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문제]‘김대중·김정일 회담’ 한국이 주도
  • 南文熙 기자 ()
  • 승인 1998.01.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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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카터 방북 등 측면 지원으로 역 할 바꿔… 경협은 상당 기간 위축될 듯
97년 12월13일 세종문화회관 세종홀. 오전 7시부터 시작된 <시사저널> 주최 ‘통일과 대북 식량 지원에 대한 대선 후보 초청 정책간담회’가 끝나갈 무렵 패널리스트로 나온 고려대 이호재 교수가 김대중 후보에게 질문을 던졌다. ‘북한은 그동안 한국을 제치고 미국과만 대화하겠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김후보의 답변은 의표를 찌르는 것이었다. ‘북한이 한국을 건너뛸 수 있었던 것은 한·미 관계가 분열돼 있었기 때문이며 따라서 한국과 미국이 신뢰를 회복하면 자연히 해결된다.’ 다시 말해 한·미가 결속한다면, 북한이 한국과의 대화에 응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당시 김대중 후보가 지적한 대로 올해 한반도 정세의 최대 화두는 한·미 관계 복원이라고 할 수 있다. 한·미 관계는 남북 대화뿐 아니라, 최근의 경제 위기 과정을 규정하는 핵심 요인이기도 하다.

물론 다음과 같이 반문할 수 있다. 경제 위기는 경제 논리에 입각한 것일 뿐 한·미 관계와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지난해 11월 외환 위기가 본격화했을 때 국내 전문가 대다수가 경제 논리적 설명에 치중했다.

그러나 국제통화기금과 구제 금융 협정이 타결된 후에도 외환 위기가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자, 이런 논리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 드러났다. 바로 한국 정부를 바라보는 국제 사회의 차가운 눈, 더 구체적으로는 국제 여론을 주도하는 미국의 냉철한 태도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경제 문제에 대한 미국의 입장과 `대북 문제를 둘러싼 한·미 공조 ‘파탄’이 어떤 관계냐고 물을 수도 있다. 서로 별개 사안 아니냐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미국이 한반도를 바라보는 기본 시각을 이해하지 못한 소치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한반도 접근은 철저히 지역 전략 차원에서 추진되고 있다. 사안별 접근이 아니라는 것이다. 최근 몇년간 이 지역에 대한 미국의 최대 과제는 바로 북한 문제였다. 즉 북한 문제를 중심으로 한 한·미 공조야말로 한·미간 다른 쟁점들에 영향을 미치는 최대 현안이었던 것이다.
미국, 원활한 한·미 공조 위해 김당선자 적극 지원

이 점은 현재 미국의 한반도 정책을 주도하고 있는 세력이 바로 미국 조야에 광범위하게 포진하고 있는 ‘대북 실무자 그룹’이라는 점에서도 역으로 확인된다. 김영삼 정부는 그동안 한·미 공조가 잘되어 왔다고 주장했으나, 유감스럽게도 이들 실무 그룹이 김영삼 정부에 대해 소외감과 적대감마저 표시하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최근 경제 위기 해법에 대한 미국 조야의 입장은 ‘경제 위기 책임론’으로 귀결된다. 다시 말해 경제 위기를 초래한 것은 바로 김영삼 대통령과 현정부 인사들이므로 김대중 당선자가 최근 상황에 너무 깊이 개입해, 괜한 덤터기를 써서는 곤란하다는 견해를 보이고 있다. 이런 입장은 김당선자의 조기 방미 문제에서 극명하게 표출되었다. 최근 일부 언론은 국제통화기금 구제 금융 이후에도 미국 월가의 투자가들이 움직이지 않는 것은 김대중 당선자에게도 일말의 책임이 있다며 1월 중이라도 급히 미국을 방문하라고 ‘긴급 제안’을 하기도 했다. 김당선자가 그동안 말을 자주 바꾸었고, 또 그의 주변에 좌파 성향 인물들이 있는 것이 원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에 대해 미국 조야의 분위기에 정통한 한 서방 외교 소식통은 ‘터무니없는 말’이라고 일축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미국은 대선 이전부터 김대중 후보가 △동서 갈등 △한·미 관계 △남북 대화 등 현안을 해결할 최적의 인물로 보아 왔고, 당선 이후 내린 여러 가지 결정에 대해서도 대단히 높이 평가하고 있다. 그는 오히려 일부의 조기 방미 주장이 올해 2월에 또다시 닥칠 외환 위기를 염두에 둔 책임전가용이 아닌가라는 의구심마저 보였다. 즉 김당선자의 방미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외환 위기가 닥칠 경우 방미 성과가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호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최근 경제 위기에 대한 미국 조야의 입장은 책임질 사람이 끝까지 책임지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한국이 국가 부도 사태에까지 이르도록 방치하겠다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한국이 국가 부도에 이르면 사회 불안으로 인해 안보 위기까지 초래할 가능성이 있고, 이는 미국의 국익에도 맞지 않는다. 또한 김대중 당선자가 취임해서도 경제 회생이 어려워지는 사태는 막겠다는 것이다. 지난해 12월24일 자정을 기해 국제통화기금과 서방 선진국들이 백억달러 긴급 지원을 결정한 배경 역시 이런 입장에 따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이 새 정부에 대해 가지는 최대의 기대감 역시 `대북 문제에 대한 ‘한·미 공조’이다. 그런데 최근 한·미 공조의 형식에 대한 미국의 입장이 미묘한 변화를 보이고 있어 눈길을 끈다. 즉 그동안은 미국이 주도하고 한국이 보조를 맞추기를 요구하는 것이었다면, 새 정부에서는 한국이 주도하고 미국이 돕는 형식으로 하겠다는 것이다. 카터 전 대통령의 방북 문제가 대표적 사례다.

미국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한국의 새 정부 출범에 대비해, 카터를 통한 남북 정상회담 중재를 준비해 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김대중 당선자가 카터에게 이를 요청하면 카터가 메신저로서 북한을 방문하는 형식을 취하겠다는 것이다. 즉 한국의 새 정부가 정상 회담을 주도하고 미국은 측면에서 돕는 형태로 하겠다는 것이다. 카터 전 대통령이 지난 12월22일 저녁 김당선자에게 전화를 걸어, 곧 한국을 방문해 남북 문제를 협의하고 싶다고 밝힌 배경도 이와 관련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이 남북 대화를 주도하면 미국이 돕는다는 이러한 입장 변화는 다른 점에서도 확인된다. 미국은 지난해 하반기 미·북한 관계와 북·일 관계를 적극 추진해 왔다. 사실 남북 관계와 미·북한, 북·일 관계 사이의 속도 조절 문제는 김영삼 정부 내내 한·미 간 불화의 원인이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 소식통들에 따르면, 미국이 지난해 하반기 미·북한, 북·일 관계에 부쩍 박차를 가한 이유는, 대선 이후 한국의 새 대통령으로 누가 당선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만약의 경우를 대비한 측면도 있다고 한다. 따라서 새 정부에서 한·미 공조가 부활하면 미·북한, 북·일 관계 역시 남북 관계의 속도에 맞추어 재조정하겠다는 것이다.
미국, 경수로 경비 분담에 유연한 입장 보일 듯

미국은 경수로 분담금 문제 등 경비 분담에서도 좀더 유연한 입장을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경수로 협상 당시 미국측도 일정액의 분담금을 내기로 했으나, 지난해 연말까지도 안내겠다고 버틴 것은 김영삼 정부에 대한 감정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새 정부에서 한·미 공조가 부활하면 미국 역시 한국의 경제적 어려움을 감안해 비용을 분담할 의사가 있다는 것이다.

미국이 새 정부에 대해 바라는 한·미 공조 방식은 한마디로 말해 ‘케도형 모델’이다. 경수로 문제에서처럼 한국과 미국 또는 국제 사회가 손을 잡고 북한을 상대하면 좋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미국은 이렇게 할 경우 남북 대화가 어느 일방의 국내 정치적 필요에 의해 파탄 나는 것을 방지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이처럼 올해 남북 관계는 새 정부의 외교력과 협상력에 따라 순조롭게 풀릴 것으로 예상된다. 김정일 역시 지난해 8월4일 논문에서 ‘남한의 새 정부가 태도 변화를 보일 경우 당국간 대화를 재개할 의사가 있다’고 분명하게 밝힌 바 있다. 다만 한 가지 문제는 최근의 경제 위기로 인해, 남북 관계의 물질적 토대인 경제 협력이 상당 기간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 점에 대해서도 재계의 북한 전문가들은 중·장기적으로는 긍정적 측면이 있다고 말한다. 즉 북한측이 흡수 통일에 대한 두려움 없이 한국과의 대화 및 경협에 임할 수 있게 되었고, 한국 기업들이 북한에 진출할 때도 시혜적·경제외적 비용을 제거하고 경제 논리에 입각한 관행이 정립될 것이며, 중소기업들 역시 구조 조정의 일환으로 북한 진출에 눈을 돌리게 되리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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