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밀항하려는 외국인 부산에 몰린다
  • 부산·박병출 주재기자 ()
  • 승인 1995.05.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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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취업자 밀항 갈수록 늘어…알선 조직 대거 암약
‘코리안 드림’의 허상이 깨지면서, 외국인 취업자들의 발길이 부산으로 몰리고 있다. 일본 밀항 알선 조직에 선을 대기 위해서이다.

처음부터 밀항을 염두에 두고 입국한 사람도 있다. 국내에서 밀항 비용을 번 다음 빠져나가겠다는 것이다. 부산이 일본 밀항의 중간 기항지로 활용되고 있다. 브로커들이 밀항을 주선하고 받는 대가는 1명당 2천~5천달러였다. 최근에는 7천달러까지 올랐다. 불법 체류자 단속이 강화된 데다 지난해부터 일본의 입국사증 발급이 한층 더 까다로워져 밀항 수요가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를 노린 브로커들은 불법 체류에 따른 벌금과 항공료, 입국사증 발급비 등을 계산하면 밀항이 정상 출국보다 오히려 싸고 안전한 방법이라고 유혹한다.

부산에는 현재 이사장파와 박사장파라는 양대 밀항 알선 조직이 부산항을 무대로 암약중이다. 이씨와 박씨는 법무부 부산출입국관리사무소가 적발한 거의 모든 밀항 사건에 연루된 거물급이다. 특히 이씨는 내국인과 동남아인 중간 브로커들을 거느리고 있고, 부산과 파키스탄을 왕래하는 화물선 선원들을 정보망으로 가동해 조직을 국제화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밀항은 승선 직전에 돈을 주고받는 현장 거래로 이뤄진다. 수사관들은 밀항 알선 브로커들이 국내 폭력 조직뿐 아니라 일본 야쿠자와도 연계됐으리라고 본다.

지난 2월 후세인과 무스타크 등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인 11명을 몰래 승선시킨 코리아 익스프레스호가 출항 직전 적발된 적이 있다. 11명이 한번에 밀항을 기도했다는 것은 밀항 알선이 이미 대규모로 조직화해 있음을 암시한다.

수사망이 좁혀들자 거물급 브로커들의 활동은 주춤해졌고, 이 여파로 최근에는 외국인 근로자들이 브로커를 끼지 않고 직접 밀항 루트를 찾아 나서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자국 선원들이 많이 드나드는 부산역 앞의 속칭 텍사스 골목 주변에서 밀항선을 구하는 것이다.

모하메드 등 파키스탄인 4명은 지난 2월10일 밤 부산항 중앙부두의 철조망을 끊고 정박중인 배로 접근하다 붙들렸다. 4월22일에는 역시 파키스탄인 5명이 여관에 투숙하여 선원들을 상대로 밀항 알선자를 찾다가 적발되기도 했다.

밀항을 기도하는 외국인 가운데는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 사람이 적발자의 절대 다수를 차지한다. 이들은 영어 구사가 가능한 필리핀·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출신들에 비해 한국에서의 처우가 더 나빠 위험을 무릅쓴 채 배에 오르고 있는 것이다.

부산항은 국제적 이미지와 미관 문제를 고려해 부두의 철조망을 철거하는 문제를 검토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 부두로 숨어드는 외국 근로자들과 출입국관리사무소 간의 숨바꼭질도 더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출입국 관리사무소 조사과 관계자는 단속할 전용 선박도 없는 여건에서 13명의 인원으로 이들의 밀항을 막아내기란 역부족이라며 벌써부터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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