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출신 인사, 야당에는 ‘보물’ 여당에는 ‘짐’
  • 김 당 기자 ()
  • 승인 1995.09.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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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민 정부 들어 처지 역전…새정치국민회의·자민련 영입 활발, 민자 전전긍긍
‘軍心’은 김영삼 정부를 떠났다. 군발전연구조사사업위원회(조사위원장 최평길 교수)가 지난 5월 군을 대상으로 연구 조사한 ‘21세기 한국군 연구’ 보고서(14~17쪽 기사 참조)는 그것을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언론이 흔히 쓰는 군심이라는 표현은 과학적인 용어는 아니지만, 분명한 것은 민심과 별개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 뒤에 이어진 6·27 지방자치 선거 결과 또한 김영삼 대통령이 스스로 고통스럽게 인정했듯이 민심의 이반을 분명하게 드러냈다. 민심 따라 군심도 방황하고 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문민 정권을 떠난 군심은 지금 어디로 이동하고 있을까. 그것을 잘 보여주는 것은 정치권이다. 예비역 장성들을 포함한 군 출신 인사들의 정계 진출 경향은 이동중인 군심의 방향을 가늠하는 풍향계인 셈이다.

과거와 달리 군 출신 인사들이 정계, 특히 야권에 진출하는 것은 이제 뉴스거리가 아니다. 물론 아직도 군 출신 인사의 다수는 여당에 몸을 담고 소수만이 야당에 몸을 담고 있다. 그러나 최근 예비역 장성을 중심으로 한 군 출신 인사들의 정계 진출 경향을 보면 과거와 뚜렷이 대비되는 특징이 나타난다. ’군 출신=여권’이라는 등식이 더는 성립하지 않게 된 것이다.

현재 군 출신 인사들을 영입하는 데 가장 적극적인 곳은 새정치국민회의이다. 국민회의는 그동안 김대중 창당준비위원장의 ‘특명’을 받은 이종찬(육사 16기)·나병선(육사 14기) 의원과 아태재단 임동원 사무총장(육사 13기)이 비밀리에 군 출신 영입 작업을 벌여 왔다. 국민회의는 그 중 1차 영입 대상자 7명을 창당 발기인대회에서 공개했다. 천용택 전 비상기획위원장(예비역 육군 중장)을 비롯해 간용태(해군 중장)·용영일(육군 중장)·손길남(육군 소장)·정일철(해군 소장)·김재민(육군 준장)·윤갑수(공군 준장) 등 예비역 장성들이다. 이들의 면면을 보면 육사 교수부장 출신인 김재민씨(전 외대 통역대학원장)를 제외하면 모두 순수 야전 전략 및 국방 정책 분야 전문가라는 점에서 관심을 끈다. 특히 천용택씨는 김영삼 정부에서 장관을 지낸 인물이다.

이들의 면면을 보면 항간에 알려진 국민회의의 5·6공 인사 포용 움직임과 달리 정치 군인(하나회 출신)은 배제한다는 국민회의 쪽의 영입 원칙이 드러난다. 나병선 의원은 “이밖에도 3군의 균형 발전을 위한 안배와 총장급(4성 장군)보다는 안보 전문가 중에서 현역들로부터 신망 받는 인사를 우선 영입한다는 것이 국민회의의 방침이다”라고 밝혔다. 한 영입 관계자는 이번 영입 과정에서 장성급만 40명이 입당을 희망했으나 자리가 한정돼 있어 우선 1차로 15명의 영입을 확정했다고 귀띔했다. 따라서 공개한 7명 외에 비공개한 8명이 더 있다는 말이다. 이 관계자는 일부의 영입 방해 등 어려움도 있었지만 앞으로 연말까지 2,3차 영입 과정을 거치는 동안 적절한 시점에 이들을 공개하겠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1차 영입자 15명을 포함한 영입 대상자들이 자리(지역구)보다는 정책 브레인을 더 선호하는 경향이어서 고무적이다”라고 밝혔다. 이같은 현상은 야당의 취약점인 자리의 한계와 국방·안보 전문가의 필요성 때문에 이름값보다는 실무 능력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국민회의 쪽의 영입 방침과도 맞아떨어지는 것이다. 영입 관계자들도 한결같이 당 안팎의 평이 좋다면서 영입 성과에 만족해 하는 눈치이다.

임동원 사무총장은, 이같은 영입 결과를 ‘성공적’인 것으로 자평하고 앞서 야당에 진출한 군 출신 정치인, 특히 야권에서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국방·안보 분야에서 단연 돋보이는 의정 활동을 편 이른바 ‘국방위 4인방’(강창성·나병선·임복진·장준익 의원)의 활약도 긍정적으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임총장에 따르면, 영입 대상자들을 접촉하는 과정에서 상당수가 “처음에는 야당행이 망설여졌지만, 군에 대한 이들의 애정어린 질책과 활약상을 보고 국방·안보에는 여야가 따로 없다고 생각하여 ‘군=여권’이라는 과거의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게 되었다”고 자신감을 피력했다는 것이다.

뒤바뀐 추세, 정치 발전에도 도움
국민회의가 이른바 수평적 정권 교체를 위한 정책 정당으로서 면모를 갖추기 위해 국방·안보 테크너크랫을 영입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면, 자민련 쪽은 김영삼 정부 출범 이후 군 개혁 과정에서 사정의 칼을 맞거나 하루아침에 강제 전역된 ‘정치 군인’(하나회) 출신을 끌어안는 데 주력하고 있다. 자민련은 하나회 출신뿐만 아니라 현 정부 들어 소외된, 노태우 전 대통령이 9공수여단장 및 9사단장 시절에 함께 근무한 이른바 9-9인맥을 집중 공략하고 있다.

자민련의 이같은 움직임은 지난 5월 지방 선거를 앞두고 하나회 및 9-9 인맥의 핵심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인 안병호 전 수방사령관(육사 20기)을 김종필 총재 특별보좌역으로 영입함으로써 수면 위로 드러났다. 이와 관련해 주목 받는 인물은 새 정부 출범 직후 옷을 벗게 된 김진영 전 육군참모총장(육사 17기)과 조남풍 전 군사령관(육사 18기)의 거취이다. 세 사람은 지난해 미국 스탠퍼드 대학 부설 후버연구소에서 함께 연수했다.

현 정부의 군 개혁에 대해 강한 불만을 느끼고, 특히 김대통령의 대북 정책에 강한 불신감을 갖는 이들의 성향은 안정 희구 세력을 결집하려는 자민련의 노선과도 합치하는 것이어서 이른바 5·6공 신당이 창당되지 않는 한 이들의 자민련 합류는 어렵지 않게 예상된다.

민자당은 자민련의 공세적 영입 작업에 비해 수세에 놓여 있다. 아직 군 출신 의원의 다수는 민자당에 있지만 박준병·정호용·허삼수·허화평 의원 등 상당수가 12·12 또는 5·18 ‘업보’에서 벗어날 수 없는 처지여서 개혁을 표방하는 민자당으로서는 이들이 버거운 ‘짐’일 뿐이다. 또 최근의 여론 동향에 비추어 볼 때도 이들은 자기 당 총재인 김영삼 대통령이 쿠데타적 사건이라고 규정한 ‘군사 반란’에 연루된 정치 군인으로서 집권 여당에 몸을 담고 있는 것 자체가 편안할 리 없을 것이다.
그런 가운데 지난 3월 말 김홍렬 해군 참모총장(해사 16기)이 임기를 앞당겨 전격 전역함과 동시에 민자당이 그를 충남 서천 지구당위원장으로 영입한 것은 시사하는 바 크다. 당시 대부분의 군 관계자들은 김총장의 정계 입문 낌새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현직 참모총장이 임기를 마치기도 전에 옷을 벗자마자 정계로 뛰어든 것은 ‘쿠데타적 사건’ 때말고는 전례가 없기 때문이다. 당시 정치권 일각에서는 민자당이 서천 토박이로 입지전적인 인물인 김총장을 전격 영입한 것을 자민련의 공세와 지방 선거를 대비한 다목적 포석으로 해석하였다.

그러나 군에서는 임기도 채우지 않은 해군 참모총장을 단지 지역구 출마를 위해 바꾼 것은 하나회 제거에 이은 또 다른 YS식 깜짝 쇼이자 군을 망치는 행위라는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 야권도 현역 영입에는 부정적이다. 국민회의의 군 출신 영입에 관계한 한 의원도 “자칫 군 조직 자체를 뒤흔들 수 있기 때문에 현역은 처음부터 배제했다”고 밝혔다. 국민회의에 영입된 천용택 지도위원은 “군도 과거의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 소신에 따라 여야를 선택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마련되는 것이 군의 장래를 위해 바람직하다. 그러나 현역에 있을 때는 통수권자에게 절대 충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군 출신 인사들이 여당에는 ‘짐’이 되고 야당은 선호하는 역전 현상은 일련의 군 개혁 과정에서 겪게 된 소외감을 반영하고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전문 안보 집단이라는 위상 정립뿐만 아니라 정치 발전에도 이바지할 것으로 보인다. 진정한 민주화는 문민 출신만이 대통령이 되는 것이 아니라 무인 출신 정치인도 아무런 거리낌없이 대통령 후보로 나서는 때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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