수복 상태로 남은 강원도 휴전선 일대 수백만 평을 국가에 기증할 경우 국가가 조사해 지적공부만 정리하면 될 것이다. 문제는 부당한 방법으로 자연인들에게 등기된 땅인데, 국가가 기증을 받으면 유형 별로 대책을 세워야 할 것 같다”라고 말한다. 그는 이어 송병준 후손의 상속권 헌납을 국가가 수용하면 실무팀을 구성해 송병준이 일제 때 조성한 땅 전체를 조사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후손들이 제출하는 서류는 토지 브로커들이 정부기록보존소에서 빼낸 것들 중 일부에 불과하고, 그나마 근거 서류도 완벽하지 않은 상태라는 것이다.
그동안 여론은 이완용·송병준 후손들의 유산상속 소송 행위 자체에 대해서만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그 내막을 들여다보면 또 다른 사회 문제가 도사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송돈호씨가 상속권 국가 헌납에 동의한다면서 국가 기관에 단속해 달라고 주문한 ‘송병준 땅을 들먹이며 먹고 사는 사람들’이 빚어내는 범죄가 그것이다.

이와 관련해 이완용·송병준 후손의 땅 찾기 소송이 80년대 후반부터 시작되었다는 점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이윤형씨는 89년 캐나다에서 귀국해 본격적인 소송에 나섰고, 송돈호씨도 89년 경기도 여주군 일대 임야를 되찾은 것을 계기로 연쇄 소송에 들어갔다. 그 배경에는 친일파 토지만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토지 브로커들이 있었다. 이들은 오래 전부터 정부기록보존소와 총독부 관보 등을 통해 친일파 토지 관련 서류를 입수해 두고 있다가 6공화국 들어 전국에 부동산 투기 열풍이 불어 땅값이 오르자 앞다투어 친일파 후손을 찾아나섰다.

이윤형씨는 92년 8월 <시사저널> 취재진과 처음으로 만나면서 “땅문서가 없어서 잊고 지냈는데 87년부터 토지 브로커들이 캐나다로 찾아와 수백만 평에 달하는 증조부 명의의 땅을 발견했으니 상속받으라고 권해 귀국했다”라고 밝힌 바 있다. 송돈호씨 역시 “나는 해방둥이라 선대의 땅에 대해서는 위치도 규모도 모르고 있었는데 토지 브로커가 증조부 땅 서류들을 들고 찾아와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문제는 토지 브로커들이 친일파 후손들을 발판으로 각종 사기극을 일삼는다는 데 있다. 이들은 이완용·송병준 후손에게 찾아가 소송을 부추긴 뒤 기증동의서나 소송위임장을 받아내, 이를 미끼로 사기극을 벌인다. 이에 대해 송돈호씨는 “얼마 전 고하 송진우 선생 기념사업회장이라면서 신 아무개씨가 찾아와 송진우 선생 추모 사업 자금으로 쓸 테니 증조부 명의로 남아 있다는 강원도 철원 임야를 기증해 달라고 했다. 사무실에까지 찾아가 확인하고 기증서를 써주었는데 얼마 뒤 가보니 간판을 떼고 도망갔다”라고 경험담을 털어놓는다. 이들은 후손들의 기증동의서를 받아내는 즉시 물주를 찾아나선다고 한다. 재력있는 상장 회사(주로 건설회사)를 상대로 ‘곧바로 승소 가능한 수천억원대 토지를 기증받았는데 소송·등기에 필요한 몇십억원만 대주면 승소 후 땅을 30% 주겠다’는 식으로 계약을 맺은 뒤 수억원대 계약금을 챙겨 잠적하는 수법을 쓴다.

토지사기단 세계에서 친일파 후손의 기증동의서 또는 위임장은 훌륭한 먹이감인 셈이다. 이번에 상속권 국가 헌납을 선언한 송준호씨도 최근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오는 토지 브로커들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한다. 어지간해서는 그들의 공세를 견디기 어렵다는 것이다. 20억원을 줄 테니 기증동의서를 써달라는 제안에서부터 천만원짜리 수표 30장을 건네며 소송위임장에 형제들 도장을 받아 달라는 주문까지 다양하다. 이럴 경우 토지 소재지는 브로커만 알고 있다고 한다. 이같은 실정에서 송병준 명의의 토지가 국가에 헌납되면 토지사기단의 온상을 일거에 제거하는 효과도 거둘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일제에 나라를 판 대가를 토지사기단의 이권 무대로 방치하고 있는 현실 역시 국민의 수치가 아닐 수 없다.

송병준 후손의 상속권 국가 헌납은 이완용의 후손 이윤형씨에게도 적지 않게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씨는 현재 캐나다에 살면서 수시로 국내에 오가며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5년 전 조용히 진행하던 17건의 연쇄 소송 사실이 <시사저널>의 추적 보도로 공개되면서 여론이 악화하자 변호사가 사임계를 냈는데, 그 후임으로 정성광 변호사가 이씨의 소송을 맡고 있다. 정변호사는 “92년에 사임한 유선호 변호사 후임으로 사건을 맡아 계류 중인 소송을 완결해 주기로 했다. 북아현동 30억짜리 땅 승소는 이윤형씨가 법원에 공시 송달로 진행한 사건이다. 나는 현재 경기도 광주에 있는 땅 중 저수지와 도로에 대한 소유권 확인을 구하는 소송을 맡고 있다. 농지개량조합을 상대로 보상을 청구하는 소송인데, 결과는 회의적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자기가 맡은 소송은 별 가치가 없는 땅들이며, 이완용 땅 소송을 더 이상 맡지 않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완용 증손은 땅 찾기에 매진

그러나 이윤형씨는 여전히 상속 가능한 이완용 명의의 토지를 되찾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그는 이완용 명의의 토지만이 아니라 일제 때 이완용과 송병준 공동 명의로 조성한 땅에 대해서도 관심을 보인 것으로 확인된다. 이씨는 그동안 송준호씨를 네 차례나 찾아가 공동 명의 땅에 대한 공동 소송을 제안했다고 한다. 송돈호씨도 이씨와 두 번 만나 서로의 입장을 타진했다고 전한다.

이완용과 송병준 공동 명의로 조성된 토지는 일제 강점기에 친일파가 재산을 형성한 과정과 방식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사료일 수도 있다. 그 규모와 내역은 송병준 후손의 상속권 국가 헌납이 실현되어 전면 조사에 들어가면 상세히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광복 52주년을 넘기고, 21세기를 눈앞에 둔 지금까지 친일파 재산 문제로 국민의 에너지가 소모되는 것은 문제이다. 뒤늦게나마 송병준 후손이 토지 상속권을 국가에 위임하겠다는 뜻을 밝힘으로써 이제 공은 정부와 국회로 넘어갔다. 경술국치 77년을 맞은 요즘 그날의 장본인들인 이완용·송병준이 뿌린 ‘매국 대가 상속’이라는 망령을 거두어내기 위해서는 여론의 힘과 정부·국회의 지혜가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