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분야] 환란 극복 잘했지만 구조 조정은 낙제점
  • 金芳熙 기자 ()
  • 승인 1998.06.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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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분야/경제팀보다 대통령에 후한 점수… ‘실업 대책’ 평점 가장 낮아
‘외환 위기는 잘 극복했지만, 한국 경제의 장기 과제인 구조 조정은 잘 되는 것 같지 않다.’ 김대통령 100일 간의 경제 성적표는 이렇게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주요 경제 정책에 대한 평가에서, 전문가들은 김 대통령이 외환 위기를 극복한 데 대해서는 잘했다(69.6%)고 평가했다(못했다 4.9%). 그러나 경제 구조 조정에 대해서는 대체로 못하고 있다(47.5%)는 평가를 내렸다(잘했다 17.2%).

김대통령의 경제 정책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는 100점 만점에 68.3점. 상대적인 비교 기준이 없어 단정할 수는 없으나, 썩 좋은 점수는 아니다. 대학 학점으로 치면 C+ 정도.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현 정부의 경제팀에 대한 평가(59.3점)보다는 낫다는 점이다. 아니, 경제팀에 대한 평가가 김대통령에 대한 평가보다 나쁘다고 보는 것이 더 옳을 것이다. 김대통령의 의중이 경제팀에 제대로 전달되지 않거나, 경제팀 간에 손발이 맞지 않는다는 반증이다.
주요 당면 과제에 대한 김대통령의 경제 정책 수행 능력에 대한 평가에서, 전문가들은 외환 위기 극복(5점 만점에서 3.9)과 외자 유치(3.2)에 비교적 후한 점수를 준 반면, 경제 구조 조정(2.6)과 재벌·금융기관 개혁(2.4), 실업 대책(2.2)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했다. 1기 노사정위원회에서 합의를 이끌어낸 노사 관계에 대해서는 무난하다는 정도의 평가(2.9).

항목별 평가에서는 전문가 집단 간에 유의할 만한 차이를 보이지는 않았다. 거의 모든 항목에서 법조인 집단이 낮은 평점을 매겼지만, 이는 법조인의 표본 수가 5명에 불과했다는 사실과, 법조인 상당수가 지난 대선에서 반(反)김대중 성향을 보였다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언론인의 경우는 특히 재벌·금융기관 개혁에 대해 낮게 평가했는데, 이런 태도는 기업인 또는 민간단체 소속 응답자와 대조적이었다. 이는 민간 부문 종사자의 경우 자신이 개혁의 대상이라는 점에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개혁을 훨씬 더 실감나게 느끼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이런 평가에 대해 정부·여당으로서는 약간 억울한 느낌도 들 것 같다. 왜냐하면 외환 위기 극복에 비해 경제 구조 조정이라는 정책은 단시일에 끝날 성질이 아니기 때문이다.

김대통령이 집권한 지 100일 만에 구조 조정 과정에 대해 평가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 여당의 한 핵심 관계자는 이 설문 조사와 무관하게 최근 사석에서 “구조 조정 작업에 대해 평가하기에는 너무 이르며, 그런 점에서 국민들이 너무 성급하다”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현재 민간 부문에 대한 정부의 구조 조정 작업은 기업과 금융기관 경영 상태를 정밀 판정하는 초기 단계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번 설문 조사에서 전문가들은 구조 조정의 구체적인 진행 과정이나 결과를 총체적으로 평가했다기보다는 전체적인 인상을 평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환 위기에 대한 대처 노력에 비해 구조 조정 작업을 상당히 인색하게 평가한 것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비록 결과를 얻기에는 이른 시간이지만, 막 시작된 구조 조정 노력에 대해 실망하고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이는 경제팀에 대한 평가와도 직결된다.

학계·기업인·민간단체 종사자·법조인·언론인 등 이른바 전문가 집단이 경제팀과 이들의 구조 조정 노력에 대해 좋지 않은 평가를 내린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김대중 정부가 내세우는 구조 조정의 방향이나 원칙에 대해서는 비교적 공감하는 편이다. 그러나 정책 방향이나 원칙이 올바르더라도 정책 집행자들 간에 말이 틀리고, 정작 책임지고 일을 해보려는 쪽은 찾아볼 수 없다는 비판이 많다. 결국 경제 정책의 주체들이 권한은 챙기려고 하면서도 누구 하나 책임지려고는 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다.

“합의 쫓다 보면 개혁 지연될 수밖에 없다”

원인에 대한 분석도 다양하다. 일부 전문가들은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공동 정권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지적하기도 한다. 또 일각에서는 고도 성장의 주역이라고 자처하는 경제 관료들 탓으로 돌리기도 한다. 습성과 행태를 바꾸기가 좀처럼 어려운 관료들의 특성 때문이다.

어떤 원인이 주가 되었건 간에 김대통령의 경제팀은 어느 경제 전문가 말대로 ‘생각이 다른 두 여당과 경제 관료라는 세 사람이 함께 뛰는 3인3각 게임’이 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이는 최근 정가에서 흘러나오는 김대통령의 6월 초 방미 후 부분 개각설과 관련해, 경제팀을 주목하게 되는 요인이기도 하다.

게다가 한국 경제의 최대 현안으로 떠오른 구조 조정의 핵심은 부실 기업과 금융기관 일부를 문닫게 하고, 나머지끼리도 통폐합을 비롯한 경영 합리화 조처를 강제하는 작업이다. 누가, 어떻게 추진했건 비난이 따를 수밖에 없는 인기 없는 정책인 것이다. 경제 정책의 주역들이 악역을 포기하면 부실 기업과 금융기관에 대한 정부의 처리 방침이 갈수록 용두사미가 될 수밖에 없다.

경제 정책 혼선과 관련해, 김대통령이 내건 구호인 ‘민주적 시장 경제’ 자체의 문제를 제기하는 경제 전문가들도 있다. 금융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구조 조정 정책을 가속화해야 하는 지금으로서는 적절치 못하다는 얘기다. “금융 위기는 전세계 30여 나라가 경험했으며, 모범 답안도 이미 나와 있다. 이런 마당에 합의를 쫓는다는 명분에 집착하다 보면, 목소리 큰 경제 주체에 밀려 구조 조정이 지연될 수밖에 없다.” 한 경제학 교수의 말이다. 더욱이 경제 위기 상황에서 맞이한 6·4 지방 선거는 일시나마 구조 조정을 지연시켰다. 요즘 관가에서는 ‘선거 때까지는 경제 정책 올 스톱’이라는 자조적인 말도 나온다.

구조 조정 정책의 뒷전에 밀렸지만, 김대통령은 사상 초유의 실업 사태에 대해서도 심혈을 기울여 왔다. 10조원에 달하는 실업 대책 기금조성안을 비롯해, 거의 한 달에 한 번꼴로 굵직굵직한 실업 대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번 김대통령 100일 경제 분야 평가에서 전문가 집단은 실업 대책 분야에 가장 박한 점수(2.2)를 주었다. 이른바 ‘DJ노믹스’가 기획 단계에서는 화려하지만, 실제로는 실속이 없다고 단정해 버린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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