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 청산별곡 "쿠데타 징벌, DJ시대 종식"
  • 徐明淑 기자 ()
  • 승인 1995.12.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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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을 법정에 세워라’. 김영삼 대통령이 11월24일 ‘5·18 특별법’ 제정을 결정함으로써, 노태우씨 수감에 이어 전두환씨 구속이 눈앞에 다가왔다. 민자당 강삼재 사무총장은 〈시사저널〉 인터뷰(34~35쪽 참조)에서 일련의 상황을 ‘미증유의 사태’라고 표현했다. 제2 창당을 위한 또 다른 개혁 조처가 잇따를 것도 예고했다.

‘5·18 해일’이 비자금 정국을 단숨에 삼켜버린 11월24일. 이 날 청와대의 아침은 여느 때나 다름없었다. 조깅을 마친 김대통령은 한 가신 출신 비서관에게 불쑥 질문을 던졌다. “민자당 당명 바꾸는 것, 어떻게들 생각하드노?” 이 비서관은 ‘회의 반 기대 반인 것 같다’고 대답했다. “마, 그건 니 성을 바꾸는 기나 마찬가지다. 앞으로 두고 보거래이.”

두고 보라던 김대통령의 말은 곧 현실로 나타났다. 대통령은 고위당직자회의에 참석 중인 강삼재 총장을 불러들여 오찬을 함께하면서 5·18 특별법 제정을 지시했다. 흥분한 강총장은 당사에 들어서면서 청와대 소식을 기다리던 주변 사람들에게 “전두환 구속이야”라고 외쳤다. 이틀 전 김대통령이 지시한 당명 변경의 의미가 그야말로 족보를 바꾸는 일임이 분명해졌다.

상황은 이 때부터 발생했다. 뒤늦게 이 소식을 접한 전씨는 즉각 측근들을 소집하고 “소급 입법에 의한 정치 보복의 악순환이 되풀이되는 헌정사에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길 것이며, 이런 사태를 국민이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력히 반발했다.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는 즉각 ‘환영의 뜻’을 밝혔지만, 허를 찔린 표정이 역력했다.

외신은 국내 언론보다 더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청와대 해외 담당 비서관실에는 이 날 오후부터 외신의 사실 확인 전화가 빗발쳤다. 그들이 한결같이 빼놓지 않고 물어본 것은 “쿠데타 가능성은 없는가”였다. 막강한 군부가 군 출신 전직 대통령을 잇달아 구속하는 사태에 대해 반발할 가능성은 없느냐는 의문이었다. 5·18 특별법 제정이 발표된 숨가쁜 하루는 이렇게 지나갔다.

정치권도 설마했던 ‘5·18 해법’

사실 ‘5·18 정면 돌파설’은 비자금 정국이 전개된 뒤부터 정가는 물론 대학가에서도 풍문으로 끈질기게 나돌았다(<시사저널> 제318호 16~17쪽 참조). 풍문만도 아니었다. 민자당 민주계 소장파 의원들은 “우리는 전두환 정권에서 단식하고 투쟁한 세력이다. 5·18 문제를 정면 돌파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그 가능성을 장담하는 의원들도 있었다.

그러나 정치권 인사 대부분은 여야를 막론하고 ‘5·18 해법’의 실현 가능성에 극히 회의적이었다. 5공과는 투쟁했다손 치더라도 3당 합당을 통해 5·17 주도 세력과 손잡은 YS의 ‘태생적 한계’ 때문이었다. 게다가 민자당 내에는 5·17과 연루된 현역 의원들이 엄연히 구성원으로 남아 있다. 5·17 쿠데타의 핵심 정호용 의원은 끈질긴 영입 교섭을 받고 민자당에 입당했다. 여권의 복잡 다기한 세력 구조를 감안할 때, 5·18 해법은 중대 결심을 요구하는 사안이었다.

더욱이 강력한 카리스마를 발휘하며 7년이나 집권한 전씨가 심어 놓은 군부·재계·관계의 인맥과 영향력도 만만치 않다. 선거를 앞두고 당내 대구·경북 세력에게 노씨 구속에 이어 또 다른 타격을 가하는 것도 YS에게는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정치 고단자임을 자처하는 한 야당 중진 의원은 “두고 봐라. YS가 아무리 통이 크다 해도 절대로 5·18을 넘어서지는 못한다”고 장담하기도 했다.

여권내 역학 관계와 지지 기반 문제 외에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그동안 김대통령이 5·18과 관련해 일관되게 유지해온 소극적인 태도였다. 정권 출범 초기 YS는 이 문제에 대해 ‘불행한 일이나 역사의 심판에 맡긴다’는 입장을 밝혔다. 야당과 재야 단체들이 벌떼처럼 들고일어났지만, 미동도 하지 않았다. 지난 7월 5·18 고소 고발 사건에 대해 ‘공소권 없음’을 이유로 불기소 처분을 내린 검찰의 결정은, 바꾸어 말하면 YS의 입장이었다.
청와대 “세대 교체 가속화”

어쨌든 정치권은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발표 직전까지도 ‘5·18 카드’ 실현 가능성을 일축하는 분위기였다. 그나마 정면 돌파를 주장하는 민주계 소장파들도 YS가 헌법재판소가 위헌 판결을 내리는 시점에서 헌재의 판결을 명분으로 삼아 5·18 해법을 시도할 것으로 점쳤다. YS가 헌재의 발표를 기다리지 않고 특별법을 들고 나온 데 대해 청와대 관계자들도 놀라움을 드러냈을 정도였다.

반신반의했던 일이 현실로 나타나자, 여권 핵심들은 한결같이 모범 답안을 내놓고 있다. ‘김대통령의 역사 인식’ ‘역사와 대화를 나눈 결과’ ‘역사를 의식한 혁명적 결단’ 등등이 그것이다. 5·18 특별법 제정이 몰고올 심대한 파장과 역사적 의미를 감안할 때, 설득력을 갖는 이야기다.

그러나 5·18 문제를 둘러싼 YS의 대전환은 역사론보다는 상황론을 대입해야만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김대통령의 전격적인 특별법 제정 발표가 나온 뒤에도 한동안 추진 방법, 적용 대상, 법리적 문제에 대한 구체적 지침이 나오지 않아서 여권에서는 대혼란이 빚어졌다. 심지어 특별법안을 만들 당의 법안기초위원회조차 갈피를 못 잡고 우왕좌왕했다. 그만큼 발표가 급했다는 이야기다. YS에게 닥쳤던 절체절명의 상황은 비자금 정국이 빚어낸 ‘총선 위기’였다.

김대통령은 6월 지방 선거에서 대패한 뒤 비자금 정국 전까지만 해도 구여권을 끌어안는 모습을 보였다. 김윤환 대표 체제를 출범시켰고, 대화합을 화두로 삼았다. 민주계 실세인 강삼재 총장은 대구·경북 출신 5,6공 거물급 인사들을 영입하는 데 적극적이었다. 심지어 노태우 군부 9·9 인맥의 핵심인 이진삼씨를 지구당위원장으로 임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비자금 정국은 그 모든 상황을 단숨에 바꾸어 놓았다. 5,6공의 비리가 속속 드러나면서 5,6공 끌어안기는 효력을 상실했을 뿐만 아니라 부담으로 돌아왔다. 92년 대선 자금에 대한 야당의 줄기찬 공세는 YS를 더욱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민자당 외곽 조직이 작성한 한 보고서는 ‘내년 총선에서 20억을 수수했다고 자인한 DJ가 가장 피해를 볼 것이라는 정세 판단과, 대선 자금 공방에 시달리는 YS가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정세 판단이 반반으로 팽팽하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러나 일부 민자당 관계자들은 ‘노씨로 인해 가장 큰 상처를 입은 것은 민자당이다. 내년 총선 패배는 불보듯 뻔한 일이다’라면서 정세를 좀더 비관적으로 판단했다. 더욱이 노씨의 완강한 침묵과 ‘여운’을 남긴 발언은 민자당 대선 자금을 둘러싼 의혹을 증폭시켰다. YS로서는 5,6공과 단절하는 모습을 극적으로 보여줄 만한 대형 카드가 필요했다.

그러나 YS의 5·18 해법에는 수세적으로 대응한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야당의 공세를 차단하는 적극 공세라는 측면도 있다. 야당은 비자금 정국 이후 줄기차게 대선 자금 공개와 5·18 특별법 제정을 요구해 왔다. YS는 이 중 한 가지를 전격 수용함으로써, 야당의 주요 공격 무기를 무력화했다. 여기에는 DJ를 향한 칼날도 숨겨져 있다. 이는 권력 핵심에서도 인정한다. 청와대의 한 고위 관계자는 “5,6공 청산 작업은 5,6공과 맞서면서 생존해온 구시대 정치인들의 역사적 역할도 끝났음을 뜻하는 것이다. 또 지역 갈등을 해소하는 이번 조처로 지역 감정을 기반으로 삼아온 정치인은 더 이상 설득력을 가질 수 없다”고 말했다. 결국 5·18 해법은 DJ 역할 종식론을 불러일으키며 정치권의 세대 교체를 가속화하는 한 계기로 작용하리라는 것이다.
YS가 정권 출범 이후 개혁과 보수 사이를 오가면서도 유일하게 일관성을 보인 대목은 정치권 세대 교체이다. 따라서 제2 창당 과정에서도 5,6공 단절과 쇄신을 통한 세대 교체 분위기를 만드는 데 최대한 역점을 둘 것으로 보인다.

5·18 카드를 결행한 YS는 앞으로도 대형 개혁 카드를 내놓을 가능성이 높다. 강삼재 총장은 〈시사저널〉 인터뷰에서 “당명 변경은 노씨와의 단절을 의미하는 시발점이며, 5·18 특별법 제정은 우리 당이 구상하는 일련의 개혁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내년 1월 말 전국위원회 소집 때까지 일련의 개혁 프로그램을 내놓으면서 ‘제2 창당’ 분위기를 잡아 나간다는 것이다. 개혁 프로그램에는 정치자금법·선거법·정당법 개정 등 정치 제도 개혁 조처와 돈세탁방지법 등 일련의 사회 개혁 조처가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여권내 지도 체제 개편과 대대적인 물갈이도 숨가쁘게 진행될 것이다. 김대통령은 11월25일 김윤환 대표를 청와대로 불러 “5·17 내란과 직접 연루되지 않은 이들은 신분 변동이 없다”고 말했다. 김대표를 안심시키는 말이다. 그러나 5,6공 이미지 단절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지도부 개편은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인적 재편 과정에서 정치권 사정 바람이 거세게 불어닥칠 가능성도 높다. 검찰이 노씨 비자금 문제를 수사하면서 정치권 인사들의 비리 혐의를 포착했다는 이야기가 나돈 지 이미 오래다. 정치권에 나도는 비리 명단에는 민정계는 물론 민주계 중진들도 포함돼 있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노씨 비자금 사용처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여야 정치인들의 비리가 나타나면 당연히 처리해야 하는 게 아니냐. 민주계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고 말했다. 남의 자식만 치고 내 자식을 안 치면 ‘표적 사정’을 둘러싼 잡음만 생긴다는 것이다.

물갈이의 주요 표적은 당선 가능성이 낮은 민정계 원내외 지구당위원장이다. 공천에서 탈락한 민정계가 대거 탈당해서 신당을 창당한다는 시나리오는 비자금 정국을 거치면서 이미 가능성이 사라지고 말았다. 신당 창당을 지원할 전직 대통령들의 자금줄이 봉쇄됐고, 깃발을 들 명분도 찾을 길이 없기 때문이다. 어느 때보다도 물갈이 폭이 커질 수밖에 없다. 물갈이와 외부 인사 영입 과정에서 전반적인 정계 개편은 아니더라도, 제3의 정치 세력 일부가 합류하는 소폭의 개편이 이루어질 가능성도 있다.

민주계 ‘노장’ 일부 솎아낼 가능성

민주계의 한 소장파 의원은 “개혁에 동의하는 인물은 같이 간다. 그러나 제 발로 나가겠다는 사람이나 못 견디는 사람은 버리고 갈 수밖에 없다”고 노골적으로 말했다. 물갈이 과정에서도 개혁과 세대 교체를 명분으로 ‘구 시대 냄새가 나는’ 민주계 노장들을 일부 솎아낼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바람몰이를 동반한 YS의 제2 창당에는 궁극적인 걸림돌이 있다. ‘92년 대선 자금’이라는 YS의 딜레마이다. 5·18 조처로 국민의 관심을 돌리는 데 일단 성공했지만, 그렇다고 비자금 불길이 완전히 잡힌 것은 아니다. 위기 상황에 빠진 DJ는 특별검사제 수용, 대선 자금 공개를 요구하며 장외 투쟁까지 선언하고 나섰다.

여권 핵심은 아직도 ‘노씨가 먼저 입을 열어줄 것’이라는 기대를 버리지 않고 있다. 국민의 의혹을 말끔히 씻으려면 그 길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권은 율곡 사업 비리까지 손대는 확대 수사와 5·18 특별법 제정이라는 초강수를 총동원해서 노씨를 압박하고 있다.

물론 검찰 기소 때까지 노씨가 입을 열지 않으면, 민자당은 노씨가 탈당 이전까지 지원한 자금을 대선 지원금과 당 운영 자금으로 구분해서 공개한다는 방침이다. 이와 함께 김대통령이 직접 국민에게 발표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노씨의 입을 빌리지 않고는 그 어떤 돌파구로도 국민의 신뢰를 끌어내기 힘들다는 데 민자당의 고민이 있다.

이 딜레마를 해결하지 않는 한 ‘자신만 빼놓은’ YS의 쇄신과 변화 슬로건은 다양한 역작용에 휘말릴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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