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칼럼니스트 할로란 특별 기고
  • 정리·卞昌燮 기자 ()
  • 승인 1996.01.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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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코가 석자’ 클린턴 남북 대화는 관심 밖
한국전쟁이 끝난 뒤 최초로 1월11~13일 하와이에서 열린 미국과 북한 간의 미군 유해 송환 협상에서 북한은 회담 성격을 정치 협상으로 확대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미국 대표단의 앨런 리오타 부단장은 “3일 동안 집중적이고도 솔직한 협상을 벌였다. 일부 진전될 만한 신호가 있긴 했지만 몇 가지 주요한 이슈를 타결하지 못해 결렬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미국 관리들은 협상의 문은 여전히 열려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번 협상에서 북한 대표단은 유해 송환 문제를 평화협정 체결 및 연락사무소 설치와 같은 정치적 의제들과 연계하려 했다. 협상에 정통한 미국 관리들에 따르면, 김병홍 단장이 이끄는 북한 대표들은 이번 협상에 임하면서 처음부터 정치적 의제를 거론할 작정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미국 대표단은 이번 회담을 철저하게 유해 송환 문제에만 국한하라는 지시를 본국 정부로부터 받았다는 사실을 회담 벽두부터 북한 대표단에 분명히 밝혔다고 한다.

이번 협상의 핵심은 미군 유해 반환에 대한 보상 문제였다. 미국 정부는 유해가 반환되는 경우에 한해 ‘합리적인 비용’을 지불하겠지만 아직 반환되지 않은 상태에서 돈을 지불하지는 않는다는 입장이다.

현재 심각한 경제난에 빠져 있는 북한은 미군 유해를 반환할 테니 이를 보상해 달라고 줄기차게 요구해 왔다. 53년 미국은 미군 유해 46구를 넘겨받는 대가로 북한에 89만7천달러를 지불했다. 또 93년 하반기 북한은 미군 유해 1백62구에 대한 보상가로 4백만달러를 요구했다. 그러나 미국 관리들이 4백만달러에 대한 산출 근거를 요구하며 난색을 표하자 북한은 요구액을 3백50만달러로 낮췄다. 이번 하와이 협상에서 미국 관리들은 유해 1백62구에 대해 백만달러까지 지불할 수 있다는 용의를 밝히고, 향후 유해 발굴 조사에 미군 당국을 포함시켜야 한다는 조건을 제시했다. 북한은 이러한 제의를 거부하고 회담을 결렬시켰다.

미군 유해 문제와 관련해 미국은 북한에 대해 한국전에서 전사한 8천1백명의 유해 발굴 조사에 응해 주도록 요구해 왔다. 미국은 전사한 병사들의 유해 발굴 작업 문제를 단순히 해당 병사뿐 아니라 그 가족에 대한 명예 회복 차원에서 다루어 왔다.

94년 이후 미군 유해 문제에 협조하기를 꺼려온 북한은 호놀룰루에 있는 히캄 공군기지내 중앙신원확인연구소에 대표단을 보내기로 합의했다. 미국 관리들에 따르면, 북한 대표단은 미국의 전문가들이 유해 신원 파악에 사용하는 방법이 어떤 것인지에 관해 자세한 설명을 들었다. 사실 미군 전문가들은 북한이 유해를 함부로 다루는 바람에 지금까지 불과 몇 구의 신원만 파악했을 따름이다.

앞으로 미군 유해 반환 협상을 포함해 미·북한 협상은 전에 비해 좀더 힘든 줄다리기가 될 것 같다. 토머스 허바드 국무부 아·태 담당 부차관보는 곧 북경주재 북한 관리들을 만나 제네바 회담 이후 15개월에 걸친 협상 결과를 검토하고 속도를 조절할 것이다. 북경 회담의 주요 의제는 남북 대화이다.

허바드 부차관보의 북경 회담과는 별도로 하와이에서는 윈스턴 로드 아·태 담당 차관보가 한국과 일본의 상대역과 만나 북한 식량난에 대한 공동 대처 방안을 논의한다. 한국 정부는 북한이 남북 대화 등 먼저 성의 있는 조처를 취하지 않는 한 더 이상 쌀을 제공하지 않을 것임을 명백히 밝혔다. 한국은 또한 북한이 비무장 지대에 배치한 병력을 후방으로 재배치할 것도 요구했다.

미국 관리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현재 미국 정부는 북한을 너무 밀어붙여 결과적으로 북한에 정변이 일어나 정권이 무너지거나 경제 파탄에 빠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어느 경우든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으며, 최악의 경우 남침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 15개월 동안 미국은 북한에 대해 세 가지 목표를 추구해 왔으나 북한의 비타협적 자세 때문에 부분적인 성과를 거두었을 뿐이다.

우선 북한의 핵개발을 저지하는 문제다. 지금까지 이 목표는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북한이 간헐적으로 핵동결 약속을 깰 수도 있다는 식의 위협을 반복해 온 선례를 볼 때 북한의 핵 야욕을 완전히 꺾었다고 결론 내리기에는 아직 이르다. 94년 10월 제네바 회담 때 미국은 대북 협상팀에서 한국 대표를 제외하기로 합의해 줌으로써 한국 정부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뒤 미국은 한국 정부에 미·북한 협상 결과에 대해 알려주는 등 나름의 노력을 해왔으나 결과는 오히려 한국 정부에 의심만 심어 주었다. 실제로 한국 정부는 미국이 막후에서 한국의 안보를 위태롭게 할 만한 거래를 할지도 모른다고 우려하고 있다.

두 번째 목표는, 북한이 한국에 대해 재래식 군사 공격을 못하도록 저지하는 일이다. 미국은 이같은 목적을 성공적으로 이루었다. 대부분의 미국 관리는 김정일이 이미 김일성 사후 권력을 장악했다고 믿고 있지만 아직 100%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김정일이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군사적 모험을 감행할 수도 있다는 점을 걱정하고 있다.

클린턴 ‘북한 압박’ 불가능해 남북 대화 비관적

현재 북한 경제는 지난해 홍수 피해까지 겹쳐 최악의 상태이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발표한 최근 평가에 따르면, 북한의 경제성장률은 구조적 결함도 문제지만 근래 들어 중국과 러시아가 지원을 중단하는 바람에 최근 몇년 동안 3~5%가 떨어졌다. 북한의 국내 총생산은 한국의 5천83억달러에 비해 2백13억달러에 불과하다. 또 1인당 국민소득도 북한이 9백20달러인 데 견주어 한국은 1만1천2백70달러이다. 북한의 군사 능력은 얼마전 최고조에 달했으나 근래 감소 추세라고 한다. 여기에는 경제적 결함과 중국과 러시아가 지원을 중단한 것도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세 번째 목표는, 한반도 긴장 완화를 위해 남북 대화를 재개시키는 일이다. 미국은 북한의 핵공격 저지와 남침 의도를 꺾는 데 성공했다고 볼 수 있지만 남북 대화 재개라는 목표 달성에는 실패했다. 제네바 합의문에는 북한이 남북 대화를 재개하도록 되어 있으나 북한은 끈질기게 이를 거부하고 있다. 오히려 북한은 계속 한국에 독설을 퍼붓고 있다. 이를테면 북한 <로동신문>은 신년호 사설에서 한국이 아직도 ‘미국의 식민 통치 아래 놓여 있다’며 김영삼 대통령을 ‘꼭두 정권’이라고 주장했다.

결론적으로 남북 대화 전망은 현재로서는 비관적이다. 남북 대화 재개 문제는 앞으로 클린턴 대통령이 제네바 합의에 명시된 미해결 문제들(남북 대화 포함)에 관해 북한을 얼마나 윽박지를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현재 클린턴 대통령이 대외적으로는 보스니아 사태, 국내적으로는 균형 예산안 절충 작업에 매달려 있는 데다 재선에도 신경을 써야 하기 때문에 북한에 대해 강경한 정책을 펼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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