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경의선 타고 서울 온다
  • 남문희 기자 (bulgot@sisapress.com)
  • 승인 2004.06.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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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5 남북 공동선언 4주년을 기점으로 남북은 군사적 신뢰 구축과 적대 관계 해소에 돌입하고, 8·15를 전후해 그 결과를 평가한 뒤, 10월이나 11월에 김정일 위원장이 기차를 타고 서울에 와 노무현 대통령과 정상
역사에 남는 ‘빅 이벤트’도 시간의 풍화작용을 감당하지는 못한다. 시간이 흐르면 그때 그 순간의 감동은 잊히고 의미는 퇴색한다. 그러나 예외가 있다. 비록 그때의 감동은 잊혀 가지만 그 의미는 더욱 각별해지는 경우다. 6·15 남북 공동선언. 벌써 4주년을 맞으면서 부활을 기원하는 노랫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6·15는 부활할 수 있을까. 그리하여 ‘반쪽의 성공’이라는 오명을 벗고 완전한 성공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을까. 그 완결은 김정일 위원장의 답방이다. 그렇다면 그의 답방은 이루어질까.

‘엄청난 내용’ 담은 6·4 합의와 6·5 합의

지난 6월4일과 5일 남북은 ‘주변국들이 깜짝 놀랄 만한’ 대사건을 연출했다. 6월4일 설악산에서 열린 제2차 남북 장성급회담에서 예상치 못한 합의 사항을 이끌어냈고(6·4합의) 6월5일 평양에서 막을 내린 제9차 경제협력추진위원회 회의에서 이를 뒷받침하는 또 다른 합의(6·5 합의)를 도출했다.

우선 장성급회담부터 보자. 합의 내용은 이미 알려진 대로 서해 해상에서의 우발적 충돌 방지를 위한 조처와 군사분계선 지역에서의 선전 활동 중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21쪽 표 참조). 우발적 충돌 방지 조처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합의 사항은 바로 핫라인 개설이다. 쌍방 함정이 국제상선공통망을 공유하기로 했고, 지휘부 간에는 통신연락소를 설치하기로 했다.

그동안 남북 군사 채널은 주로 경의선 연결 공사 등 한정된 목적을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핫라인 개설은 군축의 첫 단계인 신뢰 구축(CBM)의 시작이라는 데서 획기적 진전이다. 군사분계선 양쪽에서 선전 활동을 중단하기로 한 것은 적대 관계 해소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신뢰 구축의 토대를 다지는 보완 조처이다.

‘6·4 합의문’과 ‘6·5 합의문’를 들여다보면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시점이 3개 등장한다. 6·15와 8·15 그리고 10월. 6·15는 서해 해상의 충돌 방지 조처가 발효되는 날(실제로는 6월16일부터)이자, 비무장지대 선전 수단을 제거하기 시작하는 날이다. 그리고 양측의 선전 수단은 8월15일 완전 철거된다. 즉 역사적인 6·15 4주년을 기점으로 남북은 군사적 신뢰 구축과 적대 관계 해소를 위한 시험 가동에 들어가 8·15를 전후해 1차 평가를 내릴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벌써부터 8·15를 기점으로 두 번째 군사적 이벤트가 전개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6·5 합의문을 들여다보면 10월이라는 시점이 명시되어 있다. 합의문 제2항 ‘남과 북은 (…) 이미 합의한 철도 연결 구간에 대한 열차 시험 운행을 2004년 10월 경에 진행하기로 한다’는 구절이다. 10월로 예정된 경의선 시험 운행. 여기에는 무슨 뜻이 담겨 있는 것일까.
이번 장성급회담 이면에는 ‘미스터 X’라 불릴 만한 인물의 활약이 눈에 띈다. 그는 북방한계선(NLL) 문제로 회담이 난항을 겪을 때 북측 대표단에 ‘훈령’을 보내 ‘엉킨 실타래’를 풀어버린 그 인물이다. 그는 이례적일 정도로 6·4 합의문 맨 첫줄에서 자신을 드러냈다. ‘대한민국 국방부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인민무력부는(…) 합의하였다.’ 다시 말해 이번 합의는 인민무력부 상위의 국방위원회가 직접 관여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국방위원회 위원장이 누구인가. 김정일 위원장이다.

이번 회담은 김위원장이 자신의 존재를 아주 뚜렷한 형태로 드러냈다는 점에서 매우 인상적이다. 전문가들은 이를 김위원장의 동선과 연결짓는다. 국내의 한 북한 전문가는 “김위원장이 이번 군사회담은 자신의 답방과 연결된 것이라는 메시지를 남측에 전하고자 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김위원장이 외국을 방문할 때 항공기를 이용하지 않는 것은 유명하다. 고소공포증 때문이 아니다. 항공기는 테러에 취약하기 때문에 늘 육로로, 그것도 전용 열차로 이동했다. 그렇다면 남북 양측이 서로에게 총부리를 들이대고 있는 군사분계선 한가운데를 그의 전용 열차가 과연 통과할 수 있을까. 그의 답방이 이루어지려면 군사분계선의 총부리부터 걷어내야 한다. 실제로 그의 참모들은 이 점을 강조해 왔다고 한다. 이것이 6월4일, 북한이 대담한 양보를 하게 된 이유 가운데 하나인 것이다.

김위원장은 이벤트를 중시하는 인물이다. 10월의 경의선 시험 운행은 그의 답방을 빛낼 최적의 이벤트이자 세리머니이다. 그의 최근 몇 년 행보를 보면 김일성 주석의 발자취를 되짚어 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01년 20여 일에 걸친 시베리아 횡단 여행이나 지난 4월의 중국 방문이 그것이었다. 경의선을 타고 서울에 가는 발상의 원조는 김일성 주석이었다. 1994년 정상회담 추진 당시 그런 얘기가 돌았다. 그러니 김주석의 ‘유훈’을 받들고 극적 완성을 중시하는 그의 성격에 잘 맞는다.

물론 김위원장의 답방 일정이 확정된 것은 아니다. 10월이 될지 11월로 넘어갈지도 미정이다. 미국 대선 전이나 후라는 두 가지 전망이 있다. 부시의 재선이 확실할 경우 김위원장의 답방은 11월 이후로 미루어지고, 케리의 당선이 분명해진다면 10월 미국 대선 전에 답방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시사저널> 제761호 참조). 또 회담 장소는 개성쯤이 될 것이라는 관측도 유력하다. 분명한 것은 지금부터 준비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앞으로 북한의 행보는 모두 김위원장 답방을 위한 여건 조성에 맞추어질 것이라고 서울의 한 북한 정보 소식통은 전했다.

김위원장을 평할 때 ‘시나리오형 인간’이라고 하기도 한다. 대담한 착상과 치밀한 계산, 그리고 완결의 미학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시나리오형 인간은 자기가 연출한 드라마가 중단되는 것을 못 견딘다. 그래서 드라마를 완성시키기 위해 주도면밀하게 준비한다.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이 공동 연출한 6·15 공동선언의 정신이 중단된 지점이 바로 김위원장의 답방 문제였고, 내용으로는 군사 문제였다. 2001년 3월 그의 답방 문제를 논의하러 워싱턴에 간 김대중 대통령에게 미국의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이 일격을 가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2차 정상회담을 통해 남북이 군축에 돌입하게 될 경우 주한미군 문제를 비롯해 미국의 군사적 기득권이 흔들릴 것을 우려했던 것이다.

남북간 화해를 원치 않던 미국의 네오콘들이 지금 남북한 모두를 2차 정상회담으로 몰아가는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6·15 완결에 가장 크게 공헌하는 세력을 꼽으라면 단연 네오콘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한반도 현안인 북핵 문제에서 잘 드러난다. 네오콘의 북핵 전략은 11월 미국 대선 전과 후로 나뉜다. 대선 전인 지금은 한마디로 표현된다. ‘깨지도 풀지도 않는다.’ 6자 회담이 깨지는 것도 원치 않고 그렇다고 풀리는 것도 원치 않는다. 최근 미국이 보여주는 갈지자 행보는 모두 이 말로 설명된다.

우선 지난 4월 체니의 방중은 ‘깨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에 해당한다. 지난 2월 열린 2차 6자 회담이 북한의 평화적 핵 활동 허용 문제로 무산되자 북한 내에서 강경 기류가 형성되었다. 주로 군부를 중심으로 ‘평화적 핵 활동까지 못하게 하는 것은 굴욕적이다. 6자 회담을 깨는 게 옳다’는 주장이 머리를 들었다. 워싱턴은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이라크 전쟁으로 부시 대통령이 코너에 몰려 있는 판에 6자 회담마저 깨진다는 것은 최악의 상황이다. 네오콘의 우두머리 체니 부통령이 중국을 찾은 이유다.

체니는 이때 조건부 양보 가능성을 내비쳤다. 북한이 핵동결 후 검증을 받을 경우 6자 회담을 진전시킬 수 있다고 언질을 준 것이다. 북한은 김정일 위원장의 중국 방문으로 화답했고 5월에 열린 3차 회담 실무회담장에 상세한 ‘핵동결 검증안’을 준비해 왔다. 그러나 체니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워싱턴의 외교 소식통은 “북한이 적극적인 자세로 나오자 여기에 휘말릴 것을 우려한 미국이 발을 뺐다”라고 말했다. 6자 회담을 풀지도 않는다는 원칙이 확인된 것이다.

그 다음이 고이즈미 일본 총리의 방북이다. 그의 방북은 3차 6자 회담 전이라는 미묘한 시점에 이루어져, 미국의 ‘재가’ 없이는 불가능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가 ‘부시의 특사’ 역할을 했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실무회담에 실망한 북한을 달래기 위해 보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고이즈미 총리가 일본 국내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대북 제재를 하지 않겠다고 한 대목에서 부시의 메시지를 읽고 있다. 이 또한 6자 회담이 깨지는 것을 막기 위한 미국의 고육지책이다.
시계추처럼 왕복운동을 하다가 약간의 진전이 있을 수 있다. 10월께로 예상되는 4차 6자 회담이다. 이때쯤 미국이 약간 양보할 가능성이 있다. 대선을 앞두고 북한이 돌출 행동을 하면 더욱 안 되기 때문이다.

오락가락하는 미국의 정책에 대한 해석은 전문가마다 다르다. 고도의 전략이라고 보는가 하면, 긴장도 평화도 취할 수 없는 난처한 상황 때문이라는 견해도 있다. 긴장 국면을 유도하는 것이 공화당에 유리할 듯 싶지만 용이하지 않고, 그렇다고 평화 쪽으로 가자니 이라크 정책과 모순된다는 비판이 두렵다는 것이다.

문제는 대선에서 부시 대통령이 재집권에 성공할 경우이다. 네오콘의 입장은 확고한 것 같다. 북한을 강공으로 밀어붙인다는 것이다. 김위원장은 이런 상황을 충분히 예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4월 중국을 방문했을 때 ‘공화당이 재집권할 경우 우려된다’는 말을 했고, 평양을 찾은 고이즈미 총리에게 ‘체제 안전에 대한 우려’를 솔직히 토로한 것이다. 김위원장으로서는 부시의 재집권에 대비한 대책 마련에 총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노무현 정부의 행보는 집권 초기만 해도 불분명했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이종석 사무차장이 표현한 대로 ‘안보 IMF 시대’를 맞아 현안 따라잡기에도 벅찬 듯했다. 지난해 3월 북측이 ‘특사 교환’을 제의했으나 노무현 정부가 핵문제 등을 이유로 거절했다는 최근 일부 언론의 보도는 사실 새로운 뉴스가 아니다. 여기까지는, 취임 초기 ‘어떤 동맹보다 민족이 우선한다’는 폭탄 선언을 했다가 궁극적으로는 북한의 특사 교환 요청을 거절했던 김영삼 정부 초기와 닮은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미국 네오콘이 구상하고 있다는 ‘신한반도 전략’은 앞으로 노무현 정부를 한 방향으로 몰아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주한미군 지상군 이라크 차출로 격발된 한·미 동맹의 변화의 끝은 지난 5월14일 미첼 라이스 미국 국무부 정책실장의 ‘대아시아 정책 연설’에 잘 드러나 있다. 앞으로 미국은 ‘일본 중국 인도 그리고 새로 파키스탄을 추가한 4개국을 중심으로 양자 관계를 발전시키겠다’고 하면서 의도적으로 한국을 제외한 것이다.

미국, 한반도를 일본 자위대에 맡긴다?

워싱턴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현재 미국 네오콘을 중심으로 단계별 한국 정책 구상이 마련되고 있다. 즉 미군 지상군 철수→안보 공백 우려→미국 대선 후 북핵 위기 고조→안보 불안감 증폭→미국 첨단 무기 판매를 통한 지배력 강화로 이어지는 시나리오가 준비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한국이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일본 자위대의 한반도 영향력 확대 방안도 들어 있다고 한다. 이미 주한미군이 주일미군의 지휘를 받는 구도가 만들어지고 있고, 이런 추세라면 ‘한반도는 자위대 담당’이 될 날이 머지 않을 수 있다. 지나치게 감정적인 네오콘의 이같은 구상은 최근 케리 후보로부터 맹공격을 당한 바 있다.

네오콘의 신한반도 전략이 효력을 발휘하려면 남북이 ‘불화’ 상태에 놓여 있어야 한다. 그래야 긴장을 유도하고 공격할 명분이 생긴다. 그동안 몇 차례 경험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이다. 네오콘의 전략을 꿰고 있는 이상 남북 지도자가 불화와 긴장 상태를 유지한다는 것은 ‘동반 자살’과 다름없다. 생존을 위해서는 그 반대의 길로 갈 수밖에 없다. 남북 최고 지도자가 결단을 내려 군사 대립의 장벽을 걷어내고 평화 체제를 구축하는 길밖에 없다. 역설적이게도 네오콘의 위험한 한반도 전략이 남북을 동병상련의 처지로 몰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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