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부릅뜬 감사원 ‘성역 없는 질주’
  • 장영희기자 (mtview@sisapress.com)
  • 승인 2004.06.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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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시스템 감사를 표방하고 나선 전윤철 원장의 감사원이 권력 기관들에 대한 전방위 감사를 예고하며 거침 없는 행보를 계속하고 있다.
전윤철 감사원장은 예고 없이 기자실을 찾았다. 지난해 12월12일 취임 1개월이 막 지난 때였다. 전원장은 출입기자들에게 ‘내년에는 감사원 기사가 많아질 것’이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예전 감사원장과 달리 언론을 멀리하지 않겠다, 언론에 적극 협조를 구하겠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감사원발 기사가 많아질 것이라던 그의 예고는 벌써부터 현실로 드러났다. 감염 혈액 유통과 총체적 부실을 드러낸 수능 관리 감사 결과를 발표했고, 최근 한국방송공사(KBS)에 이어 공적자금 관리 실태에 대한 감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감사원은 관가는 물론 일반 국민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전원장은 감사원 사상 처음으로 국회 인사 청문회를 거친 감사원장답게 국회가 청구한 KBS 경영 실태 등 다섯 가지 감사에 먼저 착수했지만, 그가 기획한 첫 작품은 올 1월부터 착수한 신용카드 특감을 통한 금융 감독 체계 개편 방안이었다. 이르면 6~7월 결과 발표를 앞두고 벌써부터 숱한 화제를 뿌리고 있는 것은 이 사안이 인화성이 강한 메가톤급 이슈이기 때문이다.

하반기에 벌일 감사 목록을 보면 감사원의 행보를 주시하지 않을 수 없다. 중앙 부처와 지방자치단체라는 단골 피감사기관은 물론 한국은행과 금융계로 외연을 넓히고 있고, 심지어 감사 사각지대로 치부되던 청와대와 정당, 군에까지 감사원의 손길이 전방위로 뻗치려 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감사원이 노무현 정부의 ‘개혁센터’로 떠오르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마저 나온다.

취임 후 전윤철 원장이 가장 먼저 손댄 것은 인사와 조직 개편이었다. 감사원을 혁신하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이었다. 취임 이틀 만에 차관급인 감사위원과 사무총장 인사를 단행했으며, 이어 1급인 1, 2 사무차장과 기획관리실장, 2급인 11개 국장 인사를 전광석화처럼 해치웠다. 1급과 국장급 2명을 각각 물러나게 하는 등 감사원 수뇌부가 대폭 물갈이되었다.

조직도 ‘들었다 놓았다’. 개원 이래 가장 큰 폭의 개편이었다. 우선 국가정보원이나 국세청같이 사정·정보 기관의 관례에 따라 1~7국으로 불렸던 조직을 재정금융감사국·산업환경감사국 따위 기능별 조직으로 바꾸었다. 동북아경제중심국가 건설과 국가균형발전 등 ‘대통령 프로젝트’를 들여다보는 국가전략사업평가단도 신설했다.
추진력 하나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평이 무색하지 않게, 취임 이래 전원장은 감사원 쇄신 방안을 숨가쁘게 밀어붙였다. 부처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사무총장과 1차장을 각각 국무회의와 차관 회의에 배석하게 했으며 각 국의 자문위원회를 신설하거나 활성화했다. 민간 기업 최고경영자를 감사원 최고 의결기구인 감사위원회 위원에 선임하는 근거 규정을 만들기도 했다. 사소하게는 ‘차렷·경례’ 구호를 없앴다. 권위적 조직 구조를 깨고 폐쇄적인 조직 문화를 뿌리째 흔들고 있는 것이다.

현기증이 날 것 같은 파격 행보는 전원장이 전임 원장과 ‘출신 성분’이 다르다는 점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감찰위원회와 심계원을 통합해 1963년 감사원이 개원한 이래 주로 법조인과 군 장성 출신이 원장에 임명되었지만 전원장은 경제 부처에서 잔뼈가 굵었다.

전원장은 취임 일성부터 전임 원장과 사뭇 달랐다. 주요 정책·사업 입안과 집행 과정을 상시 모니터링해 원활하고 일관성을 가지도록 독려하겠으며, 특히 참여정부가 추진하는 개혁 조처들이 이른 시일 내에 성과를 내도록 감사원이 주도적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예전 감사원에서는 듣지 못했던 얘기다. 그동안 감사원은 피감사기관의 회계가 적법하게 이루어졌는지 따지고 공무원의 비리 여부를 들여다보는 국가기관으로만 여겨져 왔기 때문이다.

감사 방향의 쇄신은 감사원 운영 혁신 방안(2003년 12월)과 신년사, 상시 모니터링 시스템 구축 운영방안(2004년 1월15일) 등에서 더 구체화했다. 우선 그는 선택과 집중 원칙을 꺼내들었다. 수감 대상 기관이 6만7천 개나 되지만 감사 인력은 7백명(총 9백20명)에 불과해 국민들에게 영향을 크게 주거나 다른 부문에 파급력이 큰 감사부터 하는 것이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그가 밝힌 감사 방향은 크게 두 갈래다. 국가 주요 정책과 사업 추진 상황을 상시 점검해 문제점을 발굴·개선하는 ‘정책 감사’와, 비리· 비능률의 원인이 되는 행정 운영 체계와 제도를 평가해 근원적인 개선책을 제시하는 ‘시스템 감사’. 이를 효과적으로 지원하고 감사의 질을 높이기 위해 전원장은 두뇌 조직인 평가연구센터 발족을 추진하고 있다. 전원장은 감사원의 미래를 ‘국가 최고의 평가·컨설팅 기관’으로 설정하고 있다. 이것은 앞으로 남은 임기 3년5개월 동안 그의 목표이기도 하다.
감사원장의 목표가 원대한 탓일까. 요즘 감사원 사람들은 한마디로 죽을 맛이다. 원장이 취임한 지 7개월 가까이 되었지만 초긴장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40년 가까이 큰 변화가 없던 ‘공무원 체질’들이 60대 중반 ‘열혈 청년’ 전윤철의 개혁 일변도를 쫓아가느라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이다. 구내 식당 밥이 동이 나고 토요일 오후는 물론 일요일·공휴일에도 감사관 2백~3백명이 근무하는 풍경도 벌어진다. 한 감사관은 “절대 업무량이 늘어났지만, 무엇보다 시스템 감사라는 고난도 감사를 요구받고 있어 힘들다”라고 말한다.

아직 평가하기는 이르지만, 전원장이 입에 달고 살다시피 하는 시스템 감사가 효과를 발휘할 조짐을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감사원 박종구 기획관리실장은 “달라진 감사 환경에 감사관들이 무척 힘들어했지만, 첫 시스템 감사인 KBS 특감 결과를 내놓은 후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국민들의 반향이 크고 KBS가 개혁 조처를 마련하는 것에 고무되었다”라고 말한다. 시스템 감사의 첫 성공 모델이 나온 것이 감사원 쇄신을 추진하는 동력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시스템 감사는 관가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전윤철의 감사원’에 관가가 숨을 죽이고 있는 것은 전원장 스스로도 밝혔듯이 우선 그가 20년 가까이 예산 관련 조직에 몸 담아 모든 부처의 업무를 꿰고 있고, 특히 각 부처의 약점을 파악하고 있다는 전문성에 기인하고 있다. 감사원장이 공정거래위원장과 기획예산처장관, 경제 부총리를 역임한 헤비급 인사라는 점도 피감사기관 수장들을 긴장하게 만든다.

하지만 더 본질적이고 위력적인 것은 감사 방향이 근본적으로 달라지고 있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회계 지출의 합법성 감사 차원을 넘어 각 부처의 정책과 사업을 평가하겠다는 것은 감사의 영향권이 주로 중·하위직 공무원에서 장관 등 최고위직까지 확장된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예견된 일이지만, 정책·시스템 감사에 대한 공직 사회의 반응은 호의적이지 않다. 한 고위 공무원은 고도의 정책 판단이 개입되는 사안을 감사원이 들여다보는 것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않았다. 관가의 이런 냉소적 반응에는 무엇보다 감사원이 과연 정책이나 사업을 평가할 역량을 갖고 있느냐는 의문이 깔려 있다. 말이 좋아 평가·시스템 감사이지, 사후 잘못을 들추어내는 ‘쉬운 감사’에 치중해온 감사원이 감당할 수 없으리라는 폄하가 들어있다. 또 감사원이 평가 감사를 강조할수록 각 부처와, 특히 기관 평가 기능을 수행하는 국무총리실과 마찰을 빚을 수도 있다.

감사원의 평가기관 변신에 대한 학계의 의견도 엇갈린다. 윤성식 교수(고려대·행정학)는 “감사는 공공 부문에서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백혈구 혹은 면역 체계 역할을 해야 한다. 사소한 문제 적발에서 정책 평가로 전환해야 한다”라며, 감사원이 국정 시스템을 총체적으로 진단·평가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문제 해결자 혹은 국정 컨설턴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현구 교수(성균관대·행정학) 역시 선진국 감사원들이 성과 감사를 강화하는 추세이며, 감사원이 정책 평가를 강조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본다. 하지만 김교수는 행정기관의 정책 과정 전반에 대한 평가는 대통령이나 내각 통할권을 가진 국무총리, 그리고 국회가 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감사원의 정책 평가는 사업 성과와 세부 집행 과정에 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감사원이 국정 평가의 중추기관이 되려 한다면 행정기관의 정책 운영이 경직되고 형식주의로 흐를 수 있으며, 무엇보다 감사원이 감사기관으로서 정체성 위기를 맞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감사원은 헌법(97조)과 감사원법이 규정한 권한만 행사해도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는 국가 기관이다. 대통령 직속 기구이지만, 사후 보고만 할 뿐 대통령으로부터도 독립되어 있다. 전원장은 한국 사회의 산적한 현안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뒤에서 촉구하고 적극 돕는’ 역할을 하는 데 감사원의 힘을 집중하겠다고 말한다.

감사원을 국정의 최고 컨설팅 기관으로 만들겠다는 대표 컨설턴트 전원장의 행보는 거침이 없어 보인다. 전윤철의 감사원이 평가 감사를 강조할수록 도전과 저항에 직면할 수밖에 없지만, 성패는 국민들의 지지에 달려 있다. 감사원에 대한 평가와 견제는 국민(국회)만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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