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된 대란 ‘쓰레기 전쟁’
  • 金恩男 기자 ()
  • 승인 1995.09.28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처리시설 건립 싸고 지역 갈등 폭발…환경정책 신뢰 회복이 해결 열쇠
지난 8월7∼18일 12일 동안 수도권 김포 쓰레기매립지(인천시 서구 검단면)와 경기도 군포시 사이에 치러진 한여름의 ‘쓰레기 전쟁’은 6·27 지방 선거 이후 막을 올린 본격적인 지방자치 시대의 첫 ‘지역간 분쟁’으로 기록되었다. 민선 지방자치단체가 출범한 이후 첫 지역간 분쟁이 환경 문제를 둘러싼 대립이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환경 문제는 ‘삶의 질’과 직결된다. 삶의 질을 높이고자 하는 주민들의 욕구가 환경 문제에 대한 관심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최근 몇년 사이에 두드러진 현상이다. 이를 반영하듯 지난 6·27 선거에서 후보들은 환경 관련 공약을 봇물 트듯 쏟아냈다.

문제는 선거가 끝난 이후이다. 이전에 ‘관 대 민’의 단순한 대결 구도를 보이던 환경 분쟁은 민선 자치단체 출범 이후 광역 또는 기초 단체간, 광역--기초 단체간, 자치단체--주민간 갈등으로 날로 복잡해지는 양상을 띠고 있다. 이는 ‘혐오 시설’이라 불리는 쓰레기 처리장 설치를 둘러싸고 가장 극렬한 형태로 표출되고 있다.

군포 쓰레기 전쟁의 발단은 조원극 초대 민선 군포시장(민주)이 취임한 직후인 지난 7월14일 시의회에서 산본 소각장 건설 계획을 백지화하겠다고 공식 선언하면서부터 생겼다. 군포시 22만여 유권자 가운데 산본 신도시 주민이 차지하는 비중은 60% 이상에 달한다. 93년부터 소각장 설치를 반대하며 격렬한 집단행동을 벌여온 신도시 주민의 정서에 비추어 볼 때 지방 선거 당시 거의 모든 해당 지역 후보가 산본 소각장 건설계획 백지화를 공약으로 제시한 것은 너무도 당연했다.

그러나 공약을 실천하기란 말처럼 쉽지 않았다. 조시장의 백지화 발표가 있은 직후 서울·경기·인천 등 3개 시도의 쓰레기를 매립 처리하고 있는 김포 수도권쓰레기매립지 주민대책위원회는 긴급 회의를 소집해 ‘자기 지역의 책임을 다른 지역에 떠넘기는 무책임한 처사는 용납할 수 없다’며 군포시의 쓰레기 반입을 저지하는 실력행사에 나섰다.

예산 문제가 가장 큰 장애

폐기물관리법보다 상위에 있는 것이 ‘김포법’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막강한 김포 매립지 주민들의 조직적 저항에 부딪힌 군포시는 지난 8월18일, 9월 말까지 새 소각장 부지를 선정하겠다는 이행각서를 김포측에 제출하고 사태를 일단락지었다.

군포시 쪽에서 보자면 협상 과정에서 보인 ‘아군’ 진영의 심각한 분열은 사태 해결이 순조롭지 않을 것임을 예견케 한다. 새 소각장 부지 선정을 위해 12개 동에서 각각 1명씩 선출된 주민 대표와 전문가 4명으로 구성된 시민자율추진위원회는 끝내 구도시·신도시간 견해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지난 9월2일 해체돼 버리고 말았다. 기대를 모았던 새로운 민·관 협의체 모델이 산산조각나는 순간이었다.

구도시측은 나아가 “산본동 원래 부지에 소각장을 건설하지 않으면 우리는 91년에 김포 매립지를 2015년까지 사용하기로 김포측과 맺은 협정에 의거해 우리끼리 쓰레기를 처리할 방법을 찾겠다”는 극단적인 주장마저 서슴지 않고 있다. 군포시는 각서상의 시한에 맞춰 새 소각장 부지를 선정하기는커녕 기초단체 간의 분열을 봉합하기에 급급한 실정이다.

비슷한 사태는 충북 청주시와 청원군 사이에도 벌어지고 있다. 현재 추진중인 청주권 광역쓰레기매립장 건설계획을 백지화하겠다는 변종석 청원군수의 공약이 그 시발점이었다. 91년 청주권 광역쓰레기매립장 부지로 선정된 청원군 강내면의 주민들은 5년째 반대 시위를 벌여 왔다.

변군수는 당선 직후인 7월3일 도내에서 처음 가진 광역·기초 단체장 회합에서 매립장 계획 백지화를 강도 높게 요구했다. 여기에 김현수 청주시장도 한창 논의되고 있는 청주·청원의 통합을 전제로 ‘더 나은 입지조건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동조했다. 청주·청원이 통합될 경우 매립장 부지가 청주권의 중심부에 위치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병덕 충북도지사의 입장은 달랐다. 처음에는 단체장들의 의견을 존중해 ‘재검토’ 쪽으로 기우는 듯했던 주지사는 7월17일 회의에서 다시 ‘대안이 없으므로 계속 추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여기에는 광역쓰레기장 사업을 연내에 착공하지 못할 경우 총사업비 1백35억원 중 국비로 지원 받은 42억원을 중앙에 반납해야 하고, 이미 계약을 체결한 사업자에게도 공사 계약금액의 20%를 배상해야 한다는 현실 논리가 크게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처지가 곤란해진 것은 변군수다. 변군수는 7월30일 <동양일보>와 인터뷰하면서 “청주시와 긴밀한 협의를 통해 원만히 해결할 방침”이라는 미묘한 어구를 사용하더니 9월15일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는 “재검토 계획에는 강내면도 당연히 후보지에 포함된다”고 ‘완전 백지화’ 주장을 철회할 것임을 분명히했다. 현재 변군수는 광역쓰레기소각장을 병행 건설해 쓰레기 매립량을 줄이는 방안으로 주민들을 설득할 계획이다. 그러나 설치에만 2백65억원 가량이 들 것으로 예상되는 예산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 구체적인 방안이 없어, 현재로서는 뜬구름 잡는 소리일 뿐이라는 것이 시청 관계자의 지적이다.

이밖에도 강원도 춘천시--홍천군, 전북 전주시--완주군, 서울·부산 내의 각 자치구 간에도 쓰레기 처리 시설 설치를 둘러싼 잡음은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다. 현재로서 환경 분쟁의 해결 방법은 두 가지이다. 중앙 정부의 조정을 받든가, 자치단체 내에서 어떻게든 해결을 보는 것이다.

현행 지방자치법에 따르면, 자치단체 혹은 단체장 간에 발생한 분쟁을 자력으로 해결하기 어려울 때에는 분쟁조정위원회에 조정을 신청할 수 있다. 시·도 간의 분쟁은 내무부장관, 시·군·구 간의 분쟁은 시장·도지사가 조정을 맡는다. 관계 공무원과 전문가 등 15인 이내로 구성된 분쟁조정위원회는 협의를 거쳐 중재안을 제시하며, 일단 중재안이 만들어지면 관련 기관장이 거부해도 강제 집행이 가능하다. 비협조적인 자치단체에는 행정상·재정상의 불이익 조처가 따르게 된다. 단 분쟁 조정은 해당 단체장의 신청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그러나 이러한 법적인 장치가 마련돼 있다 해도 지금 상황에서 중앙 정부의 힘을 빌리고자 하는 자치단체는 어디에도 없다. ‘지역 문제를 지역민 스스로 해결한다’는 지방자치의 대원칙에는 중앙 정부·자치단체·주민 모두가 공감하기 때문이다.
“섣불리 지역이기주의로 매도해선 안된다”

지역 문제를 자치단체와 주민의 힘으로 풀어가기 위해 우선 필요한 것은 지역간 환경 분쟁을 단순한 지역이기주의의 충돌 내지는 ‘님비(Not In My Back Yard)’ 현상으로 보는 시각을 고치는 일이다. 환경운동단체연합 정은아 부장은 “환경정책 결정 과정에서 주민들을 배제한 밀실 행정이 이같은 불신을 낳았다”며 정부와 계획 추진자들이 흔히 내세우는 지역이기주의론의 위험성을 지적한다. 청주권 광역쓰레기매립장 설치반대 추진위원회 김기영 기획처장은 “전국에서 가장 위생적이라는 김포 쓰레기매립지마저 침출수가 유출돼 국정감사에서 문제가 되는 판국에 어떻게 안전하다는 시 당국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을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한다.

현 시점에서 가장 시급한 일은 지역 주민들에게 환경 정책에 대한 신뢰를 심어주고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문제는 중앙 정부와 관선 단체장 체제가 주도해 오던 획일적이고 무원칙한 환경 정책을 비판하며 당선된 민선 단체장들조차 뚜렷한 전망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군포시 산본 을지아파트의 한 주부는 “민선 시장이라고 해서 행정력을 발휘하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않느냐”며 민선 시장이 주민들에게 질질 끌려다니는 듯한 행태를 꼬집는다.

지방자치 시대의 환경 정책이 실질적인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중앙 정부가 ‘개입’이 아닌 ‘합리적인 역할 분담’을 해 주어야 한다는 지적 또한 일고 있다. 김병완 교수(광주대·환경행정학)는 “광역성을 띠는 환경 문제의 특성상 선진국도 환경 정책에 관해서는 중앙 집권적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환경 관련 투자재원 확보의 어려움은 이같은 지적을 더욱 설득력 있게 한다.

군포시와 김포 간에 쓰레기 분쟁이 한창이던 지난 8월10일 서울시는 ‘1자치구 1소각장’ 정책을 발표했다. 소각장 시설의 위험성을 지적하며 최근 논란을 벌이고 있는 환경단체들도 ‘우리 지역 쓰레기는 우리가 처리한다’는 기본 정신에만은 원칙적으로 동의하는 입장이다. 과천환경운동연합 조석곤 사무처장이 소개하는 과천시 사례는 환경 분쟁을 풀어나갈 실마리를 던져 준다. “소각장 건설을 둘러싸고 시 당국과 벌인 2년간의 줄다리기에서 우리는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그것은 ‘소각장을 짓지 말자’가 아니라 ‘짓되 잘 짓자’는 것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