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김 바람 지역 따라 편차 크다
  • 부산 · 전북 · 吳民秀 기자 ()
  • 승인 1995.06.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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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의 눈’ 부산·전북 현장 동향/YS·DJ 직접 텃밭 갈자 흔들리던 민심 ‘진정’ 기미
헌정 사상 처음 치러지는 4대 동시 지방 선거가 막바지로 치달을수록 대통령 선거판처럼 되어가고 있다. 혹자는 ‘양김의 전쟁’이라고도 한다. 아닌 게 아니라 양김은 자기 안방에서 수성하면서 남의 아성을 무너뜨리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러나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기는 쉽지 않다. 사냥터에 뛰어들수록 오히려 한 마리는 사정권에서 멀어져 갈 뿐이다. 이율배반이다. 물론 한 마리라도 잡을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부산과 전북. 양김에게 이 지역 선거는 ‘두 마리 토끼’이다. 적어도 선거 초반까지는 그런 양상을 띠었다. 부산시장에 출마한 민주당 노무현 후보는, 초반 여론조사에서 민자당 문정수 후보를 앞질렀다. 마찬가지로 전북도지사에 출마한 민자당 강현욱 후보 역시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유종근 후보를 눌렀었다. 언론도 두 지역에서 이변이 일어날 가능성을 점쳤다. 현재 여야가 각축전을 벌이는 곳은 아무래도 서울 등 지역색이 혼재해 있는 선거구이지만, 부산과 전북은 각각 ‘YS와 DJ의 아성’으로 세간의 이목을 끌어모으고 있다.

그러나 요즘 지역등권론을 설파하고 다니는 김대중 아태재단 이사장이 선거 전면에 나서자, 두 지역에서 이변이 일어날 가능성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김이사장은 선거 열기가 한창 달아오른 6월18일부터 3일간 전북 지역 지원 유세에 나섰다. 그는 “지역 발전에서 전남·북이 전국 꼴찌를 다투고 있는데 무슨 차이가 있냐”고 주장했다. 여권의 ‘전북 홀로서기’ 논리에 맞서 호남권이 단결하자는 얘기이다.

DJ 유세, 전북에는 순풍 부산에는 역풍

반면 김영삼 대통령 역시 6월8일 모처럼 부산을 방문해서 시민들에게 선물 보따리를 풀었다. △국방부 재산인 부산 수영비행장 부지를 부산시에 환원토록 했고 △2002년 아시안게임 지원특별법을 오는 9월 정기국회에서 통과시키도록 하겠으며 △부산시내 미군기지를 시 외곽으로 이전하는 문제를 정부 차원에서 검토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하나같이 부산시장 선거의 쟁점이자, 부산 시민의 숙원 사업이다. 초반 지지율에서 열세를 면치 못했던 문정수 후보에 대한 지원 사격으로 해석되는 약속이다.

이제 양김은 더 이상 우산 장수 아들과 소금 장수 아들 사이에서 방황하는 어머니가 아니다. 비를 내려 달라고 빌어야 할지 아니면 햇볕이 나도록 빌어야 할지 갈등하는 어머니는 어디까지나 우화 속의 인물이다. 현실 정치권의 논리는 냉정하다. 적어도 반 DJ 정서를 무릅쓰면서까지 선거전의 한복판에 뛰어든 김이사장의 계산은 분명해 보인다. 서울과 호남을 지키고 다른 지역에서는 자민련의 선전을 유도하겠다는 전략이다. 그가 비를 내려 달라고 기원한 이상, 소금 장수 아들은 빗물에 씻겨 내려가는 장사 밑천을 뜬눈으로 지켜볼 도리밖에 없다.
그러나 민주당에게 문제는 도지사 선거가 아니다. 전북 지역에서 큰 도시인 전주·이리·군산 시장 공천 과정에서 발생한 민주당내 계파 갈등과 잡음이 바깥으로 불거져나오면서, 민주당에 대한 지역 여론이 나빠졌다. 즉 인물 대결로 선거 분위기가 흐르면 광역단체장 선거에서는 민주당이 수성을 해도, 몇몇 기초단체장과 광역의원 선거에서는 민자당 후보에게 패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깔려 있는 것이다.

아직도 전북이 DJ의 텃밭이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지만 ‘민주당 말뚝만 박으면 당선을 보장받을 정도’로 전북 유권자들이 똘똘 뭉쳐있지는 않다는 것이 이 지역 정치권과 언론의 분석이다. 김이사장이 굳이 전북 지원 유세에 나선 이유가, DJ의 존재를 눈으로 보여주지 않으면 유권자들이 ‘딴 마음’을 먹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주목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유세 현장으로 향하는 차량 안에서 잠깐 만난 유종근 후보 역시 같은 맥락의 답변을 했다. 그는 “내 선거도 급하지만 우리 당의 다른 후보를 얼마나 동반 당선시키느냐에 사활을 걸고 있다. 전북 지역에서 민주당의 주장 역할을 맡은 후보로서 지역 내의 여소 야대 현상은 막아야 한다. 김이사장이 전북 지원 유세를 하시는 뜻도 바로 그것이다”라고 말했다.

바로 이 대목이 부산 선거와 전북 선거의 다른 점이다. 즉 민주당이 YS 앞마당인 부산 지역에서 기대를 걸고 있는 선거는 사실상 부산시장 선거가 유일하다. 반면 민자당은 전북에서 기초 의원·단체장과 광역 의원·단체장 공히 이번 선거를 통해 ‘호남권의 교두보’를 마련하겠다는 전략이다. 그런 만큼 민자당 각 후보들은 부산시를 공략하는 노무현 후보와는 달리, 김대중 이사장을 정면으로 맞받아치지는 않는다.

양김 모두 텃밭 조직 가동에 ‘이상 기류’

민자당 강현욱 후보는 DJ 정계 복귀론에 대해, 중앙당의 논리와는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는 “그 분은 정계를 떠나셨고 이번에는 당원으로서 후보를 도와주는 차원이다. 그러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그 분이 차라리 대가답게 직접 정치를 하시는 게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가능한 한 김이사장에 대한 유권자들의 지지 정서를 자극하지 않으면서, 오랜 관료 경험을 부각해 인물론으로 선거를 치르겠다는 계산이다. 민자당 후보다운 발상이다.
그래서 그런지 강후보측 참모들이 쏟아내는 말은 대부분 유종근 후보의 개인적 약점을 집중 공략하는 내용들이다. 두 후보의 성(姓)을 빗대서 ‘강한 것은 좋다, 유한 것은 싫다’는 조어를 만들어냈고, 또한 한번 이혼한 경력이 있는 유후보의 신상을 문제 삼아서 ‘나는 장가를 한번 갔다’는 말을 흘리기도 한다. 그리고 강후보의 쌍둥이 두 딸을 유세장에 동원함으로써 가족의 단란함을 유권자에게 과시하기도 한다.

부산시장 선거나 전북 지방 선거 모두 이처럼 인신 공격을 불사할 정도로 선거 열기가 달아오르고 있다. 뒤에서는 흑색 선전까지 난무한다. 각 후보가 사활을 걸고 뛰어든 만큼 이변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현상이다.

또한 본격적인 선거전에 돌입했는데도 YS나 DJ 양측의 텃밭 조직이 원활하게 가동되지 않는 기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즉, 부산에서는 민자당의 공조직과 YS 인맥이, 전북에서는 민주당의 공조직이 삐그덕거렸다. 부산에서는 후보 공천 과정에서 여당 조직이 상당히 흔들렸으며, 전북에서는 민주당 중앙당의 계파 갈등이 그대로 재현됐다.

양김의 대결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나타난 현상들이다. 이번 선거는 ‘신 양김 시대’의 도래를 알리는 측면이 있지만, 한편에서는 ‘아성의 동요’가 발생하기도 한다. 만약 부산이나 전북에서 이변이 일어난다면, 정가에서는 이를 양김 30년 역사가 무너지는 신호탄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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