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작용도 모르고 유통되는 의약품
  • 김 당·李哲鉉 기자 ()
  • 승인 1995.10.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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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분여씨(48)는 94년 12월5일 참을 수 없는 복통 때문에 인근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환자의 고통을 덜기 위해 진경제인 안티콜리너직을 주사했다. 김씨는 고통이 사라지자 곧바로 집으로 돌아왔는데, 온몸에서 좁쌀 같은 두드러기가 나고 섬뜩한 기운을 전신에 느낀 뒤 갑자기 정신을 잃었다. 김씨는 그후 3일간 입원 치료를 받고서야 퇴원할 수 있었다. 진료를 담당한 의사는 항콜린성 약품에 의한 아나필라틱 쇼크일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이 증상은 체내에 주입된 이물질에 대해 항원 항체가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생기는 것으로, 보통 설피린 같은 부교감신경 차단제에서 많이 나타나는 부작용이다. 이후로 김씨는 부작용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다시는 주사를 맞지 않고 있다.

“약물 부작용으로 운명한 것 같습니다”

이종성씨는 94년 12월1일 잠이 오지 않아 ㄷ화학의 수면제 자메로정을 복용했다. 그런데 곧 심한 환각 증상이 나타나고 참을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이 뒤따랐다. 김관일씨(39)는 요통을 치료하려고 ㄱ약품의 근이완제 클로르메자논정을 하루에 세번 복용했는데 피부괴사양 증상이 나타났다. 이 증상은 피부가 짓무르고 시커먼 변이 나오는 중증이다.

이같은 사례는 우리나라 의약품 부작용 모니터링 기관이 보건복지부에 신고한 부작용 발생 사례 가운데 일부이다. 특히 우리나라 소비자와 같이 의약품에 대한 신뢰도가 높고 오·남용이 심한 경우 약품 부작용으로 인한 약화 사고의 위험이 큰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그러나 보고된 부작용 사례는 실제 부작용 발생 건수에 비교하면 극히 일부라는 지적이다. 지난 9월3일 한기학씨는 기관지 천식 때문에 병원에서 진통 근육주사와 천식 치료제를 맞고 고통을 호소하다 심근경색 증세를 보이며 급사했다. 이 병원 내과 과장은 “약물 부작용에 의한 통풍 증세 가능성이 있다”고 한씨의 둘째 아들 광희씨에게 말했다. 한씨의 사례는 의약품 부작용 모니터링 기관에 신고되지 않은 경우이다.

물론 미국과 같은 의약 선진국에서도 의약품 부작용 발생 실태는 심각하다. 완전한 안전성이 보장되지 않은 새로운 약품이 꾸준히 개발되고 있으며, 시판되는 약품들에서도 새로운 부작용이 계속 보고되고 있다. 일본에서는 최근 피부병인 대상포진을 치료하는 소리부딘이라는 항바이러스제가 항암제와 상호 작용을 일으켜 약이 판매된 지 1개월 만에 사망자 14명과 중증 환자 7명이 발생한 일이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감기 환자가 의사와 상의 없이 동네 약국에 가서 텔레비전에서 선전하는 약을 달라고 하는 것은 매우 흔한 일이다. 문제는 환자가 그 약이 일으킬지도 모를 부작용에 대해서는 거의 신경쓰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부작용은 대부분의 약품 설명서에 나오듯 ‘드물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흔히 일어날 수 있다. 한국소비자보호원(원장 김인호)이 지난해 서울 부산 대구 인천 광주 대전 등 전국 6개 대도시에서 14세 이하 자녀를 둔 어머니 7백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어린이의 의약품 오·남용 실태’에서는, 우리나라 어머니의 90%가 의사 또는 약사와 상의하지 않고 자녀에게 약을 사서 먹인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중 14%는 자녀에게 감기약·피부약·한약 등을 먹인 뒤 부작용을 겪었다고 호소했다.

일반인이 집 근처 약국에서 쉽게 살 수 있는 약품들에서는 부작용이 해마다 새로 발견되고 있고 그 발생 건수도 상당하다. 지난 3월9일 보건복지부는 한국그락소사가 위궤양 치료제로 시판하는 잔탁 등 염산라니티딘을 원료로 만든 의약품 1백49종이 빈혈·황달·식욕부진 같은 부작용을 일으키는 것을 확인하고 해당 제약사가 의약품의 효능 및 부작용 난에 이를 명시하도록 지시했다. 복지부는 94년 한 해에 시판된 위궤양 치료제 등 소화기관용 의약품 1천4백71개 품목의 약효 및 안전성에 대해 재평가한 결과, 7백89개 품목은 효능·효과가 사실과 달라 이를 변경하도록 해당 제약사에 지시했다. 또 1천2백10개 품목에서 새로운 부작용 등이 확인돼 이를 약품 사용상의 주의사항 난에 명시하도록 했으며, 8백17개 품목은 용법·용량을 합리적으로 조정하도록 했다.
약물 처방 내용 데이터 베이스화 절실

체계적으로 약품 부작용을 관리하기 위해 필요한 약물 처방 내용을 컴퓨터 데이터 베이스화하지 못했다는 점도 약화 사고가 일어나는 중요 원인이다. 우리나라 약화 사고 기록은 복지부 약품안전과 캐비닛에 쳐박혀 있어 기록을 찾으려면 한참 시간이 걸리는 형편이다. 이에 비해 선진국들은 약품의 안전성을 과학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일찍부터 약물 처방 내용과 부작용 발생에 대한 정보를 담은 데이터 베이스를 마련했다. 영국은 80년대에 약물의 안전성을 모니터하는 체계를 갖추었고, 다른 유럽 나라들도 국가간 컴퓨터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공동으로 약물 안전성 정보를 활발히 교환하고 있다.

또 일본 후생성은 환자에게 사용한 의약품의 효능과 치료 경과에 대한 자료를 컴퓨터에 축적하기로 하고 지난 5월 일본 병원약제사회와 약제역학 관련 민간단체 요원으로 추진반을 구성해 준비 작업에 들어갔다. 이처럼 후생성이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까닭은, 제약회사에 의약품 부작용 관리를 맡겼더니 기업의 이해관계에 좌우되어 객관적인 정보관리가 이뤄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후생성이 컴퓨터에 입력할 자료는 환자 수만 명을 대상으로 하되 병력, 알레르기 체질 여부, 복용한 약, 혈액 검사 결과, 투약에 따른 치료 상태, 병용한 약, 부작용 정도 등을 포함하는 방대한 양이다.

약물 처방과 의약품 안전성 확보를 위한 의약정보센터가 없다는 것도 약화 사고를 일으키는 요인이다. 최근 우리나라 보건 전문가 사이에서도 약물 처방 결과를 추적해 조사할 의약정보센터를 만들어야 한다는 여론이 높지만, 선진국에서는 이미 80년대 초반부터 진료 자료를 바탕으로 부작용이 나타나는 정도를 사후 추적해 효과적인 약물 사용 관리를 꾀하고 있다. 특히 70∼80년대에 10년 간의 검증을 통해 큰 부작용이 없다고 평가돼 판매 허가된 일부 신약이 시판 후 신경·콩팥 이상, 심지어 암까지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진 뒤 사후 추적은 필수 사항이 돼 있다. 선진국에서는 검증 후 바로 시판을 허가하는 대신 진료 자료를 바탕으로 부작용을 사후 조사할 것을 의무화하고 있어 추적 조사 노하우를 확보하는 것이 신약 개발 능력과 직결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한 번도 시판 약물에 대해 처방 내용과 환자 상태를 추적 조사한 적이 없다. 따라서 신약을 개발할 때 요구되는 조사 기술에 대한 노하우도 없는 데다가 부작용 파악도 늦어 국민들의 약화 사고가 우려된다는 것이 보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따라서 신약이나 수입 의약품에 대한 사후 추적 조사를 전담할 전문 기구의 필요성이 절실하다. ‘안전한 식품·의약품 공급을 위한 종합대책’이라는 주제로 열린 민자당 정책토론회에서도 주로 식품·의약품 안전관리 전담 조직 설립 방안에 대해 토론을 벌였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이의경 박사(사회약학)는 ‘의약품 안전관리 현황과 정책과제’라는 논문을 통해 ‘의약품 관리 전담 기구를 설립하고, 의약품의 특성에 따라 심사 조직을 구성하여 약리·화학·임상 등 허가관리 심사협의체를 조직함으로써 의약품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를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전문 인력과 예산이 충분치 않다는 것이 ‘한국형 식품의약기구’를 설립하는 데 가장 큰 어려움이다. 미국 식품의약청은 방대한 규모의 전문 인력 9천여 명과 연 예산 8억달러, 전국 규모의 조직, 오랜 역사와 전통으로 고유한 위상을 확보하고 있다. 또 검정 기술의 우수성·전문성에 기초한 기술적 권위를 가지고 식품·의약품·의료기기에 관한 정책과 관리를 관장하고 있다.

따라서 임상약리학 전문가가 절대 부족한 우리나라 형편에서는 우선 약품 안전성을 높이는 데 필요한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교육 기관을 설립하는 일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그리고 이러한 전문 인력이 의약품 부작용 추적 조사와 임상 실험을 체계적으로 할 수 있도록 예산 지원을 뒷받침해야 한다는 것이다.

약품 설명서에 새 부작용 기재해야

그러나 당장 시급한 것은 보건 당국이 사전에 약품 부작용을 줄이는 행정 체계를 갖추는 일이다. 이것이 현실적으로 힘들다면 최소한 수입 의약품이 일으킬 수 있는 각종 부작용을 신약 개발국·원료 수입국·약품안전 기구가 유기적인 연락을 통해서 가능한 한 빨리 국내 의료인에게 알리고 약품 설명서를 바꾸는 작업을 해야 한다는 것이 보건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보건 전문가들은 또 약 제조 단계 초기서부터 완성 후까지 약품 안정성 검사에서 부작용이 일어날 확률을 과학적으로 엄정하게 평가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제약회사들이 지금보다 더 안전한 약을 만들 수밖에 없도록 유도하고, 그렇지 못한 약은 유통할 수 없게 하는 제도적 장치를 가동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국민에게 정확하고 과학적인 약품 정보를 알려주면 약화 사고가 일어날 확률은 그만큼 적어질 것이다. 박병주 교수(서울대 의대·예방의학)는 “약화 사고를 줄이기 위해서는 의약품 부작용 안전관리 체계의 과학화, 즉 임상역학이 절실히 요구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임상역학 전문가가 거의 없는 우리나라 현실을 감안하면 임상역학이 정착하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동안 보건 당국은 우수한 부작용 모니터링 체제를 갖춘 의약 선진국의 부작용 정보를 빠른 시간 안에 얻을 수 있는 정보 교환 체제를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 보건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그런데 그 무엇보다도 외국에서 새로 보고된 의약품 부작용 정보가 우리나라 약품 설명서에 기재된 채로 약품들이 유통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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