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데타의 문은 여전히 열려 있다
  • 지만원 (군사 평론가·시스템학 박사) ()
  • 승인 1995.09.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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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회 제거·율곡비리 사정 등 근본 개선책과는 거리…대안은 소수정예 과학군
김영삼 대통령은 군을 얼마나 개혁했는가. 그의 개혁 내용은 두 가지로 회자되고 있다. 하나는 하나회 숙청이고, 다른 하나는 율곡 비리에 대한 대대적인 사정이다. 이 두 가지를 가지고 세인들은 군을 개혁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빈 수레가 요란하듯 사실은 그 반대다.

그 이유는 첫째, 군의 개혁 범위에서 이 두 가지가 차지하는 비율은 1%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 두 가지는 개혁이라는 범주에 들어갈 수도 없는 단순한 조처에 불과한 것들이다. 정말로 중요한 개혁은 아직 손조차 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김대통령이 취한 이 두 가지 조처가 군에 미친 영향이 오히려 역기능적이었다는 사실이다.

하나회의 폐해는 군 안팎으로 엄청난 것이었다. 하나회라는 사조직은 국가 이익보다는 사조직의 이익을 우선했다. 밖으로는 쿠데타를 주도할 수 있었고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다. 안으로는 군의 기강과 명령 체계를 파괴하고 단결을 와해시켜 전투력을 소리 없이 허물어뜨린 암적인 존재였다.

이러한 하나회를 숙청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업적이다. 그러나 이 업적은 김대통령만이 해낼 수 있는 업적이 아니라 민간 출신 대통령이면 누구라도 해야만 하는 단순 조처였다. 하나회에 대한 군 내부의 원성은 엄청난 것이었다. 이러한 원성이 그동안 밖으로 드러날 수 없었던 것은, 하나회 장교 두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기 때문이다. 군에서는 원성의 대상에 불과하겠지만, 민간 대통령에게 하나회는 언제나 쿠데타 잠재 세력이라는 폭발물이다. 따라서 하나회는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제거해야 하는 존재였다. 개혁은 인위적이고도 획기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지는 ‘개선’을 의미한다. 하나회를 숙청한 것은 정당한 것이기는 해도 그 자체가 곧 개선은 아니었다. 단지 하나회 명부를 입수해서 차례대로 인사 명령을 냈을 뿐이다.

이번에 공개된 12·12 관련 녹음 테이프에서 적나라하게 나타난 바와 같이, 만일 지금도 누가 쿠데타를 일으키면 12·12가 그대로 재현될 수도 있다. 옛날에는 계산보다는 의리가 높은 덕목으로 취급됐지만 지금은 의리보다는 계산이 앞서가는 세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는 쿠데타가 난다 해도 이에 저항하는 군인이 옛날에 비해 더 적으리라는 것이 예비역들의 통념이다. 군의 인심은 바뀌고 있는데 쿠데타를 사전 봉쇄할 시스템은 전혀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근본적인 개선은 외면한 채 사람만 자르는 단순 조처를 해놓고 어떻게 개혁이라고 부르겠는가.

개혁 방식·절차에 문제, 오히려 상처 남겨

첫째, ‘쿠데타 예방 시스템’이 마련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단지 정치 현실과 세상 인심이 쿠데타를 인정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 둘째, 대통령에 대한 사회의 인기가 떨어질 때에는 세상 인심도 바뀐다. 대통령이 국정을 혼란시키고, 대부분의 국민이 대통령을 무시하기 시작하면 바로 그 시기가 위기인 것이다. 쿠데타를 차단할 제도적 장치는 아직 없다. 12·12에 많은 군인이 동조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정치적 불안과 불만으로 인해 은근히 쿠데타의 명분에 동조하는 군과 국민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회만 숙청하면 군이 곧바로 발전할 것이라고 믿고 있지만 군은 지금도 하나회가 남기고 간 빈 자리를 채우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과거에는 하나회라는 군인들 앞에 줄을 서던 군인들이 이제는 대통령 앞에 줄을 서고 있다는 기막힌 말이 유행하고 있다. 따라서 하나회를 제거했다는 그 사실 하나만을 가지고는 군을 위해서 개선을 했다고 말할 수 없다.

감사원이 나서서 율곡 비리에 대한 대대적인 감사를 수행했다. 시스템 진단 능력이 없는 감사원은 제보에서 감사의 실마리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언론의 각광과 국민들의 박수를 화려하게 받으면서 나섰던 감사원이었지만 실은 엄청난 음해성 제보를 그대로 믿고 사정에 나선 것에 불과했다. 그 결과 감사원은 음해성 제보자에 의해 철저하게 농락 당하고 말았다. 논리와 분석력이 없는 사람들의 머리는 먼저 점령하는 사람이 임자였다. 감사관들의 머리는 제보자의 논리로 손쉽게 채워졌다. 감사원은 제보자의 논리와 첩보를 여과 없이 언론에 발표했다. 그러나 율곡 비리라고 발표된 모든 것들은 감사 결과 율곡 비리가 아니라 일반 비리에 불과했다. 감사를 시작하기 전에는 서슬이 시퍼랬지만 나온 결과는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일반 행정부의 비리를 넘어서지 않는 수준이었다.
군 장교들이 밤을 새워 가면서 소신과 정열을 가지고 수행한 사업 결과를 놓고 감사원은 군인들을 죄인 다루듯 취조했다. 감사관들의 분석 능력이 퇴화돼 있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잘한 일을 감사원이 처벌 대상으로 재판하는 일에 나섰기 때문에 공무원들의 복지부동이 시작된 것이다. 일을 많이 할수록 감사를 많이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분별력 없는 감사관에게는 눈에 안 띄는 게 상수이다. 일을 적게 해야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복지부동의 근원이었다. 군인도 예외가 아니다. 이런 것을 어떻게 개혁이라고 부르겠는가. 사정 능력도 없으면서 사정 소리만 요란하게 냈다. 국민들만 사정이 엄청나게 이뤄진 것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김대통령은 언론 이용하기의 귀재임에 틀림 없다.

반면 하나회 숙청과 율곡 사정이 남기고 간 자리에는 너무나 큰 상처가 남았다. 김대통령 집권기에는 이를 치유하기 어렵다. 보존돼야 할 군복 자체에 대한 이미지가 찢긴 것이다. 4성 장군은 젊은 장교들의 꿈이다. 그런데 그 4성 장군들이 마치 굴비 두름 엮이듯 줄줄이 묶여 가는 모습이 전방에 있는 병사들에까지 되풀이 방영됐다. 4성 장군이 손가락질을 받는데 어느 병사가 그들 앞에 있는 소위나 대위를 존중하겠는가. 이렇게 병들어 가는 군에 대해 국민은 15조원이라는 방위비를 투입하고 있다.

일관성 없는 대북 정책도 군에 악영향

하나회는 숙청해야 했다. 그러나 절차에 따라 인격적인 방법으로 했어야 했다. 김대통령은 하루아침에 깜짝 쇼로 참모총장과 기무사령관을 잘랐다. 그리고 그는 이화여대생들 앞에서 ‘놀랬제’라는 말로 자신의 결단을 자랑했다. 군은 완전히 장난감이었다. 대통령은 군을 개혁하기 위해 청사진을 가지고 논리의 매를 가한 것이 아니라, 감정의 매와 인기용 매를 든 것이었다. 이러한 가벼움으로는 군을 개혁할 수 없다.

김대통령의 갈팡질팡하는 북한 정책 역시 군을 소리 없이 허물어뜨리고 있다. 북한이 적이냐 동반자냐 하는 것은 오직 휴전선만이 말해 주고 있다. 북한은 지금도 ‘서울 불바다’용 대구경 무기를 휴전선 부근에 무더기로 배치해 놓고 있다. 이는 우리에게 알려진 북한의 경제 사정으로는 도저히 믿기 어려운 행동이다. 북한은 변함없이 우리를 무찔러야 할 원수로 적개심을 키우고 있는데, 우리만 기분에 도취해서 하루는 북한을 적으로, 하루는 감싸야 할 동포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우리 국민 가운데 누구도 북한이 남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북한은 이미 우리의 적이 아닌 것이다. 이는 전방에 있는 우리 병사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주고 있다.

통일이 곧 될 텐데 왜 이 무더위에 진지 공사와 훈련을 해야 하느냐고 불평하는 병사가 많다. 병사들은 이러한 일을 강요하는 장교들을 ‘세상 물정 모르는 바보들’이라고 멸시하기까지 한다. 전방에서 초급 지휘관들이 가장 애로를 겪고 있는 것이 바로 이러한 병사들의 멘탈리티이다. 통일이 임박했는데 왜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악착같이 싸워야 하느냐고 ‘진보적’으로 생각하는 병사들도 있다. 인민군은 보호해야 할 동포이지 싸워야 할 적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병사도 많다. 허물어진 장교의 위상과 어설픈 통일 정책이 바로 하극상의 원천인 것이다. 지금 군은 이렇게 소리 없이 망가져 가고 있다. 오열이 따로 있고 색깔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소대장도 부하에게 기합을 주고 난 뒤에는 그 부하의 상한 마음을 달래준다. 그러나 김대통령은 총애하는 군 수뇌들의 말만 믿고 군을 방치하고 있다. 앞으로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은 바로 군의 명예를 회복해 주는 일이다. 군의 명예를 회복시키는 일은 행사 때마다 군부대에 가서 하는 일회적인 발언이 아니다. 군에 훌륭한 청년들이 들어오고 싶어하도록 만드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군의 이미지를 바꿔야 한다. 이미지를 바꾸려면 군의 모양이 바뀌어야 한다. 바로 소수 정예 과학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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