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군부, 4자회담 극력 반대
  • 南文熙 기자 ()
  • 승인 1996.06.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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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단 무력 시위는 ‘한국 배제’ 노림수… 한·미 갈등 조성 첨병 노릇도
북한군의 동태가 심상치 않다. 지난 4월4일 일방적으로 ‘DMZ규정’ 준수 의무 포기 선언을 한 북한군은, 판문점·비무장지대·연평도 근해 등에서 연거푸 무력 시위를 벌여 왔다. 여기에 5월23일 미그 19기 이철수 조종사 귀순 사건까지 겹쳐, 북한군의 동향이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도드라진 북한군의 도발은 단순한 군사적 의미뿐 아니라, 한·미 양국 정상의 4자 회담 제안에 대한 외교적 의미라는 복잡한 변수를 내포하고 있다. <시사저널>은 이같은 북한군의 움직임을, 4자 회담에 대한 북한 군부의 입장이 노출된 것으로 파악하는 새로운 시각에서 정리하는 동시에, 긴급 입수한 북한군 남하 작전 계획과 군대 편제를 심층 분석해, 한반도의 향후 정세를 입체적 구도에서 정밀 진단했다.

<편집자>

김일성 주석 사망 후 북한 전역을 사실상 통제하고 있는 북한 군부가 4자 회담을 바라보는 입장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지난 4월16일 제주도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평화 문제 해법으로 4자 회담이 제안된 이래 북한 군부가 자기들의 입장을 대외적으로 공표한 적은 아직 없다. 그러나 최근 북한 소식에 정통한 국내의 북한 전문가들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 북한 군부가 4자 회담에 대해 극히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국내의 한 대북 소식통은 ‘북한 군부는 4자 회담이 의제가 뚜렷하지 않은 데다 특히 군부가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남북대화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대단히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라고 전해 왔다.

‘한국 배제, 미·북한 대화’ 구도 유도

이 소식통은 특히 남북대화에 대한 군부의 거부감과 관련해 김일성 사망 이후 미·북한 접촉이 활발하게 전개되면서 군부의 주적(主敵) 개념이 ‘반미항전’에서 ‘대남봉쇄’로 방향을 전환해 왔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김정일 등장 이후 북한 군부는 ‘남한은 미국의 앞잡이이기 때문에 군부의 최대 관심사인 군사 문제 해결과 평화협정 체결은 미국과 협의해야 한다’는 입장을 더욱 강화해 왔다고 한다. 이를 볼 때 평화 문제 논의를 남북대화를 통해 다루도록 명문화한 4자 회담에 대해 실질 당사자인 북한 군부가 거부 반응을 보이는 것은 충분히 상정해 볼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같은 군부의 거부감에 맞설 만한 세력이 현재 북한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도 남북대화를 근간으로 한 4자 회담의 전망을 어둡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사실 북한 내부에 대남 경협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개방파 인사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들 역시 경협 등 한정된 범위를 뛰어넘는 본격적인 남북대화에 대해서는 군부의 통제력을 벗어나기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고 한다.

그동안 남북한과 미국의 외교 당국을 대치선으로 해서 전개된 4자 회담 공방은 북한 군부라는 제3의 요소가 등장함으로써 대단히 복잡 미묘한 상황으로 돌입하고 있다. 이 외교 게임의 본질은 4자 회담 자체에 부정적 인식을 가지고 있는 북한 지도부가, 미국과의 관계를 의식해 불투명한 입장을 고수할 수밖에 없는 외교부의 입장을 감안한 끝에 강경파인 군부를 동원하여 찬물을 끼얹게 하는 전형적인 양동작전 성격을 띤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북한 지도부가 군부를 이 외교 게임의 틀 속으로 끌어들인 이유는, 4자 회담 국면에서 초래된 수세적 상황을 4자 회담 이전의 국면, 즉 ‘한국을 배제한 미·북한 대화’ 구도로 재역전시키기 위한 시도라고 볼 수 있다. 그 대표적 시도가 최근 비무장지대에서 잇달아 일어난 소규모 무력 시위이다. 즉 지난 5월17일 경기도 연천군 일대 비무장지대에서 벌어진 북한군 소규모 병력 남하 사건과, 5월23일 서해 연평도 근해에서 벌어진 북한 고속 경비정 남하 사건은, 군부를 동원해 4자 회담 구도를 무너뜨리기 위한 북한 지도부의 정치적 계산을 배경에 깔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북한군의 잇단 도발 행위는 지난해 10월의 북한군 전진 배치 사건 이래, 지난 4월 초에는 대규모 무장 병력 비무장지대 난입 등 간헐적으로 계속되어 왔다. 이 사건들은 현재의 군사정전 체제를 무력화해 평화협정 체결에 유리한 조건을 조성하기 위한 전술적 행위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데, 최근 발생한 두 가지 사건은 그 이전 사건들에 비해 또 다른 특징을 보여준다. 동원된 병력의 수나 무력 시위 기간이 그 전보다 축소된 것이다.

지난해 10월 북한군 전진 배치 사건 당시에는 미사일 부대 1개 소대가 비무장지대 안으로 남하해 들어와 당시 한미연합사측을 초긴장 상태로 몰아넣은 바 있고, 4월 초 난입 사건 때는 박격포로 중무장한 병력이 며칠 동안 농성을 벌여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러나 5월17일의 경우에는 첫 시도에서 북한군 병사 3명이 공포탄을 쏘며 남하했고, 두 번째 시도에서는 장교가 낀 병사 7명이 동원되는 데 그쳤다. 5월23일의 서해안 무력 시위는 북한측에서 남하한 고속 경비정 5척과 우리측 경비정 6척이 3백m까지 근접하는 긴장된 상황이 벌어졌지만 별다른 불상사 없이 상황이 끝났다.

국제 여론 의식해 소규모 도발

최근의 두 차례 무력 시위에서 북한측이 소규모 병력을 동원해 짧은 시간에 치고 빠지는 전술을 택한 이유는, 전술 목표가 극히 한정된 것이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가능하다. 즉 북한은, 대규모 병력을 투입할 경우 국제 여론을 환기하는 효과는 매우 크겠지만 한편으로는 현재 활발하게 전개되는 미·북한간 각종 협상에 지장을 초래할까 우려했을 것으로 보인다. 국제 여론이 북한을 한반도 긴장의 주범으로 낙인찍는 것도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판단했을 법하다. 또 김일성 탈상을 앞둔 현재 시점이 김일성 시대를 마감하고 김정일 시대의 개막을 본격 준비해야 할 시기라는 점도 고려되었을 법하다. 이런 민감한 시기에 필요 이상의 긴장 상태를 조성하는 것은 크게 도움이 될 것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 지도부는 군부 무력 시위를 동원하되 그 파장이 필요 이상으로 확대되지 않고 소기의 목적만을 달성할 수 있는 범위에 국한시켰다고 판단된다. 북한 전문가들은 이번 무력 시위의 초점을 한국의 대북 대화 공세를 차단하는 데 한정된 것으로 분석한다. 북한은 과거에도 한국의 대북 대화 공세를 차단하기 위해 돌발적인 강압 행위로 응대한 사례가 있다. 바로 지난해 6월의 쌀 회담 후 벌어졌던 인공기 게양 사건과 삼선 비너스호 억류 사건이다. 이 두 사건은 결과적으로 ‘쌀은 받되 남북간 대화는 안된다’는 북한의 전술적 목표에 유효 적절하게 활용되었다.

북한 전문가들이 이번의 무력 시위를 북한 지도부가 군부를 동원해 4자 회담 무력화 전략을 펼쳤다고 분석하는 것도 바로 이런 맥락에서이다. 군부 무력 시위를 통해 4자 회담의 근간이 되고 있는 남북대화에 찬물을 끼얹는다면 그것은 결국 4자 회담 구도 전체의 무력화로 이어질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반면 무력 시위 규모를 미국과의 대화에 영향을 주지 않을 정도로 조정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한국 배제, 미·북한 대화’ 라는 4자 회담 이전의 구도로 역전시키는 것을 동시에 노렸다고 볼 수 있다.

일련의 무력 시위 이후 전개되는 상황들 역시 북한측의 의도가 적중한 듯한 인상을 준다. 우선 한국 정부의 대북 대화 공세는 최근 발생한 미그 19기 조종사의 귀순 사건까지 더해져 주춤하고 있는 데 반해, 미국의 북한 접근은 리처드슨 하원의원 방북, 카터 전 대통령의 북한 쌀지원 발언 등으로 계속 진전되고 있다. 이런 와중에 북한은 지난 5월24일 <로동신문> 사설을 통해 5월 13,14일 제주도 한·미·일 3국 고위급 회담에서 제안된 ‘4자 회담에 대한 남북한과 미국의 3자 설명회’를 공식 거부했다.

이처럼 그 뒤 전개된 상황까지 고려해 북한군 무력 시위의 궁극적 목표를 다시 한번 검토해 보면, 거기에는 날카로운 ‘暗手’가 숨어 있다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북한의 한·미 이간책이다. 무력 시위로 인해 대북 대화 공세가 무력화된 한국 정부는 당연히 미국에 대해서도 대북 접근 속도를 늦추어 달라고 요청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은 대북 접근을 늦출 만큼 이번 시위를 심각하게 보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이번 시위를 계기로 한·미 간에 미·북한 접근 속도에 대한 이견이 발생하게 되면, 이는 다시 한·미 관계 악화 요인으로 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한·미 관계 이간이야말로 무력 시위의 최종 목표라고 북한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군부, 위상 제고·역할 찾기 안간힘

북한 군부가 북한 권력 내에서 ‘남북 대화 배제, 미·북한 대화’ 구도에 대한 최대 강경 세력으로 등장한 배경에는 주적 개념의 변화 등 정치·군사적 명분 외에도 대미 관계 개선이 대세로 굳어진 오늘의 북한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 전략 차원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북한 전문가들은 김정일이 북한군의 대세 흐름을 완전히 장악한 지난해 9월 이전까지만 해도 북한 군부는 대미 관계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정립하지 못했던 것으로 파악한다. 오히려 북한 군부는 대미 관계를 주도하고 있는 외교부에 대한 소외 의식에서 이에 대한 반발 세력으로 작용해온 측면이 강했다.

그러나 지난해 9월을 지나면서부터 대미 관계에 대한 북한 군부의 태도나 입장이 전향적으로 정리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 대북 소식통은 김정일의 2단계 군부 장악 전략이 성공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즉 1단계에서는 군부를 자신의 휘하로 통일하고, 2단계에서는 대미 관계에서 새로운 역할을 모색하게 하는 전략의 결과라는 것이다.

결국 대미 관계 개선을 대세로 받아들인 상태에서 북한 군부는 이에 걸맞는 새로운 위상과 역할 찾기에 골몰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또한 이 부분은 북한 군부가 자신들의 생존이 앞으로 미국과의 협상 여하에 좌우되는 것으로 인식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미·북한간 유해 협상으로 시작된 미사일 및 생화학무기 협상 등 일련의 협상이다.

이들 협상에 대한 북한 군부의 최종적인 전략 목표는 여전히 평화협정 체결과 이에 연동된 주한 미군 철수이다. 최근 북한 내에서도 외교부나 당을 중심으로 일부 다른 목소리가 나오고 있고, 또 북한 군부 역시 한국 주둔 미군보다는 오히려 동북아 주둔 미군에 더욱 신경을 쓰는 새로운 흐름이 나타나고 있기는 하나, 주한 미군 철수가 여전히 북한 군부의 전략 목표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전략 목표라는 것이 항상 그렇듯이, 그것을 달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계속 주장함으로써 여러 부문에서 양보를 얻어낸다는 기능적 역할 또한 중요하다. 유해 송환 역시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미사일과 생화학무기 협상의 경우에는 미국측으로부터 어느 정도 반대 급부를 받아낼 수 있는가가 군부에 초미의 과제가 되고 있다.

그동안 미사일이나 생화학무기 수출이 북한 내에서 독립된 경제권을 형성하고 있는 북한 군부의 주요 자금원이었다는 점에서 볼 때, 앞으로 이들 협상 결과는 군부의 경제적 생존 문제를 좌우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북한 군부가 미국과의 협상에 자신들의 생존 방향을 걸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측이 이 협상의 구도를 헤집고 들어와 혼란스럽게 하는 것에 대해 거부 반응을 보이는 것은 충분히 짐작해 볼 수 있는 일이다.

김일성 주석 사망 이후 권력 과도기에 북한 사회를 실질적으로 통제해온 북한 군부는 이밖에도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할 난제들을 떠안고 있다. 북한 군부에는 한국처럼 제대나 은퇴라는 개념이 없기 때문에 군부 지도부에 혁명 1세대와 2세대가 혼재돼 있어 세대간 갈등 소지가 항존하고 있다. 대미 관계에서도 군사 접촉에 대해서는 대체로 대세로 인정하고 있으나, 연락사무소 개설에 대해서는 우려하는 시각이 계속 남아 있다. 또한 권력 과도기의 사회 통제 역할을 어느 시점까지 계속할 것인가 하는 문제 역시 최근 내부적인 쟁점으로 등장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이 문제는 김정일이 군부를 중시함으로써 당과 정무원의 소외 구조가 심해지면서 권력내 갈등 요인으로 비화할 조짐도 있다. 또한 군 역시 현재 북한 전역을 강타하고 있는 식량난을 똑같이 겪고 있다는 점도 군부의 어려움을 가속화하는 요인이 되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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